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여주는 정한을, 정한은 원우를, 원우는 정한을. 셋의 시선이 엉킬대로 엉켰다. 그 중 가장 먼저 시선을 거둔 건 다름아닌 원우였다. 멀어지는 원우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지고, 정한은 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원우 알아요?”
“…누구요?”
“…됐어요.”
“아 전 아직..!”
“방은 미안하지만 안돼요.”
“…아 저,”
정한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찜질방에서 잤어?“
”응..“
”…고생이 많다 야.“
“…그러게.”
피곤에 쩔은 얼굴, 여주가 먼저 와있는 시은의 옆에 앉았다. 오손도손 어느새 무리가 지어진 상태인 공간. 교수가 들어오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짧은 오티가 끝난 뒤론 아이들이 전부 나갔고, 책상에 엎드려버린 여주 덕에 시은은 또 턱을 괸 채 그런 여주를 내려다봤다.
“에휴. 우리 여주. 새내기 즐기지도 못하고 이게 뭐람.”
“…뒤질까?”
“뭘 또 뒤져… 살아야지. 에타는 계속 뒤지고 있고?”
“응… 아니 근데 진짜 여자 룸메 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없을 수 있어?”
“그러게나 말이다… 혼자 살고싶은 애들이 정말 많긴 많은가봐.”
“…………”
여주가 고개를 잠시 들고 시은과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책상에 고개를 박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머리칼이 여주의 얼굴을 감쌌다. 그런 여주를 보고 시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다음 수업이 있는지 몇몇 학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 원우도 있었다.
“…야 다음 수업있나봐. 가자..”
“…엉.”
“…………”
시은의 말과 함께 둘 다 일어서고, 원우와 잠시 눈이 마주친 여주는 먼저 시선을 피했다. 둘이 완전하게 강의실을 나가자 원우가 따라 나가더니 여주의 팔을 잡았다. 원우가 입을 열었다.
“살기로 했어?”
“…네?“
”윤정한이랑 살기로 했냐고.“
”…윤정한이요?“
”어제 로비에서 대화했던,“
”아.”
“…………”
“…아뇨. 왜요?”
부정의 대답에 원우는 잠시 여주를 내려다보더니 팔을 놓곤 뒤돌아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여주가 미간을 확 구겼다. 당장 욕을 뱉을 것 같은 여주에 시은이 급히 입을 막곤 공대 건물을 빠져나왔다. 시은의 손을 떨쳐낸 여주가 참고있던 분을 터뜨렸다.
“저거 분명 나 농락한 거지?”
“완전 아니었어.”
“야 쓉, 지가 재워줄 것도 아니면서! 완전 나 놀리는 거잖아!”
“전혀 아니었어- 그냥 물어본 거였어!”
“그니까 왜!”
지가 재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보냐고-!!!!!
“오늘도 찜질방?”
“아니.”
“그럼..?”
“…오늘은 동방.”
“…동방?”
시은의 기숙사 장롱에 잠시 캐리어를 맡긴 여주. 둘은 기숙사 건물을 나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찜질방은 죽어도 싫다는 여주가 선택한 건 다름아닌 동방. 얼마 전 휴대폰을 한참 만지작 거리더니, 동방에 가입한 듯 했다.
“동방에서 어떻게 자게?”
“소파 있대. 담요는 지금 내가 챙겼잖니.”
“야 위험하게.”
“도어락 잠그고 잘 거야.”
“무슨 동아린데?”
“…………”
늦은 새벽, 원우가 학생회관 건물을 거닐고 있었다. 지하로 터벅터벅 내려온 원우의 손엔 책이 한 권 들려있었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도어락을 풀어냈다. ‘독서 동아리 솔리브’. 펫말이 붙은 문이 열리고, 복도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이 잠들어있는 여주를 은은하게 비췄다.
“…………”
“…………”
책만 반납하려고 했는데. 원우가 생각했다. 끼익-, 철컥. 문이 닫히고 조금은 시끄러운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책과 함께 들고있던 휴대폰 후레쉬를 켠 원우가 책꽂이에 책을 꽂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려는 듯 하더니 적잖게 한숨을 내쉬며 여주가 잠든 소파 맞은 편에 앉았다.
“…………”
02:14AM
휴대폰을 켜 시각을 확인한 원우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책 한 권을 뽑았다.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있던 간이 스탠드를 제 쪽으로 당겼다. 스탠드를 켜고 밝기를 가장 낮춘 다음, 조용히도 책장을 넘겨댔다.
여주가 깨기 전, 새벽 여섯시까지.
