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뭔가가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눈을 희번뜩 뜨고 살펴보니 세종대왕님께서 10000원이란 글자와 함께 처참히 꾸겨져 계셨다. 그러니까, 만원. 어떻게 지폐가 이렇게 아플 수 있지? 나는 맞은 부위를 손바닥으로 비볐다.
“못난아, 가서 커피 사와.”
건방진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재수 없는 우지호 새끼가 썩소를 짓는게 보였다. 소파에 양 팔을 걸치고 다리를 꼬고 있는 녀석을 보노라면 마치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누리던 왕, 루이 14세가 떠오른다. 자기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안하무인 태도. 진심으로 아니꼽다. 하루에 몇 백번씩 저주를 퍼부어줘도 시원찮은 새끼지만 그럼에도 내가 묵묵히 우지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놈은 갑이고 나는 을이라는 슬픈 현실 때문. 굴욕적이지만 눈물을 머금고 만원을 주워들었다. 이런 걸 왜 나한테 시키는 거야! 난 이런 심부름꾼이 아니라 네 백댄서라고! 입 밖으로는 절대 내지 못할 말을 궁시렁 거리며 대기실을 나왔다. 에휴. 문이 닫히자 소나기처럼 한숨이 떨어졌다.
오늘도 나는 우지호의 시다바리 짓 중이다.
[우표] 그들만의 사랑방식(부제 : 유명가수와 백댄서의 상관관계)
written by 검백
우지호, 예명 ZICO는 대한민국 가요계 원탑을 지키고 있는 K-Pop의 선두주자- 아이돌 랩퍼였다. 작사‧작곡‧프로듀싱은 기본, 전문가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황금비율 몸매와 안무가마저 감탄한다는 춤 솜씨, 프로로 불려도 손색없는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개그맨 저리 가라하는 입담까지. 우지호는 어디 하나 부족한 데 없이 골고루 완벽한 놈이었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능에 최적화 된 인간인 것이다. 빌어먹게도, 그랬다. 하나님!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지호 새끼에게 능력치를 몰빵해주신 건가요? 하루에도 몇 번 씩 하늘을 우러러 질문을 퍼붓는다. 우지호의 시커먼 속내를 아는 나로서는 아주 그냥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우지호 이름은 안다더라, 최근에 팬카페 회원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더라 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분통이 터졌다. 비록 백댄서라는 하찮은 직종에 몸담고 있지만 내가 놈이 1집을 낼 때부터 같이 활동해온 측근으로서 장담하건대, 우지호는 절대 세간에 알려진 천사 표 이미지가 아니란 것이다. 힙합 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유의 시니컬함이 아니라 우지호는 진짜 인격이 뼛속까지 글러먹은 놈이다. 이건 내 목숨을 걸어도 좋다.
‘성격파탄자 우지호’는 비단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24시간 우지호의 화풀이를 받아내느라 매니저는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약물을 입에 달고 살고 있는데 좀만 더 진화하면 위암까지 갈지도 모른다. 우지호 성질은 또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옷 시침질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 자리서 옷을 찢어버리고 코디를 잘라버린 적도 있다. 게다가 속도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좁아터져서 한 번 놈의 눈 밖에 나면 두고두고 괴롭힘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음악방송 사건. 신인 중 한명이 우지호를 보고도 인사를 쌩깐 적이 있었다. 의도한 건지, 의도하지 않은 건지 자세한 경황은 모른다. 다만 우지호가 저런 되바라진 놈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없다고 하도 생지랄을 떤 탓에 결국 그 후배 가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날 방송을 취소해야만 했었다는 거다.
이렇게 싸가지를 개밥 말아 먹은 놈이 연예계에서 매장당하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었다. 인격이 2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놈은 공식적인 자리(카메라 앞)에서 철저하게 천사의 탈을 뒤집어썼다. 평소 입에 줄줄이 달고 사는 욕은 어디로 갔는지, 바른말 고운 말 캠페인을 해도 될 정도로 이쁜 말만 골라 했다. 사생팬 앞에서까지 착한 척 하니 말 다했지. 우지호는 본업을 바꿔 가수가 아닌 연기자를 해도 성공할 놈이다. 오히려 가수보다 잘 어울릴지도?
여하튼 지금의 난 우지호의 종 노릇 중이다. 곧 무대 시작인데 대체 무슨 커피를 사오라는 건지. 자판기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는 놈 때문에 친히 바깥까지 나와야했다.
