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난 김에, 우리 그때 그 닭갈비 집 가자. 여주야. "
내 머리를 쓰다듬는 영민이의 손길에 여전히 울상인 채로 있었다. 그러다 이제 그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하는 마음에 슬쩍 눈치를 봤는데, 영민이는 다른 얘기로 넘어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응..? 아니야. 영민아. 딴 데, 딴 데 가ㅈ...
" 닭갈비 먹고싶다. 오늘따라. "
으, 응... 그럼 가야지.. (눈물)
영민이는 자꾸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입을 비죽이고 있는 내 볼을 손으로 감싸쥐며 웃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김여주 놀림거리는 잊고 지냈던 첫 만남이구나 싶다.
닭갈비집으로 가고자 카페를 빠져나오니 습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으, 더워. 나오자마자 손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 내 모습을 본 영민이가 뭔가 떠오른 듯 아. 하고 소리를 내더니 백팩을 앞으로 하고 가방을 뒤적였다.
" 짠. "
제가 꺼내려던 물건이 꽤나 구석에 박혀있었던 건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가방을 뒤적거리던 영민이가 꺼낸 건 다름 아닌 휴대용 미니 선풍기였다. 헐. 대박. 바로 스위치를 올려 내 쪽으로 바람을 쐬주더니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칭찬을 바라는 저 눈빛.. 귀여움에 웃음이 난다.
" 헐, 대박. 진짜. 완전. 임영민 최고! "
양 손으로 엄지까지 들어올리며 우주의 기운을 모아 보인 내 리액션은 영민이의 광대를 더 높이 올리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아예 미니 선풍기를 내 손에 쥐어준다. 요즘 다들 가지고 다니길래, 하나 샀어. 안그래도 손에 하나씩 다들 들고 다니기에 나도 올 여름엔 하나 살까 하고 고민을 했던 참이었는데, 영민이는 역시 매번 내가 필요한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시원해. 영민이가 준 미니 선풍기로 더위를 달래가며 닭갈비집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곳이라 저녁 시간이 되니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2인석 한 자리를 잡고 앉아 평소 먹던대로 치즈 닭갈비 2인분을 주문했다.
" 진짜 그 때 생각난다. 맞지? "
하하.. 그러게. 영민이의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영민과 처음으로 왔었던 음식점. 그 때는 솔직히 너무 어색해서 닭갈비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는데. 심지어 그렇게나 좋아했던 닭갈비가 그 날은 맛이 있는 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 주문하신 치즈 닭갈비 나왔습니다. "
" 헝, 맛있겠다. "
" 아─ "
" .... ? "
" 먹여줘. 아─ "
그랬던 우리가 이렇게 달달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지.
아, 그나저나 임영민. 입 벌린 거 봐. 개귀여워. 미쳐.. 지구 뿌셔. (현기증)
임영민 조각글(이라쓰고 단/중편이라 읽는다)
상황이 뒤집혔다는 말이 정말 딱 맞았다. 임영민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시발.. 이렇게 놓을려고 여태껏 안 놓고 있었던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난 현재 부끄러움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쇼파가 마치 가시 방석이라도 되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이었다. 자꾸만 임영민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 페이스북에 사진이 남아 있는 건 생각 못했는데. "
" ....... "
" 오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 "
... 그.. 그렇죠? 오해할 만.. (쭈굴)
" 우리 누나가 좀 유별나서. "
우리, 누나? 헐. 누나였어? 그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임영민은 여전히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덤덤했고.
"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소문 같은 게 많이 났거든. "
" ....... "
" 처음엔 누구랑 사귄다더라. 그 다음엔 여자가 많다더라. "
" ....... "
" 다음엔, 바람을 폈다더라. 하는 것들. "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방금 들어 올렸던 고개는 자동으로 다시 수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아직 얘기를 다 들은 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상황이 이해가 가서.
" 난 별로 신경 안 쓰려고 노력했는데. "
" ........ "
" 우리 누나는 그래도 동생이 그런 오해 받는 게 싫었나봐. "
.. 아.
임영민 말에 의하면, 페이스북에 업로드 해둔 사진들, 과거에 본인이 올렸던 것을 포함하여 누나가 계정을 태그해 올린 모든 사진들은 일종의 루머 방지 같은 거였다고 했다. 그렇게 해두면, 그냥 여자친구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상한 얘기들이 조금 줄어들기도 하고, 관련해 오해가 생겨도 오늘처럼 친누나라고 해명하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페이스북 계정을 잘 들어가질 않아서 올려뒀던 사진들도 잊고 있었다고 그랬다. 그래서였는지 임영민의 타임라인에 올라왔던 최근 글들 대부분이 친구들이 태그를 해서 올라온 것들이었던 것이 그제야 떠오르면서 이해가 갔다.
그리고 쉽게 꺼낼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 자신의 얘기들을 덤덤하게 털어 놓는 임영민을 보며 섣부른 판단으로 그를 몰아세웠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늘 임영민을 따라다녔다는 그 루머들 중 하나를 불과 하루만에 내가 생성한 꼴이 되었으니. 나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김여주 이 등신아..
" 지금 나한테 되게 미안하죠? "
이미 티나게 표정 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살짝 고개를 숙여 바라보며 임영민이 그런다. ..죄송해요. 진짜.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이 사람은 또 왜, 이렇게 아무렇지않은 얼굴이라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드는지.
