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붉은 참혹상
written by: 규피덴셜
state: 공유, 배포 xX
nick:테라규, 감성, 씨규빠, 타라, 베긔, 체리펀치, 소라빵, 코알라, 모닝콜, 찹쌀떡, 뚜러뻥, 마카롱, 융유
붉은 참혹상 -18-
「이성열입니다. 예.」
성열은 본래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두고 안티 벨름인 리베르 부대로부터 받은 휴대폰으로 홍진호와 따로 연락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가만히 숙소에서 머무르며 훈련장에 나가봐야할 것 같아 옷을 다 갈아입고 시간이 남기에 가만히 앉아서 티비를 틀려던 순간 걸려온 전화라 당황해서 티비를 틀어놓고 소리를 최대한 줄인 채로 전화를 리모컨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고쳐잡아 귀에 대었다. 홍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티비를 보자 국민들의 원성이 들려옴을 알고 살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예, 난리네요. 방금 티비 틀었는데 아주…」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티비에는 훤희 백성들의 원성이 잦아짐에 대해서 논하고 있기에 잠시 휴대폰을 내려두고 티비에 집중하였다. 벨름 제국은 군부대 정치가 이루어지는데 그에 필요한 예산이나 돈은 벨름 제국의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곤 했다. 여태껏 백성들은 세금을 내고 군부대를 키워가는 데에 행복함을 느끼며 좋아했던 반면, 현재는 거의 등을 돌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열은 애매모호한 기분에 그저 티비를 멍 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형, 이거 좋은 거 아니에요? 안티 벨름한테는 좋은 소식이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혹여나 누가 들을까봐 약하게 속삭여가며 전화기에 대고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홍진호가 소리를 빽 질러댐에 성열은 깜짝 놀라 전화기를 손에 쥔 채로 움찔 떨었다. 티비를 보자 훈련병들을 뚫고 대령관으로 들어가려는 백성들의 원성을 다 방송으로 보여내고 있었다. 자꾸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고 언급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성열은 답답함에 전화를 입에 대고 있는 채로 한숨을 폭 쉬어대었다. 홍진호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는 뜻에 진호는 헛기침을 큼큼 내뱉었다.
「지금 벨름 제국 진급 공지 떴대. 빨리 가서 봐. 너가 진급이 된 거면 상관이 없지만 이성종이 진급 했으면 더 큰일 나. 알지?」
「아니, 형은 어떻게 나보다 더 잘 알아요. 아, 진짜.」
성열은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가 전화기를 귀와 어깨에 걸쳐놓은 채로 군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훈련장으로 들어오는 대문 옆에 붙어있을 공지 게시판에 사람들이 몰려있음을 확인하면서 전화를 잠시 끊었다. 정말 누구 한 명이라도 진급이 되었으면 어쩌지.
그야말로 허탈스러움의 끝이었다. 성종이 진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진급이 되었는데 아우다시아 함대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시스템이 군부대에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알아내었다. 성종이 진급되었으면 자신이 쫓아가서 얘기하면 그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공지를 보자 그런 마음이 턱 사라짐과 동시에 약간 숨이 막혀오는 듯 싶어서 기침을 토해내듯 한 번 뱉어내었다. 안 그래도 저 앞에 성종이 보이기에 눈으로 살짝 흘기다가 자신을 믿는지 안 믿는지 보려 성종에게 슬금 다가갔다. 몹시 공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공지를 보고 있는데 그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성종이 귀여워서 입술을 같이 삐죽여주었다.
“김성규가… 대령?”
“어이없죠.”
언제 왔냐는 듯이 눈을 마주치면서 괜히 씨익 웃어뵈는 성종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공지를 심하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왜 나같은 애가 또 중령이람? 게다가 새로 생긴 함대의 높은 직책을 맡게 된만큼 더 바빠질 것이 틀림 없었다. 방법이 뭐가 있을까, 뭐가 있을까. 도무지 떠오르는 괜찮은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자신이 함대이고 이성종이 스쿠툼 부대에 진급했다는 점이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힘들 때에면 스쿠툼 부대로 가기에는 나름 이성종을 만날 목적이 생길 듯 싶었다. 게다가 대령이 서인국이라는 점에서 성열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사 귀찮아하고 짜증에 섞여있는 서인국 대신 중령인 내가 스쿠툼 부대와의 회의에 대신 갈 일도 있을 듯 싶었으니까.
