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32
(부제 : 너와 내가 멀어지지 않았던 그때 ②)
"…아,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진짜라니까? 너 지금 내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여?"
아오!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이 제 가슴만 주먹으로 쳐댔다. 예상하지 못 했던 건 아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맨 처음 만났을 때, 전원우가 화를 냈던 이유는 뭔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것에 의해서 그랬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예상 밖의 범위 아닌가? 나는 이런 이유에서 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도 못 했다. 생각해봤자 공부에 관련된 안 좋은 소문일 거라고만 짐작하고 있었지.
"너 김태현 알지."
"응."
"걔 지 여자친구랑 죽고 못 살던 거 알지."
"응."
"근데 그 둘이 전원우 때문에 깨졌다고. 이런데도 말이 안 돼?"
…?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김태현은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였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난 후, 같은 반이 된 적 없어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치면 잘 살고 있냐며 안부 정도를 묻곤 했었다. 그때마다 항상 제 여자친구를 옆에 데리고 있었는데, 항상 나에게 너는 언제 여자친구를 사귈 거냐며 내게 염장 아닌 염장을 질렀던 그 둘이었지. 그런데 그 둘이 깨졌다는 건 지금 처음 안 데다가 그 이유가 전원우 때문이라는 것은 정말, 정말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김태현이 작년에 전원우랑 같은 반이었거든. 걔가 대체 어떤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여자애가 전원우한테 홀라당 넘어가버렸다니까? 그런데 또 웃긴 건, 전원우가 그 여자애를 찼다는 거야!"
"…아, 진짜 말도 안 돼."
"아 답답해 뒤지겠네. 그럼 니가 김태현한테 물어보든가!!!!"
"……."
"근데 그거 아냐? 걔가 그런 짓 한 거 김태현 하나만이 아니야."
너 학교생활 제대로 한 거 맞아? 어찌 된 게 하나도 모르네. 친구는 내게 혀를 쯧쯧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가보겠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모르겠다. 안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알던 전원우와 이미지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전원우는….
그냥 여린 애였다. 뭔가 두려운 듯 우리를 경계했던 처음과는 달리 점점 우리에게 마음을 열려는 그 아이가, 이제는 우리를 보며 웃어주는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게…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전원우는 대체 어떤 이미지길래 친구의 말을 못 믿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태까지 봐 온 전원우는 그냥 정말… 착하고, 또 여린 애였다.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이게 전부다.
시간을 확인하니 쉬는 시간이 끝나기까지 대충 5분 정도 남아있었다. 김태현이 몇 반이지? 나는 그냥 이과 반을 다 돌아다니면서 김태현이 어디 있나 찾아다니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얘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김태현!!!!!"
8반에 들어서자 보이는 김태현에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니, 김태현은 어? 하면서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아까 그 친구와 마찬가지로 김태현은 나를 보고는 꼴이 이게 뭐냐고 깔깔 웃었다. 아, 그만 웃고. 내 말에 알겠다며 웃음을 참던 그는 무슨 일이냐며 얼굴에 반가움을 가득단 채로 내게 물어왔지만, 나는 지금 그 반가움을 같이 즐겨 줄 시간이 없었다.
"나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너 전원우 알아?"
'전원우 알아?' 이 말에 김태현의 표정은 아까와는 다르게 정말 눈에 띄도록, 싸늘하게 굳어갔다.
"걔는 왜?"
"아니, 내가 걔에 대해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안 들어도 알겠네. 맞아."
"…어?"
"맞다고. 나 걔 때문에 이현진이랑 헤어진 거."
아… 씨발. 그 말을 끝으로 김태현은 작게 욕을 읊조렸다. 김태현의 반응을 보자니 아까 친구가 했던 말이 정말 사실인가 싶어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냐. 말 그대로 나는 이현진이랑 잘 사귀고 있었고, 전원우가 엮이게 되면서 깨진 게 끝인데."
"전원우가 뭐 했어?"
"내가 알아? 갑자기 이현진이 그 새끼한테 뻑 가버린걸."
"……."
"그렇게 된 건 정확히 전원우를 알고 나서부터야. 솔직히 전원우 공부도 잘하지, 성격도 괜찮지, 그리고 얼굴도 잘생겼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내가 먼저 말 붙여서 친구 먹었는데…. 걔랑 놀다 보니까 이현진도 자연스럽게 전원우를 알게 됐어."
