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오빠.
정한) 여주야 여기 오빠가 한 둘이 아냐.
지수) ㅋㅋㅋㅋㅋ그러니까.
원우) 쳐다보지도 않고 밥먹다가 갑자기 오빠를 부르면 누군지 어떻게 알앜ㅋㅋㅋㅋ
여주) 찔린 사람 있어. 오빠 빨리 대답해.
정한) 누구?
원우) 누구야.
순영) 어서 대답하세요~
승철) ...나?
여주) 거봐. 안다그랬지.
승철) ..왜?
여주) 내 얼굴 닳겠어. 그만 봐.
승철) 아,
여주) 미안하다고 하지마. 술 마시고 들어올 수도 있지, 뭐. 사람이 사회생활이 있는건데.
아침식사 시간, 미안함에 자꾸 여주를 옅보던 승철이었고, 여주는 그런 승철을 안다는 듯 밥을 먹으며 말했다.
여주) 잘못된 건 나야.
..고칠 사람도 나고.
민현) 잘못된 사람이 어딨어.
지훈) 그사람을 존중하고 위하는거지.
석민) 그래 여주야. 내가 오이를 못먹어서 여주 네가 오이를 먹어주듯이.
민규) 그렇게 자연스러운거야. 너 잠 덜깼지.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밥먹어.
여주) 아익, 야 나 연근 싫어한다고! 미쳤냐!
민규) 너 잠 덜 깬 것 같길래! 악! 식탁 밑으로 발 밟지 말라고! 야 연근 줘 연근! 야 왜 밥까지 줘!
여주) 밥에 연근 묻었잖아! 너 이만큼 니가 다먹어!
순영) 아이 얘들아 왜이러니 밥먹는데 아침부터어-!
승관) 적당히 해라 적당히! 어!? 야 식탁 울린다 이놈들아!
찬) 예절을 더 배워야돼 아주.
원우) 오늘 공강인 사람 나랑 여주 밖에 없었나?
여주) 엉? 어. 맞아. 나 근데 오전 알바 있어.
원우) 아 맞다 그랬지. 그럼 나랑 소품샵 가줄 생각 없어?
여주) 소품샵?
원우) 응. 근처에 예쁜 곳 있다길래. 가보고싶어서.
여주) 그래 그럼 같이가자. 내가 끝나고 연락할게.
민현) 다녀왔습니다.
한솔) 어 형, 하이.
민현) 응. 애들은?
한솔) 웬만한 사람들은 다있지.
민현) 여주는?
한솔) 여주? 원우형이랑 같이 나갔다가 아직 안왔나본데?
민현) 시간이 몇신데 아직도?
한솔) 아직 일곱시야. 저녁 먹고 올 수도 있지.
한솔이 소파에 앉아 민현에게 말하고, 민현은 서서 한솔을 바라보다가 시무룩한 표정을 한 채 제 방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방에 들어온 민현은 가방도 푸르지 않은 채로 침대에 앉아 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현) 밥먹고와?
‘응, 그럴 것 같은데?’
민현) ..그럼 한 여덟시 반 쯤 오려나?
‘으음..아홉시? 왜?’
민현) 아니 그냥 집에 없길래.. 알았어.
‘엉-‘
민현) ...하아. 심심하네.
민현이 제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가방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뒤 화장실로 향했다.
지훈) 하이, 웬일로 나와있어.
정한) 그러게.
한솔) 아, 올라가기 귀찮아서 소파에 앉아있었어.
지훈과 정한이 집에 들어오고, 2층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 한솔이 자신들을 반기자 의아한듯 물었다. 그리고 곧 민현과 똑같은 질문을 한솔에게 던졌다.
지훈) 여주는?
한솔) 원우형이랑 아직 안들어왔어. 저녁까지 먹고 들어올 것 같아.
정한) 아직도? 아주 짝짝꿍 잘맞아.
지훈) 여주가 은근 원우랑 케미가 있어.
정한) 그니까.
지훈) 그럼 우린 저녁 뭐먹어?
한솔) 미역국 먹어, 누가 미역국 해놨던데?
지훈) 그래? 누구지, 민균가.
정한) 그럼 저기다가 밥이나 말아먹자.
지훈) 그래.
