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균의 목소리에 여주는 작게 웃었고, 민현과 민규는 창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바람이 적잖게 불어 머리카락을 날리고, 민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민규) 형만 좋아해? 우리 다 좋아해~ 그치?
민현) …그럼- 다 좋아하지~
그러자 여주는 담담히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여주) 고맙네- 나 좋아해줘서~
창균) ………
창균이 그런 여주를 보곤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여주는 풀썩 눕더니 탄식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여주) 아- 날씨 참.
민규) 왜 별로야?
여주) 응. 별로네~
민현) 꼭 비오는 날은 좋다그러고 ㅋㅋㅋㅋ 햇빛 쨍하면 별로라고ㅋㅋㅋㅋㅋㅋ
창균) ㅋㅋㅋㅋㅋ 근데 그게 편견을 깨주는 것 같아. 꼭 햇빛이 쨍하다고 모두한테 좋은 건 아니니까
민현) 그치. 맞아.
어느덧 애들이 쫘르륵 누웠고, 위에서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좋은듯 미소를 걸친 민현과, 그저 가만히 눈을 감은 창균, 그리고 햇빛에 찡그린 민규, 얼굴을 제 팔로 가려버린 여주. 행동 하나하나로 자신의 성격을 드러냈다.
민현) …착한 거짓말도 있을까?
창균) 갑자기 무슨 거짓말?
여주) 오빠 거짓말 했어?
민규) 민현씨 그렇게 안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민현)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현) 그냥. 회사 사람 중에 말버릇이 모르는게 약이다이신 분이 있거든. 애인분이 거짓말해도 본인만 모르면 상관없대. 그래서 그럼 그것도 착한 거짓말일까.. 싶어서.
민규) 와우. 난 반대~ 다 알고싶은데? 거짓말은 나쁘지!
창균) ...난 모르는게 약이라고 생각 안하는데. 모르면 독이지.
여주) ...그런가.
민현) 나도 이왕이면 사실을 직면하고 싶은 편이긴 해.
여주)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민현) 거짓말 하는 거?
여주) 아니? 착한 거짓말을 하는 거.
네명 중 여주만이 의견이 달랐고, 제일 오른쪽에 누운 여주를 향해 아이들의 시선이 향했다. 여주는 여전히 제 팔을 눈 위에 올리고 있었다.
민현) 왜? 거짓말 하는 거 싫다며.
여주) 거짓말 하는 건 싫지. 근데 착한 거짓말은 있다고 믿는 편이라.
민규) 헐- 배신자! 거짓말을 싫어하려면 다 싫어해야지 착한 거짓말이 있다고 믿는게 어딨어!
여주) 결이 다르거든? 니 논리면 빵을 위아래로 겹쳐먹는 거엔 햄버거랑 샌드위치로 왜 나뉘어지냐? 그냥 하나지?
민규) .....이과면 말이라도 못하든가. 맨날 지혼자 다 잘하지.
여주가 팔을 내리곤 몸을 슬며시 일으켜 민규를 보곤 말했고, 민규는 논리에 반박할 수 없다는 듯 입을 내밀었다. 그러다 여주가 다시금 몸을 눕히고 햇빛에 눈을 감자, 창균이 여주에게 말했다.
창균) ...근데 여주는 거짓말 안하지 않아?
여주) 난 거짓말을 할 바엔 대답을 안하지. 아님 포괄적으로 말하거나.
민현) 어떻게?
여주) 저녁 뭐 먹었냐고 물어보면 마트에서 뭐 사서 먹었어. 라고 대답해.
시리얼 먹었다고 하면 불 같이 화내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창균) ....맞네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 여주가 맨날 마트에서 장봐서 먹었어, 근데 오빠- 하면서 바로 다른 주제를 말했었어 ㅋㅋㅋㅋ
여주) 사실인데 거짓말은 아닌거지 ㅋㅋㅋㅋ 시리얼도 마트에서 샀으니까-
민규) 치사하네 치사해!