"……."
"근데 그때 이후로 갑자기 이현진이 바뀌었어. 처음에는 오래 사귀었으니까 잠깐 권태기가 온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기다렸어.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런데 이현진이 나한테 내뱉은 말이 뭔 줄 아냐?"
"…뭔데?"
"헤어지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 아니 대체 왜? 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지만, 김태현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현 자기 자신도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뭐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고…. 그래서 내가 가서 존나 따졌지.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근데 자기는 아무것도 안 했대."
"……."
"솔직히 그게 말이 되냐? 지가 뭔 짓을 했으니까 갑자기 걔가 그렇게 돌아선 거겠지. 알잖아, 너도 내가 걔랑 얼마나 잘 사귀고 있었는지."
"……."
"그런데 내가 그때도 참 병신 같았던 건,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전원우랑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내가 걔한테 어떤 잘못을 했던가, 아니면 질리는 행동을 했었겠지. 그래서 전원우를 좋아하게 된 거겠지. 그만큼 나는 걔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야."
"하지만 결과는 어땠게? 전원우는 이현진한테 마음 하나도 없다고, 넌 나를 왜 좋아하는 거냐며 차더라. 그거 보고 있자니 빡이 치는 거야. 그래서 그때 개싸웠지. 결국엔 다 갈라졌어. 나나, 이현진이나, 전원우나."
"……."
"이현진도 미안한 건지 그날 이후로 나 계속 피하더라. 그러게 전원우를 왜 좋아해서는…."
김태현은 그때를 회상하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직접 당사자에게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으이구. 너 나 위로해주려고 찾아온 거야?"
"…어? 어."
"나 이제 괜찮아. 역시 친구가 최고네."
이제 종칠 때 다 됐으니까 그만 가봐. 너 옷 젖은 것도 어떻게 해야 될 거 아냐. 그 말을 듣고 시간을 확인하니 정말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알겠다며, 가 보겠다고 하고 발걸음을 떼는 내게 김태현이 잘 가라며 손을 크게 흔들어주는 걸 보면서 나는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반에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친 이석민은 화들짝 놀래며 교실 앞쪽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원래 같았으면 도망치는 이석민을 따라가서 네가 감히 나를 팔아먹냐며 헤드록이라도 걸 생각이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그냥 자리로 돌아가 앉을 뿐이었다.
"야- 화났냐?"
이석민은 차마 내 옆으로 오진 못하고 멀리서 나를 불러왔다. 그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도 못하고 머리만 쥐어싸매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내 어깨를 톡, 톡 두드려왔다.
"……?"
"이거."
전원우가 내게 내민 것은 수건이었다. 어디서 난 거냐고 물으니 물리쌤이 지나가다가 자신을 발견하고는 왜 이렇게 젖어있냐며 수건을 빌려주셨다고 한다. 물리…? 물리면 그 완전 까칠한 쌤 아닌가. 그 쌤이 그런 면도 있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고 있는데, 그제야 느낀 건 수건이 젖어있지 않고 보송했다는 것. 시선을 돌려 전원우를 바라보니, 전원우의 머리에는 물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야. 근데 이거 왜 나 줘? 너 머리나 대충 말리고 나서 주지!"
"…아까 우리가 도망가서 너만 걸렸었잖아. 그래서…."
이제는 4월을 마주 보고 있던 3월 끝자락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날씨가 쌀쌀했었기에 전원우의 입술이 퍼렇게 질려있었다.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가뜩이나 비리비리한 놈이. 마음은 고마웠지만 지금 그 수건이 필요한 건 나보다도 전원우로 보였기에 나는 그 수건을 집어 그의 머리에 뒤집어 씌우고는 머리를 탈탈 털어주었다.
"…? 민규야. 뭐해?"
"난 됐으니까 네 머리나 잘 말리고 있어. 나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선생님 오면 대충 잘 둘러대주고."
그래도 민규야, 이거 가져가! 축축이 젖은 체육복을 갈아입기 위하여 교복을 들고 반을 나서려는데 뒤따라 나온 전원우가 내게 수건을 쥐여주었지만, 나는 됐다며 다시 그에게 돌려주고는 화장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 겁나 찝찝하네. 그래도 속옷까지는 안 젖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텅 비어있는 화장실에 아무 칸이나 들어가 문을 잠그려는데,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더니 누군가가 쑤욱 들어왔다.
