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36
(부제 : 너는 모르겠지만 ①)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많이 아팠다.
*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치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성적을 잘 받아오면 부모님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독서실에서도. 언제나 마지막까지, 끝까지 남으며 나는 그렇게 공부를 했었다. 힘들진 않았다. 솔직히 나한테도 해가 되는 부분은 없었으니까.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나는 진학한 고등학교에서도 무려, 이과 1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애들이 많이 다가왔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내게 장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냥 이렇게, 나는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학교를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하기만 한 내 일상이 뭐 한순간에 달라지겠는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나름 이성에게도 통하는 요소였나 보다. 인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예전부터 고백을 많이 받긴 했었지만 아직 누굴 진지하게 만나고, 이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다 거절을 했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고백을 받으면 친구들이 매번 그랬었다. 복받은 새끼라고, 그것도 아주 복에 겨워 사는 새끼라고. 그럴 때마다 그냥 웃고 넘겼다. 나는 정말 이성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이게 복 받을 일인가 사실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뭔가 하나둘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이건 정말 자부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기필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저 여느 아이들처럼 같이 놀고, 공부한 것밖에 없었는데, 그게 다인데….
사건은 일어났다. 친구 여자친구가 내가 좋다고 했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난 적은 친구를 만날 때 잠깐뿐이었다. 아, 친구랑 같이 공부할 때 그 여자애도 몇 번 왔었는데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길래 알려준 건 있었다. 정말 그게 다였다. 사적으로 만난 적도 없었다. 그 잠깐뿐인데도 그 여자애는 나의 어떤 면이 좋았는지는 몰라도 내가 좋다고 했다.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진짜 막말로 내가 그 여자애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일로 친구는 내게 따졌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한 게 없었으니까.
그 여자애한테 사적인 마음도 없었으니 그 고백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물어봤다. 너는 왜 나를 좋아하는 거냐고. 그 여자애의 답을 듣기도 전에 친구의 주먹이 날라왔었다. 난 그렇게 친구랑 대판 싸웠고, 결국에는 모두가 갈라졌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웃기게도 그 일이 끝이 아니었다. 친구랑 그렇게 갈라지게 되고, 마가 낀 것처럼 나는 저런 일을 몇 번이고 겪게 되었다. 이제는 정신까지 이상해지려고 했다. 내가 문제인 걸까?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걸까? 이건 공부와는 달랐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주변에 '친구'라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던 난 이제 걸레라든지, 여자 킬러라든지 말도 안 되는 수식어가 내 뒤를 졸졸 따라붙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도 웃긴, 그런 수식어들이. 그래, 내가 문제니까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될 수는 없지. 나는 내 자신을 가두기로 했다. 언제나 책에만 시선을 고정하며 그 누구와도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책을 보고, 밥을 먹을 때에도 책을 봤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울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울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아서 한없이 참고, 또 참았다. 내 가슴의 응어리가 쌓이고 쌓여 더 이상 쌓일 데가 없어도 나는 꾹꾹 눌러 담으며 참아냈다. 미련해 보여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1년을 겨우 버텼다. 하지만 내가 졸업을 하기에는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었고, 그 시간들이 너무 까마득해서 좌절하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뎌지기라도 한 건지 2학년 반 배정을 받았을 때에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배정받은 반에 들어가도 저번이랑 똑같은 생활을 하게 되겠지. 누가 내 얼굴을 보고 뭐라 한 마디라도 할까 봐 반에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엎드렸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웅웅대며 들려왔다. 그렇게 그들의 소리만 듣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신 건지 낯선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오길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개학을 하고 나서 나름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하루 종일 책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던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나를 무시하는 건지 나는 그냥 그렇게 혼자 지냈다. 차라리 이게 편했다. 어쩌면 나는 이제 혼자인 게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중에 내가 상처받을 일은 없겠지. 그래서 다시는 누구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의존했던 누군가에게 다시금 이런 상처를 받게 된다면 나는 그때서야 정말, 와르르 무너질지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게,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으려던 내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저… 안녕?"