여주) 뭐래~
민현) 그럼 여주는 누가 착한 거짓말하면 어때?
여주) 나 눈치 엄청 빨라.
민규) 그럼 안속아?
여주) 아니? 속아 넘어가주지.
민규) 왜? 눈치 챘으면서 왜 넘어가?
민규의 말에 여주가 슬며시 눈을 떠 햇빛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여주) 착한 거짓말을 왜 하는 줄 알아?
민규) 안 혼나고 싶어서
여주) ㅋㅋㅋㅋㅋ그럴 수 있지. 근데 보통..
그 사람한테 고통을 주기 싫어서. 사실을 말하기엔 입이 안떨어지거든.
여주) ....그래서 거짓말 하는거야. 이기적이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보기 싫거든. 보기 싫은 날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거지.
...말하고 보니까 나쁘네. 근데, 근데 그래도 난 착한 거짓말 찬성.
여주) ...왜냐하면, 날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사람,
난 그 이기적인 사람을 사랑하니까.
여주가 자조적으로 푸스스 웃었고, 곧 몸을 일으켜 빈 음료수 병들을 집더니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아이들은 현관문이 닫히는 걸 보더니 여주를 쫓던 시선들이 다시금 하늘을 향했다. 어느덧 셋만이 마당에 남고, 민현이 말했다.
민현) 생각이 깊어.
민규) 그러게. 착한 거짓말을 누가 저렇게 해석해? 그냥 좋은 말로 속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착한 거짓말도 거짓말이잖아.
민규가 볼멘 소리로 중얼거렸고, 그 옆에 있던 민현도 옅게 웃었다.
창균) ...근데 진짜 거짓말 한 적은 없네. 거짓말은 한 적이 없어. 대답을 피하거나, 안하거나, 돌려말하지.
민규) .........
창균의 말에 눈을 감고있던 민규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눈을 뜨고, 세상과 수직이 된 제 시야에 허공을 가로지르며 조용히 말했다.
창균) ....그러게.
민현) ............
민규) ....칠년 전에, 떠날 거냐는 말에도,
여주는 대답도 안하고 미안하다고만 했어.
쓸쓸한 민규의 음성에 옆에있던 민현의 시선이 민규의 등으로 옮겨지고, 민현은 넓은 민규의 등판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금새 하늘로 시선을 다시금 돌렸고, 민현의 담담한 위로가 민규를 향했다.
민현) 그래도 지금은 옆에 있잖아.
정한) …여주 어디갔어?
민현) 아까 잠깐 나갔다온다고 나갔어.
정한) 어디갔는데?
민현) 어? 몰라?
정한) 니가 모르고 보낼 애도 아니고. 어딘데 왜 말 안해줘?
퇴근하고 여주를 찾던 정한이 민현의 방을 열어 책상에 앉아있는 민현을 내려다보고 물었고, 서류만 들추던 민현은 날카로운 정한의 지적에 머쓱하게 웃으며 달력을 들었다.
민현) 오늘 30일.
정한) 그래. 6월 30일. 그게 왜?
민현) 여주 납골당 가는 날. 매달 30일.
정한) ……….
민현) 너한테 말 안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그냥 갔는데, 뭘 꼬치꼬치 묻냐. …같이 갈 것도 아니면서.
정한) ……….
민현이 달력을 내려놓고, 정한은 침대에 걸터앉아 다시금 일을 하는 민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한은 의미없이 손장난을 치더니 조용히 말했다.
정한) 왜 같이 못가는 줄 알아?
민현) ……….
정한) 여주가 거기서 무슨 말을 할 지, 그걸 듣는게 좀 무서웠어.
민현) ……….
정한) 죽고싶다고. 누나한테 좀 데려가라고, 그런 소리 할까봐, 그거 듣고싶지 않아서.
정한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긴 듯 헛웃음을 치고, 민현은 의자를 돌려 정한을 마주보더니 말했다.
