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Hisaishi Joe-18-花園 _ Hanazono (꽃의 정원)
이건 꿈 일거야 맞아 내가 아직 꿈에서 깨지 못 한 것뿐이야
다시 잠들고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없었던 일로 될 거야
눈을 감고 어젯밤 일을 부정하고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해도 너무나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 장면은 어쩔 수가 없다.
서늘한 그녀의 흔적이 내 몸을 자극했다.
솜이불을 돌돌 말고 뒤척거리며 다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어젯밤 가게에서 한 마녀를 보았고 그녀는 나에게 저주를 걸었다.
그리곤 나에게 김태형이라는 자를 찾으라고 했다. 그자가 내 저주를 풀 수 있다고.
처음 보는 마녀에게 저주를 걸린 것도 모자라 처음 들어보는 남자의 이름 하나 알려주고 이 사람을 찾으라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쿵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깜짝 놀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하였다.
"탄소야, 아직 자?"
"..."
"진짜 자는 건가... 한 번도 늦잠잔적 없는 애가 오늘은 무슨 일이래... 아프기라도 한 건가... "
평소 같았으면 이미 가게에 나가 준비를 할 시간인데 아직도 이불안에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은월이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 일어났어. 은월아! 나 안 아파!'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쥐어짜내도 발악을 해보고 허벅지를 꼬집어보아도 쉰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너무 세게 꼬집은 탓인지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뭘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이런 시련을 주는지...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신을 탓하며 눈물을 닦았다.
쓸데없이 눈물만 흘려 봤자 내 목소리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더 좋아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은월이와, 남준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최소한의 짐만 챙긴 후 방을 나섰다.
뭐 짐이라고 해봤자 옷 몇 벌과 혹시 몰라 챙긴 약과 몇 개 뿐 이였다.
문소리가 나면 귀가 밝은 은월이가 뛰어올 것이 분명하니 조심스레 문을 닫고 뒤뜰에 있는 작은 문으로 가게를 나왔다.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가 곤란한 상황에 쳐할까 고개를 푹 숙이고 사람들을 지나쳐왔다.
사실 날 아는 사람을 꼽는다면 두 손을 다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적을 테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살던 고을을 벗어나기 전에 며칠 전 남준이와 왔었던 풀밭으로 올라 고을을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이였다.
마지막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눈으로 꼭꼭 담았다.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다리가 아프면 지나가는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에게 손짓 발짓을 하며 부탁해 얻어 탔다
그들은 나에게
"쯧쯧... 벙어리인가 보네 딱하기도 해라 정 그렇다면 가는 곳 까지 태워다 주리다. 참해 보이는 아씨가 불쌍해서 태워주는 거요."
"..."
나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표현 이였으니까.
***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 보니 김태형이라는 사람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풍문에 의하면 이 언덕을 넘어가는 곳에 산다고 했다.
그 풍문이 딱히 신빙성이 있어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난 그런 풍문이라도 의지해야만 했다.
그 언덕은 내가 살던 고을에서는 보기 힘든 척박한 언덕 이였고, 풀보다는 돌이 더 많이 밟혔다.
올라갈 수 록 거세지는 바람에 옷을 더 꽉 잡았다.
거센 바람은 먹구름은 불렀고, 먹구름은 소나기를 불러왔다.
차가운 빗줄기에 몸이 떨리고 저고리는 비에 젖어 팔뚝에 붙어버렸다.
'이제 비 피할 곳 하나 없구나. 어떡하지 다시 마을로 내려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는데...'
그 상황이 너무나 서러웠다.
눈을 꼭 닫아도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눈물은 빗물과 섞여 볼을 타고 흘렀다.
추위에 덜덜 떨리는 손등으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훔쳤다.
그때 희미하게 바알간 불빛과 굴뚝의 연기가 보였다.
처음엔 안개를 착각하고 잘 못 본줄 알고 눈을 비볐다.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니 그 연기와 빛은 더 선명했고 가까워졌다.