"으아아악!!!!"
"악!!! 씨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 미친 놈아!!!! 놀랬잖아!!!!!!"
나를 뒤따라 들어온 건 이석민이었다. 이 미친놈이 진짜 왜 이렇게 사람을 놀래키고 지랄이야?!!!
"여긴 왜 왔어?"
"야. 너 화 풀린 거 맞지?"
"뭐?"
"아, 빨리. 대답해봐. 풀린 거 맞지?"
아잉-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려오는 이석민에 잊고 있었던 분노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에 목에다 헤드록을 걸었다. 풀리긴 개뿔. 이 새끼야, 감히 날 팔아먹어?! 내가 헤드록을 세게 걸자 내 팔을 퍽, 퍽 때리면서 '아, 미안 잘못했어!!!' 하고 항복을 외치는 이석민에 나는 씩씩대며 그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었다. 켁켁대며 제 목을 부여잡던 이석민은 '힘만 더럽게 센 놈….' 하면서 나를 흘겨보았지만,
"뭐. 어쩌라고."
내 말에 흥, 하며 고개를 픽 돌렸다. 아 됐고, 빨리 나가봐. 나 옷 좀 갈아입게. 나가기 싫다며 문짝에 매달려있는 이석민을 밀어내고 있는데, 그 순간 온 학교를 울리는 수업시간 종 소리에 아, 망했다 하고 그를 퍽! 밀친 후에 축축이 젖어 잘 벗겨지지도 않는 체육복을 낑낑거리며 벗고 있었다.
"야. 근데 아까 물리가 줬던 수건 있잖아. 나도 옆에서 똑같이 젖었었는데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전원우만 겁나 챙기더라."
역시 이과 탑은 다른 건가. 쳇, 하며 투덜투덜 말하는 이석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래?' 하며 대충 대답하자, 이석민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수건이 생겼길래 개이득! 하면서 빌리려고 하니까 절대 안 빌려주더라. 너 줄 거라고 완전 꼬옥 가지고 있었어. 자기도 겁나 젖었으면서."
"……."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거라도 줘야겠대. 그러면서 진짜 안 빌려주길래 뒤에 있던 걸레로 대충 머리 말렸다."
"아, 더러운 새끼."
"뭐 어때? 어차피 집 가서 씻을 건데."
……봐봐. 내가 아는 전원우는 안 그래. 절대 그런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애란 말이야. 그런데 너네는 대체 왜… 걔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전원우가 정말 자기 자신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 오해에서 비롯된, 그런 거지 같은 상황이 발생했던 걸까.
"야."
"왜."
"너 전원우 어때?"
"전원우?"
뭐냐, 갑자기? 이석민은 뜬금없다며 물었지만 이내 대답했다.
"좋아. 너만큼."
"……."
"진짜 좋아. 너희 둘만큼은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
'너는?' 하고 물어오는 이석민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
"뭐야. 그럼 왜 물어봄. 난 또 뒷담 까는 줄."
싱거운 새끼. 이석민은 이제 빨리 나오라며, 쌤 들어왔겠다며 닦달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도 빨리 옷을 갈아입고는 이석민이랑 부리나케 교실로 뛰어갔다. 교실로 들어서자 보이는 쌤의 얼굴에 망했다… 하며 서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전원우가 뭐라고 둘러댄 건지는 몰라도 쌤은 우리를 '흠…' 하고 쳐다보시더니 얼른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자리에 앉아서 전원우를 바라보니 전원우는 선생님 몰래 내게 브이(V) 표시를 하고선 다시 고개를 돌려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굳이 이석민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이석민에게 말해봤자 이석민은 뭐 그딴 걸 신경 쓰냐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괜히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전원우에게도. 그 소문이 거짓이든, 설사 내가 알고 있는 전원우의 모습이 거짓이든 나는 일단 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그걸로 부딪힐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여자가 없었거든. 사실 소문도 그에 관해서 난 거니까, 그런 일로 우리랑 갈라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냥 묻자. 나는 지금 현재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나 혼자 가만히 묻어버리면 될 거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우리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셋이서 밥 먹고, 공부하고, 또 놀고. 하지만 전원우랑 다닐 때마다 느껴져오는 그 눈총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잘 지내고 있는데 주변에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지. 물론 김태현한테는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이상으로 전원우를 믿고 있었다. 이러다 이석민이랑 전원우도 눈치를 채게 되는 건 아닌지 나 혼자 노심초사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언제는 다른 애가 나를 붙잡고 물었다. 호들갑을 떨면서, 왜 전원우랑 다니냐고.