지훈과 정한이 올라가고,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을 하던 한솔은 더 있다간 여주의 근황을 계속 반복해야할 것 같은 느낌에 과자를 들곤 제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금새 옷을 갈아입고 씻은 정한과 지훈이 내려와 식사를 할 때, 민현이 제 방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물을 따라 마셨다.
지훈) 집에 있었어?
민현) 응. 목욕했어.
정한) 너 몇시에 왔는데?
민현) 일곱시쯤?
정한) 한시간을 했구나.
민현) 근데 여주 아직도 안왔어?
정한) 응. 곧 오지 않을까? 여덟신데.
민현) 원우가 은근 여주랑 잘맞아.. 신기해.
지훈) 아까 우리랑 똑같은 소리 햌ㅋㅋㅋㅋ
민현이 물을 다 마신 뒤 커피를 타고 둘 옆에 앉았다.
지훈) 넌 밥 먹었어?
민현) 오다가 대충? 배가 별로 안고파서.
정한) 여주는 대충 먹으면 뭐라도 꼭 먹이면서. 지는.
민현) 나랑 같냐 여주가.
정한) 다르지.
지훈) 다르지.
민현) ...매정한 놈들.
민현) 아 원우 부럽다. 나도 여주랑 공강 날짜 겹치고 싶다.
지훈) 나도.
정한) 나도. 아, 야 근데 여주 며칠전에 저번준가? 남소 받을 뻔 한 거 아냐?
민현)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정한) 같은 과 동기였던 것 같은데, 그 애가 여주 남친 없으니까 남소 시켜주겠다고 그랬어.
지훈) 정확히 남소가 아니라 그 남자애가 여주랑 밥을 먹고싶다그랬댔지.
민현) 결론은?
정한) 여주가 뭐라그랬을 것 같아?
민현) 그걸 어떻게 맞춰.
지훈) 맞춰봐. 니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갔으니까.
민현) 아그래?
맞춰보라는 정한의 말에 신경질이 나는 듯 짜증아닌 짜증을 내자 지훈이 그 화를 가라앉히고, 곧 민현은 웃음기를 띠워냈다.
민현) 됐다고 그랬나?
지훈) 그런 쪽 대답이었어.
정한) 맞아.
민현) 그러면, 남친 만날 시간이 없다고?
지훈) 오 맞아. 잘맞추는데?
정한) 사랑의 힘인가.
지훈) 닥쳐.
민현) 맞는데 뭐.
지훈) 정확히 맨처음엔 필요가 없댔어. 남친이.
민현) 그래? 그런 류의 대답은 좀 신선하네.
정한) 그치.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말들을 해.
지훈) 그래서 좋아.
민현) ..훅들어오네.
띠띠띠띠, 띠리릭.
민현) 어 여주다.
지훈) 여주야.
정한) 원우는 안보이냐 들. 여주 잘 다녀왔어?
원우) 니가 제일 나쁘거든 윤정한.
여주) 안녀엉.
양손에 바리바리 든 원우와는 달리 간소하게 손바닥만한 봉다리 하나만 든 여주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보이고, 여주는 곧 자신이 입고있던 원우의 재킷을 벗어 원우에게 건넸다.
지훈) 밖에 좀 추웠어?
여주) 응. 낮에 입었던 거 고대로 입고 갔더니 좀 추웠었어. 고마워.
원우) 아냐 난 오히려 더웠었어가지고.
정한) 아직 일교차가 심하니까 가디건 두툼한 거 들고다녀. 감기걸린다.
여주) 그래야겠어.
거실에서 짧은 담소를 나누고 원우와 여주는 전부 제 방으로 들어갔다. 민현은 컵을 씻고 건조대에 올려놓은 뒤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고, 지훈과 정한은 자신들이 먹은 그릇들을 다 치우고서 방으로 올라갔다.
여주) .........
역시, 봄 가을은 무서운 녀석들이야.
날씨 좋아요- 하다가 찬 모습을 드러내보이는게 퍽 싫어, 아주.
여주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느낀 건, 달라진 제 몸뚱아리였다. 불안한 느낌은 항상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건 혹시 과학이 아닐까? 여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제 이마와 목 주변을 만져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제 서랍장을 뒤지더니 몸살약 하나를 꺼내 입에 집어넣고서 침대 머리맡에 있던 물을 마셨다. 아, 금요일까지 학교 풀인데. 여주가 작게 중얼거렸다.
