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왔어? 그날 집에는 잘 갔어?"
"어, 나야 뭐…….아니, 너는 어떻게 됐는데, 괜찮아? 내가 가보고 싶었는데, 어제 이것저것 어쩌다보니……."
"아,아냐아냐, 괜찮아.
옷도 특히 두꺼운걸 입어서 그런가, 화상도 안 입었고, 다리랑 겹쳐서 쇼크때문에 그랬는데, 이제 괜찮아. 흐히히"
"쇼하고 있네, 이 새끼 이거 다 구라야, 난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씨발 또 그런 주제에 바득바득 우겨서 퇴원해가지고는 고작 학교나 오고, 어? 다리도 이게 뭐야.
이-만한 깁스하고, 이 병신아, 어?"
누가 지들 아니랄까봐 말 한마디 꺼내기가 무섭게 또 투닥투닥댄다.
꼴 보니까 역시 고백은 못 한것 같고, 으휴-..
일부러 성열이의 발을 툭, 치니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챘는지 민망한 듯 웃기만 한다. 어휴, 쪼다.
"아무튼, 상까지 받고-!! 무려 은상이라니까?"
"진짜? 은상? 은? 2등상?"
"그렇다니까!!!아, 맞다, 그래서 말인데."
"아 맞다 그래, 말한다는 게 잊을 뻔했네. 주말에 놀자!!"
"야,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주말에? 이번 주?"
"응-, 성열이 생일이기도하고, 우리 상도 받았고."
"어? 너 생일이야?"
"어, 8월27일. 이번주금요일!! 그러니까 토요일에 다 놀자고!"
"상 받은 건 따로 회식 안 해?"
"아니, 해-. 근데 성민이형이 일이 있어서 우리 팀 회식은 다음 주에 하기로 했거든-,
그러니까 놀자! 너랑 나랑 이성열이랑- 어, 명수랑...호원이랑……."
"우현이도 부르자! 우현이도 그때 갔었잖아,"
"음.....그래 그럼, 사람 많아야 재밌는 거지. 괜찮지?"
"싫어"
성종이도, 당사자인 이성열도 사람 많은 게 재밌다며 대충 끄덕끄덕 거리는 이 와중에 '싫다'는 단호한 음성에 뒤로 돌아봤더니
호원이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는 나를 잡아먹을 듯 쳐다본다.
"왜 그 새끼를 뜬금없이 끼워 넣어, 같이 놀던 애도 아니고. 이성열이랑 친한 것도 아니고."
"같이 놀던 애 맞잖아!"
"언제? 기억 안나, 어쨌든 난 싫다고."
아씨, 그냥 니가 싫어서 그러는 거 아냐 임마.
우현이의 교우관계에 내가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자주 부딪쳐야 화해를 하던 싸움을 하던 하지..
아니, 싸우는 건 안 되지만,
표정이나 태도를 보아하니 전-혀 그냥은 알겠다고 할게 아닌 것 같다.
뭐라 고해야 그냥 부르라는 말이 나올까,
호원이가 제일 신경 쓰는 거…….
이호원이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거.....음,?
"그래, 그럼 나도 싫어. 나도 안가."
"뭐?"
"나도 안 간다고. 안가안가,"
"넌 왜 갑자기.."
갑작스러운 내 땡깡에 내 생일인데...하는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성열이와 눈이 마주쳐 조금 찔렸다.
근데 방법이 이것밖에 없잖아,
"몰라, 어쨌든 너 그럼 성열이네서 자고 올 거지?"
"야, 장동우. 너.."
"그럼 난 우현이네 가서 피아노 연습 좀 하다 거기서 자고 올게, 열쇠 니가 챙겨 나갈 거지?"
"아이씨....야! 남우현!! 너 이리 좀 와봐, 너 토요일에 시간 있지?"
내가 거기까지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호원이가 오만상을 쓰고는 우현이를 불러
똑같이 삐져있는 우현이를 좀 달래듯이 같이 놀자면서 말을 한다.
그와 동시에 웃음이 터진 성열이와 성종이.
둘이서 아주 숨이 넘어갈듯이 웃고 있다.
착한 우현이답게 우현이는 결국 조금 감동까지 받아버린 표정으로 알겠다며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대화를 마친 호원이는 다시 내 쪽으로 와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하하항.
"풉,푸하하하학, 야 봤어 방금? 으하하하학"
"으하하하하하항, 아웃겨-.."
"니넨 뭘 또 웃어!!"
그리고는 또 빵터져 거의 배를 감싸 쥐고 웃고 있는 성열이와 성종이에게도 한마디를 던지고 짜증을 내며 교실을 나갔다.
내가 괜히 왜 그렇게 웃냐면서 핀잔을 주니 심호흡까지 해가면서 힘겹게 웃음을 멈추고 얘기를 한다.
