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손등이 스친다
"동우씨…."
"꺼져요 오덕."
동우가 호원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였다. 호원이 울상을 지었다. 커피가 인연이 되어 가끔 연락을 하던 동우였지만 그에게서 오는 답장은 거의 없었다. 흑흑. 게다가 호원은 단지 동우가 반가워 인사를 하려 했을 뿐인데…! 동우는 호원의 답지않은 소심한 모습과 축 처진 어깨에 한숨을 내쉬곤 휴대폰을 들어 메세지함으로 들어갔다. 호원이 일방적으로 보낸 문자만 백개가 넘었다. 그러나 그 문자는 거의 다 이런 것이었다.
[동,동우쨩 뭐하냐는? 따,딱히 동우쨩이 좋아서 그러는건 아냐!]
[에엣ㅇㅅㅇ… 동우쨩 바쁜 것입니까아아아아-? 호야 삐질테야!]
[답 좀 해달라구우우우우<퍽 동우쨩은 보쿠가 보고싶지 않은 것입니까….]
[헤헷 동우쨩 저에요!]
참고로 마지막 문자는 호원의 깜찍한 셀카와 함께 온 mms다. 동우가 호원의 얼굴과 문자를 번갈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새끼는 진짜 병신인가봐. 게다가 호원도 아닌 호야라니! 분명 지 혼자 만든게 분명한 애칭에 동우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다 꾸깃꾸깃 구겨졌다. 호원은 점점 쓰레기가 되어가는 동우의 표정에 쫄아 인사를 대충 하곤 바로 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흡흡. 동우씨는 날 싫어하나봐! 호원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소녀감성 이호원.
*
"왜 그러냐."
"형 진짜 별로에요."
"꾸래?"
어느새 성종과 많이 친해진 명수였다. 성종의 볼을 매만지기 좋아하는 명수의 얼굴엔 웃음꽃이 해사하게 가득 피어났다. 부드럽네, 난 거친데. 성종도 손을 뻗어 명수의 뺨을 매만졌다. 왜요, 괜찮은데. 툭툭 내뱉어도 배려가 묻어나는 성종의 말이었다. 최근 잠에 들지 못 해 많이 거칠어진 명수의 피부였지만 성종은 혹시라도 명수가 상처받을까 조심스레 말한 것이었다. 그걸 명수도 알기에 웃으며 고맙다고 감사인사를 하곤 성종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내새끼, 궁디팡팡. 단지 동생같아서. 정말로.
"아 왜이래요!"
"뭐 어때, 귀여워서 그러는 건데."
"김명수, 여기서 뭐하냐."
성종과 명수가 고개를 들자 장신을 사랑하는 성열이 보였다. 뭔가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씁쓸해보이기도 한 오묘한 그 표정에 명수는 절로 쭈굴명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팬티도 세탁기에 잘 넣어두고 성규형 치킨도 안 훔쳐먹었는데. 아 설마 성열이 자고 있을때 엽사찍어서 그런가? 명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열을 올려다보자 성열이 명수의 머리를 한대 후려치곤 다시 돌아갔다. 나쁜 놈이란 말과 함께 성종을 노려보며. 명수는 성열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다시 성종의 볼을 만지며 놀았다. 병신 김명수.
"저 형 왜 저런다냐."
"그러게요…, 형 뭐 잘못한거 있어?"
"아니 모르겠는데…."
*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코쥬올마럽, 카페베네."
올, 역시 김성규. 형이라고 해, 이새끼야. 우현과 성규는 성규의 차를 탄 채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그에 우현이 이딴 드립을 쳤고 성규는 그것을 또 맞받아쳤다. 둘이서 참 잘 노는 우현과 성규였다. 성규의 벤틀리가 그 가격에 맞먹게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목적지를 향해 달렸고 우현은 제 휴대폰을 들어 노래를 틀었다. 야. 예? 넬… 노래는 없냐. 아, 하나 있어요. 우현이 웃으며 알송 목록을 뒤졌다. 성규가 그런 우현을 바라보다 테마에 웃음이 터졌다. 뭐야, 너 테마 왜 성경이야. 형 닮았잖아요. 우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넬 노래를 틀자 익숙하게 늘리는 전주에 성규가 노래를 바꾸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 형! 뭐 시발! 일분만 닥쳐줄래요!
"아, 이 노래좋다. 니 눈 보고 말할게 예."
"어? 이거 무슨 노래야, 현아."
"헐 이걸 몰라요? 인피니트 노래, 하얀고백. 인기 짱인데."
이거 좋다, 반복재생해. 성규의 말에 우현이 잽싸게 노래를 반복재생으로 설정했다. 좋긴 진짜 좋네, 그러니까 인기 짱이지. 운전하는 성규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우현은 성규에게 이 노래를 꼭 불러주겠다 결심했다. 예쁜 형한테 이정도는 불러줘도 되겠지. 성규에게 불러주기 위해 조용히 흥얼거리던 노래가 어느새 커질대로 커져 우현이 자신의 필과 영혼을 담아 부르고 있을무렵, 성규가 말했다. 너 진짜 나무같아. 내가 더 잘생겼다니까. 그리고 침묵, 우현은 조용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곤 고갤 푹 숙였다. 죄인이 된 느낌이야. 형 근데 여기 어디에요. 나도 몰라, 그러니까 내리자. 우현과 성규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듯한 들판에 차를 세웠다.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차에서 내린 성규가 경치를 보곤 옅게 웃었다.
