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보관소
w.1억
재욱이는 참 특이했다. 나는 아직도 널 보면 두근거리고 어색한데.. 너는 많이 변해있었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불구하고 장난을 치며 인사를 했고, 예전과 다르게 표정이 살아있었다. 아니.. 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해가는데.. 나만 그대로인 걸까?
"영화볼래?"
몇년만에 듣는 저 소리도 난 여전히 떨리고 긴장이 되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그래. 영화보자."
난 이 말이 늘 새롭고, 설레는데.. 너는 아닌가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걸 보면 나만 유난 떤 것 같기도 하고.
"이 영화 봤어?"
"아니? 재욱이 네가 보고싶은 영화 봐도 상관없어."
"그래? 그럼.. 이거 어때. 공포영화 볼 수 있지?"
"좋아."
"그래."
같이 영화표를 끊고 자리에 앉았는데. 광고가 나올 때도 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와 만난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고 만난 건 아니지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하는 너의 모습에 실망하고, 서운한 건 맞다. 마치.. 네가 애인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두 번을 차이고 이제서야 보네."
"어?"
"영화 말이야."
"…ㅇ..ㅏ.."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와 무슨 대화라도 이어가고 싶었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난 급히 너를 훔쳐보다가 스크린을 보았다.
영화에는 집중이 안 됐다. 이나은이 내게 했던 말부터 해서.. 네가 방금 했던 말까지 생각하다보니 집중을 못 하긴 했다만.. 무섭게 귀신이 나오는 부분에선 얼마나 놀라게 되던지..
눈을 가린 채로 몸을 움츠리자, 재욱이가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쳐서 너무 뻘쭘했는데. 네가 날 보고선 새끼손가락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난 너의 새끼손가락을 천천히 잡았다.
그리고 또 나는 영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의 새끼손가락을 잡고있단 사실에 너무 긴장이 돼서, 얼굴이 붉어지는 바람에 더워서 집중이 안 된 게 컸다.
"그렇게 무서워? 엄청 무서워하던데."
"…아니 무서운 것 보다는.. 소리가 커서 깜짝 놀랐던 거지!.."
"그게 무서운 거지."
"…그런가. 참.. 몇시에 올라가야 돼?"
"글쎄. 약속 있어? 일찍 가야 되나."
"아니! 약속 없어..! 애들 만나봐야 되는 거 아니야?"
"애들이야 자주 볼 수 있으니까. 나중에 봐도 되지."
"아.."
"오늘 도현이도 종강했다던데. 시간 맞춰서 같이올게. 넌 종강 언제야?"
"난 이번주 목요일..!"
"그래? 늦게하네."
"넌?"
"난 오늘 하고 온 건데."
"그래..?"
"응. "
"근데.. 재욱이 너 뭔가 변한 것 같아."
"…내가?"
"응. 고등학생 때는 엄청 조용했잖아. 너랑..나랑 같이 있으면 대화가 막 오고가지는 않았었는데.."
"그래서 싫어?"
"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안 싫은 거면 됐어."
"……."
네가 많이 변했다고 해서 미운 건 아니다. 그저 나와는 다르게 좋게 변한 네가 부러웠고, 더 좋아질 것 같아서 불안했을 뿐이었다.
"근데 몇시부터 와서 기다린 거야?"
"강이한테 연락했더니 너 끝나는 시간 알고있길래 시간 맞춰서 간 거야. 별로 안 기다렸어."
"그래? 그럼 다행이다.."
"고민시는? 잘 지내?"
"응. 요즘 썸타는 사람 생겨서 바빠서 나랑 안 만나줘. 아주 아주 바쁘셔.."
"넌?"
"응?"
"넌 그런 사람 없어?"
"…응. 뭐..그렇지."
내가 한 번도 남자를 사귀어보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면, 네가 비웃지는 않을까.. 말을 이어가지않고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난 너에게도 묻고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너에게 애인이 있냐고 묻는다면 좋아하는 걸 들킬까봐 바로 입을 닫게되었다.
"밥까지 먹으려면 시간 애매할 것 같다."
"…응. 버스..타고 가는 거지?"
"응."
