받지 못한 편지 .1
여주야. 네가 어디있는지 감이 잡히지도 않아. 분명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는 누군가들은 네가 어딨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단단히 주문을 걸어놔서 그런지 아무도 말을 안해줘.
여주야, 잘 지내? 네가 남긴 쪽지들을 우린 거실 탁자위에 올려두고 매일 읽어. 너의 글씨체를 외운 수준이야.
우리보고 잘지내라고 했지만, 우린 못지내. 널 보낸 그 겨울의 모든 게 잊을 수 없이 우리에게 남아있어.
널 처음 만난 날, 그 날 떨어진 너의 명찰에 난 엄청 고마워했어. 그 날 선도 섰던 것도, 교무실에 날 잔소리하려고 붙잡았던 선생님도.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널 보지 못했겠지?
날 바다로 보내는게 목적이었다며. 그거 이뤘네.
그럼 나도 이루게 해줘야지.
나도 너 바다로 보내주겠다고 했잖아.
왜 치사하게 나는 못하게 만들어, 왜.
...여주야, 내가 너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나 너 처음 본 그 날 부터, 그니까 네가 나한테 울 것 같단 표정을 하고있다고 내게 말했을 때부터, 널 좋아했어.
이렇게 그냥 떠나버린 너를 원망하면서도 아직도 너를 좋아해.
보고싶어. 입 주변에 자꾸 이 말이 맴돌아.
여주야, 많이 좋아해, 보고싶어.
닿지 못한 편지 .2
여주야, 나 정한이야. 잘 지내고 있어? 나는 네가 떠나고 나서 한참 멍하니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기만 했어. 우리 대부분이 다 그랬어. 석민이는 네 침대에 누워서 계속 울었고, 민규는 방에 누워서 아무말도 안했고, 승관이랑 순영이의 텐션도 바닥을 기었어. 지훈이는 말할 것도 없었지.
..혹시 네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했던게 이런 일이었을까? 그 딜레마 이야기를 꺼낸 날, 너는 교수님에게 제안받은 일 때문에 생각에 빠져있던 거였어?
..왜 꼭 후자를 택했어야했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걸 택했어, 왜?
여주야, 그러면 그게 다 끝나면 돌아와서 우리 같이 시간 보내자. 못보낸 만큼 같이 보내자 여주야.
네가 토마토는 아무렇게나 던지면 다시 그자리에서 열매를 맺는다며. 근데 너도 그렇게 하겠다고 그랬잖아. 근데 왜 떠났어. 토마토처럼 곁을 지켜준다는 뜻 아니었어?
..다짐형이 아니라 가정형이었던 건 이유가 있었던거야?
여주야, 나는 너처럼 똑똑하지 못해서 이해가 잘 안가. 네가 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쪽지들을 남겨두고 그냥 그렇게 떠났는지, 왜 너는 그렇게 행복이 두려운지.
와서 말해줘, 육년을 기다렸지만, 사년 뒤에 네가 온다면 더 기다릴 수 있어. 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우린 언제든지 이 곳에서 널 기다릴거야.
..네가 가고나서 누나 기일만 되면 너랑 누나가 내 꿈에 나와. 둘이서 날 보고 자꾸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러는데, 너 정말 잘지내고 있는거 맞지?
여주야, 제발 잘 지내고있다고, 뭐라도 남겨주라. 그냥 택배에 작은 쪽지만 보내지말고, 뭘 먹고 지내는지, 뭘 하고 지내는지, 네 사진이라도, 제발 뭐라도..
보고싶어, 여주야, 너무 보고싶다.
닿지 못한 진심 .3
여주야. 네가 그랬잖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빙빙 돌 거면 너한테 전화하라고. 나 그 때부터 너 좋아했어. 아니 아마 네가 나한테 긴팔 입는 이유를 말했을 때. 그 날 기억나지. 한여름에 사진동아리 실에서 뭐 시켜먹겠다고, 우리 그 배달음식 가지러 간 날. 그 날, 너랑 내가 비밀을 나눈 날. 아마 그 날 부터 널 좋아했던 것 같아.
왜 이런 말을 전하지도 못하게 떠났어, 왜.
여주야, 왜 너는 우리를 이만큼 살려놓고선, 왜 떠났어.
우리 안보고싶어? 우린 매일 네 얘기를 해, 네 생각을 하고.
그니까, 빨리 돌아와.
돌아와서 나 좀 살려주라.
가지 못한 편지 4.
못됐어, 너. 알고있어? 내가 너 떠날 거 눈치 챈 날, 왜 말 안했어. 다음주에 떠난다고 왜 말 안했어? 왜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어? 왜 그랬는데, 왜. 너 우리 어떻게 지내는지 다 들었어? 석민이는 너 사라지고 나서 니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어, 몇달을 계속. 지훈이 형은 또 어땠는 줄 알아? 밥도 안먹고 죽은 사람 마냥 누워만 있다가 이젠 일에 미쳐살아. 널 잊으려 그러는 거겠지만 형은 여전히 너를 좋아하고, 잊지 못해.
정한이 형은 형네 누나 기일만 되면 거의 죽었다 깨어나. 네가 없어서. 그리고 정한이 형 편지 다 거짓말이야. 꿈에서 누나랑 네가 잘지낸다고 한 거. 사실 자꾸 네가 운대. 누나는 안나오고, 네가 자꾸 울고있대.
...너 진짜 , 너 진짜 잘지내는 거 맞아?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와. 내가 너를 몰라? 오고싶잖아. 거기 있기 싫잖아.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있는거 누구보다 싫어하잖아. 학교만 달라져도 스트레스 받는 네가 외국에서 어떨지 눈에 보여. 여주야, 제발 돌아와. 아프더라도 내가 보는 앞에서 아프고, 적응 못해도 내가 보는 곳에서 그렇게 하라고.
..눈에 안보이니까 죽을 것 같아. 6년이 지나도 똑같아. 네가 여전히 그립고, 보고싶고, 네가 여전히, 좋아.
좋아해, 여주야. 보고싶어.
모든 걸 다 준 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원했지만, 짙은 자국을 남긴 채 가버렸다.
너는 이런 걸 원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