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있었던 일은 별 거 없었다.
박경에게 끌려나가 몇 대 얻어맞고, 분노를 고스란히 듣는 것 뿐.
상황 설명은 지나치리만큼 자세하게 했다.
경도 순간 울컥했지만 유권의 행패를 용서해주지는 않았다.
"나라도 그러고 싶었을 것 같긴 해. 근데 나였으면 안 그랬어. 이 앞뒤없는 자식아."
"아 참, 미안하다니까.. 그래 고맙다.."
"그래도 너가 괜히 그랬을 것 같진 않았어 나도. 그래서 양호실에 그냥 던져 놓고옴."
양호실인것 만으로도 얼마나 호강이야.
유권은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혁이 형한테도 얘기했어. 마음대로 하시라고"
그 모양이 된 애한테 뭘 하겠냐 싶었지만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우지호는, 괜찮대?"
또 다시 끄덕끄덕.
박경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먹으로 유권을 때렸다.
"으이구, 웬수야. 일 좀 벌리지 마. 너가 싼 똥치우는 건 나잖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 유권을 애매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박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미친 놈.
유권은 중얼거리며 교실로 들어가는 경을 따라 들어갔다.
그 순간 소란스럽던 교실이 잠잠해졌다.
경은 분위기를 의식한듯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모두 눈을 피할 뿐이었다.
유권과 경은 서로를 머쓱하게 쳐다보았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유권의 머리채를 잡는 경을 간신히 떼어낸 채 미술실로 향했다.
평소와 다르게 문이 열려 있었다.
또 무슨 일 있는거 아냐?
불안감에 발걸음을 재촉하던 유권의 눈에 의자에 앉아있는 지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멈춰 선 유권과 눈이 마주치자, 지호는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긴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은 유권 혼자였다.
"뭐냐."
"너야말로."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장난스러운 눈빛을 하고 되묻는 우지호였다.
유권은 어깨만 으쓱하고서는 미술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뭐해."
예상치 못한 지호의 질문에 유권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별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하긴 뭘해. 넌 여기서 뭐하냐."
지호는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유권을 재밌다는듯이 바라봤다.
"뭐하긴. 너 기다렸지."
알고 있었구나.
유권은 홀딱 벗겨진 기분이었다.
아, 창피해.
"오늘 엄청 고마웠어. 뭘 어떻게 갚아야 될지도 모르겠네.."
"갚긴 뭘 갚아. 몸은 괜찮냐?"
"괜찮다니까. 누굴 환자로 아나.."
맞잖아. 속으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맨날 얼굴빛은 새하얘가지고.
"믿어줘서 고마워."
갑자기 또 왜 이래 얘가.
유권은 고개를 돌려 지호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오늘 도와준 것도 고마워."
"뭐래.."
픽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데 지호도 고개를 숙여 유권을 계속 쳐다보았다.
"좀 멋있더라?"
유권은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있다가는 흑역사를 하나 더 만들것 같았다.
"어디가아- 같이 가!"
저 자식 진짜..
나 죽이려고 작정했어.
결국 같이 집에 가게 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쫑알쫑알 시덥잖은 얘기를 하는 지호를 유권은 묵묵히 받아주었다.
왜 여자친구가 없냐는 말에는 꺼져로, 원래 그렇게 싸움을 잘하냐는 말에는 신경끄라는 말로.
나름대로 열심히 반응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도중, 지호가 한번 휘청하며 쓰러질 뻔하자 유권은 곧바로 부축하면서도 화를 냈다.
"아, 쫌!"
"아.."
"제대로 못 걷냐?"
"아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렇거든? 뭐뭐"
예전이었으면 벌써 눈가에 물기가 그렁그렁했을 지호가 새침하게 받아치자 유권은 헛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이제 내가 박경보다 우지호랑 친하겠지?
싶은 그런, 유치한 상상 덕분이었다.
"권아."
"어."
"나 떡볶이 사주라."
"존x 뻔뻔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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