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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이들 16
w. 태봄
“어, 지민아. 나야.”
“네, 형. 어쩐 일이세요?”
“여자애랑 잘 지내냐고 물어보려고 했지. 어때?”
“푸흐.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잘 지내고.”
“네, 조만간 뵐게요.”
지민은 나지막이 전화를 끊고 빵에다 잼을 발랐다. 커튼 사이로는 햇살이 잔잔하게 들어왔고, 그 햇살의 종착지엔 지민이 있었다. 지민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살포시 문을 여니, 세상 모르고 자는 여자가 있었다. 어젯밤의 흔적이 남았는지 여자의 몸 곳곳에 울긋불긋한 꽃이 피어있었다.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지민은 오늘 밤도 어떻게 새하얀 도화지에 꽃을 피울까 생각했다. 오늘 밤? 아니야. 지금 하자 그냥.
지민은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무슨 상황인지,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려 했던 그녀는 그러할 시간도 없이 머리채가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탈출하고 싶어. 입 안 가득한 것을 품으며 생각했다.
똑, 똑.
“석진이 형.”
“누구야?”
“저 호석이에요.”
“들어와.”
호석은 떨리는 손으로 문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하고 닫혀버린 문은 시끄러운 바깥과 이 방을 격리시키기에 충분했다. 석진은 무언가에 열중을 하는 듯 하면서도 이 컴퓨터, 저 컴퓨터를 오가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책상에 컴퓨터가 몇 대야. 호석은 속으로 생각하고는 눈으로 세보았다. 하나…… 둘.. 셋...? 저 인간은 도대체 컴퓨터 3대로 무얼 하는지. 호석은 그저 일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형. 바쁘면 저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석진은 무언가 잘 풀렸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호석에게 다가왔다. 짧은 거리였지만 석진의 발 소리에 맞춰 울리는 구두 굽 소리와 째깍거리는 시계바늘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할 말이 뭐야?”
“정국이 누나 …… 연락이 안돼서요.”
“뭐야. 너 알고 있었어?”
“놀라는 척 하지 마세요. 제가 아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석진은 능청스럽게 알고 있었냐고 물었지만, 호석은 놀라는 척 하지 말라며 날이 선 대답을 건넸다. 두 사람 간, 상대를 살피기 위한 침묵이 오갔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싸늘하게 맞닿았던 시선은 곧 감정 없는 웃음과 함께 분산되었다. 석진은 호석을 놀려먹고 싶었는지, 대뜸 어떻게 알았어? 라고 묻고는 턱을 괴었다.
“웃을 때 얼굴이 똑같아서요.”
석진은 호탕하다는 듯 하하하, 웃더니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물었다. 은색의 라이터에서 불꽃이 우아하게 피어 오르자 석진은 고개를 살짝 돌려 담배와 불이 맞닿게 해주었다. 동시에 회색 빛의 연기가 아지랑이 올라오듯 기어 올라왔다. 석진이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자 그에 부응하듯 담배가 빨갛게 탔다. 한 대 할래? 석진이 담배를 내밀자 호석은 머뭇거리며 하나를 받았다.
난생 처음 잡아보는 하얀 담배가 손끝에서 미약하게 떨렸다. 불 붙여줘? 네. 호석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콜록-. 호석은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담배연기가 역류하는 느낌을 느꼈다. 호석의 몸은 담배 연기를 거부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나왔다. 손 끝의 담배는 이미 떨어져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기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메케하고 탁한 연기는 기관지 이곳 저곳에 달라붙어 끈덕지게 호석을 괴롭혔다. 아, 도대체 사람들은 이게 뭐라고 피는 거야.
“이미 거짓말 쳐서 벌 받았으니, 다른 소리는 안 할게. 솔직하게 말해.”
연기에 휩싸였던 호석은 이제서야 정신이 조금 드는지 자세를 가다듬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한지 여러 번 도리질했다. 자신의 앞에 있던 물병에서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떼었다.
“정국이 목에 목걸이 있잖아요. 거기에 적힌 이름보고 알았어요.”
석진은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마지막 남은 담배를 태웠다. 한 대로는 모자랐는지 담뱃값 근처로 손이 맴돌았지만, 이내 손을 거두었다.
“정국이 누나, 내가 여행 보내줬는데?”
“그래요? 연락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글쎄. 내가 알아보고 연락 줄게. 가 봐.”
어디에 있을까, 연락은 왜 안될까, 호석은 찾지 못한 답들을 머릿속에서 꾸준히 생각했다.
걱정되니까 연락 좀 해라. 아니 살아있나 확인만 좀 하자.
“남준이 형, 정국이 그 애 동생 같아요.”
“왜?”
“자다가 잠꼬대 하는걸 들었거든요. 그리고 웃을 때 얼굴이 똑같아요.”
“그래? 남매 피는 못 속이나 보네.”
