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취한 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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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 위로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다시 정리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누워, 이불을 탄소의 목까지 올려 주었다. 그리고는 내 품에 그녀를 가두고는 얼른 자자. 하고 말을 꺼냈다. 제발. 제발 자자. 부탁이야. 탄소야. 하지만 탄소는 술만 마시면 미운 네 살이 되는 건지. 내 품 안에서 제 작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동시에 제 얼굴을 나와 마주하기 위해, 이불을 조금 걷어내고는 위로 향했다. 덕분에 다시금 마주하게 된 목과 어깨였다. 셔츠는 옷 기능을 하기는 하는 건지, 그녀에게 한참이나 컸다. 나는 애써 눈을 감고, 나 잔다. 하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탄소는, 잘자아. 하며 -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내 코에. 볼에. 귀에. 목에. 쉴 새 없이 제 입을 맞췄다.
*
"탄소보다 네 살 어리다고 했죠?"
"네."
"그럼 말 놓을게요. 난 탄소보다 두 살 많아서."
"편하신 쪽으로 하세요."
"그래. 그럼."
석진이 오빠는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고 하고는, 나의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국이가 모르는 시절의 내 이야기를. 중학교 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 이야기 그리고 그가 바람 나서 헤어진 이야기. 또 첫 등단의 순간에 미성년자인 나와 함께 술을 마신 이야기. 전부 다 정국이를 만나기 전의 굵직한 이야기였다. 나는 오빠에게 뭐 그런 이야기를 다 하냐며 말리다가, 나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에 그냥 포기했다. 석진이 오빠는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정국이에게 '아. 혹시 기분 나쁜가?' 하고 물었고, 그는 그때마다 전혀 아니라는 듯 술잔만 넘겼다. 석진 오빠도 그에 질세라 함께 술잔을 넘겼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그들과 다르게, 내 멋대로. 한 잔, 두 잔. 나만의 페이스로, 그냥 막 마셨다. 두 사람은 저들의 기 싸움에 바빴고, 덕분에 주량을 한참 넘긴 나를 제어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탄소야."
"아. 아까부터 들었는데, 탄소한테 반말해?"
"네."
"네 살이나 많은데?"
"네 살 밖에 안 많죠."
"그래. 뭐, 너네 마음이지."
테이블로 자꾸만 숙여지는 머리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라도 묶어야지 싶었다. 손목에 걸린 머리끈으로 조용히 머리를 묶는데, 정국이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손목에 걸린 머리끈을 빼간다. 나는 두서없는 정국이의 행동에 뭐해? 하고 물었고, 그는 그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취했네.' 하며, 내 입술을 제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뒤로 몸을 젖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취한 상태였고, 덕분에 중심을 잡기에는 무리였다. 아이는 제 손길을 피하는 내게 '어쭈?' 하며, 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도 내가 어디까지 도망가나 보자 - 하는, 심보였던 것 같다. 나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다시 올리려는데, 한껏 둔해진 몸이 나를 방해했다. 석진이 오빠는 옆에서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제 손으로 내 등을 받쳐서 나를 제자리로 올려주었다. 나는 몽롱한 와중에도 석진 오빠에게 '고마워어. 오빠' 하고는 말을 건넸고, 오빠는 그런 내게 웃으며 '그래.' 하고 답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아, 정국이에게 몇 시냐고 물으려 고개를 돌렸는데. 아이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제 머리를 크게 한 바퀴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정구기 화났다. 나는 가만히 테이블 위로 고개를 숙였다. 자는 척... 이라도 해야지.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 역시 책상 위로 엎드린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뭐, 덕분에 나는 그렇게 진짜 잠에 들었고.
*
Boy Moment
"그럼 올해 스물세 살 맞지?"
"네."
"군대는?"
"다녀왔는데요."
"빨리 다녀왔네. 그럼 학교는 휴학?"
"네."
"복학은 안 해?'
"이번 2학기에 할 거예요."
"그렇구나. 귀엽네."
"뭐가요."
"아직 학생인거잖아."
"..."
"탄소는 졸업도 했고."
"..."
