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마흔살 아저씨 짝사랑하기
w.1억
계속해서 준혁 삼촌 카페에서 일하면서 일 자리를 구하고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던 나는 결국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고, 면접 준비를 하고있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라는 버릇도 고쳐야되는데. 괜히 우울해졌다. 면접 보기 전에 편의점에서 체한 것 같아 소화제 하나 사먹고선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면접 날에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너무 한심해서."
-…….
"되게 이상해요. 내가 아직 애같고.. 근데 남들은 다 어른처럼 혼자서 다 하는데. 난 왜 이러지."
-…….
"면접도 엄청 떨려요. 떨려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나 운전면허 필기 볼 때도 심장 엄청 터질 뻔했고, 떨어질 것 같아서 땀도 나고.. 너무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럴 수 있지.
"……."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면 주변 사람한테 알려달라고하면 그만이잖아. 왜 자책해.
"…주변 사람이 귀찮잖아요. 나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다들 그렇게 하면서 배우는 거지.
"아저씨는 그런 사람 보면.. 나 보면 어떤 생각 들었어요?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냥.
"……."
-집에서 귀하게 컸나. 사랑 엄청 받으면서 컸나보다. 아무것도 못하게 했나.
"……."
- 어디야.
"회사 앞 편의점이요."
- 응. 거기 있어봐.
"…에?"
- 줄 거 있다.
아저씨 말에 나는 괜히 뻘쭘해서 가만히 서있다가도 사장님 눈치가 보여서 시원한 음료수를 챙겨 밖에 나와 의자에 앉아있다.
그럼 얼마 안 있다가 아저씨 차가 내 앞에 섰다. 차에서 아저씨가 내리는데 괜히 긴장이 풀리기도 했다.
아저씨가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불렀다.
"야."
"엇.."
"온실 속 화초같아."
"……."
"너 말이야. 아주 귀해서 물도 조심 조심 주는 그런 화초."
"……."
"그래서 하나둘씩 알려주는 재미도 있어."
"……."
"하나도 안 한심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글러먹은 사람들인 거야."
"……."
"사회생활 하다가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그냥 병신들이구나..하고 무시하거나 나한테 푸념하면 그만이고. 친구가 한심하다고 하면 그냥 연 끊어."
"그래도 연을 어떻게 끊어요.."
"그런 애들은 온실 속 화초에다가 똥물 뿌리는 것밖에 더 되냐."
"…똥물 ㅋㅋㅋ."
아저씨는 정말 내게 누군가 내려준 선물일까. 나 혼자 망상에 젖어서 괴로워하는 걸 다 깨주는 아저씨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 말 해주려고 보러 온 거야?
"일은 어쩌구요.."
"바로 가봐야돼. 현철이 새끼 맨날 태워먹어서 못 믿어."
"…가요! 얼른."
"응."
"…가라니까요..?"
"화이팅."
"……."
"오늘 너 겁나 예쁘다."
"…치 얼만큼?"
"김태희 육촌 정도."
"씨."
"간다."
"가요!.."
"응."
손을 대충 흔들고 가는 아저씨에 웃음이 나왔다. 끝까지 저렇게 장난이지.
면접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여전히 나는 아저씨가 준 명품 가방을 들고, 잘 보이려고 몇시간 동안 준비를 한 뒤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 서림아~~ 너 살 빠졌냐? 한달 전이랑 좀 다른데?예뻐졌다!"
"고마워 ㅎㅎ."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하도 아저씨가 예쁘다 예쁘다 해줘서 그런가 요즘 내 스스로가 예뻐 보이기도 하고.
"인스타 보니까 너 남자친구랑 엄청 꽁냥 거리더라~~"
"많이 좋아해줘."
"……."
"그래서 고마워."
"그래보여. 부럽더라.. 나도 연상 만나고싶어. 연하 만나니까 너무 찡찡거리고.."
"ㅎㅎ."
"나도 소개 좀 시켜줘~ 남자친구분한테 부탁 좀 해주면 안 될까?"
"어?"
"나이 상관없어!!! 너 연애하는 거 게시물 보니까 너무 부러워서 그래!"
"한 번 물어볼게..ㅎㅎ.. 근데 대부분 다들 결혼도 하시고.. 그래서.."
"힝.."
"ㅎㅎㅎ.."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여태 애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는데.
"서림아 너 옷 그거 예쁘다."
"서림이 엄청 예뻐지지않았냐? 원래 예뻤는데 더 예뻐졌어."
애들이 나를 보고 부러워해준다. 근데 기분이 이상했다.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나만 바라보는데. 왜 그게 불편할까.
내가 바라던 게 이거였잖아. 근데 왜 나는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렇게라도 만족시키려고 했던 것.. 뿐이었을까.
"서림아 나 만원 좀 빌려줘봐."
중학생 떄부터 친했었던 친구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애매한 친구.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게 왜 이렇게 빌리 돈을 받아가는 느낌이지. 기분이 나빴지만 일단 급해보이니까 돈을 빌려줬다.