“맞죠? 제가 생각이 맞죠? 형은 알고 있을 거 같아서 물어봤는데. 역시네요. 미리 말 해주지.”
“새꺄, 안 물어봤잖아. 근데 왜 이렇게 안 놀라냐. 나는 네가 놀라서 팔짝 뛸 줄 알았는데.”
“에이, 그건 이미 잠꼬대 들었을 때 다 했죠.”
“그러냐?”
방 문을 여는 호석의 머릿속엔 말하지 않은 기억이 담겨있다. 호석이 끝내 비치지 않은 카드 한 장.
김, 남, 준.
해가 질 무렵, 남준은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생각을 해보았다. 두 손을 머리 뒤로 바쳐 베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방 안은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가득히 퍼졌다. 하얀 소파는 남준의 기럭지를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끝자락엔 남준의 발이 빼꼼 튀어나와있었다.
‘일본으로 보내 버릴까? 그 여자애.’
‘왜긴, 걔가 물이잖아.’
‘형, 제가 봤어요. 석진이 형 카카오톡이요.’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석진이 했던 말과 호석의 말. 게다가 연락 하나 없는 그녀. 남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분명 김석진이 하얀 속셈을 가졌을 리는 없고, 까만 속셈으로 보냈는데.
그러면 누구한테? 왜?
남준은 까만 바탕에 초록 글씨들이 가득한 창을 띄워놓고는,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요했던 방 안은 어느새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열심히 흘렀지만 남준은 그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가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장정 7시간 만에 남준은 엔터키를 치고 기지개를 폈다.
-ERROR 귀하의 열람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남준은 픽 웃으며 몇 글자를 쳤다.
-ERROR 귀하의 열람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아, 씨발. 조금 귀찮네.
남준은 책상 구석에 있던 안경을 끼고는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금새 다른 방법이 생각났는지 남준은 키보드 위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놀렸다. 곧 컴퓨터에는 여러 개로 분할된 화면이 나타났다.
‘후쿠오카 국제공항’
남준은 이 게임에서 이겼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기다려.
김남준.
CCTV 해킹 성공.
남준은 쉴 틈도 없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날짜와 시간을 조정한 후,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돌려보고, 돌려보던 찰나에, 어. 남준은 까만 머리들 사이로 익숙하게 보이는 그녀 모습에 안심했다는 듯 편히 웃고 의자에 기대었다. 다행이네.
곧 그녀는 어떤 남자의 손을 잡고는 공항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갔다? 누구야 쟨.
남준은 씨씨티비를 조금 되감았다. 되감고, 되감고, 되감고, 어 여기다. 남자는 그녀가 도착하기 전부터 기다린 거 같았다.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공항에 와서는 그저 앉아서 그녀를 기다릴 뿐이었다. 남준은 남자의 얼굴 쪽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 눈에 익는 얼굴에 남준은 고민에 빠졌다. 누구지. 몇 번 봤었는데. 설마.
남준은 혹시 하는 마음에 다른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남준은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새로 켜진 컴퓨터에 남준은 프로그램을 하나 실행하더니 이름 석자를 쳤다.
박 지 민
곧 뜨는 사진 몇 장과 인적 사항들.
이름, 나이, 혈액형, 주소, 번호, 메일, 가족관계, 소속 ……
남준은 찬찬히 읽어보다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역시나. 김석진 개새끼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찾아보는 건데. 너 지금 다친 곳은 없어? 밥은 제대로 먹고 있어? 남준은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을 곱씹어 본다.
박지민에 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런 애한테 잡혀간 사람을 어떻게 빼오나. 남준은 고뇌에 빠졌다. 남준은 일단 호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
“당장 내 방으로 와.”
“왜요?”
“찾았어.”
남준은 뚝 끊긴 전화를 봤다. 호석은 뭐라 대답할 틈도 없었는지 무작정 전화를 끊고 남준의 방으로 향했다.
“형. 어디에요. 어디서 찾았어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
“일단 진정 좀 해. 일본에 있어.”
남준은 호석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호석은 전화를 받자마자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뛰어왔는지 신발은 짝짝이에 겉옷도 걸치고 오지 않았다. 호석은 목이 말랐던지 물을 다 마시고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소파에 앉았다. 남준은 호석의 모습에 자신도 목이 탔는지 캔맥주를 한 캔 땄다.
“진짜 여행간 거에요?”
“아니야. 안전한지 모르겠어.”
남준의 말에 호석은 절망했다. 왜요?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요? 잡혀 갔어요? 다쳤어요? 호석은 머릿속 가득한 질문들을 삼키며 한숨을 쉬었다. 형, 괜찮겠죠. 호석은 나지막이 한마디 뱉었다. 자신의 모든 질문의 종착지나 마찬가지였다. 남준은 맥주를 마시며 입맛을 다셨다. 약간의 정적 후 남준은 턱을 괴고 호석에게 말했다. 그 애가,
“괜찮던, 안 괜찮던.”
