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청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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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울림오피스텔 2동 301호
나는 울림 오피스텔에 산다. 울림 오피스텔은 꽤 명문으로 알려진 서울의 모 대학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12평짜리 원룸 건물이다. 화장실과 부엌이 따로 나 있고, 세탁기와 에어컨이 옵션인데다가 지리상의 위치와 여건에 맞지 않게 보증금과 세가 무척 싸다. 사실 역세권이고 학교 근처이긴 하지만 가로등조차 점멸식이고 좁고 복잡하여 밤이 되면 퍽치기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음습한 골목길과 원룸 건물의 낡은 외벽, 부들부들 떨리는 엘리베이터, 곰팡내 나는 실내 때문에 입주자가 적은 거다. 이곳은 직업이 분명치 않아 보이는 사람, 실업자, 주소지만 여기로 해놓은 것 같은 학생들, 그리고 나 같은 영세민들이나 쉽게 입주하고 살고 있는, 그런 곳이다. 많은 이가 거들떠도 보지 않을 이런 곳을 계약하면서도 나는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있음에 감사하며 도장을 찍었다. 벌써 2년도 더 된 이야기다. 개발 구역이다 뭐다 하면서 근처 낡은 집들이 무너지고 새 원룸 건물들이 들어서고 주말도 공휴일도 없이 밤낮 뚝딱뚝딱 두드려대는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꿋꿋하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란 놈도 참 대단하지만 주변이 온통 새 집인 가운데 혼자서만 헌 집을 고수하고 있는 이 울림 오피스텔이란 놈도 참 대단하다. 나는 울림 오피스텔 2동 301호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다.
2년 이상을 살면서 꽤 많은 이웃들을 만났다. 잠깐 두 달 살다간 여학생부터 시작해서 나만큼이나 오래 버티다가 결국 고시촌으로 떠나간 사법고시 삼수생, 아무리 봐도 진성 게이처럼 보이던 빡빡이, 그리고 꽤 건실해보이던 공대생을 마지막으로 이웃집은 꽤 오래 비어있는 채였다. 점점 손님을 이웃 원룸들에 빼앗기고 있음에도 주인아저씨는 꽤나 태평한 얼굴로 뒷짐 지고 동네를 활보하신다. 땅 사놓으신 대부분이 개발 구역이라 돈방석에 올라앉았다는 얘기도 있고, 연예계 쪽에 투자를 하셨는데 걔네들이 1년 만에 잘 돼서 노후 걱정은 없단 소문도 있고... 뭐라더라 걔네들 이름이? 무한별희? 중국 시장으로 진출한 애들인가.... 아무튼 매물이나 전세 광고도 잘 놓지 않으시고 그냥 방을 방치해둔 지도 몇 달이 흘렀다. 집이란 건 아무래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낡고 몹쓸 것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라 그 옆집에 사는 나로서는 불안하기도 하고, 왠지 물곰팡이나 바퀴벌레들이 옮아오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몇 번 주인아저씨께 건의도 드려 봤지만 콧방귀나 뀌신다.
내 걱정이 나날이 늘어가던 어느 날, 이웃집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입주 청소를 하는 듯 집먼지가 잔뜩 날리고 벽지를 새로 바르고 장판을 새로 깔고 온통 분주했다. 주인아저씨 얼굴도 잠깐 보이고. 드디어 옆집에서 누가 사는 구나 싶어 집에 와서 혼자 탈춤을 췄다. 이삿짐 들어가는 날에 또 보니 대충 꾸려놓은 짐 몇 박스가 들어가고, 이런 낡은 오피스텔과 어울리지 않게 커다랗고 튼튼해 보이는 침대가 들어갔다. 그 다음 날에는 구색만 겨우 갖춰놓은 거실 벽보다 너비가 긴 듯한 텔레비전이 배달되더니 또 일주일간은 잠잠했다. 집 주인이 들락거리기는 하는 건지, 고지서와 지난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우편물이 현관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주소지만 이곳인 불순한 학생이 방 주인인 것인가... 좀 실망해서 풀이 죽은 채로 현관문을 닫았다. 이건 새 이웃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때문에 실망해서다. 절대 물곰팡이랑 바퀴벌레 때문이 아니다!!!!!!
나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말하자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야간은 주간보다 페이가 약 1.5배 이상 세기 때문에 부러 심야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잡았다. 직업도 없는 백수, 아니 휴학생이라 한가하지만 그 놈의 돈, 돈, 돈!! 이 짓도 다 돈 때문에 하는 거다. 이런 후진 곳에 사는 것도 돈 때문. 올빼미 생활 하는 것도 돈 때문. 취업을 하든가 해서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늘 생각뿐이다. 매일매일 난 기계적으로 편의점에 출근한다. 주간으로 알바 시간을 바꿀 기회도 있었지만 그냥 야간을 하기로 했다.
이러려고 그랬던 걸까. 나는 유난히도 늦게 집에 돌아왔던 그 날, 내 이웃을 만난다.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다보면 정말 갖가지 손님들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부류의 인간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저기요, 손님. 이거 계산 하셔야 되는데요."
꿈쩍도 않는다.
"손님, 많이 취하셨나봐요. 근데 이거 계산 하시고 드셔야..."
"아, 뭐야, 넌?"
휘두르는 팔에 턱을 얻어맞았다. 저쪽 구석으로 날아간 안경을 둘째 치고 일단 편의점 바닥에 널부러진 이 손님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숙취해소 음료에 원수라도 졌는지 절대 캔을 놓지 않는 바람에 바코드를 찍을 수도 없다. 간신히 어찌어찌해서 찍긴 했지만, 이 망할 인간이 돈을 내놓을 생각을 않는다. 아니, 술에 쩔어 생각 자체를 못하는 걸지도. 여기서 내가 지갑을 빼서 계산을 한다면, 혹시라도 이 인간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나를 도둑으로 오해한다면, 그래서 경찰이라도 부르게 된다면.
