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을 쓰던 누군가는 창균과 같이 방을 써야만 했다. 그 때 선뜻 나선 건 원우였다. 독방을 쓰던 사람들 중 그나마 원우가 가장 창균과 친분이 있었고, 원우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이야기가 잘 마무리가 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와중에 창균은 제 짐이 호텔에 있다며 다시금 호텔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런 창균을 올려다보던 여주가 넌지시 말했다. 같이갈까?
창균) 응?
여주) 늦었는데, 운전하기도 피곤할거고. 같이 갈게.
민규) ..같이가긴 뭘 같이가.
석민) 그래 여주야. 너도 피곤할텐데 쉬어.
창균) ..혼자 다녀올게. 쉬고 있어.
여주) 됐어. 같이가자.
같이 가자며 여주가 옷가지를 챙겨입었고, 민규와 석민은 그런 여주를 보며 입을 옴짝달싹거렸다. 가자. 여주가 짧게 창균을 향해 말하자 금방 둘은 집을 빠져나갔고, 현관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둘은 한숨을 내뱉었다.
민규) ...고작 호텔 다녀오는 걸 같이 가주냐.
석민) 그니까.
아 한 시도 떨어지기 싫은데.
"...괜찮아?"
"뭐가?"
"..집에서 지내는거. 불편하면 호텔에서 지내도 돼."
나도 호텔에서 지내도 되고.
차에 탄 둘이 호텔을 향하는 중 먼저 말을 꺼낸 건 여주였다. 여주에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창균에겐 새로운 곳이었으니 나름 여주의 배려였다. 혹여나 아이들 앞이라서 좋다고 말한 걸까봐 다시금 물었고, 창균은 붉은 신호에 맞춰 차를 천천히 멈춰 세웠다.
오후 11시 반을 향해가는 시각, 횡단보도엔 겨우 퇴근을 한 회사원들과 학원에 이리저리 치여 지친 학생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핸들 위에 올려져있던 창균의 손가락이 툭툭 움직이고, 곧 창균은 입을 열었다.
"좋아, 정말."
"...그래?"
"...사실 부러웠어."
"..뭐가?"
"너희 그렇게 같이 사는 거."
"..........."
붉은 신호가 초록빛으로 바뀌고, 차창에 멈춰있던 풍경이 움직여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여주의 시선은 여전히 창균을 향해 있었고, 창균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따듯함, 가족같은 단란함. ..뭐 그런거. 부러웠어."
"............."
"..미국에 있는 동안 다 말했었잖아. 우리 아버지, 나한테 만족 못하시는거."
"............."
"...고마워.”
“.............”
계속 날 살려줘서.
"............"
창균의 말에 여주가 창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창 밖을 바라봤다. 흐트러진 풍경에 여주가 초점을 잃고, 곧 눈에 묽은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항상 너한테 고마운게 많아.'
"............"
'특히 민현이한테 하는 행동들이. 우리 누나도 민현이처럼 부모님한테 시달리다가 자살했거든.'
"............"
'그래서 민현이를 나는 놓을 수가 없는데,'
"............"
'네가 민현이를 살리고 있어.'
"............."
'....우리 누나도, 옆에 네가 있었더라면, 아직 내 옆에 있을까 싶어.'
"............"
결국 여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민현이 집에 들어가 맞고있을 때, 문 앞에서 지수와 셋이 기다리는 동안 제게 건넸던 말이었다. 민현이를 살려주고 있다는 말, 방금 제게 창균이 건넸던 그 말과 닮은 말.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살리고 있다는 모순에 여주는 그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다.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던 걸까.
아직은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아직도 믿고싶지가 않다. 나라는 존재를.
창균과 여주가 집에 들어온지 하루가 지난 아침이었다. 모두가 모여 아침을 먹을 때 아이들은 여주를 계속 흘끔거렸고 여주가 뭐가 묻었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전부 같았다. 그냥 네가 있는게 신기하면서도 익숙하면서도 좋아서 자꾸 보게 된다고. 있는 걸 자꾸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고.
후엔 몇몇 아이들이 출근을 하고, 몇몇 아이들은 집에 남아 쉬거나 제 할 일을 하곤 했다. 그 사이에서 여주와 창균은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고, 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민규는 포도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손에 들곤 1인용 소파에 앉아 둘을 노려봤다. 그리고서 여주가 걸치고 있는 가디건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민규) ...그 가디건 뭐야?
여주) 응?
민규) 아니, 그 원래 입던 검은 가디건은 어디갔어? 교복 위에 입던 거.
여주) ..아. 그거 있어, 위에. 왜?
민규) ...아니 그거, 지금 입은 건 못보던 거라서.