“카라멜 마키야또요. 시럽 팍팍 넣어주시고요.”
우지호 이 새끼는 정말 안 어울리게 엄청 단 걸 좋아한다. 더러운 성격은 쓴 블랙커피랑 딱 궁합이 맞는데.
테이크 아웃을 하고 돌아오던 나는 입구를 가득 매우고 있는 수많은 팬들 때문에 한숨을 푹푹 내쉬어야 했다. 오늘은 우지호의 5집 컴백 무대로 해외에서 비행기 타고 온 팬들까지 아주 일대가 북적거리다 못해 폭발 직전이었다. 저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니! 눈앞이 어두컴컴해진다.
옷이 구겨지고 발에 걸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지만 겨우겨우 커피는 사수했다. 어떻게 내 몸보다 우지호 입 속으로 사라지고 말 커피를 더 챙겨야 하는지. 비참한 내 신세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정말 돈만 아니었으면 이딴 직업 진작 때려 쳤을 거다. 부득부득 이를 갈며 복도를 걷는데 갑자기 누군가 모퉁이에서 튀어나왔다.
“앗!”
피할 틈도 없이 정면충돌. 그대로 커피가 내 옷에 쏟아졌다. 다행이라면 여름이라 아이스 커피였기에 화상 입을 걱정은 덜은 정도다. 그런데 이거 무대의상인데 어떡하지… 커피로 처참하게 배린 옷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삼켰다. 잔소리 엄청 듣겠구나 싶다. 커피는 또 사와야 하는 건가… 씨이, 시간 없는데…….
“씨바, 눈구녕은 어따 처 달고 다니는 거야?”
정작 화를 내야 할 처지는 이쪽이지만 나는 한낱 초라한 백댄서가 아닌가. 얼핏 살펴보니 커피도 하나도 안 튀겼구만. 그러나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으려면 화풀이는 내가 다 덤탱이 써야하는 처지다. 아아, 울화통 터져.
“아, 예 그거 참 죄송하네요.”
그래도 사람인지라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안 그래도 굴직굴직한 동굴 목소리가 지하 500m 까지 쭉 가라앉았다. 지금 그게 사과하는 태도야?! 상대방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대충 넘어가면 되지 왜 자꾸 날 걸고넘어지는…….
그제야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이 전부 여기에 집중 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노려보는 상대방을 담담히 마주봤다. 그러니까, 상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자신의 권력이 어떤지. 나정도 되는 신분은 누군가를 개처럼 부릴 수 있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나를 개망신을 줌으로써 대비효과로 자신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고 싶은 추악한 욕망. 절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 익숙하다 했더니 네가 그 유명한 지코 백댄서 표지훈이지? 임마, 지코가 잘났다고 너가 뭐 쫌 되는 줄 아나본데 지금 위계질서 파악 안 돼? 푸하하하 명품관에서 물건 팔면 지가 명품인줄 안다고 딱 그 짝이네. 어쭈, 눈 안 깔아?”
아아아아. 슬슬 열 받는다. 사과했잖아. 커피도 내가 뒤집어 쓴 거지 너가 뒤집어썼냐? 그리고 내가 지코 백댄서라고 부심 부린 것도 없는데 왜 혼자 열폭이야! 지는 노래도 못 불러서 맨날 립싱크에 기계음 도배면서 누가 누굴 훈계야. 난 적어도 춤이라도 잘 추지. 아니아니, 애초에 먼저 튀어나온 건 너라고 이 개자식아아!
“잘못했…….”
“못난아. 커피 만들러 브라질까지 갔냐? 왜 이렇게 늦게 와.”
그때 저기서 우지호가 긴 다리를 휘적휘적 뻗으며 걸어왔다. 세상에, 저놈이 반가울 때가 다 있구나. 우지호의 등장에 기세등등하던 상대방이 움츠러들었다.
“이, 이번만 봐줄 줄 알아. 다음번엔 어림도 없어!”
급하게 꽁무니 빼는 꼬라지 봐. 꼬리를 말고 사라지는 놈의 등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데 우지호가 그 커다란 성량으로 꽤액 소리 질렀다.
“너 옷이 왜이래!!”
그러더니 단숨에 나와 시비 붙었던 인간의 목덜미를 낚아채 질질 끌고 왔다.