지훈) ...오늘따라 여주 볼이 더 발그레 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석민) ...맞는데? 약간 붉네. 뭐지?
여주) 기분 탓이야. 밥이나 드시죠.
정한) 여주 오늘 몇시에 끝나?
여주) 음.. 글쎄. 여섯시면 끝나고 올 것 같아.
민규) 오늘은 꽤 일찍오네?
여주) 응.
민현) 오늘 명호 공강이랬나? 승관이랑.
승관) 어 왜?
민현) 아니 치약을 산지가 얼마 안됐는데 다 떨어져셔. 혹시 사다 놓을 수 있냐고.
명호) 그래, 이따 낮에 사다 놓을게.
민현) 그래 고마워.
괜한 걱정을 사게하고 싶지 않았던 여주는 능청스레 빠져나가며 조용히 밥을 먹었고, 곧 민현으로인해 화제는 생활용품으로 전환됐다.
민규) 여주 밥 안먹는다는데?
정한) 그래? 왜?
민규) 졸려서 좀 잔다고. 이따 집에서 보쟤.
정한) 어쩔 수 없지. 그럼 밥먹으러가자. 준휘는 오고있대?
지훈) 어 다왔대.
단톡방을 확인하던 민규가 여주의 소식을 전하고, 동아리 방에있던 아이들은 곧 식당으로 향했다. 스튜디오에 있던 여주는 동기가 사다준 편의점 죽을 조금 먹다가 약을 먹고서 구석에 자리잡아 누웠다. 머리가 띵하는 느낌에 느리게 눈을 깜빡 거리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거짓말이 언제까지 허용될 지 모르지만,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분명 학교를 쉬라고 할 그들이 눈에 훤했다. 여주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빨리 주말이 오기를 바랄 뿐.
집에 돌아오면 졸린 척 하며 대충 밥을 먹고 올라가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개강병이 뒤늦게 온건가 싶어 별 말하지 않았다. 늦게까지 과제하던 애가 일찍 집에 오면서까지 피곤하다고 했으니. 간혹 아픈 것 같아보여 어디 아프냐 물으면 피곤해서 그렇다는 말에 아이들은 의심을 지워냈다. 그렇게 여주에겐 지옥같은 평일들이 지나가고, 곧 주말이 밝았다.
1층 아이들이 아침을 다 차려내고, 웬만한 아이들이 식탁에 자리했을 때까지도 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민현은 석민을 향해 여주 좀 데려오라고 말했고, 석민은 곧 눈을 비비며 다시 3층에 올라갔다. 여주의 문앞에 선 석민이 여러번 여주의 방문을 두드리고, 인기척 하나 없자 살며시 문을 열었다. 여주야 문 열게-.
석민) ..여주야. 아침먹어야돼.
여주) ..........
석민) ..여주야 일어나.
..여주야. 너 땀이..
침대에서 멀리 떨어져 여주를 부르던 석민이 천천히 여주에게 다가가고, 곧 스탠드 불빛으로 비친 여주의 땀을 보곤 침대에 걸터앉아 얼굴을 살폈다. 제 손등으로 땀을 닦아주던 석민은 당황한 듯 조용히 방문을 나가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석민) 여주 아파. 땀도 엄청 흘리고 열도 있는 것 같아. 병원가야할 것 같은데..
정한) 뭐?
민현) 얼마나 아프길래. 많이 아파보였어?
석민) 응. 숨도 엄청 가쁘게 쉬고..
정한) 석민아 체온계 가져와.
석민) 응.
석민의 말에 아이들은 식사를 멈추고, 몇명의 아이들은 급히 여주의 방을 올라갔다. 민현은 제 방에 가 겉옷을 걸친 뒤 휴대폰을 가져왔고, 금방 귀에다 가져다대며 여주의 방으로 향했다.
정한) ...여주야. 괜찮아? 체온계 좀 줘봐.
석민) 여기.
정한) ...39돈데. 고열이야 병원가야돼.
민현) 엎혀줘봐. ..어 이모.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민현) 친구가 아파서 지금 병원 좀 가려는데. ..열이 몇도라고?
정한) 39도.
