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간 우지호 때문에 골을 썩였던 탓인지,
그 날 밤 유권은 유난히도 잘 잤다.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마음만은 훨씬 편했다.
결국 우지호에게 말했다는 것.
그리고 우지호의 마음도 같았다는 것.
두 가지 사실만으로 유권의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 지호도, 유권도,
앞으로 무엇이 달라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둘은 완전히 사귀는 사이라고 볼 수도 없었고
혹시 그렇대도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랐으니까.
다만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알고 있었을 뿐.
둘의 애매한 관계는 둘도 알고 있는 바였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더욱 어색할 수 밖에.
"야 김유권. 오늘은 피씨방 갈거지?
너 오늘도 빼면 진짜 죽일거야."
박경의 협박 섞인 애원을 들으면서도 유권은 옆자리의 지호 표정만 살피느라 바빴다.
"아 대답 좀 하라고오오!"
"어? 어. 야. 나 오늘 진짜 안돼.
나 오늘 바쁨. 미안."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입을 쩍 벌린 박경이었다.
그러나 유권의 눈은 오직 창 옆 지호의 얼굴만 쫓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뭔갈 바쁘게 하고 있었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꼬리가 살짝 웃고 있는 듯했다.
우지호. 나 잘했지?
다른 애랑 놀지도 않잖아.
그리고 하교시간.
지호와 유권은 일부로 미적대며 짐을 챙기다 교실에 둘만 남자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뭘 하느라 그렇게 짐을 오래 싸냐."
"기다려줘도 모르네. 하여튼 둔해."
알면서도 괜히 묻는 우지호가 귀엽기도 하고,
어제 했던 알고 있었다는 말이 생각나 밉기도 했다.
"가자. 우지호. 데려다 줄게."
가장 크게 달라진 거라면 역시, 함께하는 하교길이다.
이제는 우지호가 학교에서 쓰러지지 않아도 된다.
유권은 보폭을 지호에게 맞추며 걸었다.
"야, 좀 힘 있게 팍팍 좀 걸어. 사내놈이 기운도 없냐?"
"걷고 있거든? 남이사 어떻게 걷든."
메롱- 혓바닥을 내보인 후 앞으로 척척 걸어가버리는 지호였다.
저 까칠쟁이를 어떻게 길들여?
유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걷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지호 앞으로 달려갔다.
"야, 생각해보니까 너 맨 처음에 나한테 왜 그렇게 까칠했냐?"
"뭐가?"
"와- 모르는 척 하는거 봐. 너 내가 말 걸어도 무시하고 욕하고. 어? 그랬어 안 그랬어."
순간 지호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두 차례 고개를 흔들고 그만.
"뭘 고개를 흔들어. 그랬어 안 그랬-"
"안 그랬어!"
그리고 나서는 또 저만치 뛰어가버리는 우지호였다.
저 변덕쟁이에 까칠쟁이 새침쟁이 아가를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유권은 한숨을 푹 쉬며 앞으로의 일상을 걱정하다 곧 그를 따라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서 걸었다.
버스 정류장은 지나친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