"고마워~~ 야 나 급한 일 생겨서 먼저 가볼게."
친구가 가고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다시금 우리는 연애 얘기를 시작했다.
한 일주일 지났나.
"그럼 토요일 저녁에 남자친구랑 같이 밥 먹자."
- 응. 알겠어.
수영이가 먼저 아저씨를 보고싶다고했다. 원래는 피했을 내가 바로 알겠다고 대답을 한 게 신기했다.
나도 달라지고 있는 건가. 혼자 화장대 앞에 앉아서 고민을 하고있는데...
[서림아~ 혹시 예전에 우리 같이 게임했던 게임 아이디 한 번만 빌려줄 수 있어?]
- 아니 없어~~ ㅜ
내게 만원을 빌려갔던 친구에게 일주일만에 연락이 왔다.
근데 돈을 준다는 말도 없이 다른 걸 빌려달라고하는 친구가 이해가 안 갔다.
[왜 없어!!!]
- 기억도 안 나. 근데 소리야 저번주에 빌려간 돈은 언제 줄 거야?
[아 맞다 까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일 보내줄겡]
- 까먹었어? ㅋㅋㅋ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까먹는다 ㅋㅋㅋ]
그래 그럴 수 있지 대충 미리보기로 읽고선 다음 날 생각난김에 이모티콘만 보냈다. 씹는 건 좀 그러니까.
근데 또 이틀이 지났을까. 아무런 소식도 없길래 나답지않게 연락을 보냈다.
- 언제 보내?
[계속 까먹는ㄷ라]
- 보내줘.
[알겠옹]
기분이 나빴다. 이해가 안 갔다. 또 하루가 지났다.
- 야 ㅡㅡ
[ㅋㅋㅋ아닠ㅋㅋ 현금으로 받으러 왕]
- 현금 안 써 그냥 보내줘ㅋㅋㅋ
[아닠ㅋㅋ 지금 보낼 수 없는 상황임얄...이체 못해ㅠ]
- 그럼 그렇게 얘기를 해줘야지. 빌려준 사람이 계속 달라고 말해야 돼?
처음이었다. 항상 바보처럼 알겠다고 하고선 현금으로 받으러 갔을 내가. 솔직하게 말을 해버렸다. 근데 하나도 안 미안했다.
[미안 돈 이체 받아서 보내줄겡(이모티콘)]
- 예전에 옷 빌려간 것도 먼저 줄 생각도 안 하고, 내가 달라고할 때까지 생각도 안 해. 돈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빌려달라고할 때 받아가는 것처럼 빌려달라고 해서 기분도 나빴어.
친구니까 믿고 빌려줬는데 까먹었는지 모르지만 줄 생각도 안 하더라. 언제 줄 건지 말은 해줘야되는 거 아니야?
고작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네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내 입장에선 너무 신뢰가 꺠지는 행동이라 생각해.
[오늘 줄게.]
[나도 보내려고했는데 일하느라 까먹었어. 내가 말이라도 해주면 됐던 거였는데 너무 내생각만하ㅐㅎㅆ나봐]
[현금밖에없고 카드도 잃어버려서.. 일단 보내줄게 서림아]
기분이 나빴다.
이해도 하기 싫었다. 이런 진지한 대화 속에서 또 오타나 내고 진지하지 않은 친구가 싫었고, 상종도 하기 싫었다.
괜히 이런 사람 옆에 둬서 스트레스 받기도 싫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 안에 준다는 친구를 기다렸지만 친구는 연락이 없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돈을 보내줬다. 난 그럼 그 돈을 받고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화내고 친구와 연을 끊었다.
아저씨와 같이 고깃집에 도착해서 먼저 고기를 구우며 수영이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갑작스레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넸다.
"화는 안 나냐."
"에?"
"만원."
"아... 화는 안 나요. 그냥 내게 있어서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거르고말지 뭐 퉤- 이런 느낌."
"많이 성장했네."
"……."
"개쎄. 레벨 100쯤 됐나."
"200?"
"형이네. 쩔 좀 해줘봐."
"ㅋㅋㅋㅋ으유 증말!!"
아저씨는 긴장도 안 되나..수영이 만나는데.
"안녕하세요."
수영이가 인사를 했고, 아저씨는 대충 고갤 움직이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참 아저씨 답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급하게 일어나서 인사하기 바빴을 텐데. 아주 여유로워. 원래 같으면 왜 그러냐고 혼내야되는데 그러고싶었을 텐데.
왜 나는 웃음부터 나왔을까. 수영이도 당황해서는 나를 바라보길래 조용히 입모양으로 '원래 그래'하며 웃어보였다.
"고마워욥.."
내 밥 위에 고기를 마구 올려놓는 아저씨에 또 웃음이 나왔다. 본인은 안 먹나. 왜 자꾸 나한테만 줘.
"근데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불편한 건 없어요?"
"딱히."
"……."
수영이도 나름 고민 엄청 하다가 물어본 것 같은데. 아저씨는 대충 대답하고선 내가 사이다를 다 마신 걸 보자마자 사이다를 챙겨와 내게 갖고온다.
