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호가 연구소에 온 지도 거의 일주일이 다 되간다. 아직도 우지호의 한 마디가 남긴 충격이 크다. 그 날 우지호가 표정 없는 얼굴로 던진 '아무것도'란 말에 내가 놀라자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빨리 자고싶댄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이제 겨우 말 시작한 애한테 뭘 바래, 하며 그냥 이태일의 연구실 안 쪽 유리방으로 가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란 말에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지금은 물을 상황이 아닌 듯 싶다.
기본적인 검사는 물론 자세한 분석까지 어느정도 마친 이태일이 나를 호출했고 나는 여전히 조금 어색한 흰 가운을 걸치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근데 뭐, 이태일이 설마 조금 늦는다고 죽이기야 하겠어?
그런 편한 생각으로 나는 이태일의 방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고 있었다. 박경이 책임을 맡고 있는 의료층. 올 때마다 나는 이 곳 특유의 약 냄새에 살짝 눈을 찡그리며 복도를 걷다가 문을 열었다.
"어? 표지훈?"
"어, 이민혁."
이민혁이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니가 여긴 왜 있냐'하고 의자 하나를 당겨 앉았다. 침대에 누운 김유권의 몸에 감긴 붕대가 한 눈에 봐도 아파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건 발견 당시 혈색 하나 없이 검은 반점만 있던 얼굴이 다시 하얘지고 혈색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 정도?
"불순물질이 꽤 많이 빠져 나갔나봐."
그렇게 말하는 이민혁의 얼굴이 많이 피곤해보인다. 하긴, 당연히 피곤하겠지.
김유권은 내가 기절했던 그 날, 컬테로의 촉수가 땅을 친 덕분에 충격파로 15m가까이 밀려났고 이민혁이 겨우 발견해서 안재효와 함께 연구소로 셋만 돌아왔다고 한다. 그 다음에 바로 이민혁이 차를 끌고 날 찾으러 온 거고. 나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지만(우지호 때문일까?)김유권은 찢어진 활동복 사이로 불순바람이 새어들어가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고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혈액에 불순물질이 소량 섞여 들어가서 별 수 없이 피를 뽑고 A형인 다른 직원들의 혈액을 수혈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민혁과 안재효가 발벗고 나섰고.
며칠 사이 연속으로 피를 뽑은 이민혁과 안재효의 몰골은 말이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진짜 푸석푸석하네. 이민혁 말로는 안재효는 방금 피뽑고 자러 갔댄다.
"혈액에 포함된 불순물질 농도가 0.5% 이하로 떨어졌어. 곧 일어날 수 있을 거래."
그렇게 말하는 이민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어서 장난으로 '좋아하냐?'하고 물었다가 얻어맞을 뻔 했다.
김유권, 미안. 난 B형이라 내 피를 못주네. 이태일에게서 날아온 욕설 섞인 호출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건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들이키고 있는 이태일. 안 어울리게 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이태일은 알면 알 수록 의외이고 매일매일 놀라는 인간이니까, 앞으로도 어떤 의외성이 나올지 오히려 기대까지 되는 인간이다.
"늦었어."
"죄송해요. 김유권 좀 보고 오느라고."
그러자 이태일이 어린 아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땠어? 죄책감이라던가 책임감이 느껴졌어? 자신의 부하가 자신의 고집으로 그렇게 된 것에 대한 기분이 느껴졌어?"
"아니요."
그러자 이태일이 풀죽은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손을 까딱거리고, 나는 그런 이태일의 뒤로 가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이태일은 계속 말없이 풀죽은 표정을 짓고 있는게, 내가 자책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유리벽 앞에 왔다. 내가 넣어주라고 우기자 이태일이 쌍욕을 하며 넣어준 커다랗고 누워도 될 정도의 크기인 방석에 누워서 자고 있는 우지호가 보인다. 옆으로 늘어진 한국말 가이드 책, 국어책. 내가 보려해도 머리 아픈 복잡한 책이라거나 고전 소설 따위도 있었다.
"저 방석 내껀데."
"쓰지도 않을 거 뭣하러 갖고 있어요? 새로 살 수도 있으니까 그냥 하나 주면 되지, 돈도 많으면서."
"사러 나가라고? 귀찮게."
이태일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우지호가 인기척을 느낀건지 천천히 눈을 뜨고, 나를 발견하자 언제나 그랬듯이 빤히 나를 바라본다.
"저 새낀 왜 너만 쳐다보냐? 자기 연구하고 분석하는 건 난데."
"박사님 같으면 먹을 거 챙겨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사람이 좋아요, 맨날 이상한 연구 한답시고 피뽑고 사진찍고 기계에 들어가게 하는 사람이 좋아요?"
"흠, 그런가."
이태일은 킥킥대며 연기를 뿜어냈다. 나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우지호의 앞에 털썩 앉았다.
"안녕?"
"안녕."
우지호가 지능 높은 괴물일 거라는 박경의 말은 맞아떨어졌다. 우지호는 하루만에 한국말 가이드 책 한 권을 외워버렸고 이틀 째에는 모든 의사소통을 원활히 했으니까. 심지어 발음도 아무도 돕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했다. 이건 단순히 지능이 높다,에서 벗어나서 인간을 초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점에서 이태일은 굉장히 기뻐했다. 진짜 괴물이라고.
문득 보인 우지호의 옷차림은 여전히 흰 티가 전부였다.
"이태일 박사님이 옷 안주던?"
"응."
"음, 옷 줘?"
"아니, 이게 편해."
높낮이 없이 평평한 억양. 우지호는 말을 모두 배우고 글도 쓸 수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대화도 나 말고는 하려하지 않았고. 덕분에 이태일은 굉장히 약올라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대화가 필요한데 왜 니 놈이랑만 대화를 하냐, 하고.
한참을 우지호와 이러쿵저러쿵 사소한 얘기를 나오다가 이태일이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태일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담배 꽁초를 바닥에 내던졌다.
"봐."
이태일이 리모콘 버튼을 누르자 벽 한 쪽에 스크린이 띄워지며 빛이 났다. 가장 먼저 화면에 뜬 건 우지호의 사진. 그리고 복잡해 보이는 설명들이 나왔다. 혈액 성분, 신체 구조부터 시작해서 이태일의 견해까지. 이태일이 생기 넘치는 눈으로 화면을 보며 말했다.
"일단 네가 도와줬으면 하는 분석이 있거든. 혈액. 아직 나머지 10%가 뭔지 못알아냈어. 대충 혈장에 어떤 물질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도와주면 더 빨리 끝날 것 같으니까 내일부터는 내 연구실로 와."
"알았어요."
"그 외에 다른 분석 결과도 많은데, 그 정도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아, 예. 대단하시군요. 이태일이 우지호에 대해 계속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귀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난 어제 내 질문에 대한 우지호의 대답에 대해 계속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무것도. 득도 실도 아니다. 무슨 말이었을까. 이태일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계속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태일이 손을 까딱한다.
"왜요."
"다시 돌아가자. 좀 있으면 먼지 폭풍 오는 거 알지. 그거 때문에 또 문서 작성해야 된다. 어차피 매년 오는건데 뭐하러 그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알았어요."
툴툴대며 이태일의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문득 보인 유리문 너머의 우지호의 얼굴은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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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재미가 없는 것 ㅏㄱㅌ다....ㅁ7ㅁ8
뭔가 더 스펙타클한 걸 쓰고 싶어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뭘 쓰고 싶은거지 대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