버스 기다려주겠다는 말이 왜 안 나올까. 난 역시 바보인 걸까.
"잘가..!"
"그래. 다음에 애들이랑 같이 보자."
또 언제 볼지도 모르는데. 나는 왜 뭐에 겁 먹어서 너에게 다가가지 못 한 걸까.
몇년만에 널 만나서 왜 아무말도 못 한 걸까. 나처럼 어색해하지 않은 네가 두려워서였을까. 그때 내가 좋아했던 네 모습이 사라진 게 어색해서였을까.
버스에서 내린 재욱은 내리자마자 있는 도현에 당황한 듯 멈춰서다가도 인상을 쓰며 말한다.
"뭐냐 이도현 누가보면 우리 사귀는 줄 알겠네."
"종강했으니까 네 얼굴 좀 볼겸. 마중 나왔지."
"마중 그런 건 하지 마라. 징그럽다."
"징그럽냐."
"완전."
"술이나 마시자."
"서울대생도 술 마시냐?"
"참나."
도현과 재욱의 학교는 그렇게 멀지 않았고, 둘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서로 바빴기에 자주 못 봤던 게 컸다.
"술이나 마시자."
"뭔 갑자기 술이냐.. 술 싫다던 녀석이."
"나 오늘 작정했으니까 빼지 마라? 먼저 가면 너랑 친구 안 한다."
"누가 먼저 빼나 보자."
"그래."
"까분다 이도현."
"우리 학교에서 너 얘기 엄청 하는 거 아냐. 오늘 하루종일 너 얘기만 듣다가 온 것 같아."
"내 얘기? 그래서 뭐라했는데."
"너 완전 별로라고 그랬지."
"진심이야?"
"어."
재욱이 도현을 한참 바라보다가 콧방귀를 뀌며 '에라이 새끼야' 했고, 도현은 웃어보인다.
조용한 술집에 온 둘은 서로 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한시간이 훌쩍 넘었고, 둘 다 취기가 올라오는 듯 했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하지도 못한 채 술만 마시다가 취하고나서야, 새벽 1시쯤은 되어서야 둘이 밖에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서로 집으로 가야하기에 헤어져야 하는데 도현이 머뭇 거리며 말을 하지도 못 하고 있자, 재욱이 도현을 한참 바라보다 '야'하고 부른다.
"어?"
"뭔데 자꾸 뜸을 들여. 무슨 할 말 있어?"
"그래. 있다 인마."
"뭔데."
"나 얼마전에 을이 만나고왔어."
"……."
"좋아한다고 고백도 했다."
"…그래서.. 잘 됐냐?"
"걱정 마. 사귀자곤 안 했으니까. 애초에 욕심은 나지만, 너랑 을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선 넘지도 않았어."
"……."
"언제 고백하려고 그러냐. 계속 질질 끌면 확 내가 또 고백해버린다."
"…야."
"내가 사랑보단 우정이라서. 그래서 사귀자곤 못 하겠더라.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런가 누구한테 사랑 주는 것도 못 하겠어. 그러니까 네가 해."
"……."
"참.. 너도 고등학생 때부터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느라 고생했겠네. 안하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해서."
"……."
"근데 네가 자꾸 고백 안 하고 방치하면 계속 좋아할 거다? 그러니까 빨리 고백해. 답답하게 뭐하는 거냐."
"…참나. 양보하는 거냐?"
"애초에 사랑에 양보가 어딨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건데."
"……."
"어차피 을이는 나 안 좋아해."
"……."
"널 좋아하지."
"……."
"얼른 고백해. 그래야 나도 마음 천천히 접을 거 아니야."
"참나.. 야 이도현."
"몰라. 난 말했다.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마라. 간다."
"야아..!"
재욱은 당황스러운 듯 멈춰서서 멀어져가는 도현을 바라보았고, 도현은 골목길로 들어서 벽이 기대어 서서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었다.
"……."
인엽이랑 같이 쇼핑하러 나와서는 나는 계속 인엽이에게 재욱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너는 이재욱이 먼저 고백하길 바라는 거냐.. 한 번 네가 먼저 고백해봐."
