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미 죄를 짓고도
자기가 범한 부정한 일과 음행과 색욕을
회개하지 아니한 많은 자들로 인하여
내가 슬퍼할까 염려하노라.
회개하지 아니한 많은 자들로 인하여
내가 슬퍼할까 염려하노라.
-고린도후서 12:21-
제 2 장
“아프면 말해, 그만할테니.”
어느새 아이의 날개죽지를 감싸고 있는 천은 핏물로 인해 흥건히 젖어있었다. 안 해도 될 일을 왜 굳이 나서서 해서는. 때를 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그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방 안은 살갗을 태우는 냄새와 피의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맴돌고 있었고 아이의 잇새에는 가까스로 참아보려고 하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절대,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의 앞에서 제대로 옷을 여미지 못한 탓일까. 느닷없이 밤 중에 찾아온 아이의 방문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반쯤 벗고 있었던 기모노를 다시 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덕분에 나는 고스란히 치부로써 내 등에 남겨져 있는 벚꽃 문양의 문신을 아이에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여도 나의 맨몸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고 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시간도 아닌 내가 열 살의 해를 맞아 생일 축하를 받고 있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꽃이 만개하듯 고고하게 자리잡혀져 있는 벚꽃은 우리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증표였다. 대 일본 제국에 충성하겠다는 의미로 새겨진 이 꽃은 삼엄한 일본의 통치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고 우리 가문의 부와 권력을 쌓게 해준 근원지가 되어주었다. 후에 어떤 사람들이 이 미치광이 같은 가문을 이어갈지는 모르겠다만 그들이 우리를 욕한다고 해도 나는 무어라 변명할 것도 없었다. 대한제국이라는 명칭조차도 사라져 이제는 정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눈물겨운 순간에도 우리는 잘만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김없이 나의 생일날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도 않은 여린 살결 위로 지독히도 무참하게 문양을 새겨넣었었다. 자문(刺文)이라 일컫는 문신은 정식으로 행해지는 일도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진통제 한 통을 하루만에 물도 없이 씹어삼키는 것이 다였다.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약 기운에 골아떨어지는 일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해야 할 것도 없었다.
‘저도, 아가씨랑 같은 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헌데, 아이는 자신도 문양을 새기고 싶다고 말해왔다. 저택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는 문양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주고 싶지 않았다. 안된다고 내 딴에는 강경하게 말을 꺼내보았지만 아이는 평소의 제 모습과 달리 오기를 부려왔다. 그 말도 안되는 오기는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가져다 주었거늘 아이는 내 만류에도 그저 좋아했었다. 마음 같아서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맴도는 피 냄새에 나가고 싶었지만 그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쓸어주자 흥건히 묻어나는 아이의 땀과 눈물들은 내 손바닥에 고일 정도였고 못 참을 정도의 아픔에 고된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데, 제 주인의 애정을 얻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에 그 어떤 사람이 매몰차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으랴.
“움직이지 않은 덕분에 자리는 예쁘게 잡혔어요.”
핏방울들이 맺혀있는 바늘들을 정리하던 남자는 할 일을 끝마쳤는지 내게 여러개의 약통들을 쥐어주었다. 한동안은 참기 힘들정도로 아플거예요. 차라리 약에 취해서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일테니 정량은 꼭 지켜서 챙겨주세요. 역겨운 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이 방은 소위 언제나 내 앞에서 친절하게 웃고 있는 이 남자를 위한 방이라 불려졌다. 백의를 입은 천사라도 흉내낼 요량인지 그는 위에 걸치는 양장을 제외하면 항상 하얀색의 옷만을 고집했다. 웃기게도 그는 의사도,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의사 못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는 남자의 하얀 옷은 가끔씩 정말 의사처럼 행동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근데, 이 얘는 아가씨께서 많이 아끼시는 아이인가봐요.”
