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2월 25일. "
"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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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1940년 1월 1일. 한복을 벗었다.
한복을 벗으니 내 발 밑에는 붉은색의 기모노[着物]라 칭하는 일본인의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루 아침에 집안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리 서늘하게 바뀌어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문턱을 넘나드는 일본인들이 많아졌다.
밤만 되면 화려한 연회가 온 집안에 펼쳐졌고, 난 늘 그래왔듯이 입가에 미소를 걸치고 매일같이 배운 일본말을 하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음을 새카맣게 모른채. 그렇게 난 잔혹한 비밀을 감춘 가문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 わたしは まつい こはる です。"
「 " 마츠이 코하루입니다. " 」
" チョウムベッケスムニダ。"
「 " 처음 뵙겠습니다. " 」
五
1940년 1월 30일.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이름을 바꾸어야 했던 연유, 일본말을 써야 했던 연유, 불편한 기모노를 입어야 했던 연유도.
문턱이 닳도록 넘나들던 일본인들의 실체와 같은 민족을 처참히 짓밟은 아버지의 실체도.
한없이 자상하던 내 아버지는 나라를 판 역적이였다. 하늘 아래 부끄럼 한점 없었던 내 아버지는 제 발로 일본제국의 개가 되었다.
일본의 개가 되었기에 가문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 제 민족을 죽였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일본으로부터 백작[伯爵]의 지위를 받았고, 그 결과 우린 일본의 발아래 수치스러운 조선 제일의 매국노 집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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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 하나 없어보이는 허름한 공간 안, 흔들리는 등불 주위로 네개의 인영들이 비추어졌다. 그들의 앞에 놓인 작은 탁상과 그 위에 펼쳐진 작은 지도. 긴장감과 적막함이 가득한 그 공간 안에서는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였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한참동안을 서 있었을까, 그들 중 둥그런 안경을 낀 사내 한명이 지도 위에 붉은 색으로 그려져 있는 X 표식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는 제 주변의 사내들을 비장함이 감도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X 표식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해 있었고, 제법 커 보이는 건물 한채만 자리해 있을 뿐이었다.
" 오늘 저녁 10시.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타이치 공작의 별장을 습격한다. "
" 우리의 타게트는 민족반역자 타이치 공작과 그의 부인 "
" 타이치 공작은 10년 째 일본의 철도 건설을 위해 조선인 강제징용을 앞장서 온 인물이기에 우리의 여섯번째 타게트다. "
" 그 누구에도 들켜서는 안돼는 작전이니 작전 중 들키면 모조리 사살한다. "
" … 작전에는 정호석과 민윤기를 투입한다. "
테이블 위로 타이치 공작과 그의 부인이라는 여인의 사진 두장과 권총 두 자루가 떨어졌다. 공간 안의 두개의 그림자는 각각 두장의 사진을 품안에 넣었고, 사내의 말을 끝으로 어두운 공간 안에 있는 네 사람중 두 개의 그림자는 작전에 대한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한번씩 끄덕이고는 순식간에 공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안경을 낀 사내는 이윽고 남아있는 마지막의 그림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오늘 밤 8시. 마츠이 백작의 사가에서 연회를 연다. "
" 일본의 고위 간부들이 대거 참석하는 자리니까…. "
" 모조리 죽입니까. "
" … 이번 작전은 염탐이다. 사살은 일체 용납되지 않으니까 들키지 않게 각별히 조심하도록. "
" 염탐이라면 …. "
" 말 그대로 마츠이 백작과 그의 식솔들, 백작의 주변에 있는 일본 간부들에 대해서 알아오기만 하면 되는 작전이야. "
" 일본인만 참석할 수 있는 연회이니 그곳에 있는 동안 네 이름은 김태형이 아닌 사쿠마 켄타로[さくま けんたろう]다. "
" 조심해야 한다. 호랑이 소굴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작전이니까. "
"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
" … 들키면 바로 나와. 다쳐서도 안돼. 김태형,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실행해야 한다. "
"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게. 기다리고 있어라 박지민. "
어둠 속 그림자 하나가 손을 뻗어 반대편에 있는 그림자의 어깨를 두어번 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좁은 공간 속, 등불 하나와 남아있는 마지막 그림자는 책상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곱게 접어 자신의 품 안에 넣은 채 위태로이 흔들리는 등 안의 불씨를 훅- 하고 꺼버리고는 순식간에 공간을 잠식해가는 어둠과 함께 소리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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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놈의 별장을 허-벌나게 높은 곳에도 지었네. 날뛰는 개새끼 한놈 잡자고 내가 먼저 죽겄소! "
" 인생 이 길로 조지고 싶으면 계속 나불거리고, 아니면 닥치고 빨리 올라가서 끝내고. "
" 성님은 진짜 험하게도 말하네, 내가 뭐가 그리 시끄럽… "
" 쉿-. "
민윤기와 정호석은 상단 박지민으로부터 타이치 공작과 그의 부인을 사살하라는 명을 받고 밤 10시에 경성을 출발해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별장을 찾아 산 기슭을 걸은지 약 세시간이 지났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이미 어두워질데로 어두워져 컴컴한 산 속을 헤치며 징징거리는 호석과 그런 호석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윤기는 호석의 등 뒤 너머로 보이는 동그란 빛이 눈에 들어왔다. 손전등. 당시 조선인의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있을리가 없었고, 마침 타이치 공작의 별장이 가까운 것으로 보아 저 불빛의 주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군이였다. 제 별장을 호위하는 일본군의 수를 늘렸다고 하나 별장 주변을 순찰 도는 일본군까지 심어놓았을 줄이야 …. 윤기는 마치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듯 두 눈을 반짝이며 품안에 있는 권총을 장전하였다.
