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25
"으…."
지금 몇 시야.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시계는 지금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9시까지 데리러 간다고 했으니까… 딱 맞춰 일어났네. 슬슬 준비해야겠다. 기지개를 쭈욱 피고 나서 방에서 나와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게 안녕히 주무셨냐며 인사를 꾸벅 했다.
"일찍 일어났네? 방학이라고 늦게 일어날 줄 알았더니."
"오늘부터 여주랑 독서실 다니려고요."
"역시 우리 아들. 엄마는 우리 민규 덕분에 살 맛이 난다."
에이, 뭘 새삼스럽게. 엄마의 말에 피식 웃고는 민희는 일어났나 싶어 민희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은 저 밑으로 던져놓고 세상모르게 잠이 들어있는 민희. 으이구,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불을 들어 올려 민희 위에 잘 덮어주고는,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그나저나 우리 몬난이는 일어났으려나. 조금 불안하긴 한데… 일어났을 거라고 믿어야지, 뭐.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치약을 주욱 짜고는 입에 물었다.
"다녀올게요."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밥을 먹고 나서 가방을 챙기고 나가려고 하자, 엄마는 그런 내가 기특한 건지 잘 다녀오라고 말을 하는 내내 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엄마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서는데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제법 찼다. 김여주 옷은 제대로 입고 나왔으려나. 또 대충 입고 나와서 춥다고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이제는 익숙한 김여주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신호음이 끊기지 않는 게 뭔가 불안하다. 에이, 설마… 그래. 늦게 일어나서 지금 준비하느라 전화를 못 받는 걸 수도 있어. 애써 그렇게 생각을 하며 너희 집 앞으로 걸어갔다.
"뭐야, 진짜 안 받네?"
그렇게 굳건히 믿고 집 앞까지 찾아왔건만 거기에는 김여주는 커녕, 전화는 아직도 받지 않는다. 내가 못 산다, 정말…. 그런데 하루 만에 계획을 무를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김여주가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전화 끝에 목이 잠겨 '여보세요….' 하는 너에 집 앞이니까 빨리 나오라고 말을 하니, 앓는 소리를 끙끙 내던 너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김여주를 끌고 독서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9번 방, 김여주는 6번 방을 배정받았다. 잠이 덜 깨 비몽사몽 걸어가는 너를 보며 자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하니, 알았다고 고개는 끄덕인다. 보아하니 저거 백퍼 책상에 엎드려 자게 생겼구만. 나는 방에 들어가 가방을 열기도 전에 너에게 엎드리지 말고 공부하라는 문자를 치고는, 가방을 주섬 주섬 풀었다.
수학 오답노트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거지. 방이 조금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문제집이랑 필통을 들고 휴게실로 갔다. 김여주는 열심히 하고 있으려나. 확인차 문자를 한 번 보내 보니 수학을 하다가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단다. 그 문자를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여주는 항상 그랬다. 자기는 천생 문과생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해가 안된대. 어떻게 수학을 그렇게 잘하냐고, 또 어떻게 이과를 갈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 공부 유전자는 오빠가 다 가져가서 자기가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 거라면서, 너는 머리를 타고 나서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거라고 항상 푸념을 늘어놓는데… 사실 그건 아니거든. 나는 머리를 타고 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노력을 했던 거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건. 물론 학생이라는 본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부는 열심히 해야 되는 게 당연한 거지만, 이마저의 이유도 너 때문이라고 하면 조금 오버스러우려나. 너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고, 또 네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알려주고 싶었다. 그만큼 나한테 의지하고 있는 너를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 모르는 문제를 알려줄 테니 휴게실로 나오라는 문자를 치고는 아까 마저 풀던 문제를 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로 들어온 너는 내 어깨를 탁 치면서 말했다.
"이열-. 김민규. 공부 열심히 하는데?"
"그럼. 이 성적이 그냥 나오는 게 아냐."
