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림음이 너무 큰 승관이 잠결에 들은 문자를 확인한게 포인트였다. 평상시였음 인상만 찌푸리고 말았겠지만, 유독 오늘따라 문자가 보고싶었다고. 이상한 촉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아이들은 여전히 2층에 모여있었고 언제 오느냐고 물어보라는 말들이 오가고있었다.
그 물음에 승관의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여주야. 그럼 언제쯤 와?
우웅-..
문자를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돌아오는 답장이었다. 여주는 밝게 빛났다가 다시 까매진 휴대폰을 보고 창균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일 정리되려면 한 달은 걸린다는거지?”
“응. 하던 일도 마무리해야하고, 내가 하던 거 다 인수인계도 좀 해줘야하니까, 난 바로 못 가.”
너 먼저 가있을래?
여주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창균은 침대에 걸터앉아 그런 여주를 바라봤다. 먼저 가있겠냐는 물음을 던진 창균은 의미 없이 휴대폰을 들었고, 여주는 고개를 돌려 그런 창균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네.”
“...뭐가.”
“눈도 못마주치면서 나보고 먼저가래 무슨.”
“...........”
여주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창균이 웃음기를 머금곤, 들고있던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제 눈을 비볐다. 그래, 먼저 가지마.
".............."
"나 기다려줘."
"....거짓말 하지 말라니까, 이젠 진짜 안하네."
"네가 싫다그랬잖아."
네가 싫어하는 건 다 안해.
"..............."
창균이 말하곤 눈을 비비던 행동을 멈추며 여주의 시선을 맞추며 말하는 창균에 여주가 옅게 호선을 그려냈다. 그리고 곧 여주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나도 바로 못가."
"왜?"
"비행기 표 비수기에 예매해야 저렴하잖아. 난 돈 없어."
"내가 끊어주면 되잖아."
"뭐래, 진짜."
저번에도 여행갈 때 돈 혼자 다 썼으면서.
"내가 쓰고싶으니까 쓴거지. 너 데려가고 싶어서."
대신 네가 같이 가줬잖아.
".............."
".............."
"....아니야."
"뭐가?"
"같이 가준 거 아니라고."
"..그럼?"
"............"
같이 간거야. 가고싶어서.
한 달, 두 달 정도? - 우리 여주승
관) ...아아아아 안돼애애애
지훈) 왜? 바로 오는 거 아니래?
석민) 왜! 얼마나 걸린다는데?!
한 두달 뒤에 온다는 여주의 답장을 받은 승관은 나홀로 집에 케빈 같이 제 얼굴을 쭈욱 내려뜨렸고, 그런 승관을 보던 아이들은 승관이 바닥에 내려놓은 휴대폰을 집으며 여주와의 대화를 훑었다.
민현) 한 두달 뒤에 온대. 아 너무 길다.
민규) 아... 한 달을 어떻게 기다려. 또 두 달일 수도 있다는거잖아!
정한) 회사 일 때문엔 바로 못오나보지.
지수) 그래. 여주 스케줄이 있을테니까.
원우) 온다고 말해준 것만으로도 뭐..
실망감이 역력했지만서도 아이들은 머쩍게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도 올해 가기 전에 오는게 어디야. 하고 몇마디 더 거들던 아이들은 일어난 김에 밥이나 먹자며 우르르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뒤, 정확히 두 달 뒤로 비행기표를 끊어놓은 여주의 하루는 남들이 보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매일 같이 집에서 잠을 잔다거나, 창 밖을 바라본다거나, 여주가 살기 전 주인이 두고 간 기타를 몇 번 튕겨본다거나(참고로 여주는 기타를 칠 줄 모른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늘 여주의 집으로 퇴근하는 창균을 반기는게 여주의 하루 일과였다.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자."
"..굳이?"
"안나간지 이주일이 다 되가고 있는건 알아?"
"....그렇게 됐나?"
"준비해. 나가게."
보다못한 창균은 외식을 권했고, 여주는 제 몸과 같았던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창균이 옅게 한숨을 내뱉었고, 곧 어지럽혀져있는 방들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우웅-...
“...........”
그러다 침대 위에서 밝게 빛나는 여주의 휴대폰에 창균의 시선이 자연스레 휴대폰으로 향했다.
여주야, 밥은 먹었어? - 민현오빠
“...........”
민현의 문자에 창균이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더니 휴대폰을 집어서 탁장 위에 올려두곤 이불을 정리했다. 후엔 제 휴대폰을 들어 한국의 시각을 확인했다.
