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진짜 죽는다.
민규) 아니 12월 말인데! 잠옷 두께 좀 봐라!
여주) 아 안춥다고! 보일러도 빵빵한데 난리야 진짜!
석민) 넌 어쩜 변한게 없어 여주야! 그래서 좋다만!
여주) 아익 진짜! 아 놓으라고!
민규) 아 갈아 입으라고오~!
여주) 아이씨 저리 안가?!
아이들이 쉬는 주말, 민규와 석민은 한 순간도 떨어질 수 없다는 듯 아침을 먹을 때부터 하루의 중심 시각인 지금까지 여주 곁을 지켰다.
그러다 보인 여주의 얇은 긴팔 잠옷에 민규와 석민이는 갈아입으라며 투덜거렸고, 여주는 하나도 안춥다며 들은 체 만 체 채널만 돌려댔다.
이에 민규는 질세라 옷을 붙잡고 늘어졌고 여주는 짜증이 단단히 난 듯 인상을 확 찌푸렸다.
원우) 낮잠도 못자게 하네.
명호) 왜이렇게 시끄러워? 책 좀 읽자.
소파에 셋이 나란히 앉아 투닥거리는 소리가 티비소리보다 커질 때 즈음 1층에 있던 아이들이 방문을 열곤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다 민현이 나와 중재하듯 민규를 향해 물었다. 왜그래?
민규) 형! 김여주 잠옷 좀 봐! 12월이면 기모입을 시긴데!
여주) 나 원래 기모는 안입거든?
석민) 이거 창문 잠깐 열면 감기 걸리기 딱이야! 베란다 왔다갔다하면 감기 금방 걸린다고!
여주) 야 베란다를 왔다갔다 거려봤자 얼마나 거린다고!
민규) 잠깐 왔다갔다 거릴 때 걸리는게 감기야!
석민) 형 솔직히 기모 입혀야지?
여주) 뭘 입혀 입히긴!
민현) 여주 감기도 잘 걸리니까 갈아입어서 안좋을 건 없지.
여주) 아 오빠
민현) 기모는 없더라도 더 두꺼운 건 없어?
여주) ...있긴 있는데
민현) 그럼 그걸로 갈아입자. 기모는 더 추워지면 입는걸로 해. 이렇게 하면 되지?
민규) 그래 좋아.
석민) 가서 갈아입고 와.
여주) ..........
여주가 한껏 민규와 석민을 째려보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올라가고 올라가다 만난 순영에게 불만 아닌 불만을 토해내며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이에 내려오던 순영은 소파에 모여있는 셋을 향해 말했다.
순영) 야. 여주가 아직도 애냐? 추우면 뭐라도 걸치겠지. 그걸 입으라고 나안리 난리야~
민규) 형. 예방을 해야지. 추워지기 전에 입어놔야 감기에 안걸릴 거 아냐
순영)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네.
민규의 말에 순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여주가 잠옷이 아닌 외출복에 검은 모자와 찬이가 짜준 목도리를 휙휙 두르며 계단을 내려왔다.
민규) 뭐야. 어디 가?
석민) 어디가?
여주) 아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올게.
민규) 누구!
민현) 누구?
여주) 아니 잠깐 나 보러 왔대서,
금방 와!
여주가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곧 집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정적이 가득해졌다.
민규) ...아이씨 또 아줌마 아냐?
석민)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나가는데 표정 좋은거 못봤냐. 그리고 이젠 진짜 연락 안할 걸.
민현) 그럼 누구를 만나러 갔다는거야?
민현) ...넌 어디가?
창균) ..여주한테 가는데? 여주 방금 나갔지?
민규) 뭐야. 어떻게 알아?
민현) 여주 누구 만나러 간 줄 알아?
창균) 응. 미국에서 여주 회사 사람이 잠깐 한국 와서 나간거야. 나 그사람이랑 sns친구라서 댓글 봤거든.
여주 언급하면서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올렸던데?
석민) 형이 근데 여주 회사 사람을 어떻게 알아?
창균) 미국에서 그사람 자주 봤거든. 맨날 여주 옆에 붙어있더라고.
석민) 아~여자야?
창균) 아니? 남자.
석민) 뭐?
민규) 뭐?
창균) 금방 갔다올게.
여주가 나가고 창균까지 나가자 아이들은 멍하니 현관을 바라봤다.
여주) ....아니 그냥 회사 사람이야.
민현) 근데 왜그렇게 급하게 나갔어? 창균이도 뒤늦게 나가던데 같이 나가도 됐었던거 아냐?