자문 하나 새겨넣었다고 죽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애달프게 쳐다보시는 것 보면. 하녀들에게 약통을 넘겨주고 아이에게 달려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는 내 행동을 보던 그는 얼굴에 여전히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그는 우리 저택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명했다. 꽤나 잘생긴 외모부터 남을 배려하는 행동들,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시덥잖은 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는 한 마디로 선했고 또 매력적이었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하녀들만 해도 모두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가 우리집에서 주치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과 그를 부르는 일본식의 이름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 또한 내 집안일이 아니면 별 다르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싶었다. 관심도 없는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으니.
“그럼요, 제가 가장 아끼는 아이인걸요.”
짧게 닿은 아이와의 입맞춤은 따뜻했다. 많이 아팠는지 얼마나 세게 깨물었으면 온 몸의 피가 이리로 모였다고 할 정도로 아이의 입술은 붉게 물들었고 어이없게도 내가 느낀 사람의 온기 중에서 가장 따뜻했다. 아가, 잠깐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땀에 눅눅하게 젖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조용히 속사여주자 아이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얼른 방으로 옮겨, 아직 아물지 않았으니까 조심하고. 하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면서 고개들 들어 남자를 보자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워낙에 속내를 종 잡을 수 없는 남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표정은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까. 가령, 이렇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저 표정을 한 단어로 축약해서 말하기에는 애매하기만 했다.
“저는 얻지 못한 아가씨의 입맞춤도 받고.”
“…….”
“부럽네요.”
저렇게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남자를 상대하기에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지나쳐가려고 하자 별안간 내 손목을 잡아오는 남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라도. 그를 보며 친절한 말투로 물었지만 나는 그가 지독히도 맘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나에 대해서 파고드는 행위는 불편하고 성가셨다. 하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조차도 비밀은 있기 마련이었고 자칫해서 알게 된 남의 비밀은 하나의 선입견이 되어 둘 사이를 망쳐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무엇보다 그와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은, 친구도 무엇도 아닌 사이였으니 이보다 기분 나쁜 일은 없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발을 떼려고 함과 동시에 그는 내 손에 종이 한 장을 쥐어주었다. 무심코 쳐다본 시선 속에서 그의 성격을 대변하듯 하얀 종이에는 평소에 우리들이 흔하게 알고 있는 ‘료스케’라는 이름이 아닌 조선 이름의 석자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하얀색의 무채색 바탕에 진하게 써져있는 그의 명함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하자 그는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그냥, 저도 그 아이처럼 아가씨한테 예쁨 받고 싶어서요.”
이따금씩 나는 그가 소위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이겨낼 수 없다는 뱀의 형상과 흡사해 보이는 때가 있었다.
‘ 金 재 환 ’
견주(犬主)
MADE BY LIGHTER
“다행이야, 잘 아물어서.”
예쁘다. 아이의 어깨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문양은 곱게 자리잡고 있었다. ‘예쁘다.’라는 말을 하기에는 아이에겐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고 좋은 의미도, 아름다운 글귀도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는 더없이 예뻤다. 다행히 약이 잘 들었는지 주변에 부어오른 살결들을 제외하면 덧나는 상처도 없었기에 그 위로 약을 발라주면서도 내심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며칠동안 아픔에 잠도 못 이루었으면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던 아이를 보고 있자면 여러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왔다. 괜한 고생을 시킨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질 않았지만 나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이었던지라 나와 같은 꽃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치밀오르는 기쁨과 뿌듯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가씨 것도 되게 예뻤는데.”
아이는 몸에 걸쳐져 있던 유카타를 여밀 생각도 하지 못하고선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통에 미처 바르지 못한 약이 손가락에 남아있었지만 그것조차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내 손을 잡던 아이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원치 않게 새겨진 이후로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던 자문을 보여달라고. 그 때 스치듯 보여준 것도 후회하는 마당에 대놓고선 보여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싫다고, 봐선 좋을 것 없다고 거절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음에도 나는 아이가 이리도 정확하게 제 뜻을 말하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어서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다만, 두 눈을 길게 감았다 뜨는 사이에 어느새 아이에 의해 오비와 유카타가 아슬하게 내 몸에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아,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오늘따라 꽤나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석양에 내가 홀린 것이 분명했다. 그도 아니면 내 어깨의 선을 훑고 지나가는 아이의 손가락에 이렇게나 온 몸이 경직이 되지는 않을테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샘이 났어요.”