“이보세요. 곧 무대에 올라갈 애 옷을 이렇게 만들고 어딜 입 싹 닫고 튀십니까?”
“아, 아니 저 녀석이 먼…….”
“제 소문 아직 못 들으셨나 보네요. 저 말하는 도중에 말 끊는 거 장난 아니게 싫어하는데. 골백번 생각해봐도 저 순딩이가 먼저 당신의 비계 덩어리에 부딪혔을 거 같진 않고. 그렇담 결론은 나오죠. 당신이 그 무거운 몸뚱이 주체 못하고 엄한 사람한테 피해줬다는 거. 정 발뺌하실 거라면 CCTV를 돌려볼 용의도 충분한데요. 아, 하나 더. 당신이 쏟은 그 커피의 주인이 저라는 건 아십니까? 전 공연 전에 꼭 커피를 마셔야하는 체질인데 그쪽 때문에 못 마시게 됐군요. 무대 망치면 책임지실 겁니까? 사전 녹화도 아니고 라이브인데 뒤처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번 컴백 스테이지에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쥐방울만한 당신의 뇌에서 계산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쪽 신장, 허파, 쓸개, 각막까지 다 뜯어서 팔아도 안 나오는 금액인데.”
…진짜 징하다 우지호. 괘씸하긴 했지만 창백하게 질려서 오들오들 떠는 남자를 보니 입 한쪽이 씁쓸해졌다. 저렇게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짓밟는 것도 참 재주다 싶었다. 모른척하고 사라지고 싶은데 어느새 우지호가 내 손목을 수갑처럼 옥죄고 있었다.
“못난아. 너도 입 뚫렸잖아. 빨랑 말해 봐. 저 사람이 부딪힌 거야, 네가 부딪힌 거야?”
“음… 내가 부딪혔는데?”
“…….”
우지호의 눈썹이 쓱 위로 올라갔다. 매우 뜻밖이라는 그 태도에 부스스 웃음이 나왔다. 나답지 않게 왜 장난 친 걸까. 당황하는 우지호의 표정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건가. 그러나 아쉽게도 우지호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어쨌든. 두 손이 마주쳐야 짝 소리가 난다고 당신 잘못이 아주 없는 건 아니죠. 우리 못난이 세탁비까지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커피라도 어떻게 당장 물어내세요. 왜요, 싫어요?”
“아니… 아닙니다. 지금 당장 신선한 원두커피를 배달해야죠, 네, 네 그렇구말구요. 하,하,핫!”
“좋습니다. 이제야 대화가 좀 통하네요. 모쪼록 십분 안으로 끝내주세요. 아, 커피는 카라멜 마끼야또로. 그럼.”
뺀질뺀질한 미소를 얄밉게 지어준 뒤 우지호가 나를 구석진 곳으로 이끌었다.
“이 멍청아! 넌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어? 거기서 딱 잡아떼야지 이게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처럼 좋다고 헤헤 인정하고 자빠졌어.”
손을 들어 쿵 알밤까지 먹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언짢아졌다. 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천하의 우지호가 당황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라고 말하기도 뭐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바닥만 내려 봤다. 얼핏 우지호의 한숨소리가 들린 것 같다.
“옷이 이게 뭐냐. 샤워할 시간은 없으니깐 대충 수건으로 닦고… 찜찜해도 참아. 덜렁거린 네 잘못이니까.”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대충 머리를 상하로 끄덕이는데 우지호가 또 다시 내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쓸데없이 센 악력도 악력이지만 놈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을 따라 피부가 유난히 화끈거렸다. 끊임없이 투덜거렸지만 역시나 대스타 우지호 님께서는 내 말 따위 알아서 차단해주신다.
어딜 가나 했더니 의상실이다. 아까 전에 준비가 다 끝난 탓에 안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탁, 하고 닫히는 철문에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밀폐된 공간에 저놈과 나, 둘 뿐이라 그런 걸까.
“옷 벗자.”
“오, 옷은 왜?!”
놀라서 나도 모르게 삑사리가 났다. 우지호는 대뜸 미간을 와그작 일그러트리며 내 멱살을 잡고 티를 찢을 듯이 당겼다.
“이거 입고 무대 올라가게?”
아… 난 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줄 알았지. 큼큼 헛기침을 하고 훌렁 윗옷을 벗으니 우지호가 새 의상을 내밀었다.
“야아, 이거 비싼 거잖아.”