" … 첫번째 타게트. "
「 " …? " 」
' 철컥 - "
「 " … 웬놈이냐! " 」
" … 잘가라. "
「 " 침, 침입… " 」
' 탕 - . "
침입을 알리고자 했던 일본군의 다급한 목소리는 민윤기가 쏜 총성과 함께 사라졌고 그의 몸도 함께 땅으로 고꾸라졌다.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전등을 빼앗아 전등의 불을 껐다가 켬을 몇번 반복한 민윤기는 제가 들고있는 총의 가시지 않은 열기를 입으로 후- 하고 불고는 허리를 숙여 옆에 있는 낙엽들로 대충 일본군의 시체를 가렸다. 호석은 그런 윤기의 옆으로 다가가 일본군의 죽음을 칼을 이용해 다시한번 확인 하였다. 민윤기는 정호석에게 서둘러야 되겠다는 말을 남긴채 다시 타이치 공작이 머물고 있을 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타고 얼마 가지 않아 별장의 입구 겸 그간 타이치 공작의 더러운 인생의 종착점을 알리는 대문이 보였다. 제법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더러운 인생이였어도 챙길건 다 챙겼는지 대문의 크기는 거대했고, 대문의 입구에는 타이치 공작의 신원을 보호하는 일본군들이 네명정도 서 있었다. 같은 민족을 지키고자 같은 민족을 죽여야한다는 제 운명을 윤기와 호석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들의 더러운 속내와 일본의 개가 되겠음을 자처한 개새끼들이라는 점을 알아버린 뒤로는 그들을 죽이며 단 한치의 죄책감도 가지지 못했다. 윤기와 호석은 대문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한 석상 뒤에 몸을 숨기고 총을 장전했다.
' 철컥 -. "
" 김태형은 어디로 간다고 했지? "
" 몰라. 들키니까 닥쳐. "
" 작전 성공하면 짜장면 한 그릇 사라? "
" 지랄하네. 간다. "
" 가자. "
" 타이치새끼의 화려한 마지막 밤을 장식하러 … "
" 탕 - . "
「 " 침입자다! 공작님을 보호… 윽! " 」
" 탕 - ! "
「 " …지원 바란… " 」
" 탕 -. 탕 - ! "
「 " …. " 」
더러운 반역자의 화려한 마지막 밤을 알리는 네 발의 총성을 시작으로 천천히 대문을 통과한 민윤기와 정호석은 너 나 할것 없이 자신과 눈을 마주친 자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즉각 즉각 사살하였다. 그렇게 거대한 앞마당을 거쳐 별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이는 무장한 일본 군인들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별장 안에 있는 몸종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별장의 첫번째 층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고,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붉은색의 피로 물든 발자국들이 별장의 두번째 층으로 올라가는 민윤기와 정호석의 뒤를 밟았다.
별장의 두번째 층으로 올라가니 보여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였다. 개새끼를 보호해야할 일본군들은 이미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 후 였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일본군들과 개새끼들의 몸종들은 방문을 걸어잠그고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굳게 걸어잠근 방문은 정호석의 시원한 총성과 함께 활짝 열렸고, 열린 방문을 유유히 걸어 들어간 호석의 귀에는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몇발의 총성이 함께 울려퍼졌다. 호석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윤기는 굳게 닫혀있는 별장의 방문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개새끼 두마리와의 숨막히는 숨바꼭질을 시작하였다. 아쉽게도 술래는 숨어 있는 개새끼 두마리를 금방 찾아버렸지만….