“형, 그걸 지금 말이라고……!”
“데리고 와야지. 임마, 한국말 좀 끝까지 들어.”
호석의 얼굴엔 안도의 표정이 맴돌았다. 한편 남준은 석진이 걱정되었다. 자신을 불이라고 칭했던 석진이 지민에게 그녀를 보냈다는 것은 정말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물, 그녀를 제거했다는 말이다. 그런 석진이 그녀를 데려오도록 허락 해 줄까? 절대 아니다. 몰래. 이 일은 몰래 진행되어야 한다.
“호석아, 잘 들어. 김석진은 분명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기에 일본으로 보내버린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김석진의 눈에 띈다면? 안되겠지. 최대한 비밀스럽게 움직일 거야. 우리가 데려오려고 한다는 걸 알면 안돼. 하지만 우리가 일본으로 가버린 사실을 안다면 김석진은 바로 따라오겠지. 그러니까 너 혼자 데리러 가. 주소에 적힌 곳에 박지민이랑 같이 있을 거야. 박지민 정도야 너 혼자 상대 가능하지? 그렇다고 너무 쉽게 보지는 말고. 그 녀석도 나름 알아주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공항 근처에 있을 거야. 우리 뒤를 찾아올 김석진을 위해. 네 쪽으로 못 가게 내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까 네가 할 일은 그냥 그 애를 데리고 나오면 돼.”
“……형.”
“왜. 너무 똑똑했나.”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에요?”
“너한테는 말 안 해줬는데.”
남준은 남아있는 맥주를 모두 비우고는 빈 캔을 꾸겼다. 그럼에도 목이 타는지 냉장고에서 한 캔 더 꺼내었다. 차가운 맥주는 공기의 온도와 맞부딪혀 금새 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남준은 떨어지는 물방울을 잠시 보더니 입을 열었다.
“첫사랑이랑 많이 닮았어. 그 애를 보고 있으면 첫사랑 생각이 많이 나.”
맥주캔에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
“그렇다고 좋아하는 거 아니야. 형이 그렇게 어린 애 만나서 뭐하겠니. 아청법으로 걸려간다?”
“형......”
“첫사랑 생각이 많이 나서 도와주는 거야. 지금의 너는 그 때의 나와 많이 닮았어. 야, 이거 무거워지라고 한 얘기 아닌데. 왜 그렇게 울상을 짓고 그러냐.”
“형도 첫사랑의 아픔인가 싶어서요. 형이 첫사랑이라니 조금 이상한대요?”
“이게 죽을라고.”
장난스러운 호석의 말에 두 사람은 금새 웃음꽃을 피웠다. 남준은 호석을 한 대 때리려고 손을 뻗었고 호석은 그 손을 피해 소파를 넘어 도망갔다.
“빨리 가야지. 내일 새벽에 짐 싸서 와. 총 몇 자루 챙겨놓고. 비행기표는 내가 지금 예매할게.”
“지금이 새벽 3시니까. 정확히 12시간 뒤에 봐요.”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하카타에키메아 2-3-1. 외워놔.”
“네, 갈게요.”
호석은 터덜터덜 남준의 방에서 나왔다. 그제서야 눈에 보였다, 자신의 짝짝이 신발이. 호석은 낮게 웃고는 금새 발걸음을 옮겼다. 호석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정국이 깰까 봐 살금살금 들어왔다. 부엌과 방이 연결되어있어 불도 못 켜고 호석은 물체를 더듬거리며 식탁을 찾아 의자에 앉았다. 아, 빛의 소중함. 식탁 위의 조그만 전등이라도 켜기 위해 전등을 더듬거렸다. 전등을 켜는 순간,
“형, 어디 갔다 와요?”
“아, 씨발 놀래라!!!!!”
“뭘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래요.”
호석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해 의자에서 급히 일어났다. 그에 맞춰 의자도 뒤로 넘어가고 호석의 눈과 콧구멍도 커지고. 정국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 웃어대기 바빴다.
“넌 사람을 그렇게 꼭 놀래 켜야지 직성이 풀리는 가보다?”
“형 반응이 재미있으니까 그렇죠.”
정국은 아직까지 진정이 안 되는지 이제는 배까지 잡고 깔깔 웃었다. 너무 웃어서인지 눈꼬리엔 눈물이 자그맣게 맺혀있었다.
다들 설 잘 보내셨나요?
다들 행복한 한 해 되세요 :D
사랑함니다 우리 롱런해요
인터넷 맞춤법검사기가 말썽이라서 그냥 올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타는 귀엽고 깜찍하게 지적해주세용 'ㅅ'
아까 잘못해서 글이 올라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당황하셨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뎨둉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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