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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이들 15
w. 태봄
정국은 침대에 누워 그 전날 봤던 인영을 곱씹었다. 내 총구 가득히 들어찼던 얼굴. 어릴 적,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 기억은 흐리지만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내가 다가가려 했던 사람. 내가 자란 집에서 나보다 먼저 자라났던 사람.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지 못할 얼굴을 가진 사람. 변한 것이라고는 조금 또렷해진 이목구비와 조금 더 길어진 머리카락. 누나.
그 인영은 누나가 틀림없다. 머릿속에 흐리게 자리 잡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이제는 누나라는 말이 입에 붙기에 어색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지만 누나가 맞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찰나에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아. 이 얼마나 찬란한 순간인가. 일평생 그리워했던 사람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다니.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닿기 위해 손 뻗어도 눈꺼풀을 고고하게 닫아버리더니.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순간은 나를 외면했으면서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나의 눈 속에 가득 차오다니.
누나. 누나……
정국의 머릿속은 금세 혼란스러워졌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막상 보니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 사이의 공백이 이렇게나 컸었나. 누나를 만난다면 서로 없던 시간이 무색하도록 다정하게 ‘누나’라고 부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누나’의 ‘ㄴ’은 커녕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아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나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쳐. 어릴 때는 누나가 놀아주면 이 세상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졌어. 지금은 누나 닮은 사람만 봐도 나는 이렇게 바보 같아지는걸. 그때도 지금에도, 내 기분을 이렇게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누나뿐이야. 누나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제발 몸조심해. 보고 싶어.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정국은 차마 부르지 못할 이름을 속으로만 삼킨다.
똑, 똑, 똑.
“준비 다 했으면 이제 나와.”
“……. 네”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남준은 말이 없었다.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쯤 남준은 입을 열었다. 배는 안 고파? 네. 그냥 배고프다고 해줘. 네? 곧 한국 떠나는데 마지막으로 밥이라도 먹고 가. ……네. 둘의 대화 소리를 끝으로 적막한 차 안은 타이어 굴러가는 소리, 라디오 소리,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 등 온갖 소리에 파묻혔다. 오히려 시끄러워 다행이었다. 마지막 말을 내뱉은 남준은 오버했나, 라고 생각하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잠재우느라 조금 고생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알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창밖만 응시했다.
“맛있어?”
“…….네.”
“많이 먹어. 다시 한국 올 때도 데리러 올게.”
“……”
“……그때도 여기서 밥 먹고 회사로 가자.”
예상치 못한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비행기 시간이 다다르자, 남준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없어진 지 오래인 그 뒷모습만 찾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는 순간 온갖 감정이 밀려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허무함, 그리움, 설렘, 두려움.
-저희 비행기는 ……
희미한 안내방송에 눈을 떴다. 벗어두었던 겉옷을 챙겨 입고 내릴 준비를 했다. 한국을 떠나본 적 없는 내가…… 두려움은 순식간에 설렘으로 변했다.
“여기야!”
“……”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에 눈만 동그랗게 떠 바라봤다.
“…… 석진이 형한테 얘기 못 들었어?”
“저 여행 간다고 해서 왔는데……”
“아…… 그게 여행이라고 하기엔 모호하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일단 여기 서서 이렇게 얘기하지 말고 출발하자.”
“어디로 출발해요?”
나의 말에 남자는 성가시다는 듯 내 짐을 빼앗아 들고 나를 앞장섰다. 저기요. 저기요……! 내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었음에도 발걸음 속도를 높이는 남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귓가에 들리는 외국어. 아니, 일본어. 처음 듣는 말들이 많아지자 두려움에 휩싸여 남자를 더 빨리 따라갔다. 차에 타자 두려움이 조금 풀려 눈을 잠시 감았다.
“일어나.”
아, 또 언제 잠들었지…… 남자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그마한 주택이 앞에 보였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문을 열어놓고는 내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얼른 차에서 내렸다.
“저기요! 그거 제가 해도 돼요.”
“저기요 말고, 내 이름 박지민.”
“지민씨, 그거 제가 해도 돼요. 잠시만요. 제가 들게요.”
“열쇠 여기 있으니까 빨리 집 문 좀 열어줘.”
“아…… 네!”
집 문을 열자 꽤 고풍스러워 보이는 가구들과 벽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래? 지민의 말에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씻고 올래? 저기가 욕실이야. 씻고 오면 방이랑 할 일 같은 거 설명해줄게. 캐리어에서 주섬주섬 짐을 꺼내 욕실로 향했다.
긴장한 몸이 물이 만나자 풀리는 기분에 몸이 나른해졌다. 머리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이 거슬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쌌다. 미지근한 물로 씻은 몸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자 금세 한기가 들었다. 속옷과 옷을 갈아입은 뒤 머리의 물기를 털며 밖으로 나갔다. 여기로 와. 지민의 목소리를 찾다가 목소리의 근원인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 여기가 네 방.”
“감사합니다. 아까 미처 말하지 못해서……”
“아니야. 그리고 네가 할 일은.”
“……”
갑작스럽게 지민의 입술이 닿았다. 혀가 이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휘몰아쳤다. 허리를 잡고 나를 미는 행동에 나는 조금 급박하게 뒷걸음을 쳤다. 다리가 걸리고 몸이 넘어가는 느낌에 잔뜩 힘을 주니, 살짝이 웃는 지민이었다. 지민은 두 팔목을 등 뒤로 가져가 묶었다. 압박되는 느낌과 손목을 몇 번 휘감는 줄과 함께 두 손이 속박되었다. 침대 헤드에 달린 갈고리에 끈을 끼워 팔이 머리 위로 들린 상태가 되었다.