여주) 아 이거, 이거 저번에 창균오빠가 사준거야.
민규) 뭐?
여주) ...엉? 사준거라고.
민규) ....그래, 그래. 사준 거. 나도 알아. 사 준 거!
사준 거라며 힘 줘 말하던 민규가 벌떡 일어나 포도주스를 원샷하더니 부엌 싱크대에 내려놓고선 제 방으로 휙 올라가버렸다. 민규가 올라감과 동시에 내려오던 지수가 성난 민규의 얼굴을 보고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마저 내려오더니 민규가 앉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여주) ..왜저래?
지수) 이해해. 심술난거야.
여주) 그니까 심술이 왜 나냐고. 내가 새 옷 선물 받은게 심술 날 일이야?
지수) 일이지.
여주) 왜?
지수) 창균이가 사줬으니까?
여주) 그게 왜.
지수) 여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눈치가 없는 건 여전하구나?
여주) ..나 눈치 겁나 빠르거든.
여주의 말에 지수가 예쁘게 웃더니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원우가 방에서 나오더니 여주를 불렀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던 여주가 뒤돌아 원우를 바라보고, 원우가 곧 손짓했다.
금새 원우에게 다가간 여주가 왜? 하며 올려다보자 원우는 그런 여주에게 닌텐도를 내밀었다.
원우) 너 오면 하라고 내가 잡초도 뽑아놓고 다 해놨어.
여주) ....뭘 그렇게까지 했어, 귀찮게.
원우) 안귀찮았어. 너 온다그래서 나도 그 때 다시 켠거야.
..너 없을 땐 나도 안켜봤지. 뭐하러 켜, 네가 없는데.
여주) ..고마워.
원우) 고마우면,
여주) ?
원우) 나랑 소품샵이나 갈까? 오랜만에.
여주) ...지금?
민현) ...뭐?
지훈) 나갔다고. 전원우 개자식이 소품샵 데려갔대.
정한) ..근데 너도 전해들은 입장이다?
지훈) 아침 먹고 여주랑 조금 얘기하다가 그 이후로 방에서 일하고 쳐 잤더니 없더라.
민현과 정한이 집에 들어와 가장 먼저 찾은 건 역시나 여주였다. 그러나 소파에 앉아 의미없이 채널만 돌려대던 지훈의 말에 정한은 한숨을 뱉어냈고 민현은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민현은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소파에 털썩 앉았고, 정한은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민현) ...근데 민규는 표정이 왜저래?
지수) 아침부터 화가 단단히 났었거든. 여주 때문에.
민현) 여주 때문에 화가 왜 나?
지수) 여주가 오늘 아침에 입고있던 검은 가디건 기억 나냐?
민현) ...그랬나? 검은 가디건? 검은 가디건 맨날 입던-,
민규) 맨날 입던 그 가디건이 아니라고! 아니야! 새로 산 거!
민현이 제 맞은 편에 앉은 지수와 얘기하던 중 나온 가디건이란 단어에 민규는 눕혔던 몸을 살짝 일으켜 소리쳤고, 또 다시 소파에 몸을 눕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지수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다시금 민현에게 말했다.
지수) 우리가 알고있던 그 가디건이 아니라 새 가디건을 입고있었어.
민현) ...아 그랬어? 검은 색이라 똑같은 건 줄 알ㅇ-,
민규) 달라! 완전 달라! 원래 입던 가디건은 면으로 된 소재에 조금 얇고 주머니가 있단 말이야. 근데 오늘 아침에 입고있던 건 니트소재에 주머니도 없는 거였어!
민현) .....그래서? 결론이 뭔데?
지수) 그 가디건을 창균이가 사줬대.
민현) .....아. 그 가디건을?
지수) 엉.
민현) ...굳이?
지수) 엉?
민현) ...굳이?
지수) ...뭐라는거야?
민현) ...창균이는 지금 뭐하는데?
지수) 애들이랑 보드게임 해.
민현) 그래도 잘 어울려서 다행이네 뭐.
지수) 뭘 그런 걸 걱정해. 이래보여도 아까 민규랑 창균이랑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데.
민현) 그래?
지훈) 나 내려오니까 둘이서 게임 신명나게 하고있던데?
민규) 내가 무슨 열살짜리 애도 아니고.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고. 더군다나 여주 옆에 계속 있어줬던 사람인데 내가 그럴까.
지수) 잘 컸네 잘 컸어.
민규) 누가보면 형이 키운 줄.
지훈) 이정도 같이 살았으면 키운거나 다름없지.
민규) ....됐어! 김여주는 또 왜이렇게 안와!
