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민) 뭘까?
민규) 그니까.
승관) 솔직히 있었으면 꼬치꼬치 캐묻기라도 할텐데.
순영) 키워드만 툭 던져놓고 나가니까 궁금해서 미치겠네!
가족회의까지 7시간이 남은 시점. 민현은 '여행 일정 변동' 이란 키워드를 던지고 과제를 하겠다며 카페로 홀연히 여주와 사라졌다. 이에 남은 아이들은 민현을 붙잡으며 말하고 가라고 떼를 썼지만 웃는 얼굴로 단호히, 쫓겨나기 싫음 비켜. 라는 말에 쭈글이가 될 뿐 더한 떼는 쓰지 못했다.
가장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넷은 2층 거실에 보드게임을 하며 민현이 던진 키워드에 초점을 맞췄다.
승관) 변동이면 날짜를 말하는거려나?
순영) 내년 겨울까지 돈 모으기엔 부족해서 내후년으로 밀린다는건가.
석민) 오. 그거 약간 가능성 있는데?
민규) 좀 넉넉하게 간다고 미루는걸지도몰라.
순영) 그니까.
승관) 안미뤄져도 어차피 먼 일이라서 더 미뤄진다고 싫진 않은데, 뭔지가 너무 궁금하네.
석민) 맞앜ㅋㅋㅋㅋㅋ 이미 내년 여행계획이라 너무 멀긴해. 근데 뭐 더 미뤄진다고 뭔 문제냐...
민규) 아님 오히려 당겨지는거 아냐?
순영) 돈이 없잖아.
민규) 유럽 여행이 아니라 뭐 아시아를 간다던가, 제주도를 간다던가. 올해 한 번 가고 내후년으로 미루자고 할 수도 있잖아.
순영)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지훈) 야 여주는?
석민) 여주랑 민현이 형 카페갔어. 과제한다고.
민규) 지금 일어난겨? 세시간이나 잤네.
지훈) 왜이렇게 아침만 먹으면 졸린지 모르겠어. 저녁 먹으면 안졸린데.
순영) 니가 아침잠이 좀 많은가보지. 끼실?
지훈) 아니.
낮잠을 자고 일어난 지훈이 부엌까지 내려갔다가 여주가 없는 걸 보고서 2층에 앉아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향해 여주의 안부를 물었고, 곧 민현과 나갔다는 말에 아이들 옆에 앉아 게임하는 걸 바라보다 곧 흥미를 잃은 듯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여주와의 연락창을 켰다가 전에 나눈 대화 내용을 훑더니 타자를 치려다 지워냈다. 그리고 곧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 나도 따라갈 걸.
민규) 카페도 싫어하는 형이 무슨.
석민) 가서 자게?
승관) ㅋㅋㅋㅋㅋㅋ거기서 어떻게 자. 얼마나 시끄러운데
석민) 저 형이라면 가능해 ㅋㅋㅋㅋㅋ
지훈) 가능은 해 ㅋㅋㅋㅋㅋㅋㅋ
순영) 낮잠을 줄여. 그래야 여주를 보든 말든 하지.
지훈) 잠이 많은 걸 어떡하냐.
순영) 밤에 안자니까 그런거 아냐?
지훈) 밤엔 또 안졸려.
순영) 그 때 니가 너무 많은 걸 해.
민규) 뭘하는데?
민규의 물음에 순영은 지훈보고 말하라는 듯 말이 없었고, 지훈은 널린 카드들을 바라보다 무심하게 답했다.
지훈) 과제.
순영) 난 그 선택 반대야.
지훈) 어쩔 수 없지.
민규) 뭐라는거야? 과제를 낮에 해. 여주랑 낮에 하면 되잖아.
지훈) 생활패턴 바꾸는게 좀 쉽냐. ..노력은 해봐야겠다.
승관) 정한이 형은 뭐해?
지훈) 일어나니까 휴대폰하고있던데. 원우는 밑에서 한솔이랑 티비보고.
승관) 아 아까 나 예능 하나 예약 해뒀는데. 3시에 뜨면 알려주겠지?