「 " 누, 누구냐! 가, 감히 누가 내 방에 이렇게 함부로 … ! " 」
「 " 글쎄요, 제 주인을 물고 도망간 개새끼를 잡아야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와 버렸습니다? " 」
「 " 자, 자네가 원하는게 뭔가! 내 다 해주겠네! 그러니 제발 …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게! " 」
" 내가 원하는 건 … "
" 아까부터 거슬리는데 당신의 그 더러운 왜놈새끼들 말이 내 귀를 더렵혀서… 일단 닥쳐봐. "
" 조, 조선인 … ! 나도 조선인일세 ! ㅈ,제발 같은 조선인한테 이리 하지 말게."
" 원하는게 뭔가. 돈을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원하는 것인가 ? "
" 같은 조선인…. 그래, 니새끼가 말한 같은 조선인한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
" 네가 네 죄를 알라… "
' 탕 - ! '
민윤기는 짜증이 솟구친다는 듯이 세모난 꼴의 눈을 더욱 높이 치켜떠 공작을 노려본 후, 입이 귀에 걸릴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총의 방아쇠를 한번 당겼다. 첫번째 총알은 타이치 공작의 심장에 박혔고 그는 심장을 움켜쥐고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더니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총성 때문에 잠결에 일어나고 한순간에 남편의 죽음을 제 눈으로 목격한 타이치의 부인의 동공은 이미 풀려있었고, 무릎을 꿇은채 덜덜 떨리는 몸을 감싸안은 모습이 퍽이나 처량해 보였다. 총의 입구에서 새어나오는 연기를 입으로 후- 하고 분 윤기는 두번째 타게트. 타이치의 부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 나, 나는 왜 죽이는 거죠 … ? 나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 !!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고 !!"
" 남편을 잘못 만난 죄. "
" 조선인들이 약해 빠져 그런 일을 당한 거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안그래?? "
" 계속 지껄여봐. "
" 아악-!!! 난 아무 죄가 없어요, 정말이에요!! 남편이 다 혼자 벌인 짓이에요 !! 믿어줘요!! "
" … 흥미롭다. "
" 찢어진 아가리라고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걸 보니 죽이고 싶어지잖아? "
" 싫ㅇ…. "
" 탕 - . "
타이치 공작의 처절한 마지막 발악을 듣고 있던 윤기는 마지막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잔인하고 화려했던 타이치 공작의 마지막 밤의 막을 내렸다. 뒤늦게 공작의 방으로 찾아온 호석은 윤기의 어깨를 두어번 치며 격려와 성공을 동시에 알렸다. 호석과 윤기는 더러운 피들로 가득한 이 공간에 미처 다 쓰지 못한 총알 하나를 허공에다 쏘았고, 그 마지막 총성은 공식적으로 그들의 여섯번째 타게트 - 타이치 공작 사살 작전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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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와 정호석이 여섯번째 타게트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2시간 전, 밤 8시. 김태형은 서구식 양장을 차려 입고 마츠이 백작의 사가 앞에 도착하였다. 연회가 열리는 장소가 맞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이미 백작의 사가 앞에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태형의 눈에 보였고, 하하호호 얼굴의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들은 일제히 백작의 사가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태형도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라 사가 안으로 들어가자 태형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마당과 그 위에 일렬로 놓여진 수많은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누가봐도 공들여 준비한 것이 느껴지는 풍성한 산해진미들이 테이블 위로 줄지어 놓여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보이는 작은 단상 위에는 마츠이 백작이 검은색 양장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 하고 있었으며, 백작의 뒤로는 그의 부인과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금지옥엽 외동딸이 붉은색 기모노를 입고 입에 미소를 은은하게 걸치고 있었다. 개새끼와 그의 자식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함을 느낀 태형은 곧바로 백작의 앞으로 다가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목례를 하고는 백작과 눈을 맞추었다.
「 " 아! 어서오시게. 못 보던 얼굴인데 …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 」
「 " 사쿠마 켄타로입니다. 일본제국에서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아 …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츠이 백작님. " 」
「 " 허허, 젊은 청년이 예의가 무척이나 바르구만. 여기, 내 딸아이를 소개하지. 인사드려라. " 」
「 " … 마츠이 코하루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 」
「 " … 사쿠마 켄타로 입니다. 소문으로 들은 대로 무척이나 미인이십니다. " 」
태형의 계획은 순탄히 흘러가고 있었다. 백작에게 인사를 하러 가기 전, 백작의 사가에 찾은 일본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얼굴과 직책을 외웠다. 그리고는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근처에 몸을 숨겨 품속에 있는 작은 종이를 꺼내 그들의 이름과 직책을 새겨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태형은 자신의 첫번째 타게트- 마츠이 백작에게 인사를 하러갔고, 그는 제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태형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침내, 백작의 손아귀 안에서 들어있는 가문의 꼭두각시 마츠이 코하루와, 백작을 노리는 김태형의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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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2 회 연재 기획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