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ver.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던 달동네를 벗어난 그 날.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날씨가 어떤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눈물 때문에 창밖이 보이지 않아서.
달동네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싫었는데 좋아졌다.
과거의 나에게 달동네는 힘듦, 아픔, 연민 등 부정적이고 힘든 단어가 나열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민윤기. 그 사람 때문에 싫은 향기는 옅어졌고 좋은 향기만이 깊이 파고들었다.
파고든 그 향기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잠재된 향기가 있었다.
가족
그 향기는 나를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익숙한 달동네에서 낯선 동네까지 데려다 주신 운전기사 아저씨는 들어가 보라는 말과 함께 삼륜차 뒤에 놓여 있던 짐 하나하나 내리시기 시작했다.
참. 내가 서 있는 이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은 짐들이 바닥에 하나 둘 놓여졌다.
낯선 공간에 들어섰을 땐 낯익은 두 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OO아.”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셨고, 한 남자는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시더니 약간은 거친 손으로 부드럽게 내 두 뺨을 쓰다듬다 끌어안고는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셨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어렸고, 그렇기에 사랑이 필요했음을.
실로 오랜만에 본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눈 녹듯 사라졌고, 사랑만이 가득했다.
“다 사놨어. 버리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집 앞, 길바닥에 놓인 삼륜차 가득 싣고 온 나의 짐은 모두 필요 없었다. 좋은 가구, 좋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어서.
곧 큰 트럭이 오더니 또다시 나의 짐을 싣고 낯선 곳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그 가구들을 쳐다봤다.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지자 눈물이 났다.
내 추억을 모조리 앗아간 기분이라서.
버리지 않겠다고 말해볼 걸.
추억을 함께할 걸.
밤만 되면 유난히 달동네에서 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것이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상관없이 그 기억은 나를 괴롭게 했다.
지금 나는 그 공간에 있지 않으니까.
훨씬 좋아진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점점 허해지는 게 웃음을 점점 잃어가는 기분이다. 아니. 그냥 이 동네에 왔을 때부터 웃음을 잃었다. 처음 부모님과 만났을 때.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웃음을 잃으면 안 되는데. 새벽이라 그런 거겠지. 그런 거야.
그렇게라도 세뇌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고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고 있는데 또 눈물이 났다. 머릿속 깊이 녹아있는 기억은 쉽게 떠나가지 않았다.
눈물을 참느라 목이 아파왔다.
집 안 가득한 값비싼 물건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항상 꿈꿔온 생활.
그때서야 나를 행복하게 해줄 무언가는 물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추워지는 게, 따뜻하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달동네 사는 음악하는 민윤기 X 달동네 사는 학생 OOO
22
달동네에서의 짧은 봄이 찾아온 것처럼, 그래서 더 짧고 아름다운 것처럼. 시간도 무심하게 흘렀다.
“이제 안 보고 싶어.”
무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뜬금없는 말에 모두 윤기를 쳐다봤을 땐 전보다 많이 순해진 눈빛으로 아이들을 응시했다.
성공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OO이가 떠난 후 윤기의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특히 작업실에서.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순해 보이는 두 눈이 오히려 어색해보였다.
윤기의 뜬금 없는 말에 아이들은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OO이.”
“이제 안 보고 싶다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윤기는 대충 눈치껏 대답을 해주었고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그 모습에 ‘그래서 안 찾아가게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고,
“…”
예전 같았으면 한참 말을 하지 않다가, '성공해서 가야지.'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정적이 길었다. 그리고 한참이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펜을 빙빙 돌렸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남준이는 ‘허ㅡ’하고 웃어보였다. 그 소리에 윤기는 다시 아이들을 향해 눈길을 돌렸고,
“너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
“…”
“약속 하지 말던가. 애한테.”
“너네도 연애할 때 다 그러잖아. 마지막 여자인 거처럼. 평생을 안겨줄 거처럼.”
“…”
“근데,”
“나는 보고 싶지 않다 했지.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말 안 했어.”
오늘도 말장난.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듣는다는.
오늘 너무 짧네요. 진짜 올리기 전에 몇 번이고 고민했어요. 너무 짧아서...
제가 쓰는 글이 거의 다 우울하다보니 저까지 우울증 걸릴 것 같아여 8ㅅ8...
말장난 이해 안 되는 분들 클릭 :-) |
좋은 향기 = 윤기와 함께 지낸 달동네 나쁜 향기 = 윤기를 모르던 시절. 즉 OO이의 과거 잠재된 향기 = 가족
보고 싶지 않다는 말 = 정말 단순히 보고 싶지 않을 뿐,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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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