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댓바람부터 재수가 없었다.
황금 같은 주말 아침의 단잠을 깨우는 망할 벨 소리는 둘째 치더라도, 그 내용은 실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문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비몽사몽간에 휴대폰을 집어든 나는 재효 형의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선전 포고에 튕기듯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형,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미안, 일이 그렇게 됐다. 미안해 지훈아.]
“아니 그게 말이 돼? 형이 사정사정해서 겨우 알아 봐준 알바자리잖아!]
[나도 웬만하면 가고 싶은데 어쩌다보니 MT를 경주로 오게 돼서. 나도 출발한 직후에야 겨우 기억난 거라…….]
“뭐?! 그럼 지금 경주라고?”
[으응. 어, 어? 지훈아 나 친구들이 부른다, 진짜 미안. 내가 담에는 진짜 크게 한 턱 쏠게.]
“형! 끊지 마, 끊지 마. 혀엉! 형, 야, 안재효!”
뚜뚜뚜- 단조로운 신호음만 반복하는 휴대폰을 들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져서 냅다 침대에 내던지고 베개에 푹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한바탕 욕을 퍼부어줄까 하다가, 안재효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냥 관뒀다. 순식간에 우중충해진 기분에 나는 연방 허공에 헛 발길질을 날렸다.
“아이씨! 그걸 당일 날 아침에 말해주는 게 어디 있냐고!”
사건의 발달은 이랬다. 아버지랑 대통 싸운 바람에 당분간 용돈이 끊겼으니 급하게 알바 자리를 구해달라는 것. 곧 여자친구 생일이라며 애타게 울부짖던 재효 형이 측은해 이 몸이 특별히 아는 지인을 통해 겨우 찾은 일자리였다. 우리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건물 지하에 있는 아쿠아리움인데, 겨울방학 시즌이라 손님이 평소보다 곱절로 불어나 일손이 모자라다고 했다. 만약 재효 형이 펑크를 낸다면 많은 직원들이 곤란을 겪을 터였다.
나는 표독스럽게 탁상시계를 노렸다.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침은 이제 막 일곱 시 십 분을 지나고 있었다. 출근 시각은 여덟 시까지. 씻고 옷 입고 나가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머리를 쥐 뜯으며 덫에 걸린 짐승처럼 구슬프게 울었다.
정오까지 퍼질러 자려던 내 계획은 이렇게 불시에, 전화 한통으로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오일] 세 번의 만남
w. 검백
“제기랄.”
욱씬거리는 다리를 톡톡 두드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홉시부터 한 시까지 무려 4시간을 허수아비처럼 제 자리에 죄 서서 한 번도 앉지를 못했다. 차라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게 훨 낫지 한자리에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다. 아니, 생전에 나는 아르바이트란 걸 한 적이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상류층에 속하는 나로서는 돈이라면 늘 풍족했으니.
더구나 원래대로라면 지금까지 침대에서 곤히 낮잠 잘 시간이었다. 졸음과 피로로 쑥대밭이 된 내 피부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거칠거칠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라면 대타를 구했다는 것 정도. 이 지겨운 알바도 오늘이면 끝날 터였다.
“지훈아, 우리 음식 시킬 건데 넌 뭐 먹을래? 짬뽕?”
“생각 없어요.”
재효 형 때문에 원치도 않은 일에 휘말린 터라 나는 아까부터 계속 부루퉁한 채였다. 차가운 내 말에 상대방이 머쓱해졌는지 가타부타 말도 없이 탁- 문을 닫는다. 짜증이 곰팡이 번식하듯 이곳저곳에 가쁘게 피어올랐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어디 마음 한 구석이 휑하니 쓸쓸하다. 나는 유니폼으로 함께 나온 답답한 보타이를 풀어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쿠아리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와보지만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다. 파란 물과 인공조명, 비슷비슷한 생김새의 물고기는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 기분이 점점 더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뗐다.
“아야!”
가슴팍에 번지는 둔탁한 고통. 초점 없이 풀어졌던 동공을 휘익 움직여 내 앞에 있는 사람으로 옮겼다. 멍하니 걸었더니 앞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꾸벅- 예의바르게도 90˚ 로 반듯이 고개를 숙인다. 정작 부딪힌 건 이쪽인데도. 나는 눈대중으로 상대방의 윤곽선을 훑어 내렸다, 가족끼리 놀러 나온 초등학교 5, 6학년 쯤 돼 보이는 꼬마였다. 겨울철이라고 푹 눌러쓴 방울 모자와, 해리포터가 떠오르는 똥그란 안경테, 입었다기 보다는 거의 ‘파묻혀’ 있는 카키색 야상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귀여운 아이다. 평소라면 수준 차이난다고 상대도 안했을 어린애에게 말을 건 것은 그날의 변덕이었을까.
