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씨."
"네?"
"우리 오늘 세번째 만나는거예요."
"....그렇죠."
"근데 그렇게 예쁘게 하고오면,"
"..............."
"안아주고싶잖아."
::그대에게 물들다::
세번째
여보세요? 벨소리가 울린 것은 저녁 8시 카페에서였다. 잔잔한 배경음이 흐르고, 그 위에 사람들의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깔려 벨소리가 아닌 진동이 10번쯤 울릴때 여주가 급히 '기현씨'라고 적혀있는 액정화면을 보고는 급히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전화 해도 되는거죠? 기현은 여주 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금세 밝은 표정을 지으며 종이를 뒤적거리던 행동을 멈췄다.
"네, 당연하죠."
"그 때 약속 안잊었죠?"
"아........."
그 때의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상황이 기억난 여주가 얼굴을 약간 붉힌 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뒷목을 매만졌다. 내일 시간돼요? 기현의 물음에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전 시간 많아요. 잘됐네요. 나도 시간 많은 사람이라서. 내일 몇시쯤에 만날까요? 내일은 얼마나 예쁘게하고올건데요? 네? 그녀가 마치 기현이 앞에있는양 눈을 크게 뜨며 핸드폰을 쳐다본다. 그러나 기현은 여주가 일어나 준비를 할 시간까지 계산한 다음 아무 일 없다는양 말을 이어한다.
"1시 30분쯤에 집 앞으로 데리러갈게요."
"네."
"내일 봐요."
기현이 말을 끝낸 듯,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그렇다고 전화를 끊은 것도 아니기에 잠깐 당황함이 섞인 눈을 굴리던 여주가 3분이 넘어가고있는 통화화면을 쳐다보며 종료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원하는건가? 어떡해야되나싶어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대던 여주 의 귀에 별안간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든다.
"빨리 보고싶네."
"................"
"잘자요."
뚝- 그 말을 정말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속으로 꺄아아하고 부끄러움에 소리를 지르던 여주가 기현에게 문자를 날린다. 기현 씨도 잘자요. 그 짤막한 문자 하나를 보내기까지 웃음이 피식- 나오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내심 어제 '내일은 얼마나 예쁘게하고 올건데요?' 라는 말이 문득 눈을 뜨자마자 생각났다. 다행히 10시에 맞춰둔 알람에 깨어났고, 이제 예쁘게 꾸밀 일만 남았다. 왠지 기현이 기대를 많이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여주는 부랴부랴 준비를 한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베이지색 반팔과 함께 옅은 분홍색의 뷔스티에 원피스로 꽃단장을 마친다. 그렇게 예쁘 모습에도 여주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몇번이나 화장대 거울을 응시하며 입술의 색을 고친다. 결국 깔끔한 오렌지 색깔로 덧칠을 한 다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집을 나선다. 1시 20분이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현은 왠일인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원래 하던 대로 문을 열어 그녀를 조수석에 태운 다음, 고개를 비스듬이 한 채 묵묵히 앞만 본 채 운전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공들인게 독이 됐나. 약간은 섭섭한 마음에 여주가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그 옆모습을 기현이 그제서야 슬쩍 바라본다. 예쁜 모습에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는 설렘이 기현의 마음 속에 한가득 이었다. 그러나 여주는 그 속마음을 알리가 없다. 기현은 그녀가 숨을 들이쉬었다 내쉼과 함께 어깨가 쳐지는 모습을 보고는 입술을 몇 번 축이다 겨우 입을 연다.
"여주씨."
"네?"
"우리 오늘 세번째 만나는거예요."
"....그렇죠."
"근데 그렇게 예쁘게 하고오면,"
"..............."
"안아주고싶잖아."