"아니다. 뭐. 두 사람 일인데,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헬스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는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탄소에 관해 모든 걸 아는 척, 자꾸만 몰라도 상관 없었을 이야기를 툭툭 내뱉지 않나, 한 번 말했으면 좀 알아 먹었으면 하는 나이질문도 계속해서 던져댔다. 분명 내 나름 제법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식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러한 내 반응까지 흥미롭다는 듯 - 술잔만 기울였다. 누나는 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못하고, 저 혼자 음료수를 마시듯 술을 들이켰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그만 마시라며 말렸겠지만 - 이따금씩 남자에게 '오빠.' 하고 부르는 그녀가 내 심사를 비틀리게 만들었다. 뭐랄까. 유치하게도 괜시리, 그때마다 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군대부터 복학 계획까지 따져 들었다. 대답을 안 하자니, 저 멋대로 상상하기 딱 좋아하는 타입 같아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드디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뱉었다.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진심으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전했다. 그는 자꾸만 제게 이빨을 세우는 내가 좋은 건지, 속이 없는 건지 혼자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리고는 혼자 헛기침을 큼큼 - 하더니, 내게 한 손을 뻗어온다. 술잔을 기울이던 내가 물었다. 뭔데요. 남자는 내 물음은 안중에도 없는지, 제 멋대로 내 손을 마주 잡았다. 한순간에 악수한 꼴이 되어 버렸다. 남자는 취기가 오르는지, 얼굴이 붉었다. ...술은 내가 더 잘 마시네. 뭐.
"탄소 너 줄게."
"무슨 자격으ㄹ."
"나한테 그만 으르렁거리고."
"..."
"주변에 탄소 노리는 남자 많으니까."
"..."
"거기에 이빨 세워라."
"..."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남자는 다른 방식으로 내 속을 긁기로 작정한 건지, 대뜸 탄소를 내게 주겠다고 말을 건넨다. 아니, 옆집 오빠가. 아니, 옆집 오빠였던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나는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물었다. 무슨 자격으로. 하지만 그는 내 말을 채 듣지도 않은 채, 애꿎은데 으르렁거리지 말라며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네온다. 동시에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하며, 제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았는지, 내게 화면을 들이민다. 봐봐.
[그녀는 참, 환했다. 화려하게 빛나거나, 지나치게 고고하지 않았다. 구김살 없이 모든 질문에 고민하며 답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제 작품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당당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정말 환하게 - 아름다웠다. 특히, 제 애인에 관한 언급에 있어서는 얼굴도 모르는 그 사내가 부러울 정도로, 행복함이 묻어나왔다. 애인 자랑을 하나만 해달라는 기자들의 장난 섞인 질문에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그 덕분에 자신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대답을 건넸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뭐, 잘생겼어요. 키가 커요. 라는 식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녀는 왜냐고 되묻는 우리들에게 지금까지 중, 가장 말갛게 빛나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좋은 사람이에요.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그래서 저도 그 사람에 걸맞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모든 면에 있어서. 덕분에 지금 이 나이에도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고요."
'성장'은 한참 전에 멈췄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아닌, 매일이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그녀의 그 순간이, 빛났다.
(그녀는 인터뷰가 끝나고 피곤할 법도 했지만, 자리에 있던 모든 기자들에게 직접 싸인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이 기사 남자친구가 보면 놀릴 것 같은데... 기사 언제 나가요? 그 날 핸드폰 뺐어야겠다...!' 하고, 장난스레 웃어보였다. ...보고 있나요? 작가님 애인 분? 보고 있다면, 나중에 동반 인터뷰 좀 부탁드려요.)] - 문학동네 인터뷰 中
남자는 제 핸드폰을 쉽게 놓치 않는 내게, 아직도 읽는 중? 하고 묻는다. 나는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다시 읽는 중이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십오 분이나 지났어. 링크 보내줄게. 핸드폰 좀 줄래? 하며, 제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네 번째 다시 읽는 그녀의 인터뷰에도 자꾸만 웃음이 흘러 나왔다. 아니, 인터뷰를 하고 오랬더니, 매력발산을 하고 왔네. 칭찬이 자자한 인터뷰 글이었다. 하긴, 모난 구석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여자니. 나는 그와 번호를 주고 받았다. 남자가 탄소를 통해서 링크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무슨 일 때문이든 그가 탄소랑 연락하는 건 싫었기에.