“…….”
“한낱 이 꽃도 아가씨와 함께 있는데 저는 그보다 못한 것 같아서”
그러고 보면, 제 자문을 볼때는 별 볼일 없어보였는데 아가씨한테만 가면 다 아름다워지나봐요.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꽃한테도 샘이 날 정도로. 나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이리도 물러티진 내 성격에 대해 나무라는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감정에 치우쳐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책망하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나 천성이 그리 타고난 것을 어찌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를 뒤흔들 작정인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며 내 몸을 만져오는 너를, 내가 차마 밀쳐내지 못하는 것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나의 천성인 것을. 안 그러니, 아가야.
“저만이 아가씨 것이였으면 좋겠어요.”
내 어깨 위로 툭, 하고 떨어지듯 기대오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내 목과 쇄골 언저리를 간지럽혀 왔다. 석양으로 간신히 빛을 냈던 햇빛마저도 사라져 어두워져가는 밤은 괜스레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아이의 숨결이 마치 내가 내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밤은 사람을 참으로 이상하게 만든다. 제 주인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당돌하게도 내뱉는 이 얘의 말이 뭐라고 나는 반박의 말도 못 꺼내는 것일까. 나는 아이의 것이 될 수 없었다. 내 가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행해야 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것이 된다고 하면 얼굴도 보지 못한 내 약혼자의 것이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다 비웃을 것이 분명한 말을 하는 아이를 향해 몸을 틀려고 하자 비단 내 허리를 감싸오는 아이에 의해 꼼작없이 갇혀있는 내 꼴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입은건지, 아니면 벗은건지 경계가 모호한 유카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싸늘하기만 했는데 아이가 닿아있는 내 몸만은 열꽃이 피어오른 것처럼 뜨거웠다.
* * *
간만에 꿈 속에서 유모를 만났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유모가 내 꿈에 나온 일은 극히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이렇게 간간히 나올때면 나는 왠지 모르게 응어리진 속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힘들게 살아온 그녀의 환경처럼 굳은살이 박혀있는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줄 때면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냄새가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그녀의 품에서, 이 꿈 속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 낳아준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 같은 그녀와 함께라면 죽음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아…”
눈을 감아도 새어들어오는 빛 때문에 흐릿하게 눈꺼풀을 들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아이의 방이 보였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만큼 간만에 깊게 빠져버린 꿈은 달콤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자 그제서야 꿈과 현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유모의 손은 크고 길게 뻗은 아이의 손이었고 포근하게 안아주던 그녀의 품 또한 아이의 것이었다. 꿈을 꾸는 행위 자체를 꺼려하는 내가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달게 꾼 이유는 더이상 유모의 덕이 아니였다. 그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서 얻은 일종의 안정감이었다.
“일어나셨어요?”
내 움직임에 깨어버린 아이는 잠결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는지 간신히 두 눈만을 뜨고 있었다. 아이의 팔에 안겨져 있는 나의 몸은 익숙하기도 하면서 낯설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침과 분침의 속도는 한낱 인간이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마 내가 느끼는 못했을 뿐, 시간은 끊임없이 제 본분을 다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한참은 어리고 여린 아이에게서 내가 위로를 받을 때서야 나는 알았던 것이다. 내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 때에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순식간에 커버린 아이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였다는 것을.
![[워너원/박지훈/김재환] 견주 B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6/30/11/a515d0f630c6ca23b0679bd4442183db.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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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Lighter 입니다.
저번화에 부족한 글인데도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행복했어요(감동) 완전 작가의 망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글이라서 어떻게 진행이 될지, 결말은 어떻게 날지에 대해서는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도 모르지만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화에서는 재환이가 나왔어요! 너무너무 행복하답니다ㅠㅠㅠ 부족한 필력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제 글과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 암호닉 신청 받고 있습니다! *
*암호닉 정말 감사합니다♥ |
99 / 달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