차가 빨간 불에 걸려 멈춰선다. 기현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여주와 그제서야 눈을 마주친다. 기현이 금세 고개를 돌린다. '설렘'이 티가나는 모습에 여주가 그제서야 베시시 웃음을 지으며 "뭐예요~" 끝에 목소리를 올리며 기현을 콕콕 찌른다. 두번째 만남과는 다른 한껏 풀린 분위기에 기현이 어라?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본다. 기현이 운전대를 잡고있던 손으로 여주 의 얼굴을 약간 가리고 있는 한 쪽 머리를 쓸어 귀 뒤로 넘겨준다.
"나한테 그렇게 안기고 싶어요?"
".........네?"
"우리 진도는 천천히 나갑시다, 응?"
기현의 말에 콕콕 장난스런 행동을 멈춘 그녀가 약간은 멍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토끼가 오물거림을 하다말고 쳐다보는 모습과 똑같다. 기현이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을 남기고는 켜지는 파란 불에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다시금 운전에 집중하는 모습에 여주는 더 이상 뭐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1초에 한번씩 눈을 깜빡이며 기현을 말을 되뇐다. 기현의 첫번째 고백이었다.
-
"그런데 지금 어디가는거예요?"
어느덧 기현이 원하는 장소에 도착한건지 약간 구석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보니 오늘 어디가는지도 안물어봤다는 사실에 여주가 그제서야 어딘가로 걸어가는 내내 약간은 긴장한 듯한 기현의 옆에 따라 걸으며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기현은 대답이 없다. 여주가 "기현씨?" 하고 다시 한 번 부른다. 그 부름에도 대답을 하지 않던 기현이 몇 걸음 걸어가다 멈춰선다.
"...........여주씨."
"네?"
"둘 중에 하나만 골라요."
"...................?"
"괜히 걱정 되는게 정말로 혹시나...좀 그럴까봐..."
기현의 얼굴에 어색함과 긴장이 서려있었다. 말투 또한 끝이 흐릿하다. 아까전까지 보던 기현과는 다른 모습에 여주가 약간 표정을 찌푸린 채 고개를 약간 기울여 기현과 눈을 맞춘다. 대체 뭐길래 그래요?
"난 진심이니깐..."
".............."
"진심이라 생각하고 내 손 잡고 따라오던지, '이 남자 뭐지?'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내 손 잡고 따라오던지."
기현의 말은 다른 듯 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여주 의 선택권이라 함은 생각의 결정일 뿐, 손을 잡느냐 안잡느냐의 선택권은 없었다. 기현이 손을 내밀었다. 여주가 그 손과 기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선뜻 손을 잡았다. 궁금한 마음 보다는 기현의 진심을 믿기로 했다. 맞잡은 두 손이 흔들흔들거렸다. 그렇게 영략없는 커플의 모습을 한 기현과 여주는 단조로운 흰색의 건물로 들어섰다. 잠깐만요. 기현이 여주 의 손을 놓더니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무어라 몇마디 말을 건네더니 다시 여주 의 손을 잡아 미술가들의 작품이 가득 있는 곳으로 끌어당겼다. 놀람에 눈을 크게 뜬 여주가 그림들과 기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새어나오는 웃음을 흘렸다.
"와, 저번에 내가 미술 좋아한다는거 안잊었네요?"
",....그걸 어떻게 잊어요."
"미술관 온거 완전 오랜만이다!"
여주가 행복한 듯, 그림이 걸려있는 벽을 따라 걸었다. 그러는와중에도 기현은 자꾸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공간 안의 중반부쯤,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한 기현이 "어, 여기있다." 라며 여주 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옆에 서게 했다. 이때까지 그림을 감상하던 자신을 건드리지 않던 기현이 우뚝 멈춰서자 그녀가 기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림을 쳐다보았다. 얼룩덜룩한듯 보이지만 그 붓의 결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을 때 비로소 안개가 깔려있는 도시의 모습과 옆에 똑같은 기법의 가운데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소년의 그림이 보였다. 기현이 고개를 힐끔 돌려 여주를 쳐다보았다.
"어때요?"