지훈) 원우랑 한솔이면 알려주지. 명호라면 취소하고 자기가 보던거 보곸ㅋㅋ
승관) 맞아. 저번에 그래서 보려던거 놓친적 진짜 많다 ^^
아이들이 학수고대하던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식탁에 모여앉은 아이들은 음식을 먹으며 민현을 계속 쳐다봤다. 부담스러움에 헛웃음을 터뜨린 민현이 그만해! 하고 소리치자 하나 둘 입을 열었다.
석민) 좀 먹은 것 같은데 이제 말하시죠!
민현) 야 나 지금 다섯입도 안먹었거든!
민규) 아이 그니까 빨리 말해!
민현) 배 좀 채우고 말하자!
안돼!!
안된다는 아이들의 고함에 민현이 돈까스를 집으려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모금 마시더니 운을 뗐다. 그래.
민현) 말 그대로 여행 일정 변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건데,
정한) 긍정적인 쪽이야? 아님 부정적인 쪽?
민현) 글쎄.. 딱히 그렇게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아.
단순히 내년에 가기로한 걸 내후년으로 미루는 거라서.
정한) 왜? 돈 부족해서?
민현) 부족하다기보단 너무 적당해. 차라리 1년 더 미뤄서 가는게 좋을 것 같아.
승철) 그런거라면 뭐. 넉넉하게 해서 가는게 좋지. 막 돈 생각하고 아껴서 쓰려고하고 그러면 좀 불편하긴 하니까.
명호) 여행가서 그러면 싫지.
준휘) 여행은 돈쓰는 맛인데.
민현) 그리고 내년 말에 갈거면 내년 초에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게 좋은데, 그러기엔 돈이 좀 애매하기도 해. 다들 어떻게 생각해?
승관) 그런거라면 그렇게 하는게 낫지. 난 상관없어.
정한) 다들 상관없지?
상관없냐는 물음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궁금증을 해소한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승철이 민현을 향해 물었다. 그럼 올해 말에는 아무데도 안가는거야?
민현) 올해? 올해는 계획이 없긴한데. 어디 가고싶어?
승철) 그렇다기 보단, 뭔가 재작년도 가고 작년도 갔으니까 올해도 가야 될 것 같잖앜ㅋㅋㅋ 내년은 내후년 유럽여행 때문에 못갈거고.
민현) 그치, 내년은 못가는 거 확정이긴 한데.
찬) 그럼 우리 또 제주도 가는 건 어때? 여름에 가봤으니까 이번엔 겨울에 가는거지!
승관) 와 이찬 무슨일이야. 그렇게 좋은 의견을 다내고?
찬) 뭐래 ^^
순영) 아 그거 좋은데? 이번에 또 승관이네 할아버지 댁에서 자고오는거야!!
승관) 당근빠따 너무 좋다!
정한) 그것도 좋네. 여름에 가봤으니까 겨울에 가는 것도.
민현) 그럼 다른 데 좋은 의견 있는 사람? 없으면 제주도로 가는걸로 하고 다음주중 안으로 티켓팅을 할게.
정한) 그럼 이번에도 승관이가 계획을 다 짜는거야?
승관) 아아- 여러분. 승관투어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번에도 저희 승관투어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번 여행 만큼은 더더욱 재밌게, 겨울의 제주도를 만끽할 수 있는 계획표를 구성해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석민) 쟤 또 이미 비행기 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규) ㅋㅋㅋㅋㅋ지금 이미 제주도에 가있어
민현) 그럼 다른 의견 없으니까 제주도 가는 걸로 할게. 계획은 예전처럼 승관이가 대충 짜고나서 나랑 정한이랑 지수가 이야기 하는걸로 하자.
승관) 아싸!!!! 기말고사 끝나고 엄청난 스케줄이 나를 기다린다!! 너무 설레!
순영) 야하-!!! 기말을 부숴버릴 목표가 생겨버려쒀!!
승관) 밥먹고 오늘부터 당장! 계획을 대충 짜야겠어!!
저녁식사 시간 이후, 여주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과제에 열중하고 있었고, 제 방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양인지 3층 거실에 나와있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과제에 탁상에 엎드리더니 또 다시 장소를 옮기려는듯 노트북을 들고서 2층 거실로 내려갔고, 테이블에 노트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집중하고 있었을까, 승관이 제 방에서 노래를 흥얼흥얼거리며 나오더니 여주 맞은 편에 자리했다.