"너 쟤 소문 몰라? 하긴. 애가 워낙 반듯한 이미지라 대부분은 잘 모르더라."
"알아."
"뭐?"
"다 안다고, 그 소문."
"…그래?"
"어."
"그냥 친하게 지내지 마. 뭐 하러 괜히 엮여서 피곤해지려고 해?"
"안 피곤해. 그러니까 그만해."
"허… 너 원래 이런 애였냐?"
"내가 뭐."
"아니, 나는 그냥 너가 걱정돼서 얘기하는 건데 너는 지금…!"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난 지금이 딱 좋아서. 그래도 내 생각해준 건 고맙다."
그 애는 뭔가 아니꼽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더니,
"쟤한테 당한 애들이 한 둘이 아니야. 너도, 이석민도 조심해라."
그 말을 남기고선 발걸음을 돌렸다. 그 애가 떠나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파악 내쉬었다. 이제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긋지긋해 죽겠다. 다들 왜 이렇게 나와 이석민을 전원우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안달이 난 건지. 하루에 못해도 한두 번씩은 듣는 이 소리가 이제는 귀에 딱지가 얹힐 정도로 얼마나 거슬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전원우를 더욱, 아껴줘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6월 모의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거지만 전원우는 진짜 재수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왜 다들 이과 탑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사설을 포함하여 여태까지 봤던 모의고사에서, 그에게 올 1등급이란 기본이었다. 가끔 실수해서 과목 하나가 2등급이 나오는 정도? 이석민이랑 내가 재수없는 새끼… 하며 그를 째려보면 그는 그때마다 쩔쩔매며,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알려줄테니 언제든지 물어보라며 선의를 베풀었지만, 우리는 그것마저 재수 없다며 그를 더 째려보곤 했었다. 사실 우리가 째려볼 때마다 쩔쩔매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와 이석민이 더 그런 것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결국 모두 전원우의 과외를 받으며 오답 정리를 하곤 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전원우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곤 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뭔가 자극을 받아 나도 책을 꺼내들고는 샤프를 쥐었다. 이번에도 전원우는 시험을 잘 보겠지? 아, 나도 어디 가서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안 들어봤는데 은근 자존심 상한단 말이야. 살면서 전원우를 이겨볼 날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책을 펴놓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웃고는 다시 집중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뒷문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반에 들어오는 이석민에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쟨 또 왜 저럴까, 시험을 앞두고 맛이라도 간 걸까?
"야, 야. 민규야."
"왜."
"나 여자친구 생겼어."
"어."
……어?!!!!! 나의 큰 목소리에 어쩌다 보니 모두의 이목을 집중 받는 상황이 되어버려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말을 하자 그제야 아이들은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석민도 미쳤냐며 내 팔을 찰싹찰싹 때리고 있었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잠깐.
"야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지금 시험이 얼마나 남았다고 여자친구를 사귀어?"
"성적이란 한순간 지나가는 숫자들일 뿐…. 친구야. 성적이 못 나오면 다음을 기약하면 되지만, 사랑은 다음이란 게 없어."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냥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해."
"어, 맞아. 나 연애하고 싶어. 그래서 하려고."
큭큭.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는 이석민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얘가 왜 이럴까, 싶었다. 알다시피 이석민은 여자는 좋아하지만, 여자 앞에만 서면 말도 한 마디 못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는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모태솔로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여자친구가 생겼단다. 어떻게? 여자한테는 정말 숙맥인 이석민이 썸도 아니고 바로 여자친구를?
"네 여자친구라는 사람, 믿을만한 사람인 건 맞아?"
"응?"
"뭐 네 돈 떼먹으려고 그랬다거나… 널 가지고 논다거나…."