"그게 쉽냐.. 그냥.. 나보다 잘나보이니까 더 힘들어지는 거지. 너야말로 민시한테 왜 고백 안 했었는데."
"고민시 성격은 네가 더 잘 알잖아. 노을 선생님~ 가끔은 포기하는 게 편할 때가 있답니다."
"……."
"그리고.. 됐다."
"왜애! 말해줘!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애들은 몰라도 돼요~"
"내가 왜 애들이냐? 너랑 동갑인데!?"
"그런 게 있습니다~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야.. 너 고등학생때 네가 이재욱 좋아하느라 다른 애들은 눈에 안 들어왔지?"
"아니 왜애! 헐 설마 너도 민시가 누구 좋아했다는 거 알아?"
"그 누구가 누군지는 아냐?"
"아니..?"
"그러니까 네가 눈치가 없다는 거다."
"아니 왜애! 뭔데에!!!"
"궁금하면 고민시한테 직~접 물어봐. 이 둔탱아. 너는 고민시랑 제일 친하다면서 누구 좋아했는지도 모르냐."
"아니이. .민시가 알려주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더 안 물어봤던 거지.. 야아."
"뭐."
"알려줘."
"싫어."
"그래! 됐다!"
인엽이랑 옷 사러 나와서 충격만 먹은 것 같다. 그나저나.. 충격보다는 네가 안쓰러워보이기도 했다.
민시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채고 포기했다는 게.. 그 상황이 너무 슬펐다.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혼자 꽤나 앓고있었을 거 아니야.
다음날.. 종강을 하고선 학교 건물에서 나왔는데. 너무 익숙한 냄새가 나서 바로 고개를 돌렸을 땐.. 재욱이가 학교 건물 옆에있는 벤치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널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힌 것 같았다.
"재욱아.."
늘 보고싶었던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되게 늦게 끝나네.."
오늘도 너무 태연하게 내게 말을 거는 널 보니 울컥해버렸다. 왜 나타나서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여태 너 생각 안 하고도 잘 버텨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왜 자꾸 흔드는 건지 그게 너무 궁금하고, 괴로웠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재욱이가 당황을 한 듯 했다.
아이씨..하면서 재욱이 옆에 앉아서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들어 마구 눈물을 닦아냈더니, 재욱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왜 울어.. 왜?"
"왜 이번엔 말도 없이 막 찾아와..?"
"…할 얘기 있어서.."
"그러니까 왜 말도 안 하고 그냥 오냐구. 내가 약속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구.."
"그럼 기다리지 뭐."
"…진짜...어이없어.. 할 얘기가 뭔데..뭔데 이렇게 찾아오는데."
"네가 울면 어떻게 말해."
"…그냥 말해애.. 진짜아..짜증나니까아아아.."
"……."
"얼른 말하라구.. 뭔 얘기길래 말도 없이 찾아와서 기다리냐구...!"
"……."
"말하라고 이 ㅠㅠㅠ씨ㅠㅠㅠ."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했어."
"…어?"
"보자마자 울길래.. 뭐 어떻게 말을 해.. 그나저나.. 무슨 일 있었어? 왜 갑자기 울고.."
"좋아한다고..?"
"…응."
"친구로서?"
"…아니."
"……."
"여자로서."
"……."
"네가 전학 온 날부터 지금까지 쭉. 다른 사람 좋아해본 적도 없어."
"……."
"무서워서 도망치다가.. 이러다가 네가 다른 사람 만나면 후회될 것 같아서. 급하게 와서 이렇게 허접하게 고백하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
"후회는 안 해. 내 진심을 말하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
"그리고 그때 체육대회때는.. 계주 달리는 거 보고싶었는데. 상황이 ㅇ.."
"그래서.. 나 좋아하는 거지?"
"……"
"나랑 사귀고싶다는 거지?"
"…응."
눈물이 안 멈춰서 계속 손등으로 닦아내는데 재욱이가 손바닥을 펼쳐 나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 손을 덥썩 잡았다.
"체육대회 다음날에 영화 보기로 했었잖아. 그때 영화표 예매 했었거든. 그거 아직도 갖고있어 나."
"……."
