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연하남이랑 알콩달콩 사는 신혼일기 (11)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을 때에 나는 우리의 방 침대 위였고 그이는 없었다.
부엌으로 걸어나오자 급하게 사와 준비한 듯 편의점표 해장국이 놓여있었다. 나는 이미 많이 흘러간 시계와 원장님을 포함한 동료 선생님들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식탁에 앉아 이마를 부여잡았다.
끄응, 한숨도 나오질 않는다.
미적지근한 국을 한 숟갈씩 뜨면서 옆에 고이 접혀진 쪽지를 펼쳐보려다 주머니에 대충 넣고 국을 먹는둥 마는둥하며 가방을 친구 집에 놓고 온 것을 깨닫고 자켓만 걸친체 출근을 했다.
짤리는거 아니야? 하는 물음표속엔 정작 중요한 것들이 가득했다. 남편 얼굴, 남편 손짓, 남편 목소리.
" 여주씨,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막 함부로 늦고 그러면 쓰겠어? "
" ...죄송합니다. "
" 다음부턴 이런 일 없도록 해줘요. 여주씨 내가 많이 좋아하는데 실망스럽네 "
" 죄송합니다. "
나는 꼭두각시마냥 죄송하단 말만 반복했다. 무표정한 얼굴을 달고있다가도 그나마 아이들을 보며 힘을 내본다. 오히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내가 지각을 한 탓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시간이 꽤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퇴근하면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딘지 고민하다가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에 홀로 썩 기분 좋지 않은 웃음을 짓다가, 그렇게 나 자신의 감정도 어찌할 줄 모르는 내 자신을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 여주샘, 밖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
" ..네? 아, 네 "
누구지. 남편일까? 아니야 남편이면 남편이 왔다고 했겠지. 하며 유치원을 나오자 누군가 뒷모습을 보이며 서있었다.
까만 정장에 뒷짐을 지고 있는 손엔 장미꽃다발이 들려있다.
그가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고개를 돌린다.
" ... "
" ...아, "
[4년전]
나는 그당시 유치원 교사로서의 마지막 실습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하교시키려 현관에 서서 한 명 한 명에게 따듯한 포옹과 입맞춤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모든 아이들이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따라 하교를 하였는데 한 남자 아이만이 현관에 남아 답지않게 언성을 높여가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궁금함에 그 전화를 몰래 훔쳐들었다.
" 아아니이! 횽아 바부야? 일케일케! 오며는 햇살 유치원이라니까아? "
왠지 나의 도움이 필요할 것만 같아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 저기.. 선생님이 도와줄까? "
" 네? 아 썬생님 영어 잘해여? 해짜니는 영어를 못해가지구우~ 횽아한테 유치원 어떠케 오는지 말해주쎄요 "
" 응..? 여.. 영어? "
나는 잘못 걸렸다 싶음과 동시에 영어울렁증이 도지려고 할 때에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순간 숨이 멎었다.
-여보세요? 해찬아?
" ...네? 아, 안녕하세요. 햇살 유치원 선생ㄴ.. 아니 실습생... 아니, "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거기 찾아가려는데 길을 몰라서요..
" 아아 그러시구나.. 혹시 인준정형외과 보이세요? 그 건물 바로 옆 쪽에 있거든요. "
-정형..외과.... 으음, 아! 찾았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전화 속인지 뒤에서 들려오는지 헷갈릴쯤에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윤기있는 까만 머리에 인디언 보조개를 띄우며 웃는 그.
지금까지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같지 않은 속설 따위로 치부하던 나는 그 날부터 첫 눈에 반한다라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선생님. "
" 아.. 아니에요, 저는 실습생이구요.. 해, 해찬아 잘 가! "
" 썬생님 거마워여! 빠이빠이! "
" 감사합니다. "
그것이 나와 그이의 첫 만남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 유치원에 계속해서 일을 하고 이 동네로 건너와 살게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연인지 무언지, 그 이후로 그이는 해찬이가 하교를 할 때마다 어머니 대신 해찬이를 맞이하러 왔고 어느날은 조각 케익, 어느날은 마카롱 과 같은 작은 선물을 두고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의 선물을 받으면서 아, 나도 무언갈 드려야겠다 싶은 날이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날이 좋아 오랜만에 장롱 속에 묵혀만 놓았던 원피스를 꺼내 입고 안 뿌리던 향수까지 뿌려보았다.
그리고 그이를 주기 위한 작은 나의 성의와 함께 출근을 하였다.
그이는 항상 한 쪽 이어폰을 꽂고 유치원으로 걸어오다가 유치원에 다 와갈때쯤 이어폰을 급히 빼 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나는 준비한 선물을 두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
왜인지 언제나 시간에 맞춰 해찬이를 데리러 오던 그이는 제시간에 보이질 않았고 1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마음을 접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기 전 홀로 공놀이를 하고 있는 해찬이에게 다가갔다.
그 때였다.
" 여주 선생님? 밖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
" 네? 아, 잠시만요! 해찬아 잠깐만, "
급한 마음에 버선발로 현관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말끔한 정장차림에 꽃다발을 들고있는 뒷 모습에 혹시 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전혀 그럴일이 없다는 생각에 애꿎게 지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고있었다.
그리고 그 궁금한 뒷태가 드디어 뒤를 돌아보았다.
" ...와- "
" ....아.. 해, 해찬이 지금 데리고 올까요? "
" 아뇨 잠시만요 선생님! "
바보처럼 다시 유치원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그이가 붙잡았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려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 선생님. "
" 네.. "
" 진짜... 예쁘다. "
나는 그제서야 그이를 올려다보았다. 놀란 내 토끼눈에 그는 보기좋게 눈을 접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곤 꽃다발을 내밀었다.
" 저.. 선생님 남자친구 해도 될까요? "
* * *
검은 정장에 빨간 장미꽃다발.
나는 웃음을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남자다워보이는 뒷태가 뒤를 돌았다.
" ...어쩐 일이세요. "
" 선생님 보러 왔어요. "
민형이 나에게로 걸어온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민형의 키가 왜 유난히도 더 커보이는 걸까.
" 와- "
" ... "
" 선생님 진짜 예쁘다. "
민형이 천천히 꽃다발을 내민다.
" 선생님, 나 그만 미워하고 이제 예뻐해주면 안 돼요? "
" ...... "
" 어? 울라고 주는거 아닌데.. "
바보처럼 또 눈물만 흘리는 내 얼굴을 매만지던 민형이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춘다.
얼굴에서 턱, 목덜미로 내려간 그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던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 탓에 서로 얼굴을 붉히며 조금 떨어졌다.
" 받아주실거죠, "
" .... "
" 고개만 끄덕이지 말구요 "
" 당연히 받아야지.. "
" 다행이다. "
민형이 팔을 벌리고 나는 더 망설일 것도 없이 민형에게 안겼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너의 품이.
민형은 내가 안겼음에도 쉴새없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귓가에 사랑한다고 수없이 속삭였다.
정말로 다행이다 민형아, 나야말로 다행이야. 나의 철없는 투정들 받아주느라 고생했어,
" 오랜만에 고기 먹을까요? "
" 응, 소고기로 "
" 흠, 잠깐 지갑 좀 확인하고~ "
민형이 장난스럽게 웃어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내 곁에 항상 너인 것에 감사하다.
잠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너를 잃은 나, 앞으로 그러지 않게 조심할게 민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