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반존대를 써요 시즌2 w. 채셔
04. 의심은 의심의 꼬리를 물고
"………자기?"
"아, 아. 미안해요."
요즘 통 집중을 못하네, 나한테. 으응? 지민이 내 볼을 꾹 꼬집다가도 머리를 쓸어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요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투정 섞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지민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집중을 하기에는 오늘도 편지가 왔는걸. 오랜만에 작업이 일찍 끝나서, 카페로 주말 데이트를 왔지만 통 지민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윤기 선배와 다음 주에 더블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 도장까지 찍어놓았는데, 이렇게 계속 잡 생각만 하다가는 더블 데이트에서도 집중을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지민의 말에 머뭇거리자, 지민은 잠시 기다리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꼭 감싸 쥐었다. 말 못해주는 거면, 천천히 말해주세요. 지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게 이리저리 꼬여 있었다. 얘기한다고 해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는 걸까. 내가 엿들었다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그 여자 애가 예쁘고 어려서 질투를 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손을 꼭 잡고 지민의 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아서 끝내 피해버렸다. 지민의 눈은 항상 반짝거려서, 쳐다보기만 해도 설렐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괜히 죄를 저지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머리도 검정색으로 염색을 해서, 더 청순해져서 말이지. 툭 치면 툭 하고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순수한 망개요정이 되어버렸다.
'언니.'
'응?'
'…혹시 데뷔조 중에 이 사람 어떤지 알아요?'
'아, 메인 보컬?'
사실은 질투를 넘어서 뒷조사까지 했다. 성격도 엄청 좋고 요즘 애들답지 않게, 싹싹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더라. 회사 선배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비주얼이기도 하고. 예쁘면 늙기라도 하지, 아니면 실력이라도 없지, 그것도 아니면 성격이라도 좋지 말지. 꼭 이렇다. 신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 수 있는 걸까. 게다가… 말투도 엄청 사랑스러웠는데.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네에, 하고 일을 하려는 찰나 언니가 아! 하고 내 이목을 끌었다. 언니를 쳐다보자, '영어도 잘한대. 미국 살다 왔다더라.'라고 말을 덧붙인다. 나, 참. 되는 게 없다.
'아이, 꼬맹이 너 왜 삐쳤는데. 꼬맹이 너 좋아하는 고기 사갈……….'
'선배.'
'…아! 너 언제 왔어. 아씨….'
그리고 프로듀서와 가수의 사이도 궁금해서 윤기 선배를 찾아갔었다. 물론 지민이 남준과 회의를 하러 들어갔을 때를 노려서. 이 정도면 지능 범죄 수준이다, 정말. 특히 간이 작은 나에게는 오죽했을까. 정말 내 인생 일기에 남을 무서운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거다. 어찌 됐든 귀가 빨개져서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 선배를 잠시 바라봤다가 소파에 냉큼 앉았다.
'노크 모르냐? 엉?'
'노크했어요. 선배가 꼬맹이 달래느라 못 들어서 그렇지.'
'………아.'
연애를 하더니 윤기 선배가 통 바보가 됐다. 그러고 보면 꼬맹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어떻게 윤기 선배를 녹 다운 시킬 수 있었을까. 하긴, 대학 때 잠시 봤던 말 재간으로는 충분히 윤기 선배를 바르고도 남았었다. 어쨌든, 윤기 선배가 행복한 걸 보니 내가 다 마음이 좋았다. 서로 투닥거려도, 선배와 나도 꽤나 깊은 관계니까.
'선배,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엉.'
'프로듀서랑 아이돌은 도대체 어떤 관계에요?'
'엥?'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기도 해요?'
친하게 지낼 수도 있지. 윤기 선배의 말에 주먹을 다시 꽉 쥐었었다. 근데 그건 엄청 특별한 경우 아닌가. 서로 오래 봤거나, 아니면 같은 팀 멤버가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프로듀서가 됐다거나, 아이돌이 작곡가 후배, 아니면 뭐 탑 라이너로서 참여할 때?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기 선배를 쳐다봤고. 아까 회사 선배의 말에 따르면 작곡에 가능하다는 말은 없었는데. 보통은 어떤데요? 하고 묻자 윤기 선배는 흐음, 하고 턱을 만지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해봤자 그냥 대학 생활 할 때 뭐 그런 사이 같아. 그리고 아이돌 애들이 보통 프로듀서들은 어려워 하지. 아무래도 위치가 좀 다르니까. 윤기 선배의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행이었다, 이 정도 사이라면.
'지민 씨는 프로듀서로서 어떤데?'
'뭐냐, 기껏 와서 한다는 얘기가 박지민 얘기냐.'
하긴, 대학 때도 넌 진로보다 연애 상담을 더 많이 했었지. 윤기 선배의 말에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을 재촉했다. 윤기 선배는 눈을 흘기며 '성질은.'하고 짜증을 부렸다가, 다시 진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 초를 고민하던 선배는 고민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걔도 똑같아. 그리고 한참을 기다린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푹, 하지만…. 근데 걔 메인 보컬이랑은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윤기 선배의 말에 결국 이렇게 상황이 흘러간 거다. 어제 밤부터 오늘, 지금까지. 정말 도저히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도 않고,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다, 윤기 선배는 지민 씨가 그 연습생이랑 알고 지낸다고 하지. 또 오늘도 편지가 왔었는데.
"오늘도… 편지가 왔었는데."
"………뭐라구요, 자기?"
……………아, 김여주 멍청이. 생각만 한다는 걸 입 밖으로 말해버렸다. 지민의 입술이 갑자기 달싹이기 시작한다. 그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신경 쓰지 마. 지민이 살짝 인상을 굳히며 내게 말한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내가.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맞받아쳤다. 미쳤나 보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가 과부하 상태라도 된 걸까. 나는 다시 말을 흘려보내고 입술을 꾹 깨물어버렸다.
"…그래서…… 나랑 하는 데이트에 이렇게 집중을 못하는 거예요?"
지민의 말투가 살짝 거칠어졌다. 그 말에 또 미안해져서 고개를 내리고 말았다. 혹은 기가 죽어서. 지민은 갑작스레 성화를 냈던 게 미안했던지, 내 볼을 꾹 잡았다. 미안해요, 근데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랑 데이트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화나서. 지민 나름의 이유에도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다시 한 번 미안해요, 라고 속삭여주며 지민은 한껏 제 고개를 내 쪽으로 당겨서 볼에 입술을 맞추어주었다. 괜히 억울해지는 기분이다. 괜히 불편한 기분.
"아무리 걔가 내 첫사랑이라고 해도 그런 애는 자기랑……."
"…뭐라구요?"
"………아."
…그리고 들어버렸다. 둘의 진짜 사이를.
덧붙임
여러분은 지금 첫사랑에 고통받는 망개 커플을 보고 계십니다
많이 놀라셨쥬?
최악으로 치달아야 상황은 재밌는 법! 이라고 생각해서
애초부터 시즌 2를 짤 때 이렇게 구상했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남준이도 여주 첫사랑이었더라구요.
한 회사에 한 커플의 첫사랑이 둘이나 있는 이상한 이야기지만
세상은 참 좁다는 논리 하나만으로 헤쳐나갈까 합니다 T-T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될게요
반존대 암호닉은 5회나 6회쯤에 다시 받을까 해요
다음에 또 뵐게요, 반존대 독자님들
오늘도 반갑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