"아, 뭔 소리야! 그런 거 아니거든!"
"무슨 얘기해?"
우리 목소리가 제법 컸던 건지 전원우가 의자를 끌고 와 우리 옆에 털썩 앉았다. 괜히 공부하는데 방해를 한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에 많이 시끄러웠냐고 묻자 전원우는 그런 거 아니라며, 자기도 지금 공부하기 싫어서 놀러 온 거라며 씨익 웃었다.
"아니. 나 여자친구 생겼다니까 얘가 안 믿잖아!!!"
"헐. 너 여자친구 생겼어?"
"응. 진짜 완전 예쁘다!"
"예쁜 애가 너를 왜 만나?"
"이게 진짜!!!!"
주먹으로 어깨를 퍽, 퍽 때리는 이석민에 큭큭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자, 이석민은 못 믿겠으면 보여주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뭐 해? 내 말에 이석민은 얼른 안 일어나고 뭐 하냐며 되려 우리에게 물어왔다.
"보여줄 테니까 가자고."
"? 아, 우리 학교 애야?"
"응. 보고 놀라지나 마라."
의기양양하게 앞장서서 나가는 이석민을 보면서 저게 진짜 여자친구가 생긴 건가 아직도 미심쩍긴 했지만…, 나와 전원우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 여자애는 문과 애였는지, 문과 반 앞에 멈춰 선 이석민은 창문을 통해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하하 호호 떠들고 있는 여자들 중 한 명을 콕 가리켰다.
"쟤야."
"단발 머리?"
"아니, 그 옆에 긴 생머리!"
오… 이석민 말대로 예쁘긴 예뻤다. 물론 김여주보다는 아니지만. 이석민은 뒷문으로 걸어가 그 애를 크게 불렀다.
"자기야!"
미친, 자기야래. 원우야, 쟤 정말 미친 걸까…? 내 물음에 전원우는 그저 '그만큼 좋아하나 보지-.' 하며 넉살 좋은 소리만 해댔다. 이석민의 부름에 그 여자아이는 자기 친구들과 떠들다가 뒤쪽을 바라보았고, 이석민을 발견하자 얼굴에 웃음을 가득 매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뛰어왔다.
"웬일이야?"
"보고 싶어서 왔지!"
우웩…. 쟤 정말 미쳤나 봐. 저런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내가 토 나올 거 같다는 모션을 취하며 전원우를 바라보자, 전원우는 웃으면서 그러지 말라고 내 등을 툭 쳤다. 우리는 아예 잊어버린 건지 한참 그 여자애랑 꽁냥거리고 있는 이석민을 보다가 그냥 갈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여자애가 우리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고 나서야 이석민은 아! 하더니 우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 얘는 김민규고, 얘는 전원우."
"아… 그렇구나!"
"내 이름은 최유진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제가 너무 늦어버렸네요 언제 올렸나 보니 거의 3주만엨ㅋㅋㅋㅋㅋㅋㅋㅋ 돌아왔네요 제가 허허... 정말 죄송합니다 과거 이야기가 시작된 만큼 팍! 팍! 빠르게 진행했어야 되는 건데...ㅠㅠㅠㅠㅠ 이제 뭔가 대충 감이 잡히지 않나요 독자님들?!!! 감이 안 잡히시더라도 뒤로 가면 갈수록 다 밝혀지니까 조금만 더 열심히 달려보도록 해봐요....! 새로운 독자님들이 생겨서 저는 너무 기쁩니다ㅠㅠㅠㅠ허엉ㅠㅠㅠㅠ 독방에서 제 글이 가끔 언급이 되긴 하나봐요 너무 기쁘네요ㅠㅠㅠㅠ 앞으로도 열심히 적어보도록 할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들♡♡♡♡♡ |
♡ 암호닉 ♡ |
[일공공사님/ 빠삐코님/ 여남님/ 기네스님/ 셉요정님/ 귀찌님/ 천사가정한날님/ 허니하니님/ 밍구님/햄찡이님/ 원인님/ 뀨뀨님/ 날씨좋은날님/ 꽃소녀님/ 더블유님/ 꿀주먹님/ 럽세님/ 밍니언님/ 명호엔젤님/0808님/밍규님/빙구밍구님/밍구리님/순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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