민규가 민망했던건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로 올라갔고, 위에선 민규가 올라감과 동시에 더 큰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그러자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리던 지훈이 티비를 끄고서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했다.
지훈) 상식적으로 2층에서 노는게 1층 티비소리보다 크다는게 말이되냐? 티비 소리가 안들려.
민현) 언제부터 놀았는데?
지수) 아까 여주 나가고 나서부터 밥먹을 때 빼고 계속 노는 것 같던데.
민현) 뭐하는데? 윷놀이?
지수) 아니, 부승관이 주최한 부루마블.
민현) 권순영이 낀?
지수) 당연.
민현) 석민이도 있겠네.
지수) 그렇지.
민현) 설마 그 셋 사이에 창균이?
지수) 맞아.
지수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민현이 곧 웃음을 터뜨리고 지수 또한 고개를 저어대며 웃었다. 마치 창균이 안쓰러우면서도 웃기다는 듯. 후에 민현은 눈가에 눈물을 닦으며 곧 씻으러 제 방으로 들어가고, 지훈은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지수는 그런 지훈을 바라보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정한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한은 지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했다.
정한) 야 전원우 왜 안와!
지수) 그걸 내가 아냐? 너 밥 먹었어?
정한) 먹긴 먹었는데 너무 일찍 먹었어, 교대하느라. 지금 먹으려고.
지훈) 나도 먹을래.
정한) 내가 차릴테니까 네가 치울래?
지훈) 그래.
정한이 지훈과 대화를 나누다가 부엌으로 들어가고 지수는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올라갔다. 어 원우야.
지수) 너 언제 들어와?
'이제 가고 있어 왜?'
지수) 애들이 너 왜 안오냐고 자꾸 물어보잖아.
'내가 아니라 여주야니야?'
지수) 잘 아네. 빨리 와.
'알았어.'
석민) 형! 여주 지금 온대?
지수) 오고 있대
석민의 물음에 짧게 답한 지수가 방으로 들어가고, 부루마블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대화 주제는 여주와 원우로 옮겨졌다.
석민) 원우형도 너무해. 여주가 매애앤날 집에 붙어있어도 아쉬운 마당에 같이 놀러나가다니!
순영) 그니까. 넌 안막고 뭐했어?
민규) 난 짜증나서 자고 있었거든? 그 사이에 나간거야!
석민) 그러니까 잠 좀 그만 자라니까.
승관) 쟨 잠 빼면 시체야.
민규) 형 때문이야.
창균) 왜 나 때문이야. 여주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사준 건데.
민규) 왜 하필 검은 가디건이야?
창균) ...그야 여주가 검은 색을 자주 입으니까.
민규) .....췌.
창균) 그럼 너도 사주면 되잖아.
민규) 뭘. 또 가디건을 사주라고?
창균) 하긴. 넌 안사줘도 되겠다.
민규) 뭐라는거야.
넌 이미 여주한테 가디건 같은 사람이니까.
epilogue1
찬) 아니 누가 이렇게 택배를 많이 시켰어?
민현) 몇갠데?
찬) 한 다섯개는 되는 것 같은데?
민현) 그럼 그거 다 내 거 같은데?
한솔) 뭘 그렇게 많이 시켰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택배를 한아름 들고 들어오는 찬이에게 시선을 돌리고, 민현은 그 택배를 받아들며 답했다. 그리고 다시금 소파에 앉은 민현이 택배를 뜯기 시작했다.
민현) 정확히 내 건 아니야.
한솔) 그럼 누구 건데? 누구 생일인가?
지수) 난가?
민현) 넌 저번에 미리 사줬잖아.
지수) 아 기억이....
민현) 뭐래 진짜 미쳤나 ㅋㅋㅋㅋㅋ
가벼운 대화와 함께 첫번째 봉지를 뜯은 민현이 봉지 속에서 버건디 색 가디건을 꺼내들고, 바로 옆에 앉아 닌텐도를 하고있는 여주에게 건넸다.
석민) 아 또야 또!!!!
민규) 아 이 형들이 왜이래 진짜!
여주) 뭐야..?
민현) 질투나서 사주는 선물.
여주) ..뭐?
민현) 창균이한테 질투나서.
여주) 뭔소릴하는거야.
한솔) 그럼 나머지는 뭔데?
민현) 나머지? 뜯어봐야지.
한솔의 물음에 다른 봉지를 손에 들고 뜯은 민현이었고, 곧 그 봉지속에서는 검은 후드티가 나왔다. 그리고 그것도 금방 여주에게 건넸다.
여주) ....?
원우) 대단하다. 진짜.
지훈) 저런걸 뭐라그러더라. 집착?
정한) 아니. 돈지랄.