“그나저나 진급 축하해요. 함대까지 생긴 마당에 스쿠툼만 더 바빠지겠네요.”
“그럼요. 제가 성열씨한테 도움 받은 만큼 도움 드릴게요.”
“그 말 진짜죠? 믿겠습니다?”
성열은 웃음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뒤돌아 숙소로 들어갔다. 몰래 숨겨둔 휴대폰을 주머니 위로 만지작거리며 얼른 진호와 전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숙소로 들어가면서 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집에 들어와 문을 쾅 닫고 나서야 '여보세요' 긴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열은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할 지 몰라서 우물쭈물대자 진호가 눈치 챈 듯이 허탈하게 웃었다.
「설마 둘 다냐.」
「예.」
갑작스럽게 웃어버리는 진호의 음성 앞에서 성열은 입꼬리에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휴대폰만 귀에 대고 침대에 풀썩 엎드려 누워버렸다. 웃고 있던 홍진호 곁으로 동우가 왔는지 동우도 그 애기를 듣더니 빵 터져서는 둘이 정말 호탕하게 웃어넘기는데 성열은 웃음이 전혀 나질 않았다. 웃음 소리만 들어도 웃기기 십상인데 그것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진지함을 표했다. 웃음을 겨우 삼켜낸 진호는 멀리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들고서는 너무 웃어서 코가 막혔는지 코맹맹이 소리로 훌쩍거리며 말을 건넸다.
「방법이 있을거다. 생각해볼게.」
「근데 제가 새로 생긴 함대의 중령이고 이성종은 스쿠툼 부대의 소령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이성종 만날 기회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열의 말을 듣고서는 긴 한숨 비슷한 신음을 내던 진호는 '응'이라는 한 마디만 남겨두고서는 전화를 당장에 끊었다. 그리고 정말 자신이 웃은 게 웃을 일이 아니었다는 것에 골똘히 생각에 푹 빠졌다. 덩달아 동우도 눈치를 채고 생각을 하려던 찰나 명수가 들어와서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두 남자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심각하네.”
“이성열이랑 이성종 다른 부대에 진급했대. 아, 성열이는 함대래나… 시발. 조또 헷갈리네.”
“함대요?”
“그래, 이 미친놈의 이상민. 이성열이 지금 꼼수 부리는 거 눈치 챘나.”
약간은 불안한 듯이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상민의 행동에 명수는 자신도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말이 이영이지 탈영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상민이 군부대에 관심을 가지고 이상민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좁아질 수록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더 여유롭게 생각하며 얼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경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명수는 그 두 명이 골똘히 생각하는 것에 동참하기로 했다.
명수는 천천히 펜을 돌려가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상황을 우리가 더 빨리 뒤집을 수 있을까. 뭐든 상관이 없으니까 최대한 빠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듯 싶었다. 지금까지 벨름 제국이 뒤집어질 수 있었던 사건이 뭐가 있었을까. 명수는 딱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생각, 생각났다니까요.”
“뭔데.”
“홍단의 왕관을 빼돌립시다.”
“돌았구만.”
*
똑똑똑ㅡ 노크 소리가 들려온 방은 다름아닌 성규의 방이었다. 며칠 전 대령으로 승진하고 후로 대령관에 성규의 스쿠툼 부대 대령의 지위에 걸맞는 방이 따로 생겼기 때문이었다. 퓨르 제국과의 전쟁 후로 방어를 담당하는 스쿠툼 부대가 해야하는 일이 더욱 더 많아져 성규는 골칫머리를 썩여가며 방어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려온 것에 답하는 것조차 까먹고 가만히 있다가 다시 한 번 크게 똑똑똑ㅡ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성규는 헛기침을 큼 해대며 고개를 쳐들어 문을 쳐다보았다.
“들어오세요.”