"네?"
"나는 이 작가만 좋아하거든요."
그 말을 내뱉는 모습이 긴장이 풀렸는지 약간의 장난이 섞인 어투였다. 이 작가만요? 여주가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말을 되뇌어 물었다. 응, 이 작가만. 내심 어떤 대답이 들려올까 궁금함에 기현이 여주 의 입모양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 솔직히 말해도 돼요?"
"................"
여주 의 오묘한 표정에 기현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내가 여태까지 봤던 그림 중에 제일 좋아요."
"................진짜로?"
"네. 저 고등학생때 그림 그렸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 때 이런 느낌의 그림을 봤는데 꽂혀서 한동안 따라했었거든요."
"................."
"근데 그림은 각자 특징이 있는거잖아요. 나는 나만의 특징이 있고,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 사람만의 특징이 있는거고. 그 특징을 완전히 따라할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미술은 더더욱. 그래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저는 제 특징대로 살려서 그림 그렸었죠, 뭐."
"................"
"이 그림 집에 걸어두고 싶다."
여주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리믈 놓치지 않은 기현이 나오려는 웃음을 입술을 깨물어 막았다.
"그럼 집에 걸어두면 되죠."
"에이, 이걸 살 수는 없잖아요."
"나 다른 작품 집에 꽤 있어요. 내가 걸어줄게요."
"네?"
기현의 난데없는 말에 여주가 고개를 들어올려 기현을 쳐다본다. 기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림 밑에 조그마한 네임카드를 턱짓으로 가리켜보인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같이 시선을 돌려 여주가 눈을 찌푸린 채 가까이 다가가 네임카드에 적혀있는 세글자를 천천히 읽는다.
"유...기...현.."
풉- 작게 기현이 웃음을 터뜨린다.
"유기현???"
익숙한 세글자에 눈을 크게 뜬 여주가 고개를 돌려 기현을 쳐다본다. 어느새 웃음은 멎어있고,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이다.
"와, 여주씨가 내 그림에 이렇게 칭찬을 해줄줄은 몰랐네요."
"...........진짜예요?"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요?"
그 물음은 기현이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여주 의 손을 끌어잡고 나올때까지 계속 되었다. 기현의 직업을 알게된 여주가 그제서야 기현을 빤히 쳐다본다. '부러움'이 반 이상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시선을 알아챈 기현이 표정을 찌푸린 채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마요."
"네? 저 표정 이상해요?"
"아니, 그렇게 부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아........"
"내가 아까 그랬잖아요. 난 진심이라고. 내가 저번에 여주씨는 카페 하는거 알아놓고 나는 그 때 하는 일 제대로 안말해줬잖아요. 그거 미안하기도하고, 나도 알려줘야되기도하고, 미술도 좋아한다면서요. 그냥 진심으로 난 여주씨랑 같이 그림 보고싶어서 온거예요."
"......................"
"그리고 꼭 여주씨가 더이상 그림 못그린다는 법 없잖아요? 취미로 그림 그리면 되죠."
"뭐..그렇죠.."
"나랑 같이."
기현이 여주 의 엉성하게 오므려있는 손을 잡아 꼭 쥐었다. 그 따뜻함이 여주 에게도 전해졌다. 여주는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럼, 오늘은 기현씨가 그림 보여줬으니깐..."
"............"
"내일은 내가 하는 카페 보여줄게요!"
여주가 손가방을 뒤적거려 커피 한 잔이 그려져있는 갈색 카페명함을 꺼내 기현에게 건넨다. 그 카페명함을 받아든 기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죠, 뭐. 꼭 갈게요.
(일단 무릎을 꿇는다) 여러분 늦게온저를 치세여 |
제가 저번주 주말에 올려고했는데 시험공부를 너무 안했더라구여...허헣...하핳.....거기다가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서...진짜 죄송합니다ㅠㅠㅠ 오늘 저녁에 4화 꼭 올려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