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너, 나. 우리
06
05 화
Final Sentence
"나 마지막으로 기회주는 건데."
"필요없거든요 -"
완연히 오른 취기에 테이블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말해봐아
"거기서"
"응 -"
"죽었어요."
"..."
"아빠가"
감기 기운처럼 몸을 감싸오던 취기가 순식간에 달아났다. 나는 테이블에 기울어진 몸을 일으켜
남자의 덤덤한 시선을 마주했다.
정국이의 말에 함부로 대답 할 수도, 섯부른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
나는 정국이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었다.
처음으로 자세히 보는 정국이의 눈이었다. 처음 보는 그의 눈빛은
슬펐다.
정국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말했다. 벌써부터 그런 표정이면 안되는데.
나는 하마터면 내 손을 뻗어 그의 눈을 가릴 뻔 했다. 맥주가 한 모금이라도 더 들어갔다면, 술핑계를 대서라도.
그의 슬픈 눈을 가려주었을 것이다.
나는 애써 테이블 아래로 두 손을 내려, 엄지 손가락의 여린 살을 뜯어냈다.
"소방관이었어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제 이야기를 이어가는 정국이었다.
저는 세상 직업 중에 소방관이 최고인 줄 알았어요. 어릴 적 봐온 아빠는 아이언맨 같은 영웅 슈트를 입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구했거든요. 불 안이든, 물 속이든. 장소는 상관없었고. 게다가 다른 친구 아빠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차를 타고 다녔어요. 어린 내 눈에는 그게 최고였던 거죠. 근데 크면 클 수록, 아빠가 입은 그 영웅 슈트가 점점 헤지는 게 보이고, 온갖 기름때가 껴서 이미 물들어버린 - 전부 반토막 난 손톱, 발톱이 보이더라고요. 아. 절뚝거리는 왼 다리도.
짜증이 났어요.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사실은 약해진 아빠가 안쓰러웠던 건데. 그때는 몰랐죠. 그게 흔히들 말하는 속상함, 미안함. 뭐 그런 감정이었다는 걸. 남자들끼리는 고맙다. 미안하다. 뭐 그런 말 잘 안해요. 더욱이나 아빠와 아들은. 간지럽잖아요.
그렇게 철 없이 아빠한테 한창 틱틱거릴 때, 그 현장에 아빠가 나갔어요. 원래는 그 날 내 공연에 오기로 했는데. 뭐. 그것도 제가 오라고 한 건 아니였어요. 아빠 생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아빠가 생일 선물로 내가 춤 추는 거 보여 달라고 - 저번에 봤잖아요. 나 거기서 춤추는 거. 못 추는 건 아닌데, 아빠 앞에서 추기는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여태 못오게 했었는데, 그날은 아빠 생일이니까.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내심 기대했죠. 나도 공연 끝나면 여자애들이나 팀원들이 주는 꽃다발 말고... 가족이 주는 꽃 받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다른 친구 독무파트도 매점 쏘기로 하고 받아왔는데.
"손 잡아도 돼?"
정국이의 이야기를 끊은 건, 나였다.
사실 정국이가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하려다 - 어느새 붉어진 그의 귀끝을 보고 내 말은 속으로 삼켜냈다.
아, 정국이가 떨고 있구나. 이 아이가 많이 무서워하고 있구나. 나한테 말도 안되는 용기를 낸 거구나 - 싶어서.
자신의 아버지가 건재했던 시절을 이야기 할 때의 정국이의 목소리에는 아주 옅었지만, 생기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의 목소리는 다시금 이 밤 중의 어둠에 녹아들었다.
꾸역꾸역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아이가 위태로웠다. 그만해도 되는데,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행여나 나의 목소리가 그의 용기를 한순간에 무너트리지 않을까 싶어.
"..."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국이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아이 같지 않았다. 내 사건만 해도 침착한 그의 대응이 돋보였고, 장난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 속에서도 아이들 특유의 '지나침'이 없었다. 능글 맞은 행동 속에서도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폈고, 금방이라도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을 지녔던 것 같다. 나는 왜 처음부터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름 글을 쓴다며 온갖 심리학책이고, 인물 분석을 그렇게 해댔는데. 왜 정작.
필요한 아이에게 나눠주지 못했을까. 나를.