"내가 표현이 잘 못 해. 내 성격은 안 그런데.. 너는 늘 밝아서 그게 너무 어색하고 다가가기가 힘들었나봐. 혹시라도 내가 너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가 네가 날 싫어할까봐 물어보지도 못 했었어."
"……."
"그리고.. 사실은 어제 영화에 집중 하나도 안 됐어. 옆에 네가 앉아있는데 어떻게 다른 게 눈에 들어오나 싶고. 몇년만에 그렇게 보고시펐던 영화를 같이 앉아서 보는데 꿈 같아서 말이지."
"……."
"너 만나러 와서 말을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했다? 혹시라도 내가 고등학생 때 처럼 조용히 있으면 네가 날 불편해하고, 재미없어할까봐. 일부러 말 더 많이했는데.. 집에 가서는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 그래서 싫어지지는 않았을까 별 생각을 다 했어."
"……."
"체육대회 이후로 나한테 아는척도 안 하니까. 그냥 내가 싫어졌나 싶어서 무서워서 도망쳤어. 이제서야 말하는 것도 참 찌질해서 웃긴데.."
"안 웃겨.. 하나도."
"……."
"나도 너 엄청 좋아해. 나도 영화볼 때 너 떄문에 집중 하나도 안 됐어. 진짜..."
"…집중 못한 거 치곤 엄청 놀라던데."
"그건.. 소리 때문에 놀란 거고..."
울면서 말하니, 재욱이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몇년이 흘러서야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전해지는구나. 이럴 수가 있구나.
"이런 타이밍에 고백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네.. 엄청 긴장해서 아직도 심장 떨려. 티 안 났지."
"치.."
"ㅎㅎ"
"…오리는..? 오리는 잘 지내..?"
"응. 늘 오리 볼 때마다 너 생각나서 힘들었는데. 너랑 다르게 애교가 엄청 많아서 그건 좋아."
"……."
"바보. 그만 울어라."
몇년만에 너에게 듣고싶은 말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기쁘지가 않고 슬픈 건지. 참 내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민시는 엄마와 같이 과일가게를 보고있다. 언제 또 아빠가 와서 때릴지 몰라 두려운 듯 엄마는 민시의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집에 먼저 가있어. 엄마가 가게 정리하고 올테니까."
"됐어. 또 아빠 오면 혼자서 어떻게하려고."
"안 되겠다.. 지금 그냥 가게 닫고. 집에 가자."
"집에가면 뭐가 달라져?"
도망치듯 엄마가 가게를 정리하려고 했고, 저 멀리서 술병을 들고선 노래를 부르며 가게로 향하는 아빠에 민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는 민시를 본 아빠는 민시에게 다가와 바로 머리채를 잡았고, 민시는 그런 아빠를 노려보았다.
"지 애미하고 똑 닮아서 꼬라보기는."
아빠는 동네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술에 취해 늘 아내와 딸을 때린다고.
"사람들 보는데 때리게요?"
민시의 말에 화가난 아빠는 뺨을 때리려 손을 들어올렸고, 곧 누군가 아빠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그만하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뭐야 넌?"
"민시 친구입니다."
"얘 친구라고? 그래서 끼어드는 겨? 차암나.. 어린 것들이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네 아버지가 어른한테 이렇게 대하라고 가르치디?"
"아버지가 지금은 없으신데, 지금 있었다고 해도 아저씨처럼 이렇게 술마시고 자식을 때리진 않았을 거예요."
"……."
"아직 이십대 초반인 딸한테 이런 행동하면 노후에 아저씨 인생은 누가 챙겨드릴까요. 아무리 민시가 미련곰탱이라도 이렇게 자기를 맨날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
"이쯤하시죠."
"이 새끼가..."
"……."
"어휴.. 더러워라. 더러워서 피한다.. 어? 어디서 또 남자를 구해와서는..."
급히 도망간 아빠에 민시는 벙쪄서 아빠의 뒷모습만 보다가 곧 도현을 바라보다가 급히 도망쳤고, 도현이 민시를 따라 뛰었다.
