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고, 봄입니다.
제 1화 : 그 애와의 첫 만남은
w.선샘미가좋마묘
꽃이 자신을 힘껏 틔우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3월 초, 여주는 mp3에서 박기영의 '시작'을 골라 틀고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기차에서 내렸다. 코 안으로 깊숙히 파고드는 냄새가 독특했다. 꽃 냄새와 함께 섞여 나는 진한 바다의 향기. 드디어 서울 토박이인 김여주가 6개월 정도 살게 될 할머니 댁이 있는 부산에 도착했다.
내가 부산의 번화가로 향했다면, 분명히 곳곳에서 도시의 냄새가 났겠지만 여기는 확실히 번화와는 먼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장장 1시간을 달려야 겨우 시내에 도착하는 시골인데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니 벌레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청자켓 위로 달라붙는 날파리가 신경쓰여 팔뚝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시간이 오후 6시였다. 할머니댁은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면 20분정도 걸린다고 했다. 근처에 고등학교는 딱 한군데. 이미 나는 국립 성수 고등학교로 전학 처리가 되어 있었다. 6개월 후면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갈 운명이지만, 그래도 친구들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부모님은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시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부모님 두분에게 외국으로 6개월동안 출장을 갔다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절대 외국은 가기 싫다며 떼를 쓴 덕분에 나는 할머니 댁에서 6개월동안 지내게 됐지만, 솔직히 잘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봉동의 자랑 이지훈 서울서 피아노 대회 금상'
할머니의 동네에 도착해서 엄마가 주신 지도를 찬찬히 훑어보며 한 걸음씩 옮겨가는데, 동네의 입구로 보이는 곳에 커다란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이지훈... 이름은 남자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피아노를 잘 치나보다. 고등학생이면 같은 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 하고는 다시 지도에 시선을 내리 꽂았다.
"할머니이이-!!!"
"어이구, 우리 똥강아지 왔어? 배고프다이가, 퍼뜩 밥 무라"
"저번보다 살 찌지 않았어요? 너무 늦게 밥 먹으면 안 되는데... 굶을까?"
"무슨 소리고! 할매가 맛난 반찬 했꾸마 만다꼬 밥을 굶나."
오랜만에 뵙는 할머니이기에 신나서 부둥켜 안고는 인사를 한 후에,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앉았다. 교복은 이미 잘 다려진 상태로 집의 한 구석에 걸려 있었고, 할머니는 내가 밥을 먹을 동안 내 옷가지들과 짐을 정리해주셨다. 얼마만에 먹는 할머니표 밥상이냐... 싶어 미간을 짚으며 우는 척을 하고는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게눈 감추듯 빠르게 밥을 먹고는 따뜻한 물에 몸을 씻으며 긴장을 풀었다. 잘 할 수 있어, 그치? 친구들이 보고싶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단념했다. 따뜻한 물에서부터 올라오는 희뿌연 김이 공중으로 흩어지다가 내가 훅- 바람을 불자 소용돌이 쳤다. 적응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욕조에서 일어났다.
옷을 입고 나가기 전, 김이 잔뜩 서린 거울 앞에 잠시 멈춰 선 여주는 머뭇거리다가 거울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겼다. '김여주 화이팅!' 그 옆에 애써 그려놓은 웃는 얼굴은, 여주에게만은 우는 표정으로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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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이 없으신 할머니 덕분에 집에서 일찍 나와 학교로 향했다. 걸어가면 20분 정도가 걸리고 버스로는 10분이 걸린다는데,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가려면 20분이 걸린다기에 그냥 버스 타기는 포기하고 학교로 무작정 걸어갔다. 직진만 하면 된다길래 mp3를 꺼내들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학교가 보였다. 열라 힘드네. 시계를 확인해보니 등교시간은 10분정도 남은 듯 했다. 빠르게 걸어서 교무실의 문을 열어 담임 선생님이라던 김연수 선생님을 찾자, 한 남자 선생님이 나는 4반이라고 알려주시며 같이 교실로 가자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이 노처녀, 노총각 히스테리를 부리는 선생님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따라갔고, 어느새 4반 앞에 다다랐다. 아이들은 이미 뒷문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내밀며 나를 확인했다. 전학생이 온다는 소문은 어찌 그렇게 빨리 퍼지는 건지...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 내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은 김여주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주는 지훈이 옆에 앉아라."
서울에서 온 전학생은 처음인 건지, 내 말투를 웃기게 따라하는 남학생들이 있었다. 유치한 새끼들... 어금니를 꽉 깨물며 최대한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인 후에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나와 똑같이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지훈'이라는 남자애 옆에 앉으라고 했다.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던 것 같은데... 누구지...
서울에서 같은 학교였던 남자애 이름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선생님이 가르킨 자리로 향하자, 한 남자애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애의 명찰에 적힌 '이지훈' 이라는 이름과, 책상 한 켠에 네임펜으로 누군가 그려준 듯 서투르게 그려진 피아노를 보고는 그 애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 ..."
세봉동의 자랑 이지훈. 피아노 대회 금상. 그리고 이제는 내 짝꿍.
어떻게 오게 된 거니, 선샘미야? |
여러분... 저 진짜... 일이 잘 풀려서 얼른 왔어요. 행복해요 진짜로ㅠㅠ 예전처럼 빨리 오지는 못하겠지만, 천천히 굴러가는 조건으로 부모님께 허락 받았어요. 너무 빨리 오게 돼서 웃긴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다시 오게되어 행복합니다. |
눈치채신 분이 몇 분일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이고, 봄입니다. 그니까 시봄(ㅋㅋㅋㅋㅋㅋㅋㅋ)의 시대적 배경은
1990~2000년대 사이입니다. 힌트는 박기영님의 '시작'이라는 노래예요! 1999년 발매랍니다.
(오늘 브금에 쓰인 건 고아라님이 부르신 시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