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떠나면 난 어떡할까
니가 주는 사랑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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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면 그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의 냄새가 먼저 나를 반기고
그리고 후에 그의 몸이 나를 반긴다
그는 그만의 무표정으로 나를 맞이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갈색의 눈동자는 춤을 추고 그의 손은 나를 향해 뻗어온다
그의 뻣뻣한 머리칼이 내 손가락 사이를 지나가고 그의 따뜻한 체온이 나를 감싼다
그의 큰 몸이 꽤나 무겁게 나를 짓누를 때면
나는 세상과 단절된 듯, 포근한 고립감을 느낀다
"오늘 하루 뭐했어?"
약간은 피곤한 말투가 묻어나왔다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고 그를 쳐다봤다
"일 했지"
대답은 건성으로 툭 내뱉고는 나만 하염없이 쳐다본다
내 말을 듣긴 한걸까
"그래?"
"응"
대답하기가 귀찮은 걸까
아님 내 몸을 눈으로 탐하느라 저렇게 바쁜걸까
그의 눈은 항상 날 향해 있는다
그의 눈은 항상 나를 기다린다
"밥은?"
"몰라"
뒤에서 그가 다가와 나를 안았다
날 나른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의 체온이 느껴진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게 있을까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내 자리에 또 니가 누워 있었나보다
이불 속이 방금 데워진 듯 따뜻하다
따뜻한 이불이 내 맨살에 닿는다
너의 맨팔이 내 허리에 닿는다
잠깐동안 너의 품안에 안겨 고민들을 하나하나 지운다
따뜻한 너의 품은 나를 위로하듯 포근하다
나의 머리칼이 너의 목 언저리를 살랑살랑 간지럽힌다
작은 무드등을 켜 책을 펼쳤다
나름 독서를 시작하려고 올해초부터 자기전에 꾸준히 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아직 두권을 채 읽지 못했다
"재밌어?"
바로 그 때문에.
책을 읽을 수가 있을까
저 눈동자가 저렇게 빛나는데
나는 오늘도 책을 덮고 그의 눈을 홀린듯이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는 언제나 흔들림없이 나를 향해 있고
그의 손과 발은 나를 감싸안으며 담아둔다
어느새 잠이 들었을까
새벽에 목이 말라 몸을 뒤척였다
손을 더듬더듬 짚어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곤히 자는 그를 확인하고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자다 일어나 무거운 몸을 가누며 어둠 속을 걸어갈 때,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름아"
아, 그가 깼다
"김이름, 어딨어"
자다 일어나 메마른 그의 목소리가 잠겨있다
그럼에도 또렷히 들리는 그의 나른하고 무거운 목소리
낮은 그의 목소리를 따라 나는 다시 침대로 향했다
어느새 일어난 그는 비몽사몽하며 나를 찾았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상체를 껴안았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등이 느껴진다
그는 내 품안에서 살짝 나와 나를 향해 말했다
"없어서 무서웠어"
아, 그를 두고 내가 어딜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