여주) 아니 미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 한국에 있다길래 난 놀라서 그랬지. 애초에 창균이 오빠는 그냥 브라이언 sns 본 거였고.
민규) 그래서 만나서 뭐했는데?
여주) 하긴 뭘 해, 삼십분 만에 들어왔는데.. 그냥 지금 니가 먹고있는 미국 과자 받았어.
저녁을 먹기 전, 여주는 소파에 앉아 두꺼운 잠옷을 입은 채 추궁 아닌 추궁을 받고 있었고, 민규는 여주가 가져온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여주를 쳐다봤다. 여주의 말에 제 손에 들린 미제과자를 쳐다보다가 탁탁 과자봉지를 흔들더니 석민을 쳐다봤다.
민규) 야 그건 뭔 맛이냐
석민) 약간 칠리? 초코 맛있어?
민규) 초코가 더 맛있을 걸?
민현) ...그래서? 왜 왔다는데?
여주) 몰라?
창균) 뭘 몰라. 너 보러 왔다잖아.
여주) 그냥 하는 말이겠지.
창균) 전혀.
민현) ...미국에서 회사 동료 보려고 한국까지 와?
여주) 브라이언도 한국사람이야. 집에 온 겸 보러 온 거겠지.
창균) 그럴 순 있지. 그래도 브라이언이 워낙 널 좋아하잖아.
여주) ㅋㅋㅋㅋㅋ아니 뭘 자꾸 좋아해~
민규야 적당히 먹고 부엌에 가져다 놔.
왜!
다른 사람들도 먹어야 할 거 아냐.
...어디가?
방에.
벌써 두번째 과자를 뜯는 민규에게 적당히 먹으라는 말을 건네며 제 방으로 홀연히 올라가는 여주였고, 여주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민현은 창균을 향해 물었다.
민현) 브라이언이라는 사람이 여주 좋아했어?
창균) 아니.
민현) ...........
창균) 좋아해 아직도.
민현) ..그래?
창균) 근데 여주가 미안하다고 하긴 했어. 그래도 뭐 안되는게 사람 마음이지.
민현) ...그래서, 아직 좋아해서 여주 찾아온거야?
창균) 그럴 걸.
석민) 야 이제 그만 먹어. 갖다 놓자.
민규) ...지훈이 형 갖다줄게.
석민) 갑자기?
민규) 빨리 먹어 치워야 여주가 안먹지.
석민) 아니 왜 자꾸 여주 못 먹게 하려는건뎈ㅋㅋㅋㅋ
민규) 그 사람이 준 거잖아.
지훈) ...너 거기서 뭐해?
민현) ...아, 여주 잘 자나, 그냥...
새벽 4시 반. 안그래도 추운 겨울 유독 추운 시각이었다. 밤 낮이 바뀌어 있는 지훈이 화장실을 가려 제 방을 나서다 여주의 방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민현을 바라보며 물었고, 그 물음에 민현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다 지훈은 눈을 깜박거리며 아.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더니 민현의 옆으로 가 여주가 침대에 있는걸 보고선 다시금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현이 살짝 열린 여주의 방 문 앞에서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간 지 3시간 가량 흐른 7시, 민현이 서있던 그 자리엔 정한이 서있었다. 민현과 똑같이 문 틈 새로 여주를 바라보다 쓰게 웃고는 1층으로 내려갔고, 곧 검은 형체를 바라보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한) 쟤 왜 저기서 자...
석민) ..........
정한은 현관 앞에 이불을 펴고 잠든 석민을 보곤 소파에 털썩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금새 다시금 밀려오는 잠에 빠져들었다.
정한이 잠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은 8시, 방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일어난 듯 살짝씩 소음이 새어나오고, 정한이 서있던 자리에 이번엔 민규가 서있었다.
민규) .............
가만히 틈 사이로 여주를 바라보던 민규는 조용히 여주의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침대 밑에 쭈그려 앉아 제게 등돌린 채 잠들어 있는 여주를 멍하니 쳐다봤다.
오분,
십분,
삼십분.
민규는 나비다리를 한 채 이불 속에 파뭍힌 여주를 30분이나 바라보더니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여주의 방을 빠져나와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갔다.
민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승관) 입으로 잘 들어가는데?
민규) 그 뜻이 아니잖아. 너무 졸려..
