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 선생님. "
대답하는 대신 놀란 눈.
단추를풀었다.
" 나 아파요. "
무시하는 대신 다가온 그.
살짝 웃었다.
" 안아줘. "
박찬열은 비웃는 대신 나를 끌어당겼다.
-
새로운 학교에 배정받았다.
여기에서 조차 주목을 받고싶진 않았다.
학교 선생님과 의사가 오랜 꿈이여서 보건선생님으로 들어왔지만 어느 학교에도 오래 정착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계속 안좋은 소문이 퍼져서겠지.
어떤 방식으로 나가든지 이유는 불순한 관계였다.
젠장.
새로온 선생님들의 소개를 한다고 밀려나간 강당 앞에서 마이크를 잡자 바보같은 습관이 나와버렸다.
...여기에선 절대로 튀어선 안된다.
" 박찬열. 보건선생님이다. "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망했다.
당황스러움에 초점을 잡지 못하고 눈을 또르륵 굴리는데 어느 순간 시선이 멈춰버렸다.
앞 줄 끝에 앉아있는 아이.
조용한듯이,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아이.
선해보였지만 눈빛은 그렇지 못했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회피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예전에 내게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늘이 이어준 인연은 새끼손가락에 보이지 않는 빨갛고 얇은 줄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그 아이의 손이 뒤로 갔을 때 내 손이 앞으로 조금 나온 것 같았다.
.
보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여자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선생님 몇 살이예요? "
" 쌤, 여자친구 있어요? "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깔깔대며 서로 웃는다.
시끄럽다.
하나같이 진한 향수냄새나 뿌리고 다니는 돌덩어리들.
여태껏 불순한 관계로 학교를 옮겼지만 절대로 여학생이라던가 여교사와 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난 동성애자거든.
우당탕탕-
어디선가 요란하게 뭔가 구르는 소리가 난다.
뭐가 넘어졌나.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보건실 문이 열린다.
" 새로온 보건선생님 안녕, 나 다쳤는데 치료 좀 해줄래요? "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본능적으로 뇌에서 내게 외쳤다.
만만치 않은 상대가 나타났어.
라고.
.
시끄럽던 여학생들을 모두 내보낸 뒤에 녀석을 바라봤다.
아까 그 아이다. 날 보던 아이.
근데 꼴이 말이 아니다.
누구한테 얻어맞고 온건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에 상처에 제대로 된 곳이 없다.
침대에 가있으라고 했지 혼잣말하라는 얘긴 안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혼자 궁시렁거린다.
칭얼대는게 애기같아서 소리없이 웃음을 흘리다가 약을 들고 침대로 갔다.
" 벗어. "
너무 단정지어 말한건지 모르겠지만 잠시 허공을 응시하듯 하더니 망설임 없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다가 세게 뛰기 시작한다.
하얀 속살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 지 모르겠다.
아이도 아무 말이 없었고 나 역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공기가 뜨거웠다.
아냐. 아이가 내뱉는 숨이 뜨거운거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걸 알아버렸다.
이 아이는 나에게 본능적인 반응을 한다.
나도 모르게 묵직해지려는 아랫도리를 무시하려고 소독약을 급하게 상처에 갖다대자 따갑다며 이상한 소리를 꽥꽥지른다.
너도 시끄럽구나.
조용히 하라는 뜻이 담긴 짧은 단어 한마디에 아이의 숨이 멎었다.
" 보건선생님. "
" 왜. "
" 찬열선생님. "
목소리가 떨려올 것 같아 대답을 못하겠다.
애써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상처를 치료하기만 했다.
" 찬열 선생님, 찬열 선생님, 찬열 선생님. .... 찬열아. "
" 뭐라 지껄였냐 학생아. "
이 당돌한 녀석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할지 벌써부터 불안해졌다.
내 이름을 부른다. 그 지독하게 아름다운 입술로 .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가 자신의 이름이 변백현이라 말한다.
변백현.
아이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
조용이 읊자 성을 떼고 불러주길 바라는 것 같다.
한숨이 나온다.
널 어떻게 해야할까.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널 어떻게 해야 내가 편안해질까.
아이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 나 게이놀이 중인데 선생님도 같이 할래요? "
헛소리다. 저건. 헛소리야.
그저 날 놀려보고 싶은 마음에 아까 왔던 여학생들 보다 좀 더 짓궂은 소리를 해대는거다.
말을 돌리기 위해 상담을 받으라고 했지만 돌아온 말은 위험했다.
키스하고싶다-라.
당당하고 거침없는 발언에 당장이라도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었지만
조용히 생활하겠다는 다짐을 한시간도 안돼서 깨뜨리고 싶진 않았다.
치료노트를 적고 가라고 하니 뭔가를 열심히 쓰더니 활짝 웃으면서 나간다.
이름과 사유를 적는데 뭐가 그리 즐겁나 싶어 아이가 나가고 노트를 보았다.
하.
엄청난 여우한테 걸려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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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저도 엄청난 분량의 시점에 걸려버린 것 같네요.ㅋㅋㅋㅋ
(독자분들은 그렇지 않으시겠지만 훗)
지루하게 읽지만 않으셨다면 좋겠네요...
찬열 시점은 두편 정도로 나눠질 것 같습니다..♥
계속 쓰고 있어요 (수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