아직 상표도 떼지 않은 옷인데. 조금 놀란 채로 옷을 받아 들였다. 평소 우지호라면 생각지도 못한 친절이었기 때문이다. 늘 우지호는 입버릇처럼 중얼대던 말이 떠올랐다. 백댄서는 가수가 빛나기 위해 존재하는 그늘이라고. 그러니까 나처럼 못생기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도 들어서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인데… 여튼, 그런 가치관을 갖고 계신 우지호 님께서 하찮은 백댄서에게 이런 호의를 넙죽 베풀어 주시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너 월급에서 차감할거야.”
젠장. 그러면 그렇지.
본의 아니게 명품을 사버린 꼴이 됐다. 아, 제발 인간적으로 백 만원은 넘으면 안 될 텐데.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겠다. 내가 입지 못하고 자꾸 머뭇머뭇 거리자 우지호는 내가 몸에 묻은 커피가 신경 쓰여서 그런 줄 알았는지 대뜸 맨살에 손을 가져다댔다.
“윽, 뭐…!…하는….”
“휴지 없으니까 이 몸이 손으로 닦아주겠다잖아. 어? 불쌍한 옷이 네깟 놈을 위해 걸레가 될 수도 없고.”
그래도 이상한데. 사내놈이 내 맨 가슴팍을 더듬거리니까 기분이 영 좋지만은 않다. 손 주인이 우지호라면 더더욱. 떨떠름하지만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난 을이고, 우지호는 갑이기 때문에 찍소리도 못한 채 서있었다. 무슨 큰일을 한다고 우지호는 눈을 부릅뜬 채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살갗을 스치는 손가락의 촉감이 유난히 민감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문제인 건가. 뭐라고 해야 하지… 끈적하달까,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 섰어.”
“…뭐가?”
“유두.”
뭐어어?! 서둘러 고개를 내리니 뾰족하게 꼿꼿이 서있는 망할 것이 보였다. 왜, 왜 하필 여기서…!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진 채로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우지호는 태연하게 커피가 묻은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고는 쪼오옥 소리 나게 빨았…다….
“으아아아아 미쳤어?! 그걸 왜 먹어!”
더럽게! 얼굴에 열이 몽땅 몰려서 졸린 듯이 소리치자 우지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달콤한데? 그렇게 말하는 우지호의 얼굴은 어쩐지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했다. 장난이라면 진짜 못됐다. 악질. 자꾸만 우지호가 손가락을 핥는 게 돋보기라도 가져다 댄 듯이 확대 되서 두 눈에 비친다. 미쳐버린 걸까? 왜 저 모습이 섹시해 보이는 거냐고오. 나는 막무가내로 옷에 몸을 끼워 넣었다. 가슴이 정신없이 두방망이질 쳤다.
“못난아.”
내 이름은 못난이가 아니라 표지훈이야. 정정해주고 싶지만 나는 을, 우지호는 갑……. 얼른 이곳에서 탈출하려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몸이 기우뚱했다. 등 뒤부터 포근하게 감싸는 온기가 번져온다. 곧 있자 뱀처럼 큼직한 팔이 내 허리를 휘감았다. 머릿속이 락스로 표백한 것처럼 말끔하게 하얘졌다.
“못난이 지훈아.”
“…안 못났거든. 이래봬도 나 귀한 집 외동아들이야.”
“응 지훈아. 오늘도 무대 잘 부탁해.”
이다음 순서가 뭔지, 눈을 감아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화상을 입힐 듯한 뜨거운 기운이 물기와 뒤섞여서 뒷목을 부드럽게 적셨다. 아…. 벌에 쏘인 것처럼 따끔한 느낌이 뒷골을 자극하자 다리 사이가 바짝 조여들었다. 전력질주 달리기를 했을 때보다도 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우지호가 떨어졌는데도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우지호는 내게 이런 식… 성적(性的)
내 손을 잡고 걷는 우지호의 뒤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만 처절하게 하소연할 뿐이다. 고릴라 트름같은 놈. 더 이상 우지호를 만나기 전의 표지훈이 어떠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내가 놈에게 휘말려 있다는 거겠지?
우지호의 흔적이 내려앉아 있을 뒷목이 분홍빛으로 뜨거워졌다.
우울한 글만 계속 쓰다보니까 자꾸 달달하고 가벼운 걸 쓰고 싶네요..-_-ㅋ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