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다 됐어요?"
"응. 수고했다."
"힝 우리 횽님 오늘 떠나면 보고찌퍼서 우ㅉ.."
"닥쳐."
밤 비행기를 끊어놓은 덕에 공항으로 가기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생겨 태형을 불렀다.
짐 정리나 시킬 심산에 들린다고 얘기만 해놓고 오지않는 놈을 굳이 불러냈지만
생각보다 확인할 것도 없어 금방 끝나버리고 결국 남은 시간동안 집에서 뒹굴고 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바깥풍경에 어제저녁 이후로 한번도 손대지 않은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켰을땐
내심 마음에 걸리는 그녀에게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사장님..저 오늘 몸이 너무 안좋아서 가게 못나갈꺼같아요 죄송해요ㅠㅠㅠㅠ]
전날 밤 가게에 오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서 정신이 없었던건지 그녀의 말투가 그대로 배여있는 문자에 픽 웃어버렸다.
"뭔데 그리 웃어요?"
어느새 다가와서 문자내용을 훔쳐보는 태형에게 신경 끄라는 말만 해 주고 답장을 어떻게 보내줄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괜찮아 푹 쉬어? 아 아니다. 많이 아파? 이것도 별로인가.
아니 근데 잠깐만. 지금은 저녁이고 저 문자는 아침에 보냈는데?
이제와서 답장하기엔 좀 그런가.
"뭐야 뭔데 나도 보여줘요."
"아니 그냥. 누가 아프다길래."
"흐응, 걔?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거구나."
긍정의 표시로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자 실실 쪼개다가도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른다.
"뭐해요!!!!빨리 안 가고!!!!"
"뭘. 어딜?"
"어디긴! 그 애 집이지.
아아아 빨리 빨리!!민윤기씨 사랑하는 사람 죽어가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 어서 가서 죽도 끓여주고! 어 물수건 짜서 이마에도 올려주고!
떠나기 전에 박력있게 고백도 하고!! 마지막인만큼 확실히 하고 옵시다?"
"뭐? 야, 야 잠깐만!!"
"적어도 공항 갈 시간만 맞춰서 오면 돼잖아요! 나가요 빨리!"
쾅. 어느새 한 손엔 휴대폰과 차키를 든 채 현관 밖으로 쫒겨나버렸다.
저기 내 집인데..
굳게 닫힌 문만 멍하니 바라보다 이왕 나온거 진짜로 가서 죽이라도 끓여주자는 생각에 또 바리바리 사들고는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에 저장되어 있던 그녀의 집을 찾아 급히 속도를 올렸다.
그녀의 집이 가까워질수록 괜히 긴장만 돼 초조히 입술을 물어뜯었다.
-
처음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었을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그녀가 사는 1층의 어느 현관문 앞에 멈춰섰다.
입술이 바짝 타는 느낌에 괜히 마른침만 삼키고 손에 배이는 땀을 바지춤에 슥슥 닦았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조심스레 초인종 버튼을 누르고 띵동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땐 그냥 이대로 튀어버리고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얼굴 보자마자 확 안아버리는건 아닐지 하는 괜한 걱정들은
한참이 지나도 반응 하나 없는 현관문 너머 그녀로 인해 싸늘히 식어가며 실망만이 자리잡았다.
"...자나?"
혼잣말이지만, 조금은 크게 중얼거려보았지만 역시 묵묵부답.
결국 머리를 헤집으며 뒤돌아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이대로 돌아가면 오랫동안 못볼 얼굴이 너무 아쉬워 짜증이 치솟는듯 싶었다.
그러다 등 뒤로 들린 조그마한 마찰음에 고개를 휙 돌렸을땐.
"..?"
현관문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민 그녀의 얼굴에 그동안 여기 오면서 느꼈던 온갖 불안 초조가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듯했다.
열 때문인지는 몰라도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오늘따라 귀엽게만 보여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겨우 끌어다 내렸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집에만 박혀있으면 세균이 달아나냐?"
"..사장님 퇴근..하셨어요?"
"목소리 완전 갔네. 퇴근은 무슨 어제 문자 보냈잖아 오늘 휴업이니까 안나와도 된다고."
"...."
그제서야 문자를 확인하더니 입모양으로 아, 하고는 어색한듯 서서 눈치만 보고있는 모습이 또 귀여워 안아버릴뻔했다.
오늘 정말 많이 참는구나. 나란 놈 참 대단해.