"야, 너도 진짜. 너 안 간다는데 쟤 왜 저래? 지 고집 꺾을 새끼가 아닌데, 우물쭈물하는 거 봤냐,
아, 그것도 남우현한테-..아 웃겨."
"호원이 표정 봤어? 그, 진짜 짜증이 이-만큼 얼굴에 막 덕지덕지 묻어있는 게...으하학"
"아니 뭘 그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쟤 알고 보면 너 좋아하는 거 아냐?"
"어, 그런가?"
"야, 니네 설마 그럴 리가-.."
알고 말을 하는 건지, 그냥 막 던지는 건지.. 쓸데없이 예리하기는.
근데 그것보다, 쟤가 날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말을 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냐?
쟤도 남자고 나도 남잔데?
아, 내가바보구나. 얘네가 누굴 좋아하고 있는지 잠깐 잊었다.
얘네도 서로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
괜히 호원이를 핑계로 게이에 대한 서로의 인식이 어떤지 살피려는 듯, 눈치를 보는 둘.
이번에는 내가 웃음이 터졌다.
니네가 이호원보다 더 바보야-
/
그래, 성종이 사고에. 호원이의 뜬금없는 고백에, 아, 고백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그걸 들어버렸으니.
그리고 호원이와 우현이의 정면충돌에, 생일파티얘기까지.
아무튼 정신이 없었던 건 있다. 근데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명수를 까먹다니!!
마냥 들떠있던 나는 며칠을 난생 처음가지는 또래친구의 생일파티에 신나 있다가
고기를 산다며 돈을 모을 때가 되어서야 풀이 죽은듯한 명수를 발견했다.
내가 자기가 날 좋아한다는 걸 몇 번 써먹은 뒤로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건지 아닌 건지
아주 티를 낼 작정으로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호원이를 겨우겨우 떼놓고 명수와 앞뜰벤치에 앉았다.
미안함에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사온 스크류바를 슥, 내밀었더니 명수가 그걸 받아들어 포장을 까 입에 넣는다.
그리고 한참을 스크류바를 쪽쪽 빨더니, 입을 연다.
물론 큰 한숨은 잊지 않고.
"그냥……, 포기할라고……."
"음......어? 뭘!"
"뭐겠노...이성열 금마는 성종이 좋아하는 거 같지 않나...쪼매도 아이고 이빠이,"
"어.......응.......그렇지...응……."
"내가 포기하는 게 맞는 거겠제 아무래도..? 금마들은 우얄라나...소문나면 우짜지?"
생각해보면, 지금 명수도, 성열이도, 성종이도 이렇게 어린나이부터 동성애자로 힘들게 살겠구나.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시대에는 십년 후 보다는 훨씬 동성애에대한 인식도 안 좋을 텐데.
나야 처음부터 호원이가 있었지만....
호원이, 라고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교복을 다 풀어헤치듯 건성으로 입은 채
끝까지 어디 가냐고 징징대는 좀 전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이 따끔따끔하다.
내가 호원이 앞에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호원이는 능력도 없고 애교도 없이 떼만 써대는 나 말고
좋은 여자 만나서 예쁜 딸 낳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비생산적인 생각도 떠오른다.
근데 사실이긴 한거 잖아.
"근데....니...니 혹시..이호원..좋아하나?"
"어?나?이호원?"
마치 생각을 읽은 것 같은 타이밍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 하던 생각을 지우고 명수에게 되물었다.
명수는 그냥 추측인지 진짜 궁금한 표정으로 갸우뚱, 하고 아이가? 라며 다시 묻는다.
내가 슬쩍 눈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빙긋, 웃는다. 역시, 그랬구나―,하는 표정이다.
"역시-..근데 가가 와 좋은 건데?"
"어? 호원이? 음....아니...그게.."
지금 니 얘기하자고 만난 거잖아 우리.
니가 니 얘기 좀 들어달라는 듯 완전 우울한 표정이어서 내가 끌고 나온 거 아냐.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한테 물으면…….
"그냥.....그냥, 좋아. 착하고, 다정하고...섬세하기도 하고....잘 챙겨주고.."
"뭐라카노, 이호원 금마가 어디가 착하고 다정하고 섬세하고 잘 챙겨주는데"
"응? 아냐 호원이...."
"가 말고 뭐 동명이인 아이가? 가는 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도 니 좋아하는가, 그래서 그런가, 완전 다른 사람 얘기 같은데."
뭐라 변명을 하려는데 대 말이 뭐라 나오기도 전에 명수는 됐다며 그냥 한번 물어본 거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말을 꺼냈으면 듣고 가야 될 거아냐,
저, 지만 생각하는 갱상도 남자를 봤나…….
/
사실, 호원이가 다정했던 적은 없다.
언제 다정했어, 없지.
세심하긴 커녕 무디기가 그지없고, 잘 챙겨주긴. 내가 챙겨놓은 것도 다 엎는 지경인데.