“몇 살이야?”
부지불식간이었다. 나는 떠나려는 꼬마의 팔을 잡고 그렇게 물었다. 해저 터널에 들어온 탓에 꼬마의 얼굴에는 파란 물결이 투명하게 일렁였다. 그 모습이 꼭 바다 속에 사는 인어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쌍커풀 없는 눈이 순수했다.
“예?”
꼬마는 조금 놀란 듯했다. 하긴, 낯선 형아가 다짜고짜 나이를 알려달라고 하면 나도 좀 황당했을 거다. 나는 재빨리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며칠 전에 친구가 줬던 레몬 맛 사탕이 손가락에 걸렸다.
“이거 먹을래?”
“…….”
경계심을 풀려고 준 뇌물인데 꼬마의 얼굴이 더욱 의심쩍어졌다. 머쓱해져서 나는 다시 사탕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고기 좋아하나봐? 난 물비린내 나서 물고기 별로인데.”
“저기요.”
“어어, 말해.”
“그쪽 나이가 어떻게 돼요?”
습관처럼 18살, 이라고 말하려던 나는 19살로 정정했다. 지금은 해가 바뀐 1월 달이니까. 내 말에 꼬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뻐끔하더니 푹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나 스물두 살이야.”
많은 말이 함축 돼있는 문장이었다. 우선,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다’ 와 ‘그러므로 넌 나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어리지 않다’. 믿을 수가 없었다. 끽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가 실은 스물 둘이라니?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스물 둘이라고?”
기함하고 묻는 나에게 꼬마, 아니 그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심드렁한 눈빛이 이런 경험은 이제 익숙한 듯 모든 것을 통달한 표정이었다.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하나의 명확한 증거가 낫겠다 싶었는지 그는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냈다.
“자, 이거 봐. 학생증.”
명명백백한 그의 학번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그가 다니는 대학에 놀랐다. 이름만 들어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는 초 명문대학에 재학 중이라니. 젖살도 덜 빠진 아이 같은 그가 공부벌레와 천재들의 집합소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입을 딱 다물었다. 설마 학생증까지 위조해서 지갑에 넣고 다닐 일은 없으니 사실이라 믿어도 좋을 터였다.
“방학이라 여기서 알바 중인가 봐?”
“아, 뭐 그런 셈이지.”
제멋대로 펑크 낸 재효 형 때문이지만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에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 대충 얼버무렸다. 어느덧 말꼬리가 짧아진 그는 눈을 가늘게 접고 수조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그의 옆얼굴은 확실히 정면보다는 더 성숙해 보였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참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아쉬웠다. 안경을 벗었다면 그 눈을 더 또렷이 볼 수 있을 텐데.
“저 열대어 말야, 베타라고 하는데.”
그가 손을 들어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열대어를 가리켰다.
지느러미가 인상적인 놈이었다. 비단결 같은 은빛 지느러미는 꼭 꽃잎처럼 팔랑팔랑 흔들리며 물살을 가로질렀다. 몸체는 은은한 선홍빛이었고 지느러미는 은빛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귀족같이 우아한 동작이었다. 한낱 어류에게 이런 말을 붙이기는 뭐하다만, 굉장히 기품 있고 고고한 열대어였다. 자맥질 하는 녀석을 눈으로 좇으며 호흡하는 아가미를 빤히 응시했다. 손끝에 닿으면 맥박이 둥둥 울릴 것만 같은 힘찬 박동.
“멋있게 생겼지? 근데 성깔이 장난 아냐. 같은 수컷끼리 붙으면 꼭 한 놈이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물고 뜯고 싸우니까. 산란기가 아니면 암컷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해. 그래서 투어(鬪漁) 라고도 불려, 베타는.”
물고기에 조예가 깊구나. 오물오물 입술을 달싹이는 그를 보며 나는 비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인간 외의 생물체와는 담 쌓고 지낸 나기에, 이렇게 이름 뿐 아니라 자세한 프로필까지 달달 외우고 다니는 그가 외계인이라도 보는 듯 신기했다. 유리벽으로 가로막혀 있는데도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다는 듯 그는 베타의 동선을 따라 연방 손을 움직였다.
한참을 그러던 그는 베타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높이 올라가자 비로소 손을 치웠다. 그의 까만 눈동자는 온통 푸른 물로 가득차서 마치 바다 속을 보는 듯했다. 나는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성나지도, 괴롭지도, 웃지도,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그 얼굴.
애절하다고 해야 할까,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수족관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린 나는 조금도 짐작 할 수 없었다. 어른… 이라는 건가. 확실히 꼬마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을 터였다.