남자는 제가 계산을 마치고는 기회가 되면 보자는 말을 끝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큰 키 때문인지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어나가는 그였지만, 뭐. 알아서 가겠거니 하고 - 나는 택시 번호판을 바라봤다. ...아빠사자가 맞ㄴ... 아니. 이걸 내가 왜 신경 써. 가끔씩 탄소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면, 뒤에서 확인하던 버릇이었다. 남자가 탄 택시 번호판까지 확인하는 내가 소름이 끼치려는 그 순간에도,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핸드폰까지 들어. 멀어지는 택시의 번호판을 찍었다. 아. 진짜.
*
그녀를 업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얌전히 잠 들은 줄 알았던 탄소는 바깥공기에 얼핏 잠에서 깬 듯,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정구가. 오디가아... 나는 한껏 애교가 묻어 나오는 탄소의 목소리가 괜히 한 번 더 듣고 싶어, 뭐라고?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제 다리를 붕붕 - 하고 움직이더니, 삐져써? 하고 물어온다. 삐지긴 뭘 삐져. 나는 그녀의 뜬끔없는 물음에 내가 왜 삐졌어? 하고 물었다. 뭐가 그녀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건지. 혹 내가 실수한 거라도 있나 싶어 기억을 곱씹는데, 그녀는 대답 대신 제 고개를 푹 - 하고 내 등에 묻는다. 다시 잠든 건가.
"자?"
"앙자..."
내 등에 대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탄소였다. 등에 느껴지는 그녀의 움직임만으로도, 그녀가 그려져서 심장이 간질거렸는데 - 거기에다가 '앙자' 라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아. 진짜 - 너무 귀엽다. 나는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며, 누나 앙자? 하고 그녀를 따라 물었다. 탄소는 내 물음에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누나 아니야아' 하고는 내 귀를 깨문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제자리에 멈춰서서, 귀 무는 거 아니야. 하고 어름장을 두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누우나라서 이런 것두우 하면 앙대?' 하고 묻는다. 웬 누나타령.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누나가 어때서. 탄소는 내 목을 감싼 제 두 손을 더욱 단단하게 쥐어왔다. 내 입술 앞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손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였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장난스레 깨물었다. 탄소는 '내가 누우나라서 깨물기하는 거야아?' 하며, 또 다시 누나를 들먹였다. 오늘 왜 이럴까. 나는 그녀에게 예뻐서 깨무는 거야. 하고, 꽤나 걱정되는 투로 말을 건넸다. 내가 모르는 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기에.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제 입을 연다.
"나 너무 나이가 많아아... 너는 너무 쪼금이야..."
"뭐가 많아. 하나도 안 많아."
"너는... 오빠가 아니야아... 왜?"
"...뭔 소리야?"
"왜 너느으은 오빠가 아니냐구우..."
느닷없이 내게 왜 오빠가 아니냐며 칭얼거리는 그녀였다. 뭐 이런 발상이 다 있나 싶다가도, 늘어지는 그 말투가 참을 수 없이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그녀는 제 말을 비웃는 줄 알았는지, 웃지마아. 하며 다시 내 귀를 물어온다. 나는 그만 웃을게. 하며, 그녀를 고쳐 업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사뭇 진지하게 '이름 바꾸면 앙대?' 하고 물어온다. 나는 잠깐만 - 하며,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들어 녹음기를 켰다. 내일 놀려야지. 이를 알 리 없는 탄소는, 자꾸만 내게 이름을 '전정국 오빠' 로 바꾸라며, 개명비용은 자신이 내주겠다고 응석을 부려왔다. 나는 저 혼자 진지한 그녀의 칭얼거림이 귀여우면서도, 이런 고민을 안겨줬다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말대로 따라주기로 했다. 절대. 내가 오빠 소리를 듣고 싶어서는 아니였다. 뭐, 그런 거에 집착하고 - 막 좋아하고... 그런 남자는 아니니까. 나는. 아마... 그런 남자가 아니다. ...아닐 걸?