이른 새벽 다섯시였다.
“....갈까?”
“응.”
“..휴대폰 챙겨야지.”
“아 맞다.”
검은 버킷햇을 푹 눌러쓴 여주가 신발장으로 향하자 창균이 여주를 불러세우고, 여주는 곧 휴대폰을 챙기고서 다시금 신발을 신었다.
“...모자 안불편해?”
“응? 편한데.”
“....그래?”
“...오빠 뭐해?”
안가?
여주가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균에 여주는 모자를 눌러쓴 탓에 더 고개를 젖혀 창균을 바라봤다. 시선을 맞추던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정적이 감싸고, 창균이 여주에게 다가가 여주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여주야.
“왜?”
“...........”
“...........”
“...내 옆에 계속 있어 줄거지?”
“...........”
“..가서,”
“...........”
“애들 다 만나도,”
“...........”
“내 옆에 있어줄 거잖아.”
“....그럼.”
여주의 말에 창균이 옅게 미소를 띠우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지훈) 무료해.
민현) ..야. 원래 하루가 이렇게 길어?
정한) 동감이야.
승관) 형들, 티비 안볼거면 좀 비켜줄래?
소파에 앉은 셋이 푸념 아닌 푸념을 하고있을 때 승관은 리모컨을 들며 말했지만, 미동도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러자 승관이 옅게 한숨을 내뱉으며 왼쪽에 자리한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다.
원우) 승관아 뭐보게?
승관) 나 예능. 왜? 형 뭐 볼 거 있어?
원우) 아니. 너 보고 바로 나 보려고. 야 너네 티비 안볼거면 비켜.
승관) 저 형들 안들려. 말해도 소용 없어.
닌텐도를 손에 들고 아이들에게 손짓하던 원우는 승관처럼 오른쪽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승관은 광고가 할 동안 원우를 향해 물었다.
승관) 형 근데 닌텐도 안한지 꽤 되지않았나?
원우) 응.
승관) 왜 요즘 다시해? 재밌는거 나왔어?
원우) 아니. 여주 오기전에 여주한테 보여줄 거 만들어놓으려고.
여주가 만들어놨던 마을도 다 잡초 뽑고 예쁘게 다듬어놔야지. 와서 하라고.
원우의 말에 넷의 시선이 원우를 향했다. 원우는 신경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닌텐도에 열중했고 승관은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티비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올라가려는 모션을 취했다.
정한) ..어디가냐
지훈) ...일해야지.
여주가 이 모습 보면 한심해서 싫어할지도 몰라.
짧게 말을 남긴 지훈이 홀연히 올라가 버리고, 그런 지훈의 모습을 소파에서 눈으로만 쫓던 정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곧 민현도 몸을 일으키고, 정한이 또다시 물었다. 넌 또 왜.
민현) ...나도. 그냥 일이나 해야겠다.
...안잡힐 것 같긴 한데, 이러고 있으면 여주가 싫어할 것 같아.
민현도 제 방으로 사라지고, 그 모습마저 쳐다보던 정한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승관이 정한을 향해 물었다.
승관) 형은 뭐 안해? 여주가 보면 한심해 할 지도 모르잖아.
정한) 그러는 너는. 티비 보냐?
승관) 이 시간은 원래 티비 보는 시간이야 난.
정한) ...........
승관) 지훈이 형이랑 민현이 형은 일하는데. 형은 안해?
정한) 야. 조용히 해.
승관) 뭐 안하시냐구요-
승관의 말에 정한은 앉아있던 자세를 눕히며 승관을 등진 채 말했다.
정한) 난 저 새끼들처럼 멘탈도 안강해서 못해. 그냥 잠이나 잘란다.
승관) 아뭐래. 올라가서 자! 이거 규칙위반이야!
정한) 안잘게 안잘게. 그냥 누워만 있을게.
승관) 저번에 권순영도 그러다가 잠들었거든!!!
순영) 야 승관아. 형 이름을 그렇게 풀로 부르면 쓰냐!
승관) 형 왜 내려와?
순영) 뭐 시켜먹을 애들 모으는 중인데 참여?
승관) 뭐 먹을건데?
순영) 글쎄. 초밥?
승관) 나 먹을래!