민현) 이건 후드티.
여주) ...아니 왜,
민현) 질투나서, 창균이한테.
창균) ...더 사주면 큰일나겠네.
민규) 형. 조심해. 여긴 이런 곳이야.
창균) 명심.
한솔) ...나머지는 뭔데?
민현) 나머지도 뜯어볼게.
여주에게 선물을 건네는게 그리 신이 나는지, 어째 받는 사람보다 더 신이난 듯 한 주는 사람이었고, 여주는 뭐하는 거냐며 어느덧 닌텐도를 원우에게 넘긴 채 민현을 바라봤다. 민현은 그런 여주가 신경쓰이지도 않는 듯 다른 봉지들을 뜯어 여주에게 건넸다. 나머지 세개는 맨투맨 두장과 검은 가디건 하나였다.
여주) 뭐하는거야 도대체...?
민현) 웰컴 선물이라고 치자.
여주) 뭘 반겨줘 반겨주긴. 뭐가 예쁘다고.
민현) 뭐가 예쁘냐고?
지훈) 그거 말하려면 하루는 걸릴텐데.
민현) 하루? 그것도 짧아. 한 달은 걸리지.
민규) 한 달? 웃기네. 1년은 걸리거든.
창균) 1년 받고 5년.
아 진짜 조용히 해! 뭐라는거야!!!!
epilogue2
"............."
창균이와 호텔에 짐을 가지러 다녀온 여주가 집에 돌아오고, 근 7년 만에 제 방에 다시금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여전한 모습인 제 방에 여주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방문을 조용히 닫고, 여전히 제 책상에 자리한 스탠드를 켜자 은은한 누런 빛이 여주의 방을 가득 채웠다.
"............"
여주가 스탠드를 켬과 동시에 책상에 놓여진, 정확히는 널부러져있는 편지들을 발견하고, 셀 수 없이 많은 편지 중 가장 위에 있는 편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
그 편지를 조심스럽게 연 여주가 종이를 펼치고, 익숙하고 삐뚤빼뚤한 글씨체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여주의 방 안엔 정적이 흐르고, 밖에서 누군가들이 왔다갔다하는 발소리, 간간히 들려오는 말소리가 그 정적을 조금씩 깨고 있었다.
'여주야, 내 삶에서 네가 없어진지 어느덧 7년이 다 돼 가고있어.'
"..........."
'신기해.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뒤 돌아보면 그렇게 긴 시간인데,'
"..........."
'네가 7년만 기다리라고, 그럼 간다고 말해주면 또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
'좀 바보 같은가? 그런데 뭐 어떡해.'
네가 내 전부고, 내 세상이고, 넌 내 하늘인데.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여주의 눈동자에 어느덧 눈물이 차오르고, 곧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꼭 쥔 채 계속 편지를 읽었다.
'처음엔 네가 그냥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꿈에서처럼, 네가 와서, 옛날처럼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냥 계속 그 생각만 하면서, 한 4년은 산 것 같아.'
'근데, 그러다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네가 행복해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
"............"
여주가 그 글을 읽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천천히 주저 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편지를 보지 못하더니 울음을 참아냈다. 소리하나 내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계속 버티던 여주가 제 옷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다 닦아내더니 옅은 한숨을 소리없이, 천천히 뱉어냈다. 그리고 다시금 편지를 들어 읽었다.
'그래서 3년 전부턴 욕심을 버렸어.'
'네가 안와도 미워하지 않겠다고.'
'넌 내 하늘이니까, 무너지지만 않으면,'
난 그걸로 만족하니까.
"..........."
'그런데 여주야,'
'그래도, 나는 보고싶더라.'
여전히 네가 그립고 보고싶더라.
무너지지만 말아달라고, 안와도 좋으니까, 아프지만 말아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난,
한 번 만 보고싶다고도 빌었어.
그러다가 네가 한국에 왔었다는 소식을 오늘 들었을 때,
"............"
'나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어, 네가 사라졌던 그 해 처럼.'
'왜냐하면,'
'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는 건,'
'네가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내 하늘이 무너졌다는 거잖아.'
여주야, 나 좋아해달라고 안할게.
나 살려달라고도 안할게.
내 얘기 들어달라고도 안할게.
나랑 산책해달라고도 안할게.
꼭 한국에 돌아오지 않아도 돼.
여주야 나는, 나는 그냥 네가,
그냥 내 전부인 네가 무너지지 않았음 좋겠어.
제발.
**
새벽에 올려놓고 가려다가 글도 길어지고, 잠에 빠져버려서. 그리고 오늘은 또 이리저리 바빴던 탓에 이제 올리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넉점반의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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