"알았어. 나 방금 이름 바꿨다."
"...지쨔?"
"...응."
"정구기 오빠로 바꿔써?"
"네. 바꿨어요 -."
"그럼 오빠네? 오빠?"
"그럼 오빠지 - "
"흐흥. 오빠... 정구기 오빠."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이름을 바꿨다고 말하니, 술기운에 그걸 곧이 곧대로 믿는 탄소였다. 어느새 그녀의 집이 가까워졌다. 그녀는 제 집 근처라는 사실도 모르는지, 내게 이름을 바꾼 것이 사실이냐며 '지짜?' 하고 물어온다. ...오늘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나는 순간 턱 - 하고 막힌 말문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응' 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지, 오빠. 정구기 오빠. 를 연신 불러댔다. 내 목 뒤에 제 입술을 묻고, 웅얼거리면서.
조금만 더 가면, 그녀의 집이었다. 얼른 재우자. 재우고, 깨면. 뭘 해도 그때하자. 뭐, 대화라던지, 뭐. 그런 것들.
하지만, 이 계획은 그녀의 집 계단에서 보기 좋게 무너졌다.
집에 절대 가지 않겠다며, 갑자기 내 등에서 내려 출입문의 반대로 걸어가는 탄소였다. 나는 탄소에게 달려가 집 가서 자야지 - 하고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곧 죽어도 제 집이 아닌.
"정구기 오빠 집 가꺼야아..."
우리 집을 가겠다고 늘어졌다. 나는 안 된다며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뻗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왔다. 나 역시 그녀에게 이번만큼은 질 수 없어서, 안 돼. 하고 말을 꺼냈는데. 그랬는데... 그녀는 내 말투가 꽤나 강압적이라고 느꼈는지, 왜 소리질러어? 하며 울먹거린다. 나는 방금 전의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곱게 접어 버리고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우리 집 가자. 하며 -
우리 집으로 향한다는 내 말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 듯 했다.
"난 망싱창이로 취해쏘... 취해쏘..."
노래까지 부르는 걸 보니.
따지고 보면 술을 마셨어도, 몇 잔이고 내가 더 마시고. 술에 취했어도, 몇 번이고 내가 더 취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 여자는 내 속도 모르고 근본 없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녀는 내 등 뒤에 엎여서는 내 목덜미에 대고 자꾸만 제 작은 입을 달싹거렸다. 아. 진짜. 내가 누나의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릴 때마다, 누나는 어떻게 참아냈는지.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깨워서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녀를 고쳐 업으며, 가만히 좀 있지?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싫어요오. 싫습니다! 정구기 오빠아.' 하며, 제 입술을 대놓고. 그것도 아주 대놓고. 내 드러난 목덜미와 귀에 마구 입 맞췄다.
깨기만 해.
*
사귀는 동안에도 몇 번 우리 집에 왔었던 탄소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몇 시가 됐던,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때는. 그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꽤나 많이 변한 상황이었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내 침대에 앉아서는 당당하게 내게, 갈아입을 옷을 요구하는 그녀였다. '옷 줘! 이거 불편해애'
나는 그녀의 작은 손에 무지티와 반바지를 건네 주었다. 탄소는 한동안 제 손에 들린 옷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정구기 오빠 먼저 씨서.' 하며 나를 욕실로 보낸다. 나 역시 빨리 씻고 그녀를 챙기는 편이 편하겠다 싶어서, 알았다고 답한 뒤 욕실로 향했다. 욕실 밖에서 혼자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혼자 돌아다니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 싶기도 했고. 나는 평소보다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바깥으로 향했다. 그녀가 있을 침대로 향했을 때, 내가 예상했던 그림은 술기운에 잠이 들어있는 그녀 혹은 혼자 돌아다니다 어디 하나 작은 생채기하나 달고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 옷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내 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였다. 제 덩치에 한참이나 흰 셔츠의 단추도 잘못 채우고는, 제 머리를 묶는.