2층으로 향하던 순영이 2층과 3층 계단 사이에서 승관을 향해 소리쳤고, 몇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곧 2층 지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승관은 밥먹을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고, 곧 광고가 끝나며 시작하는 제 최애 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미국의 야심한 밤, 한국은 정오의 시각을 향해가고 있었다. 여주는 낮에 산책 좀 가는게 어떻겠냐는 창균의 권유에 휴대폰도 챙기지 않은 채 밖을 활보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카페에 앉아있거나, 커피를 들고나와 벤치에 앉아있거나가 전부였지만.
후에 집에 들어왔을 땐 아이들에게 연락이 가득 와있었다. 그 안엔 창균의 연락도 함께 있었다. 그 연락들을 모두 눈으로 훑던 여주가 창균에게 짧게 문자를 보냈다.
-집에 들어왔어.
-산책 좀 갔다가.
그리고서 그 바로 밑에 있던 문자를 눌러 창을 켰고, 주저 거리던 손가락이 느리게 움직였다.
여주야 뭐해? -민현
밥은 먹었어? -민현
전화 될 때 전화 한 번 해줄 수 있어? -민현
그냥 목소리 듣고싶어서. -민현
“..........”
전화 버튼을 누른 여주가 제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대고, 신호음이 세번 채 가지도 않았을 때 민현의 목소리가 여주를 향했다.
‘여주야’
“...거기 지금 몇시지?”
‘낮이야. 여주는 왜 안자. 열두시 다됐을텐데.’
“..아, 그냥. 이제 잘거야.”
..문자를 늦게 보는 바람에. 미안해.
‘아냐. 괜찮아. 안 졸려?’
“응. 뭐.. 오빤 밥은 먹었어?”
‘이제 먹을거야.’
“아...”
‘여주는 밥 다 먹었지?’
“...그럼.”
‘뭐 먹었어?’
“...아까 창균이오빠랑 아침먹고..”
점심은 나가서 카페에서 케이크 먹고..
저녁은 그냥 안먹었어.
‘............’
“...........”
‘...그,’
아침을 어떻게 같이 먹었어?
민현의 물음에 여주가 눈을 깜박거리더니, 아.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침을 계속 안먹어서, 창균오빠가 아침마다 집에 와서 같이 먹거든.”
‘...아.’
“별로 걱정하지마. 잘 먹고 있어.”
‘...........’
“자꾸 옆에서 먹이는 사람이 있어서, 잘 챙겨먹고 있어.”
‘...아,’
“..........”
‘...잘 먹어서 너무 좋은데,’
“..응?”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는데.’
나였으면 좋겠어, 여주야.
epilogue
7년 전, 아무리 미국을 수없이 왔다갔다 해 본 창균이었지만, 쫓겨나듯 온 미국은 느낌이 달랐다. 완전히 타지에 떨어져버린, 갈 곳 없는 느낌이었다. 돌아가도 좋은 결과를 손에 쥐고있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반겨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기에.
영어를 한국어처럼 잘해서 뭐하나, 말 할 의욕도, 사람도 없는데. 딱 창균이 그랬다.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 이후로는 별 쓰지 않았다.
큰 건물들은 그저 창균을 억누를 뿐,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건 창균에겐 지옥이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견뎌내던 창균은 방학 때나, 회사 휴가일 때나 한국을 가서 찾은 건 가족이 아닌 민혁이었다.
제게 남은 하나의 친구였었고, 가족은 자신의 성과만을 반길 뿐 자신을 반기진 않았으니.
그렇게 검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주한 건,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여주였다.
처음 만났을 땐 제 눈을 의심하며 민혁에게 흘리듯 말했지만, 한국엔 여주가 없다는 민혁의 말로 그 카페를 다시 찾아가 여주임을 확신했다.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한 채 묵묵히 일을 하는 여주를 보곤 창균은 동질감과, 희망을 느꼈다.
창균에게 여주는 그런 존재였다.
제 삶의 기적 같은 존재.
**
저번 화 댓글 읽고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ㅋㅋㅋㅋㅋㅋ 다들 혼내주겠다구 해줘서,,,
덕분에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저는 글 쓰는데에, 쉬는데에 열중했어요.
아참, 마지막 장면은 기억 나시죠? 넣은 의도는 모두 아시겠지만, 여주의 기적은 민규였고, 창균에게 기적은 여주라서 넣었어요
혹시 세때홍클 시즌 1부터 안보신 분들은 처음부터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게 기적 같은 존재입니다.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예쁜 말로 힘을 내게 해주신 기적 같은 분들이니까 자부심을 가지세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넉점반의 봄눈 같은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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