도현이 민시의 손목을 잡아 돌려세웠고, 민시는 곧장 도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되냐? 그래서 이렇게 쫓아오니? 미안한데 나 너한테 하나도 안 고마워. 누구 하나 가족한테 맞고산다니까 재밌어서 구경이라도 하러 왔냐?"
"……."
"그래 너 잘 살아. 잘났어. 서울대 갔어. 그래, 나 너 좋아해. 뭐.. 돈 많은 도련님께서 거지가 좋다니까 갑자기 측은해보여? 동정심 생기냐고. 왜 그러는데? 왜 나서냐고."
"걱정되니까."
"그러니까, 네가 왜 내 걱정을 하냐고.."
"친구니까."
"미안한데. 난 너한테 고백한 순간부터 너랑 친구 못 했어."
"왜 네 멋대로 그걸 정하는데."
"뭐?"
"난 너랑 친구하고싶은데. 멋대로 고백하고 차였다는 이유로 왜 선긋냐고. 난 그게 이해가 안 간다고."
"……."
"네 입으로 그랬잖아. 불편해하고 그런 거 하지말라고. 그래놓고서 왜 피해."
"……."
"피하지 마. 이런 힘든 일 있으면 친구한테 말을 해. 왜 혼자만 알고 힘들어하는데. 그리고 아버지라는 이유로 너 때릴 자격 없어. 경찰에 신고해."
"그게 쉽니. 네 일 아니라고 막 말하지 마."
"…너."
"……."
"아버지 위해서 인생 사는 거 아니잖아. 해. 할 수 있어."
"……."
"낳아주고 키워줬다고 다 아버지 아니야. 자식 잘 되라고 힘 불어주고 챙겨주는 게 부모야."
"……."
"난 엄마가 차라리 때려줬음 했어. 그래야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하니까. 근데.. 난 그러지도 못 해. 그러니까. 너라도 하라고. 제발.. 널 생각해."
"신경쓰지마. 알아서 할게."
"그래. 내가 미워서 그런 거라면.. 을이한테는 말 해라. 너 이런 일 계속 있으면 을이도 신경쓰일 거 아니야. 을이가 진짜로 모르는 줄 알아? 다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너도 알잖아. 네가 상처 생겨서 학교 올 때마다 을이가.."
"…넌.. 내 앞에서 을이 얘기.."
"……."
"그래. 미안해. 네가 좋아하는 을이 힘들게 해서. "
"……."
"…네가 을이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고백한 내 잘못이다. 다 내가 잘못했지."
"난.. 다 행복했음 좋겠어. 내가 누굴 좋아해서 그 사람이 행복했음 좋겠다고 바란 적 없어. 그냥.. 다.. 다 행복했음 바랄 뿐이야. 그래서.. 네가 걱정 돼서 찾아왔던 거고."
"……."
"그래. 네 입장에선 내가 꼴사나울 수 있겠다."
"아니야. 고마워."
"……."
"어린애처럼 괜히 투덜거려서 미안."
"……."
"내가 너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알아? 다 나 썅년이라고 욕하면서 아무도 말 안 걸어줄 때. 같이 밥 먹자고 했잖아. 그때부터 너 좋아했어."
"……."
"근데 고백하고 차이니까.. 왜 이렇게 찌질이같아지는지.. 너네 보기가 창피해지더라. 사실은 지금도 그래. 너무 내가 작아보이고.. 창피해. 너네는 좋아하는 사람이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차였다고 해서 피하지 않고 계속 그 사이를 유지하는데. 나는 뭐하나 싶고.. "
"……."
"넌 어떻게 그러냐? 어떻게.. 몇년을 짝사랑만 하냐구. 사실은 너네도 힘들잖아. 힘든데 아닌 척 하는 거잖아. 특히 너는.. 제일 친한 친구랑 같은 사람을 좋아하잖아."
"청춘이니까."
"……."
"청춘이라서 너네랑 계속 이어가고싶었어. 우리의 청춘 속에 이별같은 게 없길 바래.. 난."
"…너도. 참.."
"……."
"우리 애들은.. 왜 다 이렇게 하나같이 등신같이 착하냐.. 재수없게."
"……."
"그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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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짜잔 19화 대령
원래는 내일 낼 거였는데 오늘 내버리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