“그러지말고… 어머니한테 말씀드리는 건 어때? 단기계약 알아보면-,”
“우리집 등골 휘어.“
”…소파에서 쭈구리고 자가지고, 지금 니 등골도 휘었어.”
“…………”
삼월 초 대낮. 시은은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고 여주는 그 다리를 베곤 누워있었다. 허리를 펴는 중이라고.
“…………”
동시에 정한은 저번 통화상대였던 지수와 또 다시 통화를 하다가 벤치에 앉아있는 여주를 발견했다. 지수와의 통화를 끊은 정한이 한숨을 푹 내쉬고 제 뒷머리를 한껏 헝크렸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안 받은지는 꽤 된 3학년. 월세를 전부 부담하기엔 힘이 든 정한에게 곧 월세 납부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납부는 할 수 있겠지만 그 다음은 생활비가 문제였다. 구하려는 남자 룸메는 나타나지 않고,
“저기,”
“…………”
“학생,”
”여주야, 너..“
”엉?“
정한이 여주를 내려다보고, 시은은 급히 여주를 건들었다. 여주가 눈을 뜨고 정한의 눈을 맞췄다.
”아직도 방 못 구했어요?“
”…………“
정한의 물음에 여주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 커진 눈을 한 채 여주가 답했다.
”네. 왜요? 선배님은 농락 아니시죠? 그쵸?“
”…농락, …됐고.“
그럼 그냥 입주해요.
홍홍홍홍흐으으음~
시은의 기숙사에서 짐을 뺀 여주가 정한에게서 받은 주소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여주가 캐리어를 덜커덩거리며 기숙사 건물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가는 도중, 동방에서 나오던 원우가 그런 여주를 마주했다. 여주가 원우를 보곤 뾰로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걸음을 멈췄다.
독서 동아리 방에서 책을 읽던 원우는 그냥 여주를 받아줄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어젯밤 이 곳에서 쪼그려 잠을 자고있는 모습이 퍽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짐을 또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여주에, 원우가 말했다.
“우리집 그냥 오던가.”
“허, 이제서야요?”
“…가자.”
“아뇨.”
원우가 여주의 캐리어를 잡으려던 순간 여주가 캐리어를 피하며 말했다.
“저 구했는데요.”
“…저번에,”
“네.”
“…………”
“윤정한 선배요.”
원우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혼자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거였어요?”
“집이 없었어. 그래서 같이 월세 부담할 사람이 필요했고.”
방 두개에 화장실 하나. 자취생에게 방 두개짜리는 필요없었으나 방이 없던 정한은 어쩔 수 없었다. 요리조리 방을 구경하던 여주에 정한은 여주의 짐을 한곳에 두곤 제 방에서 네임펜 하나와 에이포용지 하나를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여주도 눈치껏 정한의 앞에 앉았다.
“자 네가 적어.”
“네.”
“갑 윤정한, 을 김여주.”
”갑 윤정한..을.. 김여주..“
”나 김여주는 매 순간 방 문을 잠군다.“
”…예?”
“너도 어느집 귀한 딸일 거잖아. 빨리.”
“식사는 알아서 해결하며 설거지는 나오는 순간 바로 한다.”
“…………”
“…………”
“…………”
“화장실 사용 후, 깨끗하게 처리 한 뒤 나온다.”
빨래는 빨래방에서 건조까지 한 뒤 들어온다.
거실 사용은 자유로우나 소파에서 잠들지 않는다.
을은 갑의 침실에 들어오지 않으며 용건이 있을 시 노크 혹은 메시지를 보낸다.
을은 갑이 잠들었을 시 소음을 내지 않으며 만취 상태로 들어오는 일은 없게 한다.
“누구에게도 동거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
“………….”
“서명하고 이리 줘.”
“옙.”
마지막조항까지 적고 서명한 뒤 정한에게 건네자 정한도 사인을 하더니 마지막 조항 밑에 하나 더 적었다.
위를 어길 시, 보증금의 두배를 물어주게 될 것.
“…보증금이 얼만데요?”
“오백.“
”히익…“
”그니까 다 지켜.“
”…아 그 친구는 알고 있는 거 아시죠?“
”…아. 그래 그 친구 제외.“
”걘 발설 안해요.“
”왜. 한평생 친구였어?“
”아뇨. 세월이 우정 지킵니까?“
”…………“
그건 맞지.
정한은 여주의 말에 답하며 종이를 접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아서 짐 정리하고, 쉬어.“
”넵.“
”아, 근데 여주야.“
”네?“
”너,“
전원우랑 무슨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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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오랜만이라 암호닉 쓰기엔 염치가 없어서여 호옥시 계신다면 그냥 적어주시면 제가 다 알아봐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