"근데 왜 왔어요..?"
"...어?"
그러게 나 왜 왔지.
그녀의 질문에 속으로 침착을 유지하던 멘탈에 살짝 금이 간듯 벙찌고 말았다.
그러다 손에 들린 묵직한 장바구니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고.
"..죽 끓여주러. 보나마나 입맛없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먹지도 않았겠지."
"..."
"누워있어. 금방 만들어다줄께."
하고 손수 침실까지 모셔다 드리고는 이불까지 덮어 주고서야 재료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집 진짜 뭐 없다. 흔한 대학생의 자취방이 이렇게 쓸쓸할 줄이야.
최대한 정성껏 만들어 예쁘게 데코까지 하고는 그녀에게 갖다주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숨기지 못한다.
"맛있지?"
"..요리사 맞네요."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죽을 먹기 시작하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골적인 시선이 다 느껴질 정도로. 미친듯이 빤히 바라봐서 녹여버릴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보고싶을 얼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싶어서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무것도 모른채 두 볼을 우물거리는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
설거지를 끝내고 그녀가 누워있는 방을 다시 찾았을 땐 열이 올랐는지 누워서 꼼짝 못한채 끙끙대는 그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주었다.
끓여준 죽이 잘못되었나 싶어 괜시리 미안해지는 마음에 안절부절대다
그제서야 약국에서 사온 약을 떠오르고는 따뜻한 물과 함께 그녀를 일으켜 세웠을 땐.
"...나 진짜 괜찮아요.."
"..."
반쯤 풀린 눈과 이마에 송글히 맺힌 식은땀.
그리고 터진 입술이 만들어낸 농염한 빨간색을 보았을 땐 아득히 멀어져가는 제정신이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듯 했다.
끓어오르는 열로 뜨거워질대로 뜨거워진 그녀의 복숭아색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쥐어 불규칙한 숨소리를 내뱉는 입술 사이로 돌진했다.
뭉근하게 닿아오는 말캉한 입술을 한번 깊게 빨아들이고는 놀라 두배는 커진듯한 그녀의 두 눈을 손으로 감겨 주었다.
입 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전해오는듯 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원했던 달콤한 맛이 너무나도 좋아서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요히 온기섞인 숨소리만 나누기를 몇 분.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보기좋게 와장창 깨트리는 주머니 속 요란한 울림에 둘 다 화들짝 놀라 떨어지고 말았다.
아쉬움에 휴대폰을 들어 적힌 세 글자 이름에 속으로 분개하며 전화를 받았다.
"왜."
"형! 늦었어요 지금 시간이 몇시야!!"
뒤늦게서야 시계를 확인하고는 비행기 시간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땐 급히 전화를 끊고 나갈 채비를 했다.
"..."
물론 충격으로 벙쪄있는 그녀에게 인사해주는것도 잊지않고.
"갈께. 내일 꼭 출근해."
"..."
차를 몰고 집에 도착했을땐 얼마나 급했으면 집 밖으로 짐까지 빼놓은 태형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왜이리 늦었냐며 핍박이 섞인 잔소리는 공항에 도착해서는 걱정으로 뒤바뀌었다.
"가서 또 귀찮다고 안먹지 말고. 연락 자주하고."
"알았어."
"형님이 원해서 가는거니까 굳이 말리진 않을께. 대신 그만큼 성공해서 돌아와요."
"..애들 잘 부탁한다."
"오케이. 빨리가요 인사하다 비행기 놓칠라!"
짧지만 아쉬운 인사 몇 번 끝에야 비행기를 향해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점처럼 멀어지면서도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태형을 간간히 뒤돌아 바라보며 가슴 한켠이 먹먹했지만
비행기가 공항을 벗어나 힘차게 날아오르는 순간
아직 시작도 안한 여정에 벌써부터 사무치는 그리움이 닥쳐오는듯 싶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녀의 달달한 온기가 입술에 맴돌아 괜히 입맛을 다셨다.
이윽고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리고 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를 하러 나왔을 그 즈음에 오지않는 잠을 청했다.
꿈에 한 번은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과 함께.
+)
지난화에 윤기 떠난다고했을때 군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군대라뇨...군주님이 군대라뇨...!!!!!
군대는 아니지만 여튼 이제 윤기가 떠나버렸네요.
이제 시간을 빨리감기 위해 타임워프를 작동시켜야겠어요!(찡긋)
1~2년 그까이꺼 짧은 시간이니까요 허허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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