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어제 그에게 들은 말은 나에게 꽤 많은 것들을 바뀌게했다. 문득 그때 일이 생각이 나면 슬프고 무기력해져서 한없이 우울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슬펐던 때가 있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신기했다. 이렇게 간단했던 일이었을까.
"너 무슨 일 있어? 며칠 내내 울어서 눈이 부어서는.."
"이제 안 울어."
"……."
"미안해 걱정했지."
"…지금은 괜찮아?"
"응."
"그 남자 때문이야?"
그 남자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으니까. 처음으로 수영이에게 그의 얘기를 꺼내보기로했다.
"과거에 알았던 사람인데.. 2년 동안 그 사람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가 그 사람을 미워했어."
"……."
"엊그제 그 사람을 오랜만에 마주친 거였는데."
"……."
"미워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마주치기 싫었던 것 같아. 미안해서 더 울었던 것 같고.. 왜 2년 동안 나를 찾아오지않았을까 그게 너무 서운했었나봐."
"……."
"지금도 미안해. 다 알고선 나 편하라고 미워한 거면서 차갑게 대한 게."
"그 사람한테 솔직하게 네 마음을 말해."
수영이 말에 나는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소희 언니와 결혼을 했고.. 그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이상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을 없기 때문이다.
수영이는 내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준 것 같았다. 이제서야 마음이 편해진 듯 웃으며 '일이나 하자'한다.
오늘은 여유로운 편이었다. 손님은 별로 없었고, vip고객이 많이 와서 긴장을 했던 것 빼곤 괜찮았다.
일이 끝나고 수영이를 보내고나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는데 뒤에 꽃집이 보였다.
꽃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2년 동안 누구한테도 받아보지 못했네. 한 번 꽃이라도 사볼까 꽃집으로 들어선 나는 예쁘게 잘 해놓은 꽃집에 작게 웃음이 났다.
"…어? 처음 오시는 것 같은데."
"…아, 네."
"이게 무슨 일이죠?"
남자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웃는 것 같았고, 나는 '꽃 좀 사려고..왔어요'하며 어색하게 대답한다.
"그렇겠죠 꽃집이니까?"
"……."
"누구한테 주려고요?"
"…저한테요."
"네?"
"저한테 선물하고싶어서.."
"……."
내 말에 남자는 잠시 당황한 듯 서있다가도 바보같이 아.. 하고 작게 말하고서는 예쁜 꽃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꽃 어때요."
"……."
"델피늄이라는 꽃인데요."
"…네."
"……."
"아, 하나 더 주세요."
나는 어떤 꽃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아무거나 줘도 괜찮다는 듯 고갤 끄덕이는 내 모습을 본 남자는 얼마 지나지않아 금방 나에게 꽃을 건네주었다.
그럼 난 하나를 다시금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
"꽃 선물 안 한 지 오래돼서.. 그냥 주고싶었어요."
"…아."
"……."
"고마워요. 저도 꽃 선물 되게 오랜만에 받네요."
"네?"
"꽃집을 해서 그런가 더 못 받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어색하게 웃어보이고선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있으니 어색해서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하고선 가게에서 나왔다.
꽃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나를 위해서 꽃을 산 적이 있었던가. 나쁘지않네. 나를 위한 꽃 선물도.
혜가 나가고 태오는 혜가 준 꽃을 들고선 한동안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델피늄의 꽃말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다.
"사장님~ 장미꽃 좀 주세요."
"…아, 네."
내가 이런 꽃말을 가진 꽃을 받아도 되는 걸까.
집에 들어와서는 책상 한켠에 꽃을 놓고선 턱을 괸 채로 꽃을 보았다. 꽃은 예뻤고 마음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전혀 연관이 되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떠올랐을까?
오늘도 그가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는 오지않았고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을까 싶기도했다.
그래도 나는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가 계속 떠오르는 걸까.
그는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이 난 건 그의 명함이었다.
지갑 속에서 그의 명함을 꺼내보던 나는 쉬는시간이 끝나서 급히 직원실에서 나왔다가 익숙한 사람과 눈이 마주쳐 어? 하고 바보같은 소리를 내었다.
"여기 어쩐 일..로.."
"너무 놀라시는 거 아니에요?"
"……."
"점심 먹으러 왔어요."
"……."
"어디 앉으면 돼요?"
꽃집 사장이었다. 혼자 먹으러 왔다며 내가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는 사장은 주문을 하고선 내게 웃어주었다.
