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운 시점 *
서울로 전학 온 첫 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저 눈을 깜박이던 거 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찾아가 앉은 자리의 짝꿍이었던 네 표정에 호기심이 잔뜩 끼어 있었다는 것 정도?
나중에 들어보니 내 전학과 관련하여 이상한(?) 소문이 돌았었다고 그랬다. 얘기를 듣고 나니 호기심이 가득하던 그 표정이 어느정도 이해가 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학생이 굉장한 꽃미남이라는 소문, 그 얘기를 내게 전하던 여주는 진짜 말도 안되는 소문이지 않았냐고 말하며 웃었다.
... 그렇게 말도 안될 정도의 소문인가.
" 학교 구경 시켜줄게. 가자! "
서울 학교로 전학 오게 된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숫기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매번 부단히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에, 주변에 아는 친구가 없다는 점 등등 전학 온 것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주는 그런 나를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고마운 존재였다.
너는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아마 학생 생활 기록부에도 항상 밝고 명랑함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정도로. 너는 학교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이끌고 가 이곳저곳 소개를 시켜주기도 하고, 학교 근처에 맛있는 음식점들을 많이 안다며 나를 데려가곤 했다.
" 야, 김재환. 인사해. 전학 온 내 짝꿍! "
" ..야, 뭔 인사야. 같은 반인데. "
" 말 안나눠봤잖아. 좀 친하게 지내고 그래. "
재환이와 친해진 것도 여주의 공이 컸다. 대뜸 또 나를 어디론가 이끌기에 오늘은 뭐를 알려주려고 그러나 싶어 따라나섰는데, 여주가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재환이 앞이였다. 재환인 황당한 표정으로 여주를 바라봤지만, 여주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나를 소개했다. 어색함 속에 통성명을 하다 웃음을 터뜨렸던 게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 아, 김여주. 건들지 말랬지. "
" 에~ 김여주 근들지 말래찌~ "
" .. 죽는다. 진짜. "
" 헐, 세운아. 얘 봐. 나 맞으면 니가 증인 서줘야 된다!! "
" 아오, 콩알만한 게. "
" 재환아, 그래도 때리면 안되지. "
" 와, 정세운. 지금 김여주 편 드냐? "
학교 생활이 재밌었다. 별로 재밌는 성격도 아닌 내가 둘과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처음엔 매사에 진지하다며 타박하던 애들도 내가 간혹 던지는 농담에 이런 장난도 칠 줄 아냐며 웃어댔다. 농담을 던질 때도 진지한 얼굴이라 그게 더 웃기다고 했다. 약간은 우울한 면이 있던 성격이, 그렇게 바뀌어 갔다.
" 진짜, 주객이 전도 됐다니까?! "
" 에이.. 여주야. "
넌 이따금씩 이제 자기는 김여주가 아니라 정세운이랑 친한 애가 되버렸다며 툴툴거렸다. 이게 다 인기가 많은 네 탓이라느니, 자기가 학교는 더 오래 다녔는데 이게 말이 되냐느니 하며 섭섭한 얼굴을 띄웠지만, 여주는 알지 못했다.