탄소는 씼고 나온 나를 느리게 마주했다. 술기운에 모든 행동이 느려진 그녀였다. 그녀는 내게 한 손을 뻗으며, '머리끈 줘어' 하고 말을 건넨다. 술집에서 내가 가져간 머리끈을 말하는 듯 했다. 아니. 취한 거 맞아? 그게 기억이 나는데? 나는 책상 한 켠에 올려둔 머리끈을 그녀의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붉은 얼굴을 한 채로, 머리끈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는 옆으로 픽 쓰러졌고. ...이런 거 보면, 취한 건 맞는데. 나는 그녀에게 머리끈을 건네주어야 하는 지, 제법 심각하게 고민했다. 술집에서 머리끈을 뺐은 것도, 그녀의 목 때문이었다. 친구 녀석들이 여자의 목선에 환호할 때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 탄소를 만나고 그 이유를 명확히 알았다. 흰 목덜미는 야했다. 그 어떤 시각적인 효과 보다도. 작은 얼굴에 맞게끔 얇은 목이었고, 유한 곡선으로 이어진 목과 어깨선. 그게, 진짜 야했다. 그런데 지금 내 애인이 내 방, 내 앞에서, 내 흰 셔츠를 입고는 이미 한 쪽 어깨를 이미 다 들어낸 상태로 내게 머리끈을 요구하는데.
"...씻어야 되니까. 묶어."
그래. 씻는 동안만.
그녀는 저 혼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오겠다며, 당차게 욕실로 향했다. 괜히 목이 탔다. 나는 그녀가 없는 사이 물을 몇 잔이나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갈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취기 오른 몸으로 잘 씼고 있기는 한 건지, 욕실로 모든 감각이 향해 있었다. 혹여나 미끄러워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높이 묶어 올린 머리를 하고는 내게로 향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원래의 옷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내가 탄소에게 준 무지티와 반바지는 내 옆에 그대로였고.
"...안에"
"왜에?"
"뭐 입었어."
"...변태애."
"아니."
"자야 되니까아! 옷 갈아 입었찌!"
"..."
그녀는 제 옷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자야 해서 옷을 갈아 입었다며, 되려 나를 이상하게 몰아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들고 그녀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감싼 뒤에, 침대로 옮겼다. 탄소는 '나 김밥이야아?' 하며 이 상황이 신나는지, 꺄르르 웃어 보인다. ...미치겠다. 진짜.
나는 침대 위로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다시 정리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누워, 이불을 탄소의 목까지 올려 주었다. 그리고는 내 품에 그녀를 가두고는 얼른 자자. 하고 말을 꺼냈다. 제발. 제발 자자. 부탁이야. 탄소야. 하지만 탄소는 술만 마시면 미운 네 살이 되는 건지. 내 품 안에서 제 작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동시에 제 얼굴을 나와 마주하기 위해, 이불을 조금 걷어내고는 위로 향했다. 덕분에 다시금 마주하게 된 목과 어깨였다. 셔츠는 옷 기능을 하기는 하는 건지, 그녀에게 한참이나 컸다. 나는 애써 눈을 감고, 나 잔다. 하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탄소는, 잘자아. 하며 -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내 코에. 볼에. 귀에. 목에. 쉴 새 없이 제 입을 맞췄다.
진짜. 깨기만 해봐.
나는 이불 아래로 쥔 두 주먹에 더욱 힘을 가했다.
참자.
애국가, 교가, 군가.
이거 세 개 반복해보자.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이번 화는 탄소의 취한 말투를 쓰느라, 꽤나 애를 먹었어요 - 이제 전 화와 전전 화 댓글 보러 갈 시간이에요 :) 벌써부터 행복합니다!
댓글을 보다보니, 시험기간이신 분들도 많으신 것 같은데...! 다들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 열심히 하시길!
암호닉은 글 먼저 올리고, 추가할게요 -
오늘도 다들 고맙습니다.
암호닉 + 혹시라도 신청했는데 추가 안 되신 분들 꼭! 말씀 해주세요! ㅜㅅㅜ 꼼꼼히 본다구 보는데, 빼먹는 분들이 계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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