"아나, 이런덴 여친이랑 와야하는데 너랑 오고. 흑흑."
"뭐 어때요. 좋기만 한데."
"뭐가 좋냐, 아 외로워. 하늘아 여자친구 좀 주세요."
성규가 입김을 호호 불며 하늘을 올려봤다. 성규가 웃으며 말하자 우현이 따라 하늘을 바라보다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 차가웠지만 꽤 부드러운 그 느낌이 괜찮았다. 이어서 성규도 앉곤 아이와 같은 두 뺨이 붉어진 채로 웃었다. 공기가 좋아선지 별도 잘 보이고, 우현이 휴대폰을 들었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하얀고백에 귀가 익숙해져 새 노래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반복재생을 풀곤 랜덤재생으로 돌린채 성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별빛과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성규가 어느새 눈을 살며시 감았다. 형, 여기서 자면 입돌아가요. 자는거 아냐. …예. 성규를 위해 노래의 볼륨을 약간 낮추곤 성규를 스캔하며 관찰하던 우현이 성규를 흔들었다. 왜 이래.
"형 외롭다면서. 좋은 애 소개시켜줘?"
"예쁘냐?"
"나름, 많이 좋은 앤데. 아 형한테 소개시켜주기 아까워."
헐, 그런 앨 나한테 소개시켜준다니 고마워 우현. 성규가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얼굴 하얗고 눈웃음 예쁘면 좋겠네. 음… 얼굴 하얀건 모르겠는데, 눈웃음은 예뻐요. 키도 크고 늘씬하고 애교도 많고. 우현이 다시 폰을 뒤적이며 무심하게 말했다. 성규가 아닌 다른사람들에겐 들리지도 못할만큼 작게. 사진 보여줄까? 우현이 성열과의 카톡창에 들어가 전날 밤 성열이 보내준 사진을 터치했다. 성열이 찍은 사진 속에 우현과 성규는 투닥대기도 했지만 서로 마주보곤 웃는 사진이 더 많았다. 물론 스킨십도. 성규의 웃는 모습을 보니 흐뭇해진 우현이 씨익 웃었다. 그런 우현을 이상하게 보던 성규가 우현의 휴대폰 속 저희 사진을 보며 우현에게 말했다.
"우리 사진이네, 자 어서 예쁜 아이를 보여줘."
"여깄네요. 흐으으응 흐으으으응."
"에라이 씨발놈아."
성규가 우현의 뒷통수를 내리쳤다, 그것도 매우 세게. 그리곤 이 상황을 정리한 성규가 고개를 푹 떨구곤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내 주제에 무슨 여자냐 여자는. 우현이 그런 성규를 바라보자 우습게도 그 꼴이 토끼같아 웃음이 터졌다. 웃냐? 엉? 성규가 눈을 치켜뜨곤 우현을 노려보자 우현이 양 검지로 성규의 눈꼬리를 내렸다. 아이 예쁘네, 우리 형. 지랄마, 나쁜 놈아. 우현이 쓰게 웃었다. 이젠 일상이 된 쓴 커피를 마실 때보다 더. 그래도 난 진심이었는데. 성규에겐 들리지 않을 말을 마음속으로 수백번 되뇌었다. 그냥 말할까? 에이 지금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아니다 지금 말해야하나? 우현의 머릿속은 모든 생각이 뒤엉켜 오히려 깨끗했다.
"형아."
"뭐."
"좋…."
"좋?"
"조까요!"
우현은 성규에게 또 쳐맞았다. 아니 아니 농담이야. 형 잘못했어요. 때리지마! 아악! EXO-K의 마마가 끝나갈 무렵 성규의 폭력도 멎었다. 형 폭행죄로 고소할 거야. 뒤질래? 성규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후 싸늘하게 정색을 하는 성규에게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어느덧 주위에 있던 집들의 불도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고 완전한 어둠은 아니지만 멀리서 은은하게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을 제외하면 우현의 휴대폰 불빛말곤 둘을 비추는 빛은 없었다. 깜깜하네.
"형, 삼행시 지어줄까요."
"바밤바같은 거 하면 죽여버린다."
이미 동우나 명수에게 병신같은 삼행시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성규였기에 삼행시라고 하면 독이 오를대로 오른 성규였다.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우현을 바라보는 성규에 우현이 잠시 쫄았지만 이내 그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우현이 성규의 손을 꽉 잡았다. 아 왜이래, 징그럽게. 왜요 따숩고 좋네, 이미 안아도 봤으면서. 성규의 뺨이 더욱 붉어졌다. 그 날 성열에게 걸린 이후로 눈에 띄는 스킨십은 하지않은 둘이었으므로. 형, 이하응으로 삼행시 지을게요. 흥선대원군? 아니 이하응, 운 띄어줘요.
"이."
"이렇게 형을 바라보고 있으면 꼭."
"하."
"하고싶은 말이 있어요, 미안한데 나랑 연애할래요?"
우현이 웃음을 지우곤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다 이내 다시 웃어버렸다. 마침 둘의 귓가를 간지럽히는 노래도 틴탑의 손등이 스친다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