스스로 죄책감에 뒤덮여 그의 눈을 마주보지 못했다. 그러자 정국이는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춰와 물었다. '저번에 봤잖아요 - 나 거기서 춤추는 거.' 하고. 제 나름 가라앉은 이 분위기를 전환하려 장난스레 웃어보였다. 나는 그런 정국이의 노력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작은 목소리로 봤지. 하고 답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참 솔직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것도 술에 취해 제 이야기를 멋대로 해석해버릴 지도 모르는 여자한테, 아이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다가도, 정국이가 지금껏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제 아버지의 생일 이야기를 하며, 정국이는 목이 막혀 왔는지 내 맥주로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이미 내가 다 마셔버린 빈 캔이었다. 나는 빈 캔을 잡은 그의 손을 바라봤다. 캔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정국이의 손이 파리하게 떨려왔다. 아이는 그런 제 손을 성급히 다시 내리려했다.
그 손을 잡아 챈 건 나였고.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많았다. '괜찮다.' 부터 시작해서 '힘내' 까지.
하지만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아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은.
손 잡아도 돼?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정국이는 그런 나를 향해
응. 그래도 돼. 완전
"내가 누나 편의점 따라가서 음료수 얻어 먹고 싶은데."
남자가 내게로 걸어온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금새, 내 앞에 닿은 남자는 내게 시선을 맞추고 물었다.
그래도 돼요?
나는 그런 남자의 눈을 맞추고, 마음 속으로 할 말인 '완전 그래도 돼'를 누구보다 씩씩하게.
"응! 완전 그래도 돼!"
하고 외쳤버렸다.
과거 내가 정국이에게 했던 말과 너무나도 닮은 말에 살풋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 분위기를 더 이상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아, 애써 장난을 걸어오는 정국이를
정국이의 속 보이는 그런 장난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뭐야아. 누가 따라하래!"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그에게 누가 따라하래! 하고 외치니, 그는 제 큰 두 손을 내 양 볼에 가져댔다.
그래도 제 이야기의 일부를 나누고 나니, 마음의 짐이 덜어진 모양이었다. 정국이의 표정선이 한층 유해졌다. 다행이다. 정말로. 나는 정국이에게 잡혀버린 얼굴을 빼내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자 정국이는 나를 따라 고개를 저으며, 뭐야. 도리도리 하는 거야? 하고 물었다. 아니! 무슨 도리도리를 해! 그것도 스물셋이, 열아홉 앞에서! 정국은 어이가 없다는 듯, 저를 쳐다보는 나에 크크크. 웃으며 제 손을 내렸다.
"야! 너 누가, 누나 얼굴을 이렇게 막 잡ㅇ"
나와 마주보고 있던 정국은 제 의자를 끌고 와, 바로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제 두 손을 내 의자의 팔걸이에 하나씩 올려 두었다. 졸지에 얼굴을 시작으로 온 몸을 포박 당해 버린 상황이었다. 덕분에 제법 누나답게 내뱉었던 말은 완전하게,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정국이는 목각처럼 굳어버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그와 눈을 맞추다,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시선을 돌릴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제 의자에서 일어나, 그대로 내 코 앞까지 다가왔다. 내 의자에 제 두 팔은 여전히 고정시킨 채로.
더 이상 가까워 질 때가 없을 때까지, 가까워진 상황이었다. 좀 전까지 자연스럽게 내쉬었던 숨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들이 마시기, 내뱉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 정국이 때문에 턱 막혀왔다.
"나한테 왜 따라하냐고 했죠."
"...응"
"나 사실 누구 따라하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
뜬금없이 좀 전의 상황을 다시 이야기 하는 정국에 의아했지만, 당장 코 앞에 있는 정국보다 내 호흡이 더 중요했다. 정말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숨을 한 번 내뱉는 것도. 다시 들이쉬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이대로 숨쉬다가는 호흡부족으로 죽겠구나 싶어, 두 손을 조심스레 들어 그의 가슴팍을 살짝 밀쳤다. 그리고는 조금만 떨어져 달라고 말하려,
"정국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정국이의 입술이 내게 닿았다.
여리게 남아있는 우유향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짧게 닿았다 멀어진 정국이가
당황함에 어버버거리는 내 코 끝에 제 코 끝을 닿게 만들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입술이 닿을 게, 분명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라며, 미친듯이 뛰어오는 심장을 진정시키는데.
심장이 진정되기도 전에,
정국이가 말을 꺼냈다.
남 따라하는 데는 취미가 없어서.
정국이 말을 이어갈 때마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스쳤다.
글자를 뱉을 때마다, 간질간질하게.
이번에는 내 방식대로 귀여운짓 좀 해봤어요.
나는 말 보다는
행동이라.
제 말을 끝으로 다시 가까워지는 정국이었다.
현재 06.
