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모범심즈
모범생 정재현 X 날라리 너심 썰 13 (모범생 정재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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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안나는 까마득한 어렸을 시절부터
나는 누구의 가르침 없이 자연스레 모범생 코스를 밟아왔다.
사이 좋은 부모님 아래서 온 기대를 받으며
나 또한 그 기대에 부흥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 없이 만족스런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고
집안에서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공부하는 것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수식어, 1등을 갖고 있는 상태로
교과서만 보았어요,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모범생 정재현.
그런 모범생인 내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반드시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라는 주변의 권유도 무시한 채
그저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이 학교를 택했다.
수석 입학생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기는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로서는 입학 첫 날부터 재밌는 일을 겪었다.
"니가 맘에 들어서. 번호 알려줘."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당연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반듯한 모범생의 이미지에
이성적으로 쉽게 다가온 여자들이 흔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딱봐도 이 선배의 모습은 거부감을 들게 했다.
어딜가도 눈에 띌 샛노란 머리에
팬더라고 해도 믿을 진한 화장
거기에 금방이라도 보일 것 같은 짧은 치마.
저절로 내 눈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 선배의 모습에
나는 거절하려는 급한 마음이 들자마자 매너를 지킬 새도 없이
평소 내 행동과는 다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어떠한 장애물 없이 다이렉트로 나갔다.
"머리가 노란색이시네요"
"거기다가.."
"화장도 하시구요"
"치마도 짧으시고.."
"전 날라리랑 뭘 해볼생각이 없어서.."
미소 짓는 표정과는 다른 돌직구에 그 선배는 꽤나 당황한 듯
어버버.. 거리며 멍한 표정에 대고 인사를 하며 빠져나왔다.
그 다음 날,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가 말한 것들 모두 반대로 하고 온 그 선배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 온,
말로 표현 못할 묘한 느낌을 함부로 지울 수 없었다.
*
수학 동아리에서 다시 만난 그 선배와 번호를 교환한 후,
자주는 아니었지만 일방적인 그 선배의 연락으로
끊어질 듯 안 끊어질 듯한 대화는 쉴 새 없이 쭉 이어져 갔다.
그 사이에 우린 그래도 꽤 몇 번이나 학교 안에서 마주쳤고
첫 인상과는 확연히 다른 그 선배에 나 또한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아
적대감 대신 사람 좋게 웃어주는 걸로 내 마음을 표했다.
수학 동아리의 수업이 있던 당시,
나는 어떤 2학년 여자 선배랑 짝꿍이 되어서 문제를 함께 풀었다.
수학은 잘 못하지만 잘 하고 싶어서 동아리에 들었다는
짝꿍이 된 그 선배의 말에 꽤 흥미로웠던 나는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평소에도 같은 반의 다른 친구들이 여러 문제를 물어오는 탓에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나는 특별히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그 선배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던 중,
들려오는 동아리 반장 선배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여주야! 답지 보면 안돼! 문제 몰라서 그러는거야?"
누가 봐도 그 선배를 대놓고 망신 주려는 모양인 듯
크게 이름을 불러가며 이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내가 저 상황이 되었어도 많이 당황하고 수치심 느낄만한 충분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당황해하던 그 선배는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선배가 교실을 떠난 그 순간에도
동아리 반장 선배는 여전히 작지 않은 목소리로,
"이래서.. 수학 동아리 들기 전에 시험 한번 봤어야했는데.."
라는 걸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은 순간부터
화장실에서 혼자 삭히고 있을 선배의 모습을 떠올렸다.
동아리가 끝날 때까지 난 자주 고개를 들고 조용한 뒷문을 쳐다보았다.
동아리 반장 선배는 그 선배에 대해 아무런 언급없이 동아리를 끝냈고
난 여전히 집에 가지 못하고 책상에 기대 핸드폰을 들어
모두 떠나가 조용한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선배가 떠나간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져있는 가방을 슬쩍, 쳐다보고
난 뭔가 모를 느낌이 계속해서 드는 걸 굳이 지우려 애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계속 조용할 것 같았던 뒷문을 통해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연 그 선배와 눈이 마주치고
그에 다시 당황한 그 선배가 재빠르게 날 지나쳐
가방이 놓여져 있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내 코를 찌르는 담배향이 멍해 있던 날 깨우게 만들었다.
난 나도 모르게 곧바로 그 선배를 가로막고 내 손을 내밀었다.
"줘요."
".... 뭘?"
"담배요."
이 선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내 손만 바라보길래
나는 얼른요, 하고 손을 다시 흔들며 재촉했다.
사실 이 선배가 담배를 피든 뭘 하든 내 상관은 아니었다.
난 그저 이 학교의 학생으로 내 학교 생활에만 충실하면 됐었지만
입학식 첫 날, 내 한 마디로 인해 자신의 온 모습을 바꾼 그 순간부터
얘기는 달라져있었다.
그 날부터 나에게 숨김 없이 호감을 표현해 온 이 여자가
남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웃음거리가 되는 걸 목격하고 기분이 나빴다면
앞으로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선배에게 제안했다.
수학공부하자고.
그리고 난 그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
*
예상치 못하게 시작한 수학 과외를 하면서 우린 정말 많이 친해져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 계속 예쁨을 받고 싶어하는 평범하지 않은 이 선배는
손에서 아예 놓았던 수학 공부를 하는게 분명 쉽지 않을 것임에도
내가 내준 숙제도 다 풀어오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게 나를 좋아해서 하는 척이든 아니든 그 모습은 충분히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전 날 과외를 하다가 선배에게 문제를 풀어보라고 잠깐 시간을 주고서
나는 확인을 안하고 있던 메시지들을 몰아서 한꺼번에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혼자서 잘 풀고 있는지 무심코 선배를 쳐다보았는데
이 여자가 글쎄 연필을 놓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졸고 있더랜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카메라를 켜고
귀여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바로 찍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노트북을 켜고 핸드폰에 있던 그 선배의 사진을 옮겨
바로 노트북의 바탕화면으로 설정했다.