승관) 떠나요~ 제주도~ 푸른밤~ 하늘 아래로~
여주) ...뭐얗ㅎ 왜이렇게 신이 나있어.
승관) 최근들어 노트북 여는 데에 이만큼 신이난 건 처음이야.
여주) ㅋㅋㅋㅋㅋㅋ제주도가 그리 좋으냐.
승관) 완전. 리얼. 진심!
승관이 여주의 말에 대답 자판기마냥 답하더니 노트북을 열었고, 마우스를 딸깍딸깍 거렸다. 그리고 여주를 향해 말했다.
승관) 나 이제 바쁘니까 말시키지 말아줘.
여주) 시킬 생각도 없었어. ..근데 너 진짜 여전하다.
승관) 뭐가?
여주) 너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 카페에서 마주친 날 나랑 석민이한테 그렇게 말했었는데. 공부할거니까 말시키지 말아달라곸ㅋㅋㅋ
너 나이만 먹고 그대로구나?
승관) 칭찬이야? 왜이렇게 욕같냐.
여주) 칭찬이야. 사람이 여전하다는 건 항상 칭찬이지.
승관) 아니야. 난 너가 좀 변했으면 좋겠는걸.
여주) ...내가?
승관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고, 여주는 그 말이 의아한 듯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승관을 향해 되물었다. 그러자 승관은 입을 앙다물고 답을 않더니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답했다. 응.
여주)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는데?
승관) 행복하게.
여주) .........
승관) 와아아아안전 행복하게.
너무 행복해해서 우리가 고민할 정도로.
슬픔이라는 건 잘 모르는 사람인 것 처럼.
케이티엑스 타면서 봐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
승관) 네가 아주 아주아주 완전 엄청!!!!! 순영이 형과 석민이, 그리고 나의 텐션을 모두 합쳐야 할 정도로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여주) ㅋㅋㅋㅋㅋㅋ진정햌ㅋㅋㅋㅋ
승관) 행복해져라 얍!
여주) 그 막대기는 또 뭐얔ㅋㅋㅋ
승관) 효자손이야. 이렇게 하면 늘어나.
여주) 왁 진짜네?
승관) 행복해져라 얍!
여주) 그만햌ㅋㅋㅋ 아 과제나 좀 어떻게 해봐 ㅋㅋㅋㅋㅋ
승관) 과제여 잘 풀려라 얍!!!!
우리를 제주도로 옮겨주라 얍!!!
어두운 분위기를 풀기위해 장난식으로 승관이 여주를 향해 말했지만, 그 장난이 마냥 장난이진 않을거라는 걸 여주는 알았다. 그런 여주가 잘 알아들었다는 것도 승관은 알고있었다. 제 효자손을 휘두르는 승관이 곧 다시금 길이를 줄여 탁상에 내려놓고 또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알 없는 안경을 쓰며 여주를 향해 말했다. 이제 진짜 열중해야돼. 말 시키지 말아줘.
epilogue
원우) ..거기서 뭐해?
여주) ..엉? 아 아냐. 그냥 뭐, 티비 보다가 이제 막 올라가려던 참이었어.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던 여주가 원우의 물음에 대충 얼버무리고, 원우는 옅게 웃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간식이 목적이었던건지 과자를 하나 들고 나온 원우였고, 여주는 방에 들어가려던 원우를 불러세웠다.
원우) 왜?
여주) ...나 행복해 보이지 않아?
원우) .........
자신의 방문 앞에 있던 원우가 천천히 여주에게 다가가고, 소파에 앉아있는 여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원우)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여주) 어?
원우) 내 대답이 중요한가 싶어.
행복해 보여도 안행복한 사람이 있고, 안행복해 보여도 행복한 사람이 있잖아.
원우의 말에 여주가 말 없이 원우를 쳐다보고, 원우는 그 정적에 봉지과자를 뜯었다. 그리고 과자를 탁 탁 흔들더니 여주를 향해 말했다.
원우) 그래도 굳이 내 대답이 필요하다면..
여주) .........
-행복해 보이지 않아?
행복해 보이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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