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비슷했다.
함께 학교에 오고, 함께 집에 가고.
물론 유권은 지호가 들어간 뒤 10분 정도 시간을 때우고 교실에 들어가곤 했다.
이제 오냐는 박경의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와 앉아 있는 우지호와 눈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야 너넨 맨날 10분 간격으로 오냐. 아주 그냥 시계야 시계~"
자신의 등을 퍽퍽 때리며 신나게 얘기하는 박경의 모습에도 유권은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헐 쟤랑 엮지마.. 기분 나뻐.."
유권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지호는 아무 말도 안한 척 새초롬하게 눈을 내리깔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열 우지호~ 장난도 치고 이제 우리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인거야? 감동이다 증말"
박경은 예상치 못한 지호의 반응에 잠깐 벙쪄있다가 금새 촐싹대며 지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저 자식이 나도 아직 딱 한 번 해 본 걸.
우지호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정색하며 밀어낼 줄 알았는데, 아무 말없이 폭 안겨있는 것이다.
"그으럼. 지낸 시간이 얼만데 당연하지."
유난히 새침하게 말을 내뱉고는 어쩔건데? 라는 표정으로 유권을 바라보는 지호였다.
유권은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해보자 이거지?
"야 박경. 오늘 피씨방 고."
그 순간 지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박경도 마찬가지였다.
"야.. 니들 왜 그래.. 오늘 내 생일이냐?"
환희에 젖어 몸을 흔드는 박경과는 달리, 유권과 지호는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죽일듯이.
잠시 정적이 흐르고 지호가 몸을 빼내며 말했다.
"그래라."
뭐?
유권은 물론 박경까지 벙쪄 지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야 뭐냐? 너네 나 빼고 둘이 약속 있었냐?
뭐냐. 뭔데!!"
괴성을 지르는 박경은 안중에도 없이 둘은 팽팽한 사랑싸움 중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수업 전 쉬는 시간,
유권은 참다 참다 벌떡 일어나 지호의 뒷목을 잡고 무작정 교실을 나왔다.
"뭐, 뭐야!"
"너 뭐하냐?"
별안간 끌려나온 지호는 켁켁 대며 목언저리를 매만지다 억울하다는 듯 유권을 쳐다보았다.
"뭐가?"
"그.. 저 뭐냐.. 박경한테.. 안겨서.. 뭐하냐고!"
유권은 괜히 뒷목을 긁적이며 말하다 되려 신경질을 냈다.
그 순간 지호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확- 눈꼬리가 휘어지며 웃기 시작했다.
"뭐야, 그거 말한 거였어?"
또 다시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유권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이쁠까.
유권은 아무 생각없이 지호의 입을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노려보기 시작했다.
"질투나게 하려고.."
오물오물대며 말을 끝마치고 나서는 또 다시 헤- 웃어버리는 지호였다.
나 참.
이거 진짜 어이없는 소린데.
듣고 나니까 또 사랑스럽기만 하네.
"아아니... 나 좋아한다면서.. 뭐 암것도 없고...
진짜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고...
우리 뭐.. 달라진 것도 없고...
궁금하기도 하고 확인해 보고 싶어서...."
무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권에 기가 죽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지호였다.
그 모습에 유권의 마지막 자제력이 날아가버렸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유권의 입꼬리가 피식-
하며 웃어버리는 걸 보자 열심히 눈치를 살피던 지호도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유권은 금새 정색하고는 지호의 얼굴을 냅다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웃지마. 정들어."
지호의 찡그린 얼굴을 뒤로 하고 먼저 교실로 들어가버리려는데,
갑자기 유권은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억지로 안 그래도 돼.
너 남들이랑 닿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굳이 안 그래도 알게 해줄테니까 앞으로."
유권은 멀뚱히 서 있는 지호를 내버려두고 교실에 휙 들어왔다.
우지호.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너가 원하는 게 적극적인거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그리고, 너만 원하는 것도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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