민현) 너 착한 거짓말을 왜 하는 줄 알아?
정한) 뭐?
민현) 이기적이라서.
정한) ……….
민현)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보기싫은 날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래.
정한) …근데, 그게 왜?
민현) 여주는 착한 거짓말에 찬성한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보기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해서.
정한) …그게 뭔,
민현) 많이 좋아졌어.
정한) ……….
민현) 남의 손 다 뿌리치고 떠나서 죽은 듯 살려고 했던 여주가 돌아왔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보기싫어하고.
섣불리 그런 생각, 이제 안할 거라는 말을 하고싶은거야.
며칠 전에 지훈이가 말했었잖아. 우울을 온전히 느끼려하지 않았다고. 혼자있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애들이랑 밖에 나갔고, 지훈이한테 그걸 다 말했고.
민현) ……….
정한) ……….
민현) 데리러 갔다 와.
정한) ……….
민현) 저녁 시켜놓을테니까.
저녁 먹고 나서 제주도 얘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거실에서 다같이 잘거니까, 데리러 갔다 와.
회색빛의 건물, 내부에 깔린 대리석들 위에는 수많은 영혼들의 빛이 빛나고, 그리운 발걸음 소리만이 그 안을 가득 채웠다. 또 하나의 그리운 발걸음이 익숙하게 멈춰서고, 손에 들린 꽃을 유리창에 붙였다.
"..........."
접착이 아쉽다는 걸 아는 듯 여러번 누르더니 손을 떼곤 발목 위까지 내려오는 흰 원피스가 어색한 듯 매만졌다. 고개를 숙여 흰 스니커즈를 바라보던 여주는 한참 제 원피스를 쥐었다 폈다 반복하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있는 칸에 아무도 없음을 보자 고개를 들어 사진을 마주했다.
"언니. 벌써 7월이네."
돌고 돌아서 또 여름이 찾아왔어.
여주의 나지막한 음성이 정현을 향했다.
"...맨날 검은색만 입고 왔는데. 나 흰 색 입은 건 처음보지? 치마도."
"...근데 검은 가디건은 포기 못했어. 이건 내 분신이거든."
...손목에 손수건 두르는 것도 싫고.
"...언니. 언니도 착한 거짓말이 있다고 생각해?"
난 그걸 나쁘다고 보지 않아. 왜냐면, 그 착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가거든.
"얼마나.. 얼마나 그 사람을 사랑하면, 들켰을 때 몰매 맞을 걸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겠어."
여주의 시야가 잠시 초점을 잃고, 그리운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가득했다. 젊은 영혼들의 발걸음 소리는 뜻모르게 활기찼으며 여주에겐 그 소리가 딱히 와닿진 않았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여주의 스니커즈를 빛내고, 여주는 초점을 다시 찾더니 정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우리 곧 제주도 여행 가."
".........."
"...기대 되는데, 너무 미안해."
".........."
"나랑 유럽여행 가려던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미국 가는 바람에 여행도 못가고... 애들이 얼마나 기대했는데...
결국 여주의 눈에 눈물이 일렁이고, 여주는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회색빛 대리석 바닥에 한방울 두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운 사람의 발걸음이 하나 멈췄다.
"...언니. 난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한 순간도 후회를 안한 적이 없어. 모든 순간이 내게 후회였어."
내 선택에 아무도 부정적이지 않은데, 내가 한 내 선택을 내가 미워해.
...초등학교 때 내가 석민이를 구해주지 말 걸. 안구해줬더라면 석민이가 날 이만큼 안아꼈을텐데.
중학교 때 나 구해주던 민규한테 고맙다고 하지 말 걸. 그럼 민규랑 이만큼 안친해졌을텐데.
..반장이 사진동아리 여자 안받는다고 할 때, 그냥 다른 동아리 들어 갈 걸.
"...그랬더라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 내가... 내가 안아프게 할 수 있었을텐데..."
나 따위가 너무 소중한 연을 만나서, 나는 그게 너무 아파.
