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황인숙,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제 3 장
오늘도 어김없이 제 발걸음은 이 음침하고 기분 나쁜 저택으로 향했다. 웬만해서는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고 있으니 자신의 집보다도 더 집 같은 이 저택은 제가 감히 어림잡기도 힘들 정도의 부와 권력의 흔적들이 온 공간에서 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집의 하녀와 집사가 몇 명인지, 그 외의 관리인들, 그리고 이 집안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인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말도 안되는 짓까지 해가며 이 가문으로 들어온 것이 그것들을 알아내기 위함이었거늘 정말이지 탐욕에 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갈 때면 자신은 한없이도 작은 사람이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나이가 꽤나 지긋한 남자는 거진 지정되어 있는 방으로 가려고 했던 재환을 불러세웠다. 아가씨가 편찮으셔서 오늘은 다른 것보다도 아가씨를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누누이 말을 하지만 저는 의사가 아니었다. 의사라고 하기에는 지식도, 능력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집안은 정식으로 의사를 고용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뜨내기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치의 역할을 맡아왔는데 저를 포함한 그들의 특징이자 장점은 두 가지가 다였다. 소리 소문없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큰 소동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쉬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는 것.
“아가씨, 선생님께서 찾아오셨어요.”
흔히 여자들의 로망이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에서 위치한, ‘아가씨’라 불리는 그녀는 제 분수에 맞게도 참으로도 고상했다. 굳이 말이 필요할 때가 아니면 조용했고 저를 선망의 대상이듯 쳐다보는 아랫사람들을 쉽게도 다루며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조심성이 많은 건지 제가 수도 없이 들락거린 이 저택의 사람들에게 저는 나름 신용이 높은 사람으로 일컫어지는데 그녀만큼은 저를 바라볼 때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딱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그녀가 나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구나.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은 다른 뜻으로 보자면 믿지 않는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저로서는 매우 곤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온 몸에 열이 나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도 살짝 닿는 제 손을 이리도 불쾌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만 가셔도 괜찮습니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완고하게 제 뜻을 표현하는 꼴이 우스웠다. 하는 짓이 꼭 예닐곱살의 아이가 약 먹기 싫다고 고집부리는 것처럼 자신의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니까.
“열도 꽤나 높으신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항상 고고하게 있던 그녀였다. 곁에 두고 있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그녀는 누구와도 제 깊은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어느 순간에 버림받고 목숨을 위협을 받을지 모르는 이 시대에 남을 함부로 신용한다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일과도 같으니 지금의 그녀의 행동들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자신은 그녀의 가족도, 친구도, 하물며 그녀가 키우는 아이처럼 개가 되지도 못할테니. 하지만 매번 자신을 벌레보다도 못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발 끝부터 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모두 저를 믿고 의지하는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저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마치 흑백의 논리 속에서 새로이 나타난 색감과도 같았다. 흔하지 않아서 좋았고 남들과 같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녀의 크고 거대한 집안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었음에도 예기치 못한 상황은 때로 제 발목을 붙잡았다.
“귀하신 몸인데 이렇게 아프시면 안되잖아요.”
“….”
“뭣하면 아가씨가 가장 아끼시는 아이를 불러드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니까, 그만 가보세요. 제 말에 베갯잇으로 얼굴을 묻는 그녀의 모양새가 오늘따라 참 여리고 가여워 보였다. 자신은 조선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은 더럽게도 맘에 안드는 일본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조만간 우리 조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다면 아버지가 지어주신 김재환, 이라는 제 이름을 온전히 말하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해야 되는 것은 모두 대의라는 명분을 얻게 되는 사람들의 몫이지 전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말들이 아니었다. 툭하면 순사들에게 목숨을 잃고 성적으로 희롱을 당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사체도 제대로 묻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조국의 해방이라는 대의를 얻기에는 소의가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그래서 저는 그녀의 가문처럼 일제의 앞잡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함부로 욕을 하지도 않았다. 조선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녀의 삶은 부유했고 아름답게 보였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환, 자신이 독립에 앞장서는 사람이 된 것은 단순했다. 그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기를. 조선에서 태어났으면 조선식의 이름정도는 쓸 수 있기를.