내 짝꿍이 너였어서 내가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전교회장 정세운 w.리틀걸
Episode 6. 세운 이야기
# DAY6 (데이식스) - 장난 아닌데
여주가 저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챈 건,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워낙에 천성부터가 둔한 성격에 그런 걸 눈치 채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 여주야. 밥 먹으러.. "
" (화들짝) "
" 왜 이렇게 놀래. 여주야. "
그 날따라 여주가 이상했다. 무어라 작은 말이라도 걸려 하면 움찔 움찔 놀란다거나, 도움을 구하려고 하면 어색하게 웃으며 할 일이 있다면서 휙 사라져 버린다거나. 처음엔 그냥 무슨 일이 있나 생각했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또 곧잘 웃고 떠드는 걸 보니 또 그건 아닌 거 같았다. 점심 시간이 되었고, 재환이는 중요한 축구 시합이 있다며 가버리는 바람에 여주와 둘이 밥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다. 여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 어?.. 아니, 아니야. 가자! "
여주의 시선이 허공에 닿더니 휙- 몸을 돌렸다. .. 왜그러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여주야. 방울 토마토. "
오늘 급식에는 방울 토마토가 나왔다. 평소 방울 토마토가 나올 때면 싱글벙글 신나할 정도로 여주는 방울 토마토를 좋아했다. 그걸 안 이후에는 종종 내 방울토마토를 여주에게 주곤 했다. 내가 받은 방울 토마토 몇 개를 쥐어 여주에게 슬쩍 건네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밥을 먹던 여주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 어.. 아니야. 세운아. 너 먹어..! "
" 여주 너 좋아하잖아. 오늘 좀 이상한데, 무슨 일 있.. "
" 하하.. 이상하긴. 아냐! 세운아. 너 먹어! "
여주는 내가 내미는 손을 황급히 가로막으며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결국 여러 번의 실랑이 끝에 반동을 견디지 못한 방울토마토가 내 손을 벗어나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 어.. "
" ..아, 세운아. 미안해. 진짜 나 괜찮아서.. "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바닥을 굴러다니는 방울 토마토를 보고 여주쪽을 바라보니 여주가 미안한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방울 토마토는 괜찮은데, 오늘 여주 너 진짜 이상한데.
" 나 진짜 왜이러지. 어으, "
제 머리를 감싸쥐며 한숨을 푹 내쉰 여주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 좀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가봐. 내일은 괜찮을거야.. "
말은 그렇게 하면서, 또 눈을 맞추려는 내 시선을 흠칫 놀라며 피하는 여주였다. 자꾸만 허공을 멤도는 그 시선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 .. 다 먹었으면 가자. 세운아. "
여주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그제서야 내게 보였던 이해가 되지 않았던 행동들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꽤 오래 전부터 나를 의식하는 여주의 행동들을 은연 중에 느껴왔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날따라 좀 더 이상했던, 여주의 행동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그 마음을 눈치 챈 나였다.
여주는 다음 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사실들을 알고 나니 이 후엔 여주의 그런 행동들이 더 눈에 보였다. 이따금씩 툭 던진 말에 얼굴을 붉힐 때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곤 했다.
" 도와줘서 고마워. 여주야. "
" 정세운~ "
" 응? "
" 솔직히 나만한 친구 없지? 그치? "
" 없지. "
그래도 마음을 눈치 챈 순간부터 흔들릴 수 있었던 친구 관계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철저히 그 마음을 숨기려 했던 여주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아마 여주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나 또한 그렇게 여주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 해왔다.
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조금 더 최근의 일이었다.
그냥 신경이 쓰였다.
" 아~ 몰라. 나 지금 되게 서운해. 정세운─ "
섭섭함을 띄우던 그 얼굴이. 복잡한 심경인지 티는 안내도 입술을 잘게 씹던 그 모습이. 그리고 또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섭섭함을 지워내고 장난스럽게 대꾸하던 것이.
" 나중에 연습 끝나면, 제일 먼저 보여줄게. "
그래서 자꾸만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들이 먼저 앞섰다. 그 서운한 얼굴이 괜히 신경이 쓰여서.
그 후로도 여러 번 그 마음을 건들였다.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것을 제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제 감정은 어느새 모든 생각들을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 이제 재환이 얘기 말고, "
" ....... "
" 다른 얘기가 듣고 싶은데, 난. "
.. 아.
그 시작은, 유치한 질투 같은 거였다.
회장으로서의 할 일과 밴드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을 바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했고, 여주나 재환이와 같이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덧 축제가 일주일도 채 안 남게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해야 할 일은 밀려드는데, 시간은 없는 통에 머릿 속이 복잡해 한숨 쉬기를 여러 번 반복하곤 했다.