아저씨랑 수영이랑 얘기를 할 일은 그 이후에 없었다. 아저씨는 조용히 밥을 먹고, 나는 수영이랑 대화를 한다.
"아저씨도 그렇지않아요? 시험보는 날에는 긴장 되고 막."
"네가 그렇다면 나도 그렇겠지."
"…뭐야 진짜 ㅋㅋㅋㅋ."
"……."
아저씨는 아마도 수영이한테 안 좋게 찍혔을 거다. 근데 별 상관 없었다. 내가 좋다는데 어쩔 거야.
오히려 내 앞에서 아저씨 욕을 한다면 너무 싫고, 화날 것 같은데.
수영이가 잠깐 통화 좀 하고 온다더니 내게 카톡으로 나오라고 했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선 잠시 나왔다.
수영이가 기분이 안 좋았나. 나에게 기분 나쁘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야 김서림."
"응."
"으휴.."
"왜. 아저씨 별로야?"
"……."
"네가 별로라고 해도 상관없어. 난 내가 좋아하면 됐다고 생각해."
"뭐래."
"……?"
"둘이서 먹어. 내가 빠질게. 둘이 꽁냥 거릴 거면 내가 있을 필요가 없잖아."
"……."
"아주 대놓고 너만 좋다고 티내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기 여친 친군데?"
"……."
"너 좋아해주는 사람 만나서 많은 추억 쌓아라. 으휴."
"…그래."
원래 나였다면.
"좋~은 추억 쌓아야지~~"
고맙다고 눈물부터 쏟았을 텐데. 왜 하나도 슬프지가 않고.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기쁠까.
"야 네 남친 개무서워."
"생긴 것만 그래."
"아주 너도~.. 간다! 카톡해."
"데려다줄게. 택시탈 거 아니야?"
"됐어. 안에 남자친구 기다리잖아. 뭘 데려다줘? 혼자 갈게! 내일 저녁에 밥이나 먹자. 나 월남쌈 먹고싶어."
"…알겠어! 조심히 가!"
"고마워. 김서림."
"응?"
"나 믿고 남자친구 소개시켜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다.
저 말을 항상 달고만 살았던 내가 이제 들을 줄도 안다. 신기했다.
"뭐냐 이 돈은?"
"받아요."
"네가 뭔 돈이 있어서."
"잘 썼어요."
"뭐?"
아저씨에게 건넨 돈은 20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예고도 없이 줘서 놀랐나 많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이런 표정은 또 처음봐서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꾹 참았다.
"가방이요."
"……."
"명품백."
"……."
"나 이제 그거 필요 없어요."
"……."
"나 그거 들고 가는데 오히려 창피했어요. 나 여태동안 내 스스로를 싫어해서 돈으로라도 자랑하고 싶었나봐요. 근데 이젠 아니에요. 남들이 나한테 신경 안 써줘도 행복해요. 신경써주니까 더 짜증나더라."
"……."
"아저씨 덕분이에요. 내가 이렇게 달라진 거. 앞으로 계속 잘 부탁드려요. 어르신."
"……."
"왜 표정이 그래요? 안 기뻐요? 아니면... 내가 진짜 가방 팔아서.....기분 좀.. 그랬어요...?"
"그 돈 다시 가져가고."
"…에?"
"이젠 네가 나 좀 가르쳐줘라."
"……."
"어떻게해야 세상 사람들한테 정 주면서 살아가는지."
"……."
"이때까지 기다렸어. 정에 약하고 착해 빠진 네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때까지."
"왜요..?"
"나까지 너처럼 사람들한테 쩔쩔 맬 수는 없잖아. 나처럼 싸가지 없는 인간도 있어야지 네가 변하지."
"……."
"이제 너도 선생님처럼 당당하게 뻔뻔하게 나 좀 알려줘봐."
"……."
"나도 길 지나다니는 사람들 보고 좀 웃어보자."
"왜요? 그냥 지금처럼 싸가지 없으면 안 돼요?"
"왜."
"난 나한테만 계속 착했으면 좋겠는데."
"……."
"내가 사람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아저씨도 계속 나한테만 쩔쩔 매요."
"……."
"길 지나가는 사람보고 웃지 마요. 사람들한테 정도 주지 마. 나한테만 웃고, 나한테만 정 줘요. 내가 제일 예쁘고 착한테 다른 사람한테 잘해봤자 뭐해."
"……."
나는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로 인해서 변했다.
정작 아저씨는 날 변하게 만드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내가 변해버렸다.
남 눈치 보면서 늘 위태했던 나는 아직까지도 불안정하지만, 아저씨와 같이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잊었다.
아저씨도 그렇다고 했다. 사람이 싫고, 한대 쥐어박고싶고 이해가 안 가는 순간이 있을 때 나랑 있으면 안정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에 의해 변했고,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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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룡...
손서꾸 아더띠 글 끝내버리긔!!!!!!!!!!!!여태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짜나 ㅠ_ㅠ 석구 아더띠 안뇽..
우리 담 글에서 보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