“뭐하는 짓이에요?”
(생략)
남준은 회사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 석진이 여행을 보내줬단 것. 회사 직원 중 아무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아니, 석진이 직접 여행을 보내준 적이 없다. 그 말은, 그녀를 일본으로 보낸 것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준은 혼자 지껄였다. 아, 궁금해죽겠네. 분명 뭔가 있는데.
“남준이 형.”
호석은 땀범벅이 된 모습으로 남준의 방문을 덜컥 열고 들어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뜀박질을 하다 왔는지 호흡을 진정시키며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오는 모습이 어쩐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왜? 무슨 일이야? 뛰어왔어?”
“네. 그게 형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요.”
“일단 앉아. 물이라도 줄게. 잠시만 기다려.”
호석은 남준의 말에 소파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지. 남준이 내미는 물컵을 받아 들고는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물컵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빨리 얘기해 봐. 나도 궁금하네.”
“없어졌어요.”
“뭐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질 않아요.”
“뭐가.”
남준의 머리에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호석이 말하는 건 사물 같은데, 저 말들이 사람에도 적용되는 거였나. 남준은 머리를 갸우뚱했다. 말하지 않고 뜸만 들이는 호석의 모습에 남준의 속이 조금씩 갑갑해지는걸 호석은 모르는 것 같았다. 호석은 쉴 새 없이 다리를 떨었다가, 컵을 들고는 입에도 대지 않고 다시 놓던가, 천장을 보았다가 바닥을 보았다가. 필히 할 말이 있는데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망설이는 시간조차 아까운지 저런 행동들을 보이는 것이고. 아이고, 호석아.
“아, 형. 그게 있잖아요.”
“그래. 동생아.”
“안보여요.”
“그러니까 뭐가!”
“정국이 누나……!”
“일본 갔잖아.”
“네? 언제요?”
호석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인 양 토끼같이 눈을 뜨고 남준에게 되물었다.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했다는 사실이 멋쩍었는지 뒷머리를 한번 매만졌다.
“얼마 전에. 몰랐어?”
“아…… 네. 그런데 형 있잖아요.”
“또 왜. 뭐 때문에 그래.”
“제가 봤어요.”
자꾸만 뭐 하나를 빼먹고 얘기하는 호석에 남준은 속이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뭘 봤어.”
“석진이 형 카카오톡이요.”
“그게 왜.”
“거기에 좀 이상한 말이 있었어요.”
“이상한 말?”
남준은 호기심이 간다는 기색으로 호석에게 물어보았다. 정호석이 과연 이상하게 볼 석진의 카카오톡이 뭐가 있을까?
“그게 윤기형이랑 했던 건데요. 많이는 못 보고 딱 3개 봤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여자애가 딱 정국이 누나 같거든요.”
“아니, 병신아. 그거 말고 내용을 먼저 말해줘야지.”
“아, 맞네. 죄송해요. 형.”
“빨리 얘기해 봐.”
“석진이 형이 여자애를 내일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윤기형이 비자는 어떡하냐고 막 그렇게 물었는데 석진이 형이 여행 비자를 끊었다고 했어요.”
“그게 왜. 여행 갔으니까 여행비자 끊지.”
“근데 한국 말고는 가본 적 없는 애가 해외여행이라면 분명 저한테 조그맣게라도 얘기 했을 것이고, 며칠 동안 제가 찾으러 다녔는데도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러면 연락이라도 한 번 하지 않을까요?”
“음, 그건 그렇네.”
“그리고 제가 아무리 전화를 해봐도 전화 연결이 안 돼요. 아예 배터리가 꺼져있대요. 그리고 윤기형이 비자 어떡하냐고 물어봤는데 석진이형이 여행비자 끊어놨다고 했잖아요. 그럼 목적이 여행이 아닌데 여행 비자를 끊었다는 말 아니에요?”
나름 타당한 호석의 의견에 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설마 김석진. 여행이 아니라. 불길한 예감에 남준은 괜히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호석이 옆에서 계속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남발하자 정신이 사나워진 남준은 호석을 방 밖으로 내쫓았다.
호석아. 안 그래도 여행을 갔다는 말이 거슬렸는데, 네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아닌 거 같네.
“일어나.”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 눈을 감고 있는데,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이 말 한마디가 뭐라고 순식간에 온몸이 경직되었다. 살포시 눈을 뜨고 침대에 앉으니, 말끔한 양복 차림의 지민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가세요?”
“나도 일해야지.”
“아……”
속으로 고운 일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석진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인가.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애기, 말이 많아지네.”
“……”
“석진이 형이랑 비슷한 일 해.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 말고 집 잘 지키고 있어.”
“……네.”
“배고프면 식탁에 밥해놨으니까 먹어. 만들어 먹어도 좋고.”
대답하려 했지만, 자신이 할 말만 해놓고 홀라당 사라지는 지민의 뒷모습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일하러 가라지. 일단, 피곤하니까 잘래.
“뭐야. 너 아직까지 밥도 안 먹고 자는 거야?”
“…….네?”
“일어나. ㅇㅇ해야지.”
“네?”
지민은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욕실로 넣었다. 10분 줄게. 그 말에 허겁지겁 씻고 옷을 입으려는데, 지민이 욕실로 들어왔다.
(생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돌아오자마자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뭐.... 메일링 받아야죠... (긁적
방금 암호닉 신청글도 같이 올라왔잖아요.
이거 바로 전 글에서 신청한 사람만 암호닉으로 인정할게요.
시간은 19일 00시까지 받을게요.
메일링은 나중에 다시 공지 올리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