그럼에도 여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다 지워내주곤 했다. 오랜만에 같이 한 점심이었다. 앞에서 재잘재잘 그간 있었던 일들을 늘어 놓는 여주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그 모습에 자꾸 웃음이 새어나왔다.
" 아 맞다. 어제 학교 끝나고 재환이 축구하는 거 구경했단 말야. "
대화의 흐름에 재환이가 빠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난 애들과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대화는 늘 공통적인 주제나 사람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 그리고 오늘은 갑자기. 걔 책 되게 안읽잖아. 근데.. "
그런데도 속에서 자꾸 이상한 마음이 꿈틀댔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유치한 그런 마음이.
" 하여튼 진짜 웃겨. 김재환. "
"세운아, 내 말 듣고 있어? "
질투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제 마음을 파고 들었다. 한동안 저 구석에 박아뒀던 유치한 마음은 고삐가 풀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제 마음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주의 입을 타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그 이름에 질투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려했지만, 이미 감정은 내 손 안을 벗어난 후였다.
" ...... "
" ....... "
여주는 다른 얘기가 듣고 싶다는 내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앞에 놓여진 국만 뒤적거리는 게, 눈치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왜그랬어. 정세운. 그러나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앞선 그 말은 또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여주는 제가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게 아니라.. 그렇다고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유치한 감정을 여주에게 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재환이한테 질투라니, 너무 유치하잖아. 정세운. 가만히 여주의 눈치를 살피다 여주와 동시에 입을 열었다.
" 어? 세운오빠! "
그리고 그런 우리 둘 앞으로 지영이가 아는 척을 해오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부름은,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졌다. 합주실에 가자는 지영이의 말에 슬쩍 여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주한 여주의 표정은 뚱했다. 입이 툭 튀어나온 게, 항상 그래왔지만 여주는 표정을 숨기는 데에 소질이 없었다. 그런 점이 귀엽고 또 재밌었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도 여주는 입술을 비죽였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 이따 잠깐 합주실 놀러 와. "
내 말은 또 생각을 앞서잖아.
" 응! 알겠어! "
여주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미치겠다. 진짜. 작은 웃음이 입술 새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에필로그 (ver.세운) |
" 예뻤어. 날 바라봐주던 그 눈빛ㅡ " 합주실은 어느새 연주 소리로 가득 차있었다. 축제가 얼마 남지않아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끊임없이 연습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여주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아 세운은 자꾸만 피실, 웃음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형섭이 잠시 쉬는 타임에 베이스를 옆에 세워두고 세운에게 다가와 물었다. " 형, 무슨 좋은 일 있어요? " " 어?.. 아냐. 없어. " 웃음이 나는 일이 있긴 하지만. 세운은 금세 웃음을 감췄다. 이에 형섭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웃고 있길래 기분 좋은 일 있나 했어요. 형. " " .. 아, 형섭아. 이따가 앰프 끄지마. 여주 오기로 해서. " 세운의 말에 형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형 기분의 이유를 찾은 거 같기도 하고. 세운만 모르는 흐뭇한 시선이 세운을 따랐다. |
작가의 말 |
모바일로 적으니까.. 자꾸 잘못 눌러서 작가의 말을 지워버리내요... 모바일은 왜 Ctrl + z 버튼이 없는거죠...? 휴.... 그래도 작가의 머리를 터지게했던 세운이 시점 글이 왔습니다 (짝짝) 더 길게 적을까 했지만 5화를 그렇게 끝내버려서.. (눈물.. 아 영민이 글은 주말에 꼭 들고 올게요 ㅠㅠ 연재 넘 느려서 봐주시는 분들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네요..ㅎ 저가 힝상 사랑하는 거 알져,,, 마이 럽,, 독자님덜,, 굿밤되세운♡ 여행 끝 혐생 시작입니다,, 따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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