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은 모두에게 친절했다. 데뷔때 다른 형들 눈치 보기 급급했던 혁은 자신을 챙겨주는 거의 유일한 형이었다.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도 도움을 주었고, 멤버로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에도 엔의 역할이 컸다. 그는 리더이기 이전에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문제는 같이 데뷔를 하고나서 였다. 그때, 솔직히 말하면 주늑들어 있던게 사실이었다. 오랜시간 같이 연습했던 형들을 떨어트리고 올라온 혁이었고, 그런 혁을 막상 대놓고 좋아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심리. 멤버들은 몇일간 혁과 서먹한 하루들을 보냈다. 그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을 챙겨주었던 건 엔이었다.
"너는 앞으로 다른 멤버들이랑 잘 지낼거야."
예언처럼 했던 말. 그 말은 사실이 되었고, 그 말이 사실이 되었을때, 엔이 그 말을 위로로 한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엔은 생각보다 남을 위로 할 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혁은 조금 늦게 깨달았다. 타인에게 친절하면서 위로 할 주를 모르는 아이러니한 사람. 혁이에게 차학연이라는 사람은 춤에 대해선 존경 스러웠고, 사람을 꺼리낌 없이 대하는게 신기했으며, 가끔 짓는 어색한 표정에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학연을 몇일 관찰하다, 문득 깨달았다. 그에게 혁은 막내나, 팀원이라서 잘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 과민반응을 하는 내가 있기에 그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 결론이 내려지자, 혁은 문득 궁금했다.
"형은 나를 좋아해요?"
의심해 본 적 없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그가 배푸는 호위중에 하나인 혁이가, 학연에게 과연 어떤 존재 일지 말이다.
모두에게 친절하다. 친한사람, 안친한 사람, 처음보는 사람에게 모두 친절한 사람은, 자신의 지인을 구분하는지 궁금했다. 학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넌 날 존경하고 신뢰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잖아."
너가 날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나에게 그런것을 묻냐는 표정이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도, 혁이는 믿기 힘들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인에 대해 좋고 싫고가 없었다. 학연에게 혁이는 그냥 옆에 존재하는 것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때 부터였다. 일반인이 보기에 엔몰이라고 하는 것이 시작된 것이. 그건 어느정도의 발악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표시 였을 지도, 나 좀 인지해 달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
"이지메는 좋아한다는 표시가 될 수 없어."
혁이가 대학교에서 읽었던 책의 한구절이었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아이가 좋아해서 그랬다며 사과를 하자, 주인공 여자아이가 거침없이 내뱉었던 말이었다.
"나에겐 상처로 남았는데, 너는 간혹 떠오르는 좋은 추억이 되겠지. 구역질나. 나만큼 너에게도 지옥같은 추억이 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남긴 여자아이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하찮은 발악이 아니라 두려운 기억으로 각인될 수 있을까?"
팔을 그을까? 미친 여자를 경험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닐것이다. 구해주기 까지 한다면, 내가 이렇게 잘난 사람이라 떠들것이다.
죽어 버릴까? 그것 역시 잠 몇번 뒤척일 정도의 경험이지, 평생 그를 괴로움에 몸부림 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맞다. 그러면 되겠다."
똑같은 입장으로 만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이지메를 당했던 자기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하여 나를 떠올릴 때 마다, 나약한 자신 역시 같이 떠올리게 하자.
그렇게 결정한 여자아이는 자신의 재산을 몽땅 털어 그의 주변 사람들을 매수했다. 똑같은 이지메, 결과는 여자아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여자아이는 아이가 아닌 여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
똑같은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게 만들어서, 노래를 부를때마다 그가 생각나서 노래하는 게 괴로워진 것은, 학연이 혁이에게 하는 복수 일까?
상혁은 학교에 휴학을 신청했다. 그는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 책을 발견하고 그런 생각들을 했다. 이 책에서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옳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한 사랑은 그 아이의 비극적 결말을 이끌었다. 한번이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진부하고 뻔한 이 소설의 주제였다. 이 진부하고 흔한 주제를, 혁이는 이제야 하고 있다.
"형은 우리를 과연 좋아했을까?"
우리는 과연 형을 좋아했을까?라고, 상혁은 돌려서 생각했다. 그 질문은 본인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위로하는 게 어색한 사람은, 위로 받아 본적이 없어서 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