일제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처리해야 할 것이 수만가지였다. 그리고 가장 우선시 되었던 것은 친일파 중에 내로라하는 그녀의 집안을 없애야만 했고, 집안의 중심인 그녀는 사라져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순간에도 이리도 호위호식을 했으면 응당 죽음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였다. 헌데,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조금씩 거세지는 기침을 참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어서, 또 한없이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자신의 계획은 틀어져만 갔다.
“우선 해열 진통제는 탁자에다가 두고 갈테니, 꼭 챙겨드세요.”
“….”
“아, 참 그리고 옷깃은 잘 여미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고작 천 쪼가리로 만든 유카타는 저를 고정해주는 오비가 없으면 쉽게도 풀려진다. 감기가 꽤나 심한지 제 옷차림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그녀의 부주의처럼, 또 꽤나 오랜시간을 공들여 키우는 그 아이가 없으면 쉬이 무너질 그녀처럼. 그러니 웬만하면 그녀가 변함없이 자신을 경멸하고 신뢰하지 않기를, 하고 한 편으로 바라고 있었다. 절대로 자신은.
“굳이 이 상황에서 저를 시험에 들게 할 생각이 아니시라면요.”
제 감정도 관리하지 못하는 병신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견주(犬主)
MADE BY LIGHTER
이맘때쯤이면 항상 거쳐가는 감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닷새를 꼬박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도 많았다. 내가 제대로 서있지 않으면 금세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이 그 틈을 파고들 것이고 견고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사명이자 몫이었다. 닷새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딱히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었지만 내가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일가 친척들에게 괜한 덜미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밤마다 내 옆에서 선잠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네 방가서 편히 자라니까 왜 또 여기서 자고 있어.”
“그냥, 아가씨 곁에 있는게 더 좋아서요.”
다행히 이제 열은 안나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 아이는 매번 날이 밝아올 때마다 내 이마를 짚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이틀정도면 몸을 움직여도 될 것 같았는데도 약간의 열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듯 아이는 꼼작없이 나를 지키고 있었다. 꽤나 유난을 떨어대던 아이의 보살핌은 의외로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제서야 방을 나서도 된다는 아이의 허락이 떨어졌다. 아가씨가 계속 아프시면 저는 정말 속상할 것 같아요. 단호하게 나를 말리던 아이가 도대체 뭐라고 나는 말도 안되는 이 얘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저, 이번 기회에 조선말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을 다른 분으로 바꿨으면 해요.”
하녀들의 손에 의해 호몬기 위로 덧대어져 메어지는 오비를 천천히 매만지며 꺼내는 아이의 말은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었다. 워낙에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내가 직접 손을 대지 않은 한 먼저 선생님에 대해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얻을 것만 얻고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와 연관되어 있다고 그렇게나 싫어하던 선생님을 왜 이제와서 바꾸고 싶다고 하는걸까. 무슨 일인지 아이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조선말은 내가 유독 신경을 쓰는 부분인지라 이번 선생님은 나름 선별해서 고른 사람이었는데 실력이 부족했던 건가, 그도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이는 내 시선을 자꾸만 피하는 것일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
미리 자신이 염두해둔 사람이 있는 것 같은 아이의 태도는 뻔히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별 것도 아닌 선생님의 문제로 내가 가타부타 언급할만한 일도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다. 조선인으로 태어나서 제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이니 그 정도쯤이야 아이가 원한는대로 해줘도 되는 ‘사소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원치도 않게 가게 된 다도회의 모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벅차있었으며 거추장스러운 옷들은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왜 그 때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는지, 아이가 갑자기 제 선생님을 바꾸겠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확하게 물어보지 않았는지 항상 후회한다.
“이렇게 또 만나뵙게 되어서 기쁘네요.”
그 선생님이 김재환, 이라는 것은 내가 미처 예상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그가 내게 명함을 쥐어주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찢어버렸었다. 조만간 돌팔이 의사놀이를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겠다고 은연 중에 몇 번이고 생각해두었는데 그는 매번 나를 갖고 노는 듯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 모든 불찰은 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아이는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알고 제 선생님으로 두었는지도 의문이여서 어느 순간 세게 깨물은 입 안쪽의 살들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농이었으면 하고 수도 없이 바랬을만큼, 내가 사소하게 생각했던 일들은 언제나 내 뒷통수를 치듯 비웃고 있었다.
* * *
“제가 도련님의 선생님이 되어드릴게요.”