내 말에 딱 봐도 재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던 너는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할 말이 없는지 목을 가다듬고는, 모르는 문제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으음…. 문제가 한번 꼬아져있긴 한데,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봐봐. 여기서 이 문제는…."
네가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방법으로 풀이를 해주고는, 이제 알겠어? 하고 고개를 드는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너에 놀라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말을 했다.
"뭐, 뭐냐.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그냥. 너 좀 괜찮게 생긴 거 같아서."
…얘 갑자기 왜 이러니. 갑작스러운 김여주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 손으로 막 부채질을 했다. 뭐야,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데. 그리고 내가 장난으로 나 잘생겼다, 뭐 이런 말은 해봤어도 쟤가 나한테 저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 덥냐고 묻는 김여주에 얼른 손을 내렸다. 아, 여기서 도저히 못 있겠어. 네 얼굴 못 쳐다볼 거 같아. 나는 짐을 바리 바리 싸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 김여주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뭐야! 나 아직 물어볼 거 더 남았어!"
"니가 다시 풀어봐! 분명 다시 보면 알거야."
"아, 뭔 소리야. 모르니까 너한테 물어보는 거지!!"
"아니야. 원래 문제는 혼자 풀고, 깨닫는 게 제일 좋댔어."
그럼 이만. 난 이 말을 끝으로 얼른 휴게실을 나와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다. 그 짧은 거리를 뛰었다고 이렇게까지 심장이 뛰는 건 아닐 텐데, 내 심장은 정말 미친 듯이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이게 왜 이렇게 뛰는 건지 이유를 백 번, 천 번이고 알기 때문에 나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맸다. 미쳤다, 진짜. 김여주가 눈치챈 건 아니겠지?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뭐 그런…. 아, 어쩌자고 그렇게 뛰어온 거야!!!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이고는 책상에 털썩 엎드렸다.
"진짜 바보 같아, 나…."
정말 나 바보 같다, 여주야.
*
[야. 민규야.]
[뭐하냐. 잠?]
[너 밥 안 먹어?]
[나 혼자 먹고 온다-.]
[…민규야. 죽었니?]
[대답 좀 해봐.]
아까 그 일(?) 이후로 차마 네 얼굴을 볼 수 없던 나는 너에게서 오는 문자를 모조리 다 씹었다. 문자 내용을 보아하니 네가 특별히 뭘 눈치챘다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아직도 너를 보면 내 마음이 진정이 안될 것 같았거든. 애써 공부로 너를 잠깐이라도 잊어보려 막 하다 보니 얼마 남지 않았던 연습장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또 새로 사 와야겠네. 대충 옷을 걸치곤 독서실을 나가 바로 앞에 있는 문방구로 들어섰다.
아침에도 제법 쌀쌀하더니 밤이 되니 더 추워졌다. 그 가까운 문방구를 가는데도 너무 추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얼른 들어가 공책을 하나 사고 나오려는데, 눈 앞에 분홍색 담요가 딱 보이길래 그것도 같이 샀다. 우리 몬난이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집에 갈 때 이거라도 덮고 가라고 해야겠다 싶어서. 그렇게 담요랑 연습장을 사고 독서실로 돌아오니 문자가 또 오기 시작했다.
[야.]
[야야야야야야야.]
너무 씹었나… 하긴 좀 이따 집에 가려면 만나야 되는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피할 수는 없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이제 답장을 해야겠다 싶어서 문자를 치고 있는데 또다시 너에게서부터 문자가 날라왔다.
[나 집에 간다.]
으아. 화났나보다. 나는 아까 치던 문자를 황급히 지우곤, 왜 벌써 가냐고 답장을 하니 문자가 폭탄으로 오기 시작했다.
[뭐 했길래 하루 종일 연락이 안돼?!!!!]
[너. 내가 어떤 생각까지 했는 줄 알아?]
