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늘 그랬다.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한 날이면 몇 시고 상관없이 내 전화기를 울렸지.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잠이 오지 않아 한참동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네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셔버렸다.
"..여보세요?"
"성이름~~~ 어디야~~"
목소리에서부터 벌써 술기운이 확, 풍긴다.
난 눈가를 조금 찌푸렸다.
"지금 몇 신줄 알기나 해? 뭘 어디야."
"으응.. 자고 있었어?"
살짝 화가 났었다고 생각했는데.
금새 풀이 죽어 물어오는 너의 목소리에 웃음이 난다.
"아니."
"그래애~~? 우응.. 그럼 나 여기.. 데리러 와주면 안돼애..?"
또 그 날이다.
넌 또 술에 취해 나를 셔틀 취급하고 있다.
평소엔 술에 손도 안 대는 네가 그러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녀 때문일 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 있어.."
"와주는거지이.. 우응.. 빨리와주라 성이름.. 나 외롭다.."
역시는 역시다.
난 대답도 않고 전화를 끊은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네가 어딘지는 뻔하다.
선택을 하기만 하면 된다.
너에게 갈지. 여기 남을지.
결과는 뻔하지.
난 긴 망설임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차키를 쥐었다.
-
"우지호! 빨리 일어나. 추워 죽겠는데 밖에서 뭐하고 있어."
"어어..? 성이름이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성이름이 나 데리러 왔어요 동네 사람들~~"
"지금 세시야. 깽판 치지 말고 빨리 일어나."
툴툴대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나 싶었는데 역시 가누질 못한다.
난 익숙하게 어깨를 잡아 내게 기대며 일어나게 했고 너는 순순히 따랐다.
"또 얼마나 마신거야 이 민폐야."
"쪼오금 했지.. 오늘 너어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헤헤"
술냄새가 확 난다.
얼굴이 찌푸려질 법도 한데 술기운에 벌겋게 뜬 네 얼굴을 보니 화도 나지 않는다.
가로등이 켜진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비틀비틀 내게 기대어 걷던 너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성이름.. 너 같은 여자 어디 또 없냐.. 있으면 나 좀 소개 시켜주라.."
"..또 뭔 소리야.. 술 냄새나니까 조용히 걸어."
차에 도착한 게 기적일 정도였다.
난 갖은 애를 써서 너를 조수석에 던져 넣고 기진맥진해져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키를 꽂아 넣으려는데,
"성이름..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자.. 너무 어지럽다.."
어깨에 와닿는 너의 머리카락의 감촉.
술냄새와 섞인 시원한 샴푸향이 코를 간질였다.
잠시 경직된 상태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왼손을 올려 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오늘도 너의 마음은 찢겨졌겠지.
다 조각이 되어서, 선물되지도 못하고 바닥에 내팽개쳐졌겠지.
너의 입으로 전해 듣는 그녀는 너무나도 완벽한 여신님이지만, 난 그녀가 하나도 예쁘지 않아.
매일같이 너란 사람을 갈갈이 찢어놓는 여자니까.
난 그녀가 하나도 예쁘지 않아.
한참동안 네 머리카락을 헝클이다가, 문득 느껴지는 숨소리에 내려다보니 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도 아이 같은데.
누군가는 너를 사랑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네 오똑한 콧날을 쓸어도 보고,
날카로운 눈매를 그려도 보고,
두툼한 입술을 만져도 보다가 나직히 속삭였다.
"사랑해. 우지호."
내일도 넌 나를 부르겠지.
모레도, 그 다음날도.
아니 어쩌면 이번 달 내내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아.
이렇게 잠든 너의 모습을 내 눈에 담아둘 수만 있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에게,
너는 듣지 못할 고백을 매일 하는 나.
오늘도 내 심장이 조각난다.
Heart is hurt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