그럼 왜 난 그런 말을 했지? 물론 호원이가 그런 사람이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얘가 걔잖아 어쨌든…….
내가 옮겨온 거지 호원이는 호원이고....아, 머리 터지겠네.
괜히 도와준다고 불렀더니 되려 고민을 안겨준 명수를 슬쩍 째려보니 엎드려 자고 있는 뒤통수가 움찔, 한다.
팔에 쥐나 나라, 흥.
저-앞자리를 노려보고 있는데, 고민의 당사자, 호원이가 와서 내 앞머리에 앉는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표정이 그래. 가뜩이나 못생긴 게."
"아, 안 못생겼거든?"
"그래그래, 아무튼, 우리 오늘마치고 장보러가자."
"장? 무슨 장? 저녁먹을거 있는데?"
"말고, 토요일. 그러니까 내일. 성열이네집이 그래도 우리 집이랑 제일 가깝거든. 술은 지가 사놓는다고 딴거 먹을 거 사다놓으래."
"으,으응? 술?"
"어, 축하파티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다면서, 뭐...그러던데."
"니넨 미성년잔데 그래서 어떡하게-"
"왜 니네는이야. 넌 왜 빼. "
"난 스무 살이거든?"
"니가?"
"아, 진짜야- 저번에 내가 말했잖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아무튼, 그러니까 보충마치고가자고."
"이씨....알았어."
그랬던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말했다니까는,
호원이는 내가 학교 또 다니는 게 말이 되냐고 거의 울듯이 징징댔던 게 기억도 안 나는지 대충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을 돌린다.
어쨌든 호원이와 장보기라니. 전에는 종종 갔는데. 몇 달만이야 이게.
그럼 안주로 먹을 만한 걸 사야 되는데-..
뭘 해보지, 그러지 않으려해도 조금 들떠서 보충수업 내내 공책에 샤프로 재료이름만 이것저것 계속 써넣었다.
도중에 자다가 깬 성열이가 그걸 보고 비웃고.
그럴 거면 잠이나 퍼자라고 막 때리다가보니 종이 쳤다.
시간진짜 빨리 가-
저녁을 먹고 갈까싶었지만 그냥 일어났다.
이제서야 생각이 드는 건데, 야자가 자율인건 진짜 축복이다.
"나, 잠깐 뭐 받을게 있어서, 이과반 좀 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려"
"응-갔다 와."
호원이가 다녀온다며 가방을 두고 이과반쪽으로 내려가고,
할 게 없어 자습은 할 생각인지 밥을 먹고 있는 성종이와 소소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성열을 반찬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가 내 팔을 툭툭 친다. 돌아보니 바로 우현이.
"왜?"
"저기, 너 불러, 난 간다― 안녕!"
"어 안녕-"
교실을 나서다가 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은 건지 우현이는 앞문 쪽으로 가리키고는 대충 인사를 던지고 반을 나섰다.
나도 인사를 하고 누군가 싶어 나와 봤더니, 이런. 의외이 인물이다.
민지, 민지다. 갑자기 난 왜 보자고 한거지.
너네 헤어진지도 거의 2주 가량 됐는데,
호원이찾는건가?
"이호원 곧 올 거야-, 찾더라고 말해줄까?"
"아냐, 용건은 너한테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 좋아, 와-, 진짜?, 멋있다.
같은 순한 말만 듣다가 민지의 입에서 좀 무뚝뚝한 말이 나오는 게 괜히 놀랍다.
날 왜...찾는 거지?
왠지 길어질 것 같아 성종이에게 가방 좀 가지고 있으라고 말을 하고 다시 나왔다.
복도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민지.
내가 다가오니 고개를 들었다.
"나, 왜?"
"그게.."
뭔가 말하기 힘든 이야기인지 눈을 몇 번 굴리다가, 벽에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날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입술을 뗐다.
"널 탓하지는 않아. 니 탓은 아니니까."
역시.. 예상했듯이 호원이 얘기다.
욕부터 나오고 내 머리채를 잡든가 뺨을 한대 날리든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차분한 민지.
이걸 뭐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이호원이 날 좋아하는걸 몰랐다면 그냥 뭐라 하든 나랑 상관없다고 잡아떼면 되는 건데,
그건 또 못하겠다.
"왜, 떠나지 않아"
뭐?
의외의 얘기에 놀라 나도 따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민지를 쳐다봤다.
여전히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가는 민지.
"갑자기 나타나서는. 내가 호원이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는 거잖아? 걱정되는 거야. 니가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어.
어디서 온 건지, 어쩌다가 호원이한테 온 건지, 언제까지 머물 건지. 너 때문에 호원이가 어떤 소문들을 끌고 다니는지, 알고 있는지."
진심인 게 보여서,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는 아니다.
내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것을 알고있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내가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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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었죠..ㅠㅠ...
어제 백일장을 다녀오느라...하루종일 컴퓨터를 못써서..
늘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