[너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죽은 건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고ㅠㅠㅠㅠ]
[이 나쁜 놈아!!!!!]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너무 웃겨서 입을 꾸욱 틀어막고 큭큭 웃음을 참아냈다. 공부하다 죽은 건 아닌가 생각했대. 하여튼 엉뚱해,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
내 문자에 너는 당장 휴게실로 나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또 한 대 맞게 생겼구만. 나는 아까 산 분홍색 담요를 뒤집어쓰고 휴게실로 걸어가는데, 그 안에서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너를 보니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선 김여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고 소리를 치려고 하길래, 여기는 독서실이니까 나가서 얘기하자며 김여주 손목을 잡고는 비상구로 들어갔다. 얘기를 하려고 데려오긴 했는데 막상 찬기가 도는 이곳에서 겉옷 하나 걸치지 않은 네가 걱정돼 나는 이거나 덮으라며 뒤집어쓰고 있던 담요를 김여주 무릎 위로 던졌다. 제 무릎에 담요를 덮는 김여주를 보며 아까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연락이 안 된 이유를 설명해보시지."
"일단 미안해."
"사과는 됐고. 뭔데."
"너무 좋아서 그랬어."
"좋아?"
뭐가? 하고 묻는 너를 보며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뭐가 좋았냐고 물었지?
네가. 네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너를 볼 수가 없었어. 아까는 너만 보면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서,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답장하지 못한 거야.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해. 왜냐하면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너무나도 소심하거든. 나는 너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또 다른 걸로 둘러댈 수 밖에 없어.
"너 분명 들으면 화낼텐데."
"아, 뭔데!! 화내고 말고는 내가 결정해! 뭔데! 뭐가 그렇게 좋았는데!"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았어."
"…하."
민규야. 너 어디 아프니? 열은 안 나는데….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손을 대고 묻는 네 모습이 너무 웃겨 계속 웃어대니 넌 이게 웃기냐며 나를 퍽, 퍽 때리기 시작했다. 아. 물론 내가 맞을 짓을 했고, 그래서 맞을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이건 너무 아프잖아! 나를 때리는 네 손목을 딱 잡으니, 어어? 이거 안놔? 하던 너는 이젠 나를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 아 미안해!! 오늘은 너무 집중이 잘 되서 그랬어!!"
"다음부터 또 이래 봐. 그땐 진짜 죽어!!!!"
아, 진짜 아프다. 전부터 느꼈던 건데 진짜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왜 이렇게 센 거야.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려야겠다 싶어 내일 보충 신청하는 거 안 까먹었냐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 말에 너는 아, 맞다. 하더니 나를 때리는 것을 멈추었다. 으으… 아파. 너한테 맞은 곳을 문지르면서 끙끙 앓고 있는데 너는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뭘 그렇게 고민을 하지. 할 건 하나밖에 없는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잘 골라야지. 이제 진짜 고3이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해놓은 게 있어."
"뭔데?"
"배드민턴을 하자."
내 말에 김여주는 정말 할 말을 잃은 건지 헛웃음만 날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반응이 왜 저러지, 나름 괜찮지 않나? 내가 해맑게 묻는데 김여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아까 고3이라서 잘 골라야한다는 내 말은 어따 팔아먹었니…?"
"잘 고른건데?"
"…하."
"봐봐. 잘 들어봐."
너무나도 황당해하는 김여주를 위해 나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죽어라 공부를 해야 할 건데 아침에 상쾌하게 두 시간이라도 운동을 하면 머리도 맑고 좋지 않겠냐고. 아침에 자는 것보다 차라리 몸이라도 푸는 게 낫지 않겠냐고. 책상에만 죽어라 앉아있는다고 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력. 바로 이게 일석이조라는 거지. 어때?"
이런 말하긴 뭐 하지만, 김여주는 귀가 얇아서 내가 이렇게 말을 하니 또 설득을 당하는 거 같았다. 표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거든.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을 하던 네가 그래. 하자. 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야. 근데 그거 진짜 빨리 신청해야 된다.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거든."