원우) 야 정신 나간건 민규만 그런게 아닌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잠 못 잔 애들이 왜이렇게 많아 ㅋㅋㅋㅋㅋㅋ
순영) 그니까. 얘들아 팍팍 좀 먹어~
승관) 아 이거 끝나고 부루마블 한 판 하려그랬는데! 김민규 빠짐?
민규) 아 나 먹고 잘거야.
승관) 이석민!
석민) 나도 잘거야..
승관) 아아, 그럼 원우형!
원우) 그래 좋아. 창균아 같이하자.
창균) 그래.
승관) 그럼 한 명 더! 누가할래? 엉?
찬) 나 할래!
승관) 아싸 그럼 4인 팟~
여주) 잘 먹었습니다
승철) 여주 좀 더 안먹어?
여주) 배불러
승철) 여주야 나 밥 다먹고 이따 털 실 색 좀 골라줘.
여주) 그래 좋아.
평화로운 아침 식사 시간,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향하거나 티비 앞에 앉곤 했다.
2층에선 어느덧 부루마블이 시작된 듯 소란스러워지고, 잠이 부족한 아이들은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서도 금새 잠에 들었다.
게임이 여러번 진행되고 다들 제 방으로 흩어진 시각, 여주는 승철과 털실 색을 정하곤 지수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멍하니 푸른 겨울 하늘을 바라보는 둘 사이엔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수) 곧있으면 또 1월이네.
여주) ...그러게. 무섭게 빠르다, 시간이.
지수) 응. 눈 깜빡하면 1년이 지나가있어.
여주) 그러니까.
지수) 근데 웃긴게 뭔 줄 알아?
여주) 뭔데?
지수) 너 없을 땐 1년이 10년 같이 길었어.
여주) ............
하루가 한 달 같고, 한 달이 1년 같고. 이상하게 너 없으면 그랬어.
여주) ...그게 뭐가 웃겨.
지수) 네가 지금도 우리 옆에 없었다면 안웃겼겠지. 근데 웃겨. 네가 있으니까.
다행이야.
지수) 여주야.
여주) 응?
지수) ...민규 좀 도와주라.
여주) ...무슨 소리야?
...민규가 많이 아파.
".........."
아침을 먹고 바로 잠에 빠진 민규가 일어난 시각은 아이들이 부루마블을 끝내고 거실이 한적해진 시각이었다. 제 휴대폰을 확인한 민규는 헐레벌떡 일어나 제 방을 빠져나가 여주의 방 문을 활짝 열었다.
"..........."
그러다 여주가 없는 텅 빈 방을 보곤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우당탕탕 거리는 소리에 1층에 있던 아이들이 방 문을 열고 소리치다 민규의 표정을 보곤 멈췄다.
"............"
1층까지 내려온 민규는 승철의 방 문을 열고, 곧 누워있는 찬이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있는 승철을 바라보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왜그러냐는 승철의 물음이 민규에게 닿기도 전에 민규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1층의 모든 방문을 열어재끼고, 또 2층으로 올라가 방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수의 방 문을 열고, 익숙한 뒷모습에 민규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급히 달려가 여주를 안았다. 놀란 여주가 숨을 크게 들이 마시더니 뒤돌아 민규의 눈을 맞췄다.
"...없어진 줄 알고."
방에도 없고, 다른 방에도 없고, 부엌에도 없고, 거실에도 없길래.
....근데 왜 울고 있어 여주야.
"............"
"....왜 울어 여주야."
민규의 창백한 얼굴에 여주는 안그래도 흘리고 있던 눈물이 더 흘러나오고, 곧 고개를 숙이며 펑펑 울고 말았다. 소리내어 울지 못하던 여주가 결국 가장 듣게 하고 싶지 않아했던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터뜨리며 울어댔다.
그러자 민규가 그런 여주를 다시금 품에 안고, 지수의 침대 옆 탁상에 자리한 달력에 동그라미 쳐져있는 오늘, 그 칸에 적힌 지수의 메모를 보곤 눈을 슬며시 감았다.
'여주 떠난 날.'
민규의 품에 안겨있던 여주의 머릿속엔 오로지 지수가 제게 건넨 민규에 대한 말들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
그렇고 그런 사이인 느낌처럼 써졌지만 아직 아무도 여주의 마음이 어딜 향해 있는지는 모른답니다..저도..ㅋㅋㅋㅋㅋㅋ
이상하게 주말마다 찾아오네요. 다 쓰지 못해도 주말에 와라락 써서 가져오게 됩니다. 보고싶어서 그런가봐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목은 이중적 의미!
여주 입장에선 싫은 나
애들 입장에선 싫은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