어릴 적부터 그토록 바라던 대령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그렇다고 막상에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작전 구도를 짜던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려니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이 끼익 하고 열리고 그 틈새로 보이는 얼굴은 다름아닌 윤두준 중령이었다. 꽤 오랜만에 보는 낯이라서 반가워서 그랬을까? 당장에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벌떡 일어나 윤두준 중령에게 악수를 신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흔쾌히 받아두는 두준의 행동에 둘은 서로 웃음을 보였다. 성규의 대령 자리 앞에 있던 쇼파에 자리를 내어주며 자리에 앉았다.
“앉으세요.”
“예.”
“무슨 일로?”
윤두준 중령은 얼굴에 비치던 미소를 사알짝 굳혀내고서는 쇼파에 포옥 기대어 앉았다. 무언가 맘에 안 든다는 눈치. 약간 인상 쓴 표정에 심정이 쫄리고 숨이 멎기는 대령의 위치에 있으나 대령의 위치에 없으나 마찬가지였다. 요 근래에 낙하산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 성규이기에 요새 들어 부쩍이나 소심한 면모를 자신도 모르게 계속 내비치고 있었다. 침이 꼴깍 절로 넘어갔다. 윤두준 중령이 무슨 말을 할 지 대충은 감이 오는 듯 해서 그랬을까?
“이상민 대령님 말입니다.”
“예.”
“너무 믿지 마십시오.”
“왜죠?”
“…….”
“일생을 다 바쳐서라도 닮고 싶던 저의 롤모델이 이상민 대령이고 아직 저는 저에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이상민 대령님을 더 믿을 수밖에 없는데요. 왜 다들 저에게 이상민 대령을 믿지 말라고 하시는건데요? 이유라도 들어봅시다?”
성규의 입에서 제법 당당하면서 까칠한 말투가 나오자 두준도 살짝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큼큼 내뱉으면서 말을 잇지를 못했다. 두준은 성규를 약간은 안쓰럽게 쳐다보면서 자리를 뜨려 일어났다. 계속 어릴 때의 자존심이 살아있는 눈빛은 예전의 순수함은 잃고 지나친 욕망과 욕구를 담고 있는 듯 싶어서 두준은 천천히 성규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어 한 손으로 성규의 한쪽 뺨을 감싸 쥐었다. 뺨이 찼다. 겉이 차면 속이 따뜻한 사람이라던데. 두준은 읊조리다가 천천히 팔을 떼고 뒤를 돌았다.
“나를 너무 믿어서 안 되는 이유는?”
성규가 그만큼 당당하게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음이 분명했는데 왜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자리를 뜨려 뒤를 돈 두준은 가만히 서서 자신을 아니꼽게 쳐다보고 있는 이상민 대령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는 어떻게 할 지 우물쭈물대며 이상민 대령의 눈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분명 김성규와 이상민 둘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두준은 그 질문에 계속 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단순히 이상민 대령의 눈과 김성규 대령의 눈이 비슷해 보여서라고 답한다면 그 둘은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두준은 생각했다. 단순한 모양을 뜻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욕망과 욕구 그 더러움이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두준은 말을 건네려던 것을 거뒀다.
“윤두준 중령은 그러면 안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못 믿을 인물이었구만?”
두준은 순간적으로 이상민 대령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이상민 대령은 자신이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해낸다고 칭찬해주고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며 어느 때는 자신의 선택보다는 나 윤두준의 결정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 배반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일까? 두준은 푹 숙인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로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톡톡 흘려대었다. 어느 누구보다 이상민 대령에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준은 순간적으로 그 자리를 성규로부터 박탈당한 느낌을 받았다. 뒷짐을 진 이상민 대령의 구두굽 소리가 여느 때보다도 크게 들려왔다. 지금 당장에 찔러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이상민 대령이 이 자리에 있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이상민 대령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거든요. 두준 씨가 몰라도 한참 몰랐네.”
이상민 대령의 옆에서 각을 잡고 서 있는 태도로 두준을 대하는 성규의 행동에 두준은 치가 떨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되뇌이고, 머릿 속으로는 그려보았다. 어느 날, 김성규가 이상민 대령에게 제대로 된 배신감을 느끼고 타락해가는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