내 귀를 파고들던 어떤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뭔데. 왜 나를 찾아온 거지? 그 아이는 멋쩍은 듯이 웃더니 '나는 이석민이고, 얘는 김민규!' 하며 제 옆에 있는 아이까지 내게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던, 여전한 레퍼토리.
"너 진짜 공부 열심히 한다…!"
그래. 항상 이런 식이다. 항상 이런 식으로 내게 다가오는 애들이 대다수였다. 더 이상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그래'라는 짧은 대답을 한 후 그들에게서 눈길을 돌려버렸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서 책에 집중을 하려고 하는데, 옆 시야로 그 애들이 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불편하게. 살짝 짜증이 날 무렵,
"너 원우 맞지?"
"……."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어. 작년부터…."
"…알고 있어? 나를?"
어떻게?! 들고 있던 샤프를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나를? 또 그 이상한 소문들로 알고 있는 거야? 그때 일이 궁금해서 찾아오기라도 한 건가 싶어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또 무슨 꿍꿍이야. 누구한테 들었니?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 거 아니라고!"
"……어?"
"그래서 조용히 있겠다고 죽은 듯이 살고 있는데 왜 굳이 찾아오는 건데!!!"
말을 하면서도 감정이 북받쳐서 그런지 시야가 뿌예지는 걸 보니 눈물이 조금 나왔나 보다. 그걸 시점으로 혹시라도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흐르지 않을까 싶어 나는 겨우 참아냈다. 멍한 표정으로 있던 그 둘은 잠시 말이 없더니 내가 예상했던 거와는 달리, 약간 김이 빠지던 그런 대답을 내뱉었다.
"…아! 우리는 너 공부 잘해서 알고 있었다는 거였어. 네가 이과 1등이잖아!"
"……뭐?
"너 막 입학식 때도 앞에 나가서 선서하고 그랬었잖아. 그래서 너 되게 유명해."
…아. 순간 긴장감이 풀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 정말 순수하게 나와 친해질 의도로 찾아왔든, 아니면 숨겨진 어떤 의도가 있든 나는 더 이상 내 옆에 사람을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이만 가보라며 다시 샤프를 집어 들었다. 사람이 다가온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두려웠고, 또 떨고 있었다. 설사 그들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와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극도로 예민했었으니까. 이 정도 했으면 어느 정도 알아듣고 가겠지, 싶었다.
"우리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온 거야. 특히 쟤가 너랑 엄청 친해지고 싶어 하고."
……? 민규라고 했었나. 그 아이가 말했다, 그것도 정말 뜬금없이. 처음 들어보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꽤나 단호해 보였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었던 그 아이는 갑자기 내게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랑? 왜?
…어째서?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응."
"왜?"
"……어?"
나랑 도대체… 왜? 이건 아무 의도 없이 정말 궁금해서, 그래서 물어봤다. 나는 관계가 더럽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하는 거면 정말 모르는 걸까? 그 소문에 대해서? 민규라는 애가 아무 말이 없자 옆에서 석민이라는 애가 약간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나를 치켜세워주고 있었다. 그의 말을 대충 들으며 나는 민규라는 애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런 나와 마주하던 너.
"……."
"……."
왤까. 너는 나를 왜 그렇게 보는 걸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왜… 이상하게 너한테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걸까. 석민이라는 애한테도 그런 느낌이 들까 싶어 나는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민규보다는 덜하지만, 이 아이한테서도 느껴지던 그런… 이상한 기분.
"…그래."
"어?"
"하자고. 친구."
친구를 하자고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이 둘과 깊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달라져. 그냥 이 둘에게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기분에 나는 일단 던져봤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기댈 생각도 없으니 상처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할 거니까. 나는 아직까지도… 사람을 대하는 게 두려웠으니까. 석민이라는 애는 옆에서 번호를 찍으라며 제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에게 번호를 찍어주고 돌려주니 석민이는 정말로 좋아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좋아해야 할 일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그 아이는 핸드폰을 뺏기고야 말았다.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수업 시간에 몰래 힐끔 민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까 나와 마주했던 그 눈빛을 떠올렸다. 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뭐라고 딱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이질적이고 소름 끼치는 기분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잘한 짓일까. 내가 지금 이게… 잘한 짓인 걸까. 시간을 되돌려 그냥 친구 같은 거 하지 말자고 할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이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괜찮겠지?