"…그게 경쟁률이 세다고?"
"당연.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사실 누가 이렇게까지 생각을 할까 싶긴 하다. 웬만하면 다들 자기가 취약한 과목을 듣겠지. 하지만 이렇게까지라도 안 하면 김여주는 늦을 게 분명하니까. 미리 언질을 줘 놔야 성공을 하던가 하겠지. 너 진짜 약속했다! 꼭 하는 거야! 내 말에 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제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 어딜 가.
"어딜 가긴. 이제 너도 만났으니까 집에 가야지!"
"안돼. 아직 갈 시간이 아니야. 얼른 다시 앉아봐."
"아 왜. 또 뭐."
"제야의 종소리는 듣고 가야지."
12시까지 5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거 아닌가? 나는 얼른 이어폰을 꽂고 이리저리 DMB 주파수를 잡다가 이내 켜진 화면에 김여주에게 이어폰 한 쪽을 건넸다.
-여러분. 지금 이 곳은 보신각입니다!
큰 전광판에 비춘 시계와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새해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MC들과 스님은 앞으로 다가올 2015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누구도 아프지 않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찍고 있는 카메라에 손을 흔들거나 브이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MC는 전광판에 비춰진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 이제 2015년까지 10초 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다 같이 외쳐볼까요?
"10, 9, 8, 7, 6, 5, 4, 3, 2."
그 곳에 있는 사람들처럼 나와 김여주도 카운트다운을 했다. 1! 소리와 함께 시간은 AM 00 : 00으로 바뀌고,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종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그 종소리는 이어폰을 꽂고 있는 나와 김여주에게도 전해졌다.
-시청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5년 1월 1일. 평소처럼 11시에서 12시가 되었을 뿐인데 한 해가 바뀌어 있었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너는 오늘도 여전히 이상한지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해본다. 그리고 또다시 말한다.
"기분 되게 이상하다. 그치."
"뭐가."
"그냥… 2015년이라는 게."
뭘 새삼스럽게. 여전한 네 모습에 피식 웃으며 네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도 나이 먹어서 좋은 건 있네."
"응?"
"우리가 이 정도 나이가 되지 않았으면, 이렇게 같이 새해를 맞이할 순 있진 않았을 거 아냐."
어렸을 때는 자기 바빴고, 어느 정도 나이가 먹었을 때는 기껏해야 각자의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 들었냐고 문자나 치기 바빴지. 내 말에 너도 픽 웃었다.
"내년에는 우리 이런 칙칙한 독서실 계단이 아니라."
"응."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저 현장에 직접 가서 같이 제야의 종소리를 듣자."
그때는 우리가 20살이 되는 해니까 더욱 뜻깊을 거야. 그 말에 너는 그래. 꼭 같이 가자. 하며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라고 말을 하는 너에 나는 너나 배신하지 말라며 답을 했다.
20살이 되면, 그때가 되면 너에게 용기 내서 고백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네 옆에서 그냥 친구가 아닌, 남자친구로서 너를 지켜줄 수 있을까. 내년 이맘때쯤에는 정말 현장에 찾아가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네 눈을 마주보며 말하고 싶다.
널 좋아한다고.
10년동안 널 좋아했다고.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라고.
"이제 집에 갈까?"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터는 나를 따라 너도 바지를 툭, 툭 털더니 내가 빌려줬던 담요를 다시 돌려주었다. 이거 돌려줄 필요 없는데. 나는 네 어깨 위로 담요를 덮어주며 너 주려고 사온 거라고, 추우니까 이렇게 덮고 가라고 말을 하니 어쩐지, 하며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을 챙기고 나서 만나자며 비상구 문을 여는 김여주를 붙잡고, 나는 너를 꼬옥 끌어안았다. 내 행동에 당황을 한 듯 너는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이건 나조차도 생각지 못한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냥 너무 커버린 우리에, 그리고 그만큼 달라진 우리에 왠지… 지금은 널 안고 싶었다.