장작이 타는 냄새도 함께.
곧 내 눈 앞에 낯익은 구조의 집 한 채가 보였다.
난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그 집은 사람 마냥 쇠로 만든 다리로 나에게 걸어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어 집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순간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황국과 적국을 오고 간다는 이상한 마법사의 집.
벼랑 끝에 서있는 나에게 다른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썩은 동아줄일지 아니면 튼튼한 동아줄일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난 그대로 그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려니 문은 어느새 닫혀있었다.
낮은 계단을 오르고 집안 내부를 둘러보니 사람이 사는 집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더러웠다.
난 일단 비에 젖은 옷가지부터 말리기 위해 나름 가장 깨끗해 보이는 의자를 골라 먼지를 털고 불 앞에 앉았다.
다른 곳에 비해 불이 피워진 벽난로는 깨끗했다.
주위의 쌓인 조금의 잿더미만 치운다면 말이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는 온기와 편안한 의자에 긴장이 풀려버렸다.
"흐음... 까다로운 저주네."
"...!!"
"풀기 힘들겠어."
...불이 말을 한다.
말도 안 돼는 상황이지만 이 집에 들어온 것부터 말도 안 돼는 상황 이였기에 긴 생각은 않기로 했다.
대체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나처럼 저주라도 걸린 건가?
"저주는 아냐. 그리고 웬만하면 인간한테는 말을 잘 안하는데 넌 꽤 흥미로워서 말이지"
'...내가 속으로 말하는 게... 들려?'
"불이 말도 하는데 그런 거 하나 못하겠어?"
'네가 이 궁의 주인이야?'
"아니 주인은 아니고 내가 움직이게 하는 건 맞아. 내 이름은 린(도깨비불 린 燐). 원래 이름은 딱히 없었는데 이 집에 사는 어떤 미친놈이랑 계약을 하고 벽난로 신세를 지게 된 뒤로부터 그놈이 그렇게 부르더라고 너도 그냥 린 이라고 불러줘"
'린 혹시 네가 이 집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악마라면... 내 저주도 풀어줄 수 있어?'
나의 간절한 눈빛에 린은 손으로 보이는 불꽃으로 턱을 괬다.
검지를 까딱거리며 생각을 하는 시늉을 했다.
어쩌면 저주를 풀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생각에 린이 검지를 움직일 때마다 나도 애가 탔다.
"미안하지만 네가 여기까지 온건 나 때문이 아니잖아? 누굴 찾아서 온 거잖아 안 그래?"
'...'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널 도와줄게 그동안은 여기서 머물러."
'고마워 린...'
일단 머물 수 있는 거처가 생겼고 날 도와준다는 사람, 아니 악마가 생겼다.
그것만 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의자에 편하게 기대었다.
고단함과 피로가 몰려온 탓에 그 뒤로 쭉 잠이 든 것 같다.
***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내가 이 집의 주인도 아닌데 문을 열어줄 수도 없어 우물쭈물해 하고 있을 때 2층과 연결되어 있는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일단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린, 이 누나는 누구야? 처음 보는데...언제 들어왔데?"
"어젯밤에. 항구 마을이야 어서 가봐."
10살 남짓한 어린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더니 린의 재촉에 이내 발걸음을 돌리는 듯했다.
"큼큼... 이방께서는 어인 일로..."
"태형님께 전할 것이 있어서 왔소."
"스승님께서는 지금 외출중이니 제가 대신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살짝 뜨고 문 쪽을 보니 이방이라는 사람과 망토를 둘러쓴 조그마한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분명 날 발견했을 땐 맑은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 이었건만 지금은 늙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지만 어젯밤에 내가 불과 대화를 나눴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길게 생각하면 나만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누구야? 어디서 왔어?"
이런,
멍하니 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는 것을 놓쳤다.
다시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내며 망토를 벗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