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유난히 많이불어 볼이 빨갛게 얼어버린 날의 첫 데이트였다. 지나가다 손만 스쳐도 찌릿한 느낌은 커녕 손이 시려워 각자의 주머니속에 꽁꽁 숨어 있었다. 눈 바로 아래까지 올려 한 목도리로 인해 서로 얼굴 보기도 힘이 들었다."..많이 춥지?"미안함이 묻어난 투였다. 이를 달달 떨며 민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시려운 눈이라 반쯤 감겨있는 상태였다. 안아주고 싶지만 보는 눈도 많고 손이라도 잡고 싶은데 그것 또한 시선이 문제였다. 아니 괜찮을까. 잡아볼까. 루한은 바람을 맞다 못해 볼이 꽁꽁 언것은 생각 안하고 그저 손 잡고 싶단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전부터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잡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살짝은 살집이 있는 손을 이리저리 눌러보고 싶었다. 어쩜 손도 깨물어 주고 싶을까. 루한은 잘 올라가지도 않는 광대까지 올려가며 상상했다. 손을 잡았을때의 그 따뜻함. 설렘. 손에 낙인처럼 남을 감촉들까지."우리 따뜻한데라도 갈까?"민석이 마지못해 꺼낸 말이었다. 원래 생각이면 나름 따뜻한 거리를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누다 갈 생각이었다. 실내에서 미어터지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던게 아니었는데. 둘다 어느정도 실망한 시점이었다."저기 그나마 사람 없다.."민석이 구석의 작은 까페를 가르켰다. 주머니 속이었지만 꽁꽁 언듯 하얗게 질린 손이 보였다. 보온 하나는 좋은 옷인지라 뜨끈한 루한의 손이 홀로 주머니속에서 꾸물거렸다."이렇게 추울 줄 몰랐어.."민석은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호호 불었다. 눈에 콩깍지 씌인걸론 아무나 뺨때리는 루한은 마냥 영화속 청순한 여주인공으로 보였다. 뭘해도 어쩜. 너 같은 앤 처음이야."나 갑자기 코코아 마시고 싶다."속으로 갖가지 오두방정을 다 떨던 루한은 민석의 작은 터치에 놀라 심장이 벌렁거렸다. 민석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코코아를 운운하며 루한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까페 안은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고 따뜻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쉽단 생각이 금세 바뀌어 진작 들어올걸 싶었다. 보통때 같으면 바지속에 엄마 레깅스라도 껴 입고 올텐데 거참 어차피 보지도 않을 바지속까지 신경쓴다고 달랑 청바지만 입고온 터였다. 꽁꽁 언 다리가 뜨뜻한 공기와 만나며 사정없이 따끔거렸다. 민석은 그게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만 허벅지를 손으로 문질렀다. 이젠 그 행동마저 제 자식처럼 사랑스러웠다. 끈질긴 시선이 닿았는지 민석은 빨갛게 언 볼을 녹이며 당황한듯 말했다."조, 좀 얼었다. 막..차갑네."긴장한 티가 여실히 느껴지는 말투였다. 때를 놓칠세라 루한은 얼른 말을 꺼냈다."손! 손 줘봐.."루한이 급 손을 내밀었다. 둘 사이엔 아주 잠깐 미묘한 기운이 흘렀다. 워낙 큰 소리로 외친것도 있거니와 약간의 설레는 긴장이 덮쳤기 때문도 있었다. 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설레는것도 참. 루한은 제 자신이 귀여워졌다. 이내 뻗은 손이 민망해지려는데 슬쩍 탁자위로 통통한 손이 올라왔다."나 손 안예쁜데.."데..하며 늘린 말꼬리가 사랑스러웠다. 으, 씹어먹고 싶어. 이 기분을 꾹꾹 담아다가 루한은 핸드폰을 꺼냈다."뭐하게?""..사진, 너 찍어줄께."민석이 상황파악할 시간도 없이 찰칵 소리와 함께 남은 그 감정들을 루한은 주머니속에 꼭꼭 숨겨두었다."왜 나 안 보여줘! 이상하게 나왔구나!""아니야! 잘 나왔어! 나만 보려구 나만."민석은 살짝 몸을 일으켜 주머니 속 핸드폰을 잡으려 했다. 루한이 그걸 막으려는데 일순간 둘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잠잠해졌다."...""...""..괜찮아?""응..정전기..따갑다."민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서로 따끔한 감각이었는데 눈을 마주치지 못한 이유는 뭐였을까. 붉어진 네짝의 귀만 조용히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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