석민) 얘 몸살이었나봐. 여기 약 먹은 거 있는데.
민규) 형 내가 택시 불러놨어. 3954번. 기사님 다오셨대.
민현) ..하아. 몸살인 것 같아. 열이 39도야. 지금 갈테니까 좀 봐달라고.
‘알았어. 응급실로 와.’
민현이 여주를 엎고 정한은 민현의 휴대폰을 잡아 집업 주머니에 넣어줬다. 민규가 여주 등 위로 담요를 덮자 민현이 곧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가고, 아이들은 현관이 닫히고 택시를 타는 것 까지 본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석민) ...저거 진짜.
민규) 며칠전부터 아픈거 맞았네. 아오.
지수) 그냥 말 안했겠어? 말했으면 학교가지말라고 노발대발했을 거 눈에 보여서그랬겠지.
민규) 그래도 말했으면 이렇게까지 가진 않았을거야.
지수) 이해해. 걱정시키는 거 싫어하잖아.
지수의 말에 민규와 석민이 한숨을 푹 내쉬곤 식탁 앞에 다시 앉았다.
한솔) 아니 근데 그럼 저렇게 아픈데 계속 학교를 간거야?
민규) ...그니까. 생각할수록 진짜..
찬) 학교 끝나고 병원이라도 가지..
석민) 원래 저래. 병원 안가고 그냥 집에 있는 약 먹으면서 버티는거. 습관이야.
민규) ..아 진작에 볼 붉었을 때부터 체온계를 대봤어야 했는데.
정한) 일단 밥 먹고 민현이 연락 기다리자.
여주) ........
민현) ..여주야. 괜찮아?
여주) ..하아. 미안해.
여주가 천천히 눈을 뜨자 여주를 보고있던 민현이 물었고, 여주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민현은 곧 미도를 부르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빠르게 걸어오던 미도는 허리를 숙여 여주를 향해 물었다.
민현) 이모.
“..어. 일어났네.”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여주) ...괜찮아요.
“그럴리가 없을텐데. 아직 반도 안맞으셨거든요.”
근데 왜 괜찮다고 느끼는지 아세요?
여주) ..........
“잠을 푹 자서.”
여주) ..........
“안잤던 잠을 푹 자서 그래요.”
웃음기를 입에 머금은 채 넌지시 말하는 미도였고, 곧 민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맞으면 가도 돼.
민현) 얼마나 걸려?
“음.. 이정도면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민현) 알았어, 고마워.
여주) ...미안해.
민현) 뭘 자꾸 미안하대 ㅋㅋㅋㅋ
여주) .........
민현) 그래도 말해줬으면 이렇게까진 아프진 않았을거야. 그치.
여주) ...응.
민현) 아프면 그냥 말을 하지, 뭐하러.
여주) 약 있어서.. 그거 먹으면 나을 줄 알았어.
민현) ........
우웅-..
여주의 말에 무언가 답하려던 민현이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곧 화면에 찍힌 정한의 이름을 보곤 웃음을 터뜨리며 여주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민현) 이거봐. 애들이 널 이만큼 걱정하고 있어.
여주) ...그러네.
민현)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주는 좀 어때.’
민현) 몸살이래, 잠도 못자서 그렇고.
‘깨긴 했어?’
민현) 응. 이거 맞고있는 것만 맞고 갈거야.
‘언제 오는데?’
민현) 한 두시간 세시간 뒤? 금방 갈게. 올생각하지말고. 소란스럽게.
‘아.. 야 부승관!! 옷 벗어!! 오지말래!!’
‘에!? 왜왜!!!!!’
‘아이씨 권순영!!! 신발 벗어!’
‘아니 왜! 걱정되는데!’
‘알았으니까 끊을게.’
민현) .........
여주) 뭐래?
민현) 당장이라도 달려올 기세길래, 오지말라그랬어.
여주) ...참. 미안하네.
걱정 안시킬려고 말 안했더니 더 걱정시킨 것 같아.
민현) 그니까 앞으로 거짓말 하지 말고.
여주) .........
민현) 나 처음으로 후회 했어.
여주) 무슨,
민현) ...의대갈 걸.
여주) .........
민현) 그럼 내가 널 안아프게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여주) ..가기 싫어했잖아.
민현) 응, 근데 너 아픈거 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