난 짤리겠지. 젠장.
다시 한 번 인내를 가지고 손님(이라고 쓰고 만취한짐승쓰레기라고 읽는다)을 깨워본다.
"저기, 손님. 손님. 정신 차리세요." "ㅁ....." "네?" "ㅁ..아....." "네? 뭐라구요? 정신이 드세요?" "....무...ㄹ........" "손님, 일어나보세요. 손..." "우웩."
안주로는 과일 꼬치 모둠 세트와 알탕을 드셨군요. 많이도 섞어 드셨네요.
지금 시간은 8시에 출근하는 아침 파트와 교대하기 2시간 전이라는 게 함정. 이것들(토사물+짐승)을 치우려면 딱 2시간이 걸린다는 거. 아침 파트는 알바가 없어서 사장님이 나오신다는 것도 함정. 젠장 젠장.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절대 깨지 않던 그 망할 짐승을 끌어내고 바닥을 뻑뻑뻑 닦아대기도 한참. 간간이 들어와 주시는 이른 아침의 손님들의 찌푸린 얼굴과 빠지지 않는 토사물의 냄새와 흔적들 때문에 골이 다 아프다. 사장님이 출근하시기 전까지만 냄새가 빠지면 될 텐데. 추워 죽겠는데도 출입구 문을 다 열어 놓은 건 아까 맞이한 개 같은 짐승 손님 때문이다. 나한테 청소비라도 줘야 되는 거 아냐 그 시키?????
그러고 보니까 숙취해소 음료도 계산 안 하고 그대로 들고 갔다. 망할. 내 피 같은 돈 5천원.
결국 줄창 깨지고 돌아가는 길이다. 내가 토해놓은 것도 아닌데, 괜히 나만 혼났다. 다시는 저런 손님 받지 말라는데. 아, 내가 알고 받았나? 토할 사람인 걸 알았으면 나도 안 받았어. 관상 보는 법이라도 배워야지. 아, 저기요, 손님. 손님은 관상을 딱 보니 오늘 여기서 구토를 하실 운명이시네요. 죄송하지만 손님께는 물건을 팔지 않겠사오니 좀 나가주시겠습니까? 아 시발.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게. 혼자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집으로 귀가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돌아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내 집. 아니, 주인아저씨 집이지만 내가 세 들어 사는 집. 집이란 이렇게 좋구나! 보기만 해도 좋은 것을! 피곤했지만 괜히 신나서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편하겠지만, 혹시라도 줄이 끊어질까 두려워 3층이기에 그냥 걸어 올라간다. 좀 더 피곤하고 말지.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이렇게 난 혼자 위안을 한다.
"어?"
3층에 거의 도착했는데 옆 집 문에 길게 기대서서, 한 남자가 거의 누워있다. 뭐야 저건? 김명수인가? 김명수 우리 집 아는데, 뭐지? 내 집으로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갈수록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으악.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술주정뱅이한테 두 번이나 걸리다니. 그래도 (아마) 이웃을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기에 깨워본다.
"저기요."
툭툭 치자 꿈틀거리는 인간. 이 인간은 살아있기라도 하나보다.
"저기요. 일어나세요. 303호 사세요?"
남자가 꾸물꾸물 몸을 일으킨다. 뭔 사람이 마스크에 선글라스에. 지가 연예인이야 뭐야.
"저기요. 여기 사세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이런데서 주무시면 돌아가셔요."
노래도 있지요. 자우림 레전설의.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내가 깨우자 이 사람은 다행히도 일어난다. 흠. 2차 술안주 투어는 하지 않아도 되겠구만. 남자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내리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든다. 그런데,
"........너...." "너였냐?" "....남우현?"
맙소사. 남우현이다.
"알아보네."
알아보다마다. 너 연예인이잖아.
"오랜만이라 못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텔레비전 틀기만 하면 너 나와 이 자식아. 그런데 넌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나 좀 일으켜주라. 보고 있지만 말고."
내 손이 나도 모르게 남우현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다. 무겁기도 하네 이 새끼.
"고맙다."
어...고마운 건 알겠어. 알겠는데. 너, 왜 여기에 있냐고. 남우현을 일으켜 세워주자마자 이 놈이 내 옆 집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막 눌러댄다. 삐리릭. 잠금 해제 되는 소리. 그리고 열리는 문 사이로 사악 사라져버리는, 남우현.
.....남우현. 남우현? 남우현?????? 내가 술을 마신건가. 내가 알바를 하고 온 게 아니라 술을 마셨나? 아니, 꿈인가? 헐 꿈치곤 너무 생생하잖아! 대박! 이게 뭐야!! 악몽인가? 아니 연예인 봤으니까 좋은 꿈인건가? 아 이게 뭐냐고!!!!
멘탈 붕괴 상태에 빠져서 혼자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데 삐리링 하고 다시 옆집 문이 열린다. 아, 꿈이겠지 꿈일거야 이게 진짜 일리 없어. 그런데 다시 보이는 남우현의 얼굴. 빤빤한 낯짝 옆으로 들어올려지는 오른 손.
"하이"
.......이게 뭔...
"롱 타임 노 씨다. 반갑네, 이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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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기네요^^;;;............. 이러고 가서 한참 후에나 오는 게 내 취미이자 특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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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들 읽으시라우!!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