생긋, 웃어오는 재환은 마치 제가 선심을 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지훈은 매번 자신에게 선생님을 붙이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언어와 글자들은 스치듯 봐도 한 눈에 들어올만큼 자신은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설사 필요한 순간이 오더라도 선생이라는 칭호를 붙일만큼 그들이 자신보다 뛰어난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감이 남아있었다. 하나 같이 자신을 가르쳐 준다는 명분으로 온 그들이었지만 진짜 그들이 가진 저의는 그녀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탐내는 것이었다. 모든 걸 다 앗아가도 그녀만큼은 절대 남과 나누고 싶지 않았고 그깟 선생님이야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다.
“사실 구태여 말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는 아가씨에게 호감이 있습니다.”
“….”
“그리고 도련님은 그걸 달가워 하시지 않으시잖아요.”
저를 선생님으로 곁에 두신다면 절대 아가씨에게 사심, 아니 그 어떤 마음도 갖지 않을게요. 지훈,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이 집안에 잠시라도 머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 남자를 알만큼 참 맘에 들지 않게도 그는 수시로 집과 방들은 드나들었다. 그리고 제 등에는 그가 손수 만들어 놓은 자문이 있었고 앞으로 그가 얼마나 아가씨 곁에서 맴돌지가 눈에 선해서 굳이 그 횟수를 따지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런 남자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니. 으득, 하고 갈리는 이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귓가를 맴돌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
“웬만하면 아가씨 곁에 있지 마세요.”
지훈은 착했다. 착하다라는 기준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선함과 악함을 나뉘자면 자신은 선한 사람이었다. 다른이의 고통을 내 것과 같이 아파했고 그의 슬픔은 내 슬픔으로 여겼다. 단지, 그 모든 경우의 수가 제 주인이자 김재환, 이라는 남자가 퍽이나 개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인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거였지만서도. 기억도 안나는 날부터 지독히도 더러운 곳에서 나고 자란 자신은 그 때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개새끼가 된다는 것이 남들한테는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미 태어나길 개처럼 태어났는데 그깟 개새끼, 하나 못할 이유도 없었다. 세상에서 현존하는 그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다 놓아도 그녀에게 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평생을 보고만 있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 그녀였으며 그녀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지훈, 자신 뿐이여야만 했다.
“어차피 성에 차지도 않는 선생님 자리 정도야 내어준다고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였지만.”
“….”
“한 번 뱉으신 약속은 꼭 지키셨으면 좋겠어요.”
제 본성을 감추고 있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리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막상 자신을 진짜 도련님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고지곧대로 존칭까지 써가며 말을 하는 재환의 목을 당장에라도 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어여쁜 꽃은 향기가 나는 법이었다. 그 향기는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주변에 벌레들이 꼬이게 만든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그녀를 갖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언제쯤 제 주인은 알아주려나. 어찌하려고 그렇게나 아름다우셔서 제 손에 피를 묻이게 하고 선했던 자신을 악하게 만드는 걸까.
“더이상 선생님들이 다치시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될 수 있다면 당신만큼은 헛된 입놀림으로 제 생명을 갉아먹지 말라는 자신의 경고였다.
*
다시 돌아온 Lighter 입니다!
빨리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늦어서 죄송해요...분량도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더 미안해지네요...
아직 이야기는 전개 단계이지만 저는 슬슬 결말을 생각하고 있답니다...그러니까 조금은 수월하게 쓰여지겠지요....? 애들의 매력수치는 아주 빵빵한데 제 필력이 그걸 잘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티켓팅도 실패하고 현망진창이 따로 없어요!!!! 그래도 아이들의 브이앱만 기다리면서 저는 살고 있답니다...ㅎ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댓글까지 써주시는 분들 정말 천사에요ㅠㅠㅠㅠㅠ우선적으로 독자님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로 볼 수 있는 게 댓글이다보니 가끔씩 달려있는 댓글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답니다ㅠㅠㅠㅠㅠㅜ우리 다음화에서도 만나고 견주가 끝나는 순간까지 오래도록 만났으면 좋겠어요!!!(하트)
* 암호닉 신청 받고 있습니다. *
암호닉은 사랑입니다. |
99 달다리 연두부님 설한화 뀨뀨 쥬쥬 지훈지 샐라인 정연아 수국 발챙발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