혼자 실실 웃으며 괜히 커서로 그 선배의 눈이며 코며 장난치고 있었는데,
"김여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정윤오의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노트북 화면을 탁, 하고 재빠르게 닫았다.
이 형이 김여주를 어떻게 알고 있나, 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내 사적인 일 일부도 형에게 보여주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이 상황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나가."
"재현이 니가 김여주를 어떻게 아냐?"
"..."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아무 말 없이 정윤오만 보고 있던 나를
정윤오도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더니
조용히 아, 하고는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걔 스엠 고등학교 다닌다 그랬다 참,
너도 이번에 거기로 입학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정윤오는 가만히 있던 한쪽 입꼬리를 올려
누가 봐도 나를 약오르게 하려는 작정인 듯
손을 들어 자신의 눈썹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걔 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예쁘더라.
나쁘지 않았어, 여러모로."
*
만나는 모든 이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칭찬과 동경을 받아 오는
나에게 숨기고 싶은 오점이 하나 있다면
내 위로 날라리 형이 하나 있다는 것.
뼛속부터 날라리 기질을 갖고 있는 이 형과는
어렸을 때부터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학생은 학생답게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당연히 다른 학생들이 연필을 집을 때
당당히 담배를 집고 있는 형을 달갑게 볼 이유는 없었고
그런 형을 바라볼 때면 곧바로 드는 한심함을
형에게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꾸준히 내비쳤다.
덕분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형도 아무런 깨달음 없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날라리 인생을 지키고 있었다.
전날 정윤오가 선배에 대해 입을 함부로 놀린 탓에
나는 새벽 내내 만족스런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컨디션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으로 꽉찬 출근길의 버스를 타는 건 고역이었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을 들어 선배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선배를 보자마자 들었던 첫 인상과
지금 그 선배,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정말 확연히 달랐다.
정윤오 덕분에 날라리에 대해 박혀 있는 좋지 못한 인식을
이 선배에게 적용시켰다는 걸 괜히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따가 과외할 때 맛있는 음식을 사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양손 가득한 짐으로 힘들게 버스를 타는 어르신을 보자마자
나는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
-재현아, 미안. 내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 과외 못할 것 같아.
대신 내가 예습도 꼭 해갈게.
"과외는 걱정하지 말고 제가 뭐 걱정할 일은 아니죠?"
-응 전혀 아니야, 미안해 재현아.
"뭐가 미안해요, 그럼 내일 봐요."
나는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통화를 먼저 끊지 못하고
애꿎은 핸드폰만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새에 상대쪽에서 미안, 이라는 말과 함께 먼저 통화가 끊겼다.
최근까지 과외하면서의 태도, 숙제해오는 것 등
선배가 보여준 여러가지 모습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뺀질뺀질대며 과외를 빼려는 핑계를 대는 것은
전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누구보다 확신하였다.
해서 먼저 급한 일이라며 과외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선배의 말은
나를 하루종일 걱정시키기에 충분했다.
약속했던 과외가 없어지면서 나는 곧바로 집 근처의 독서실로 향했다.
물론 선배에 대한 걱정과 함께.
하지만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오늘 배운 수업 내용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던 나는
결국 독서실에서 나와 다시 조용한 핸드폰을 들고 말았다.
분명 이쯤되면 선배에게 메시지 하나라도 와야 하는데
정말 심각한 무슨 일이 있는건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다가 통화 목록에 들어가 선배의 번호 옆에 있는
수화기 모양을 망설임 없이 눌렀다.
그렇게 꽤나 오랜 통화 연결음을 들었을까
갑자기 통화연결음이 끊기고 통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통화에 선배, 라고 입을 열자마자
나는 가까이 대고 있었던 핸드폰 스피커를 귀로부터 멀리 떼야만 했다.
스피커를 통해 크게 들려오는 큰 음악 소리는
누가 들어도 거기가 어떤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소리였다.
나는 순식간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머리를 굴러야만 했고
곧 지금까지 선배를 걱정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해야만 했다.
조용히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나는 곧바로 종료버튼을 망설임 없이 눌렀다.
멍하니 그 자리에서 서있다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자리에 앉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연필을 집을 수 없었다.
'내가 걔 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예쁘더라.
나쁘지 않았어, 여러모로.'
계속 귀에서 들려오는 놀리는 듯한 정윤오의 목소리에
나는 손을 들어 지끈해져오는 머리를 천천히 지압했다.
정윤오에게 보란듯이 의문의 1패를 당한 단순한 패배감에서인지
아니면 클럽에서 여러 남자들과 합석을 하고 있는 선배에 대한 질투심인지,
어느 한 쪽이든 일상생활하는데 있어 방해하는 건
나를 달갑지 않게 만들었다.
아까 전 나에게 말한 급한 일이
과연 클럽 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음악에 맞춰 열심히 몸을 흔들어대는 선배의 모습을 끝끝내 떨치지 못해
나는 모두가 조용한 독서실 안에서 헛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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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네요, 정재현 시점.
이번 편을 쓰면서도 재현이는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란 걸 다시 느꼈어요.
이런 어려운 싸람....
댓글을 달아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해요.
+) 암호닉은 매일 받고 있으니 망설임 없이 신청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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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회원분들은 댓글이 다른 분들보다 늦게 확인 되기 때문에
제가 암호닉을 늦게 추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대 빼먹진 않을테니 걱정말고 다음화에서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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