그리고선 주문할 게 있으면 자꾸만 나를 보며 부르는 사장님에 나는 머쓱하게 사장님에게 다가가 말했다.
"혼자.. 드시는 거예요?"
"네? 아, 네..왜요?"
"아니요.. 그냥.."
"이거 하나 더 주문할게요."
"…네."
"마음 같아서는 매출 더 올려드리고싶은데. 제가 조금 있다가 밥 약속이 있어서."
"…저는."
"……."
"여기 알바라서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네?"
"…농담이에요. 감사해요."
"…아, 아..네."
그렇게 나는 사장님과 처음으로 마주본 채로 웃어보았다. 사람이 참 좋아보여서 그랬던 걸까 그냥 내가 끌렸던 것 같다. 그냥 이러고싶었다.
마감 준비를 하고있는데 밖에 쓰레기를 버리고 온 알바생 남자 동생이 개구장이같은 얼굴로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크게 말한다.
"혜 누나 남자친구분 와 있으신데요?"
"응? 남자친구??"
동생의 말에 수영이가 엥? 하며 나를 보았고, 나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그럼 난 궁금한 듯 문을 열고 나와보았고..
"…어?"
"내가 남자친구예요?"
"…네?"
"엄청 크게 들리던데요."
"아! 아니요. 그냥 동생이 장난친 건데.."
"이제 끝나죠? 저랑 커피 한잔 합시다."
그는 참 독특했다. 원래 같으면 커피 한잔 하지않겠냐 묻는 게 맞는데. 넌 그래야만 한다는 듯 말을한다.
"그.. 일단은.. 제가 일이 아직 안 끝나서요."
"기다릴게요."
"……."
"천천히 나와요."
"커피.. 마신다고 한 적은 없거든요. 기다리지 마세요..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그 말에 나는 고갤 천천히 끄덕이고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럼 모두가 무슨 일이냐며 나에게 들러붙었고, 나는 동생을 탓했다.
"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그런 사이 아니란 말이야."
"아, 그래요? 아니 요즘 누나랑 같이 있는 게 자주 보이길래."
"…뭘 자주 봤다고 그러냐."
"헤헤..쏘리~"
마감을 하고선 나오는데 동생과 수영이랑 같이 나오는데 괜히 찝찝했다. 이 동생이랑 같이 나오는 게 맞나.
"어!!! 이 차!!! 인터넷에서나 봤던 차인데!! 대박! 미쳤다!!!"
그러지 말 걸.
"와 진짜 이거 승차감 엄청 좋다면서요! 진짜예요? 와, 진짜 궁금했는데.. 이걸 실물로 볼 줄이야. 와.. 타보고싶다..."
진짜로
"그럼.. 괜찮으시다면 태워다드릴게요. 타세요."
"와!! 진짜요? 그래도 돼요!?!?!?!"
진짜 그러면 안 됐다. 급히 그를 바라보며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면,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혜 씨도 같이 가죠?"
"…네? 아니 저.."
"갑시다."
내가 친구들이 탄다면 같이 타야된다는 걸 알기에 그는 친구들을 태운 것 같았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다가도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 제대로 본다면 빵터지겠지.
"감사합니다~"
수영이 마저도 날 보고 웃으며 차에 올라탔고, 나는 골치 아파 머리가 다 아팠다. 이게 뭐야 진짜..
"와 진짜 미쳤다! 미쳤어!"
미쳤다고 뒷좌석에 앉아서 내릴 때까지 감탄하는 동생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 그래도 그가 편한 사람도 아니고..
그한테 사과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이래버리니까 더 죄인이 되는 것만 같았다.
동생이 내리면서 수영이도 같이 내렸고, 나는 어색하게 그와 차에서 아무말도 않고 있다. 곧 우리집 앞까지 도착을 했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내리려다가도 급히 생각이 났다.
오늘 꼭 그 말을 해야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차가웠던 이유. 근데.. 그가 먼저 날 붙잡았다.
"잠깐 걸을까요?"
"네?"
"잠깐만 걸어요. 아주 잠깐이라도요."
차에서 내린 그가 여기요- 하며 미리 사놨던 미지근한 차를 내게 건네준다.
"기다리면서 좀 식었네요."
"…감사해요."
나를 위해서 차를 사왔다. 마음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오다가도 눈이 마주쳐 바로 표정을 굳혔다. 아직 그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게 어색했다.
그래도 오늘은, 지금은 내 진심을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니까 용기를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