인사도 없이 그는 뒤돌아 떠났다. 바닥과 그의 신발 밑창이 부딪힐 때마다 모자에 달린 방울이 좌우로 기우뚱 움직였다. 손에 피가 확 쏠리면서, 왠지 모르게 그를 잡고 싶다는 낯선 욕망이 들끓었다. 그러나 나는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만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림자 하나 없이 모퉁이 너머로 지워져가는 그의 잔상이 끈질기게 눈가에 남았다.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잡기 싫었던 건 아니다.
그냥, 그를 혼자 내버려 둬야할 것 같았다.
“이름이, 이태일 이었던가……?”
학생증에 적혀있던 이름을 상기하며 입안으로 곱씹었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 내가 스스로 학원을 끊는 일도 오다니.”
“네가 공부를? 웬일이냐.”
“대학은 가야하니까.”
오전에 했던 친구와의 대화가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아마, 아쿠아리움 사건 이후로 보름 정도가 흐른 후였을 거다. 짧지만 신묘했던 그와의 만남은 이미 머릿속에서 완전히 말소한 뒤였다. 그보다 나는 새로운 문제에 당면한 터라 그 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대학’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처지였던 것이다. 세음절로 줄여 말하면 수험생. 맙소사. 내가 벌써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이 되다니. 시간은 빛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면서 한참은 뒤처진 내 양 싸다구를 힘차게 갈구고 있었다. 정작 나만 그것을 몰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난 공부를 못했다. 엄청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학생이란 신분에서 삐끗 일탈해 있었다. 벌써부터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니며 술 담배를 하고 밤마다 무면허로 바이크를 타고 거리를 활주했다. 그렇다고 내가 문제아란 소리는 아니다. 그냥 학생이면서도 ‘어른 흉내’를 하고 다니는 철부지 십대일 뿐. 친구들을 괴롭힌다거나 삥을 뜯은 적은 없었다.
“아, 어떡하냐.”
아무리 머리를 비우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노는데 온 체력을 쏟는 나라지만, 아무 걱정이 없는 바보천치는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빼어나게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데 문제없는 우등생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오늘따라 어두컴컴하다.
“정 안되면 유학이라도…….”
돈이라면 걱정 없으니 돈지랄 할 거면 확실하게 하는 게 낫지 싶다. 근데 코쟁이들이랑 말은 통하려나? 정말 모르겠다. 그 새끼는 기분 우울해지게 왜 대학 얘기는 꺼내선. 난 엄한 놈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고장이 났는지 깜빡깜빡하는 가로등이 꼴 뵈기 싫어 발로 한 번 걷어 차주는데, 저 멀리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목젖이 꿈틀 움직였다. 입에 침이 한가득 고이면서, 문득 술이 먹고 싶단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
곧장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사복에다가 내 얼굴이야 워낙 어른스러웠으니 대학생이라고 우겨도 좋을 법했다. 180이 넘는 큰 키도 나의 성숙한 외양에 한몫했다. 자연스럽게 안주와 술을 주문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미성년자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눈치였다.
플라스틱 사각 의자에 앉아 안주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살펴봤다. 대부분은 사, 오십대 샐러리맨들로 퇴근길에 들린 모양새였다. 여기서 제일 어린놈은 눈씻고 봐도 나였다. 당당하게 들어왔지만 켕기는 게 있으므로 뜨끔한 채로 앉아 있는데, 나처럼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잔에 술을 기울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미묘하게 낯이 익은 듯한…….
실눈을 뜨고 한참을 살피던 나는 그가 며칠 전에 만났던 아쿠아리움, 베타, 열대어의 그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태일.”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이름. 기억력도 나쁜 내가 용케 이름을 떠올렸다 싶어서 스스로에게 기특했다. 뜻밖의 만남에 구리구리한 기분이 호롱불이라도 켠 듯 확 밝아졌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서니 독한 알코올 냄새가 톡하고 코를 찌른다. 재빨리 눈을 굴려 테이블 위를 살폈다. 빈 소주 두병, 그리고 현재 그는 세 병째 마시고 있는 참이었다. 안주는 손도 대지 않았는지 그대로였다.
“저, 베타 씨. 오랜만이야.”
똑똑. 테이블을 두드리고 말을 건넸지만 상대는 묵묵히 술잔에 술만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일부러 무시했다기보다는 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손을 가누기가 어려웠던지 자꾸만 소주가 술잔에서 빗겨갔다. 한참을 헛손질 하던 그는 짜증이 났는지 탁, 술잔을 밀어내고 병째로 입에 가져다 대었다. 고개를 젖히고 앞머리가 옆으로 쓸리면서 드디어 드러나는 그의 얼굴은,
어쩐지 슬프고 외롭고 적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