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씩 서로의 집을 들락날락하고,
우연한 기회로 서로의 어머니를 마주치기도 하고,
지호와 유권은 여느 평범한 연인과 다를 것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진전은 있었냐고?
노코멘트.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낼만큼 짧지 않기에 나중을 기약하기로 한다.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생겼다면,
주위에서 둘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것.
필두는 박경이었다.
"야, 너네 요즘 둘이서만 붙어다니고..
대놓고 나 왕따시키냐?"
소외되는 기분이라며 찡찡거리는 박경을
유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우지호. 오늘 뭐 먹을까."
"음- 아무거나"
"맨날 아무거나래.. 그래놓고 뭐 먹자하면 싫다지."
"야!! 너네 사귀냐 진짜??"
박경이 발끈하자 왠지 모르게 찔리는 둘이었다.
-
"나 미술실 가."
"같이 가."
수업이 끝난 후 지호가 일어나며 말하자 유권이 급하게 따라나섰다.
"넌 그림 그리는 게 그렇게 좋냐?"
"넌 음악이 그렇게 좋냐?"
"..."
바람이 기분좋게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유권은 지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불편해. 치워."
"아이 사모님. 또 까칠하게 왜이러실까-"
하얀 벽에 그늘진 하나의 그림자,
그 너머로 노을빛이 비쳤다.
이대로 영원했으면-
"김유권. 밖에 누구 있어."
"어?"
지호가 정색하며 유권의 머리를 밀어내자 유권은 벌떡 일어나 문 밖을 살폈다.
"뭐하냐?"
"어..."
"경아!"
문 밖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박경이 머쓱하게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너네가 수업 끝나자마자 나 버리고 뛰어가니까.."
끼고 싶어서- 라는 얘기였다.
박경, 이 오이 자식.
괘씸하긴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둘 다 자기와 더 친했었는데 이제는 자기를 쏙 빼고 노니 서운할 수 밖에.
"너네 진짜 사귀냐?"
".."
"아 나 장난 하는 거 아니고, 진짜 뭔데 너네."
"..티났냐?"
안절부절 못하는 지호를 대신해 유권이 대답했다.
씨익 웃는 유권을 보며 박경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쏟아냈다.
"어 새x야! 존x 티나! 나한테 말도 안하고!
너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랑 제일 친한 놈들이!"
"미안해 경아.. "
오랜만에 보는 풀죽은 강아지.
유권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지호를 토닥이다가 박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 솔직히 타이밍 없었던 거 알잖아."
"그건 너네가 맨날 나 버리고 도망가니까 그런거고!
나 맨날 혼자 피씨방 갔어 알아?"
또 다시 숙연.
박경은 씩씩거리기까지 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아 미안해. 치킨 먹을래 오늘?"
"됐어! 그 까짓 치킨으로.."
"두 마리?"
"..오늘 언제?"
단순하긴.
그래서 내가 너랑 친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호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오늘 데이트는 물 건너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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