신입생 환영회 장소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끝으로 연락이 없는 정국이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무려 여덟 시간 째.
여섯 시부터 제 모습을 감추신 남자친구는 두 시가 지나서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주 그냥 연락만 해봐.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시계의 시간은 세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정국이 걱정에 잠을 설친 탓에, 얼마 자지도 못하고 눈을 떴는데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더 자. 탄소야. 더 푹 자요."
"...너 뭐야."
"나 손 한 다섯 시간? 아니 열 시간만 더 들고 있을게."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손을 제 머리 위로 들어올린 정국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다고 부둥부둥하며 웃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제 모습을 보고도 별 다른 반응이 없는 나에 당황한 정국이는 두 손을 바싹 귀에 붙였다.
"귀에 딱 붙일게."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건데."
"너는 아 - 무것도 안해도 돼! 그냥 나 여기 이렇게 벌 서고 있는 거, 까먹어도 괜찮아."
"그게 말이 되냐!"
"그냥 너 할 일 해! 나 여기 이렇게 가만히 손 들고 탄소 생각하고 있을게."
제 말을 끝으로 고개를 푹 숙인 정국이었다. 그리고 벌을 서고 있는 정국의 옆에는,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한
엉뚱하게 두 손을 함께 들고 있는
곰곰이가 보였다.
.
정국이의 말에 의하면, 작은 소동에 휘말렸다고 한다. 정국이가 1학년이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학년이 된 정국이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본 후배가 옆 테이블 손님이 두고 간 지갑을 훔쳐, 제 주머니에 넣었다고 했다. 후배는 그 지갑에서 빼간 카드로 자신들의 테이블을 계산버렸고, 지갑의 주인은 사용내역 문자를 받자마자, 술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고 있던 지갑의 존재를 함께 온 경찰에게 듣게 된 정국이는...
어쩔 수 없이, 카드를 긁은 후배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진술을 할 때까지 함께 경찰서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씨씨티비도 없었고, 다들 거하게 취한 탓에 누구도 목격한 이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 아. 그리고 핸들폰은, 거짓말 같게도 경찰차에 떨어트렸는데 - 순찰을 계속해서 돈 탓에 전화를 찾을 수 없었다고. 그래도 아무 전화라도 했어야지! 하고 다그치니,
"술 먹어서 탄소 전화번호 바뀌기 전 번호랑 바뀌고 난 번호랑 헷갈려서..."
그래도 다른 외간여자 번호랑 혼동하지는 않았다는 게, 퍽 귀여웠다. 근데 그냥 두 개 다 전화해봤으면 되는 거 아닌가...?
더 이상 정국이를 추궁하지 않았다. 뭐 -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아이도 아니고.
정국이의 말을 듣고 나니,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그의 두 팔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팔 아플 것 같은데... 내 새끼. 춤출 때 무리가는 거 아니야?
나는 정국이의 팔을 내려주기 위해, 침대 밑으로 발을 딛었는데
'잠깐!"
"왜?"
"왜... 내려오려고 해?"
"뭘 왜야. 너 손 내리라구..."
"나 용서해주는 거야?"
"...이번만이야."
이번만이라는 내 말에 정국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제 옆에 곱게 두 팔을 들고 있던 곰곰이의 팔을 내려주었다.
수고했어. 곰곰아 - 를 잊지 않고 말해주면서.
그리고는 제 맨투맨을 벗고서, 침대에 앉아 있는 나를 제 품에 가두고 뒤로 누웠다.
"그럼 우리 조금만 자자."
"나 방금 일어났는데?"
"정국이 졸려. 누나."
"..."
"잘자. 누나"
정국이는 내 머리끝에 제 턱을 올려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 바로 앞에 보이는 정국이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단단한 상체에
아. 몰라!
얼굴을 묻고, 그의 허리에 내 손을 둘렀다.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오늘 제 글을 처음부터 읽어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ㅜㅜ
혹시나 텍스트 공개나 메일링을 하게 된다면, 좀 더 탄탄한 스토리로 보여드릴 수 있게 조금씩 수정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 암호닉이 뭔지 몰라서 - 다른 작가님들 글 보면서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워왔어요.
신청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암호닉]
미미 / 미스터
- 이렇게 하는 거 맞겠죠?! 더 공부해서 오겠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 분들 감사드려요. 사실, 미리 구성이랑 스토리 전개를 마쳐두고 시작하는 거라. 지금은 번외를 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뒤부터는 이렇게 자세한 시선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이 둘의 첫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이 신경을 쓰느라 흐름이 너무 길어졌네요!
다들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