*
이상하다.
"야. 너 슈렉 엄마가 누군지 알아?"
"…? 누군데?"
"녹색 어머니."
진짜 이상하다.
"재밌냐?"
"어. 엄청."
"아, 진짜 수준 떨어지게."
"이건 하이 개근데 네 수준이 하이 하지 못 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거임."
그렇지? 석민이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처음에 걱정했던 거와는 다르게.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이들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있는 내가 조금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이 아이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못된 기대감이 들어서, 나는 자꾸 꿈을 꾸게 된다. 이제 그 힘겨웠던 시간에서 나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을. 물론 이 아이들이 아직 나에 대한 소문을 듣지 않아서, 나에 대해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만 그들이 알기 전까지 이 달콤한 꿈에서 나는 절대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음을 열면서도, 나는 나를 숨겨야 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그저 웃길 뿐이었다.
그렇게 조심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진짜 전생에 무슨 죄를 짓기라도 한 건지, 하늘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6월 모의고사를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들려오던 민규와 석민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자동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지는 몰라도 민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 상태였길래 나는 그것이 궁금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얘기해?"
"…미안, 많이 시끄러웠지?"
"아니야. 나도 지금 공부하기 싫어서 놀러 온 거야."
"아니. 나 여자친구 생겼다니까 얘가 안 믿잖아!!!"
"헐. 너 여자친구 생겼어?"
민규한테 수도 없이 들었었다. 이석민 쟤는 아마 여자를 평생 못 사귈지도 모른다고, 여자 앞에서만 서면 애가 돌이 되어버려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걸 들으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그런 석민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들으니 놀랍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민규는 그런 석민이가 아직도 안 믿기는 건지 옆에서 그를 놀리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석민이는 답답해 죽으려 하더니 제 여자친구를 보여주겠다며, 따라 나오라고 말했고 그를 따라간 곳에는 긴 생머리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있었다.
"자기야!"
제 여자친구와 말을 하는 석민이를 보면서 민규는 이제 정말 토할 것 같다는 모션을 취하기 시작했다. 많이 좋아 보이는데 그만하지. 그의 등을 툭 치며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민규는 그냥, 정말 그런 석민이가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는 누구야?"
"아! 내 친구들! 얘는 김민규고, 얘는 전원우."
"아… 그렇구나! 내 이름은 최유진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웃음이 많고 밝은 아이였다. 그래서 석민이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당시에 왜 이런 것밖에 생각하지 못 했던 걸까. 여태까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냥 석민이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놀라서 나는 그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아이를 보면 안 됐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최유진을 만났다.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
왠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최유진과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 싶으면서도, 나는 다시금 작년과 같이 그런 일들이 벌어질까봐 이제 조금씩 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을 지킨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들이 말을 할 때면 그냥 묵묵히 듣기만 할 뿐, 되도록이면 말을 아꼈다.
"그런데 넌 아까부터 왜 아무 말도 안 해?"
"…어?"
"그래 원우야-. 같이 얘기하자!"
이럴 때마다 약간 곤란하기는 했지만. 마지 못해 '그래'라고 대답하며 그냥 웃으며 넘어가려고 하는데,
"김민규!!!"
어디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시선을 그쪽으로 옮기고 그 여자애를 쳐다보는데 나는 그때, 아주 정확히 봤다.
"뭐야, 몬난이-. 이 오빠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죽을래, 그런 거 아니거든?"
…… 사랑에 빠진, 민규의 얼굴을. 아, 민규가 저 아이를 좋아하는 구나. 처음 봤지만 알 수 있었다. 이건 민규의 일방통행이라는 것을. 석민이한테 그렇게 뭐라 하더니만… 쟤도 만만치 않았네. 민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보였다. 민규가 저렇게 웃을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야, 가보자."
"응?"
"따라와."