여주의 목소리는 이미 물기가 가득 묻어 잘 들리지 못했다. 그리운 발걸음 하나와 정현에게만 닿는 그 소리는 아리기 짝이 없었다. 웅얼거리며 진심을 꾹꾹 눌러 담는 여주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너무 이기적이야. 이기적인 사람이야.."
언니, 언니 미안해.
언니 미안해, 나 이제...
나 이제...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자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여주를 보곤 이해한다는 듯 지나쳤고, 여주는 주저 앉아 엉엉 울어댔다. 눈물은 정처없이 흘렀으며 목은 메어 고통을 수반했다. 그 아린 고통은 감정에 비하면 간지럼이었지만. 여주는 끅끅 거리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 이제 언니 안보고싶어...."
언니... 나 이제 보고싶단 말 못할 것 같아..
여기 따듯해서, 못해본 사랑도 해보고 싶어서, 날 위해주는 사람들이 아픈게 보기 싫어서,
아직 날 위해서가 아니고 내 사람들을 위해서지만,
그 사람들이 아픈 건 이제 보고싶지가 않아.
...언니, 우리 나중에 보자. 우리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나중에 보자. 미안해.
거진 숨소리로만 뱉은 그 말을,
"...미안해 하지마."
가장 그 말을 듣고싶어했던 그가 들었다.
"여주야, 그 말 들으려고 이만큼 달려왔어."
진이 빠진 여주의 어깨를 감싸안아 제 품에 가둔 정한이 여주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붉게 충혈된 눈이 창 밖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을 향했다.
"고마워."
고마워, 여주야.
〈세때홍클 3> FIN.
-시즌 1을 지나, 3까지.
당신의, 혹은 누군가의 아픔부터 치유까지 함께 달려와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부연설명 |
아실 것 같지만 혹시나 이해를 돕기위해 몇마디 붙이자면, 늘 검은 옷만 입고 정현을 마주하던 여주가 흰옷을 입었다는 것. 색상에서 대비를 준 것입니다. 여주가 밝아진 걸 암시하죠. 그럼에도 검은 가디건을 포기하지 않는 건, 손목에 제 상처를 감추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가디건을 선물에준 사람을 사랑해서 입니다. (검은 가디건을 선물했던 사람들이 누구였죠! 곱씹어봅시다!) 그리고 여주가 저 말을 뱉기까지 민규도 석민이도, 민현이도 지훈이도 창균이도 아닌 정한이인건, 이미 정현을 한 번 보냈던 고통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한 번 보냈기에, 또 한 번 보내기 싫은 마음은 아무래도 정한이가 제일 간절했을테니까요. 제목이 ‘페이지를 넘기십시오.’ 인건 느낌이 오시죠? 여주가 선택한 삶이 이제 펼쳐진다.. 뭐 오픈엔딩 같은 느낌이죠! |
혹시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 궁금한게 있으셨다면 질문 남겨놓으셔도 좋습니다! 길게 달려온 만큼 마무리는 좀 허무한 감이 있네요. 그렇지만, 생각해뒀던 엔딩이라 싫진 않아요. 이 아이들은 글로 쓰여지지 않아도 한 편에서 이야기들이 줄줄 풀어내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한테 너무 소중한가봐요.
다시 한 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어요 💛
Credit
Cast
김여주 권순영
김민규 문준휘
부승관 서명호
이석민 윤정한
이지훈 임창균
이 찬 전원우
최승철 최한솔
황민현 홍지수
이민혁 윤정현
조정석 채송화
한지현
helper
세봉해
겸절미
인절미
파란하트
대장
루시
너누
시소
0846
하늘
알콩
슈슈
명호시
하마
콩콩
열일곱
지단
봉봉
먀먕먀먕
요를레히
토끼
호시탐탐
밍구는 행복해
또지
도아해
웃찌
하루
알슈
용용
청춘 블라썸
히나
쿨피스
은하수
Winsome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