"야. 민규야."
"……."
"……김민규?"
"너한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어?"
"진짜 할까 말까 많이 고민 했었는데…."
이젠 해야 될 거 같아. 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혼란스러워할 네 표정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내년에도 이러면 어떡하지. 지금 반응 보니까 내년에도 분명 이럴 거 같은데. 그전에 그럼 어떻게든 우리 사이를 발전시켜 가야겠다. 네가 지금처럼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한껏 긴장해 있는 네 귀에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진정한 고3이 된 걸 축하해."
푸하하하하!!!!! 그 말을 끝으로 깔깔 웃으며 네게서 떨어지니 너는 한동안 벙찐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야!!! 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너 진짜 새해 맞은 기념으로 한번 죽어볼래?!!!!"
"뭘 그렇게 긴장을 해. 대체 뭘 상상했던 거야?"
"그냥 죽어. 김민규!!!!"
이렇게 파란만장한 2014년이 끝이 났다. 2015년에도 여전히 너와 이렇게 지내면서 1년을 보내겠지. 이젠 정말 10대의 끄트머리에 선 나는, 앞으로 너와 그려갈 10대의 마지막을 기대하고 있었다.
**
"……하."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울컥 토해져 나오는 피를 틀어막아보아도 그 피는 손 틈 사이로 기분 나쁘게 흘러내렸다. 우리 여주 어떡하지. 분명 또 울 텐데. 이번에는… 많이 울 텐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네 얼굴에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싫어 피가 묻은 손으로 애써 눈물을 닦아낸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하려던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 끝나버린 게 너무나도 허무할 뿐….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앞서는 건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과, 이 세상에 너를 혼자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는 비통함.
……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오랜만이죠ㅠㅠㅠㅠ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더보기 이거 오늘은 또 되네요. 허허 뭐지. 벌써 월요일이네요... 월요일 넘나 싫은 것... 마지막에 좀 큰 게 나왔죠? 네. 맞아요. 혹시 눈치채셨을지는 모르겠지만 * 이 표시랑 ** 표시랑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 이거는 그냥 시간의 흐름? 을 가지고 있다면 ** 이 표시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주는 표시라고 할까요. 고로 저건 현재라는 거겠죠....! 사실 저 부분을 쓸까 말까 많이 고민했습니다만 결국엔 그냥 썼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완결 조금 일찍 안다고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해요 허허 물론 마지막 편이 저렇게 끝나지는 않습니다....!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답글은 예전처럼 막 달아드리지는 못할 거 같아요ㅠㅠㅠ 시간 날 때 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방학이라면 모를까...ㅂㄷㅂㄷ...ㅠㅠㅠㅠㅠ 내일 저도 일찍 나가야 돼서...ㅎㅎㅎ.... 그래도 독자님들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왔네요ㅋㅋㅋㅋㅋㅋ
[소원님/ 일공공사님/ 스포시님/ 원우야님/ 날씨좋은날님/ 원인님/ 콜라날다님/ 가위바위보님/ 류아님/ 듀퐁님/ 기네스님/ 밍구님/ 개미와베짱이님/ 최허그님/ 여남님/ 아봉님/ 호시기두마리치킨님/ 쭈꾸미님/ 하마님/ 원우야밥먹자님/ 자몽몽몽몽몽몽몽님/ 또렝님/ 예고생님/ 징징징님/ 으헤헿님/ 너누리님/ 소년민규님/ 꽃소녀님/ 명호엔젤님/ 천상소님/ 연정님/ 팅커벨님/ 몽글몽글님/ 선뉴님/ 천사가정한날님/ 삐뿌삐뿌님/ 2세계획님/ Savag님/럽쎄님]
암호닉 신청하고 싶은데 못하셨던 독자님들!! 또 받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ㅋㅋㅋㅋㅋㅋㅋ 언제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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