석민이는 내게 따라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최유진과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나도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데, 민규는 정말 우리가 제 옆으로 온 지도 모를 만큼, 그 여자아이한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런 민규가 신기해 옆에서 그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말을 마치고 떠나는 그 여자애를 향해 민규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던 그때,
"누구야?"
"으아악!!!"
최유진의 말에 민규는 엄청 놀란 건지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빼액 질렀다. 소리가 좀 컸던 탓에 최유진은 귀를 틀어막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뭐 죄졌어?"
"너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음… 네가 뒷문으로 쪼르르 달려갔을 때부터?"
민규는 멘붕에 빠진 건지 잠시 말이 없었다. 놀라기는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최유진은 민규와 아까 민규랑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신의 반으로 걸어가는 그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번갈아 쳐다보았고, 민규는 그런 최유진이 불안했는지 왜 쳐다보냐며 말을 더듬기도 했다. 그에 최유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더니,
"너 쟤 좋아하는구나!"
"ㅁ, 뭐?!"
"맞지? 내 눈은 못 속인다-."
"아니야!!!"
"야! 너 그래서 맨날 내가 소개해달라고 해도 안된다고 했던 거야?!"
팩트를 날려버렸다. 옆에서 석민이는 정말 모르는 건지 눈치 없게 기름을 들이 붓고 있었고.
"아 진짜 뭐라는 거야, 그런 거 아니라고!!! 나랑 쟤랑은 그냥 친구라니까?"
"에이-. 딱 봐도 짝사랑이구만."
"야, 너 빨리 너네 반 가라."
"왜!!! 너 지금 괜히 찔리니까 그러는 거지?!"
역시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니구나. 민규는 아마 모를 것이다. 지금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빨간 지를. 정말 홍당무가 되어 그 둘을 밀어내는 민규를 보는데 이런 민규의 모습은 처음이라 그런지 얘가 왜 이렇게 귀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힘들게 그들을 밀어내고 머리가 지끈대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민규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왜. 뭐."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가고 나서 서랍에서 책을 꺼내려고 하는데 뒤에서 쿵!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민규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히 민망했나 보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오던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던 기분. 그 기분에 나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다들 각각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하고도,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나는 그것마저 하지 못한다. 누굴 좋아하기는커녕, 나는 이 관계를 지키는 것에만 급급했으니까. 하도 데여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진 않는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너무 동떨어진 듯한 기분에, 그 기본적인 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정상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내 자신이 뭔가 불쌍하고 처량해서 나는 쓴웃음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 트라우마를 깨기 위해서는 나는 아마 많은 밤을 자고 일어나야 될 것 같다.
수많은 밤을, 그렇게.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chaconne입니다...! 정말 오랜만이죠ㅠㅠㅠㅠ 어제 짧은 공지를 올렸었는데 거기에서 저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셨던 독자님들의 댓글을 보면서 저는 정말 폭풍 오열할 뻔한 걸 겨우 참아냈습니다....(눈물) 그래서 이번 주 안으로 업로드를 한다고는 했었지만!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이렇게 급하게 36편을 적고 있었네요ㅎㅎㅎ 오랜만에 쓰느라 그런지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다시 이 아이들의 감정선을 써내려고 하려니 뭔가 부담이 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막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오랜만에 제가 쓴 글을 보다갘ㅋㅋㅋㅋ 후기에 이런 글이 적혀 있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 제가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입니다....ㅠㅠ 이미 들어버렸네요 그 종소리는.... 후.... 암호닉은 일단 전에 받은 것 그대로 올리도록 할게요! 진짜 기억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제가 진짜 사랑한다는 말 남기고 갑니다ㅎㅎㅎ.. 부끄러워라 그럼 이만 물러날게요!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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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 |
[일공공사님/빠삐코님/여남님/기네스님/셉요정님/귀찌님/천사가정한날님/ 허니하니님/밍구님/햄찡이님/원인님/뀨뀨님/날씨좋은날님/ 꽃소녀님/더블유님/ 꿀주먹님/럽세님/밍니언님/명호엔젤님/0808님/밍규님/빙구밍구님/밍구리님/ 순개님/0428님/마지님/프리지아님/부들부들님/남양주님/후니님/Easy훈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