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기, 이 병 안에 차곡차곡 있었으면 좋겠어. 마실때마다 생각날 수 있게. 민석은 정성스레 썰어놓은 유자를 병의 사분의 일정도 담았다. 여기에 바보같은 표정 하나. 그리고 설탕을 가득 담고 다시 유자를 넣고. 다음으론 웃음 소리 둘. 다시 설탕을 담고 유자를 넣고. 사랑한다던 그 말들 셋. 다시 설탕을 담고 유자를 넣고. 마지막으로 루한이 너를 모두 넣어서 달디단 설탕을 넣으면 완성이다.**"선물."철부지 연애처럼 건넨 유자차병에는 파란 리본도 달려있었다. 크진 않았지만 꽤 무거운 탓에 루한은 와-하며 감탄사를 뱉었다. 병속으로 담긴 유자들과 비친 루한의 얼굴이 함께 어우러졌다.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간지러운 느낌으로 품안에 들어온 병이 얌전해지려면 하루종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모자랄것 같았다."일주일 기다렸다가 먹어.""고마워.""..나 대학 안갈꺼야.""응?"병에서 눈을 떼고 본 모습은 전혀 우울하거나 괴로운 표정이 아니었다. 또한 밝게 웃고있었다."실음과 붙었다며.""응, 근데 너 따라갈래."민석이 쑥스러운듯 하하 웃으며 손을 잡았다. 노래는. 루한이 손을 꽈악 잡으며 말했다. 민석은 신발코를 탁탁 부딪히며 나지막히 말했다."노래는 아무데서나 불러도 노랜데 넌 아니잖아.""그러지말고 다시 생각해봐. 대학은 마치고 오기로 했잖아."루한은 잠시 병을 옆에 내려놓았다. 민석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병을 보며 얘기했다."많이 고민한거야. 후회도 안할꺼고. 넌 사년동안 나 기다릴 수 있어? 난 못해. 일주일만 못봐도 슬픈데 진짜 미칠꺼야."민석이 애원하듯 루한을 바라보았다. 루한은 아까의 설득조가 조금 사라져있었다.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에 민석은 조용히 루한을 끌어안았다. 따뜻한 봄날씨에 온기가 더해져 루한은 불이 붙듯이 얼굴이 달아올랐다."야, 사람들 보잖아.."민석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안아줘."루한은 자석에 끌리듯, 혹은 이것이 당연한듯 팔을 둘렀다."허락해 줄꺼지?""정말 후회 안해? 가서 뭐하려구.""너랑 공부할꺼야.""너 중국어도 못하잖아."민석이 품에서 튕기듯 떨어졌다. "이제 도와줘. 언제 간댔지?"민석은 포동포동한 열 손가락을 쫙 피고 수를 셌다. 오월에 가니까 한참 남았네. 민석이 손가락 일곱개를 펼쳤다. 루한은 눈을 휘어 친절하게 웃었다."왜? 안돼?""바보야, 너 평생 한국어 했다고 국어박사 아니잖아."민석은 입을 삐죽였다. 그래두 하면 나도 잘해. 점점 나오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 친 루한이 이번엔 먼저 손을 잡았다."네 선택이니까 옳을꺼야. 나는 믿어."민석의 입이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피노키오 코가 들어가는것처럼 금세 싱글벙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고마워. 사랑해.""내가 더 고마워. 잘먹을께."루한은 옆에 두었던 병을 들어보였다. 병을 다리사이에 끼워놓자 민석이 손끝으로 뚜껑을 톡톡 치며 말했다."먹을때 마다 내 생각 해.""그럼 달아서 못 먹겠다."루한이 바보처럼 웃었다. 민석은 농담에도 부끄러워 귀가 빠알개졌다. 일부러 싫은척 투덜거리다가도 루한이 웃으며 부끄러운 귀를 잡자 결국 웃어버렸다."내가 미쳤나봐. 어떻게 널 사년을 안 볼 생각을 했을까."민석은 아무생각 없이 루한을 바라보다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곤 루한의 볼에 촉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한국에 다시 오면 유자차 같이 만들자. 그땐 이마안큼 만들어서 친구들도 나눠주고 가족들도 나눠주고 우리도 먹자."민석이 팔을 쭈욱 뻗으며 말했다. 뿌듯해 보이는 표정이었다."이 차 맛없으면?""아냐, 맛있어. 내가 너 생각하면서 만든거야."자신있게 말하는 표정이 귀여워서 민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눈꼬리와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꾸만 몽실거렸다. 내 애기. 루한은 병에 담긴 유자처럼 잔뜩 녹아내리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우리의 봄날은 한잔의 유자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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