" 그럼 이제 화 좀 내도 되려나.. "
이어지는 말에 좀 전보다 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 내는 거는 당연하구요. 이건 진짜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진짜. 화 풀리실 때까지 욕하고 때리고 뭐든 하세요.. 진짜 너무 죄송해요.
어느새 말하는 내 얼굴은 죽상이 되어 있었고, 그는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와중에 웃는 모습은 말도 안되게 예쁘다. 하, 그치만 웃지마세요. 제발. 미안해 죽을 거 같으니까..(울상)
" (웃음) 때리는 건 안되고. "
" ....... "
" 아,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 "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리더니 능청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동공이 심각하게 흔들렸다.
" 그.. 그럼 제가 밥 살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
그리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임영민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결국, 그를 이끌고 카페를 나와 어색한 모습으로 향한 곳은 카페 근처에 있는 내가 자주 가는 맛집이었다. 카페를 나오기 전,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는 내 물음에 임영민은 딱히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 내가 정하는 게 더 불편한데.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지금 존나 잘못한 상황인데. 나는 빠르게 두뇌를 풀가동시켰고, 자주 가던 맛집들을 떠올리다가 생각난 곳이 바로 이 닭갈비집이었다. 평소 애정하는 곳이라 친구들과 생각날 때마다 들러서 먹곤 했었는데, 오늘은..
" 맛있게 먹을게. 여주야. "
내가 어쩌다 이 사람과 여기를 오게 된거지. (한숨)
임영민과의 (나만) 어색한 식사가 계속되었다. 제 루머를 퍼뜨린 사람이랑 밥을 먹는 이 상황이 그에게는 이상하지 않은 건지 임영민은 그 일을 벌써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 연락을 주고 받았을 때처럼 이따금씩 내게 소소한 질문들을 던졌다. 아, 그리고 대화 중간중간 존댓말과 반말을 섞었다. 말 놓을 때까지만 해도 자연스럽더니, 막상 계속 반말을 쓰는 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 경영 쪽에는 아는 친구 없어요? "
" 아, 네.. 딱히 동아리 활동 같은 거를 안해서 다른 과에 아는 사람 거의 없는 편이에요. "
" 그럼 더 자주 봐야겠다. "
" ... 네? "
" 난 알고 싶은 게 많은데 연결 고리가 없으니까. "
" 아.. "
" 자주 봐야지. "
임영민은 꽤나 적극적이었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히 내가 그에 대해 오해를 한 일이 없었다면, 이미 난 임영민에게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치만 지금은 그보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난감함에 괜히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 아.. 부담 주려던 건 아닌데. "
..아차. 또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난 모양이었다. 금세 미안한 얼굴을 띄우는 그의 모습에 당황하여 손사레를 쳤다.
" 아뇨..! 부담 주신 건 아니고.. "
" 그냥, 난 이미 이거 먹으면서 다 잊어버렸으니까. "
" ....... "
" 우리 사이가 불편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입만 뻐끔거리다 나와 눈을 맞추는 그의 시선과 맞닿았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 그만큼 관심 있다고 얘기하는 거에요. 지금. "
임영민은 제 생각보다 불도저같은 사람이었다. 저런 순진한 얼굴로 저런 말을 내뱉다니. (입틀막) 낯간지러워지는 기분이 들어 안그래도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이제는 목 뒤쪽까지 안 화끈거리는 구석이 없었다. 다 잊어버렸다는 그 한 마디에 이미 내 양심은 잠시 저 멀리로 떠나간 후였다. 불과 몇 초 전까지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으면서, 금세 심장이 쿵쾅 쿵쾅 마음 속에선 자진 방아를 돌리고 있는 상태다. 미친, 진짜 개설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는 날 보더니 그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런다.
다 먹었으면 가자. 데려다줄게.
" 그..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
" .... ? "
"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돌았다는 거, 그 때 바로 해명할 수는 없었던 거에요? "
집으로 향하는 길, 어느새 길거리는 어둑어둑해졌고 밤공기가 그와 내 주변을 감쌌다. 아, 좋다. 특유의 밤공기 냄새가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틈 타 좀전부터 피어올랐던 궁금증을 그에게 내비쳤다.
" 아니, 왠지 저 같으면. 억울해서 진짜 잠도 안 왔을 거 같은데 되게 덤덤하신 거 같애서.. "
고민하는 듯 음.. 하더니 몇 초간의 정적이 이어지다 그가 입을 열었다.
" 주변 사람들한테는 얘기를 했었는데. "
" ........ "
" 중요한 건 거기가 아니더라고. "
" ... 아. "
" 남 얘기만큼 흥미로운 얘기가 없으니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가 더 많았어. 처음엔 너무 억울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까 또 익숙해지더라. 거기에. "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게다가 어딜 가나 주목받았을 법한 외모인데 구설수에 오르기 더 쉬웠겠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으니 또 짠해져서 그 쪽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그는 지금은 괜찮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 잘 들어가고, 카톡해. "
몇 차례 대화를 나누고나니 집 앞에 다다라있었다. 임영민을 향해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가 핸드폰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미소를 띄우며 알겠다고 대답한 뒤 뒤돌아 현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여주야. "
그리고 현관문 쪽에 가까워졌을 때 쯤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멈칫하고 다시 그 쪽으로 몸을 돌렸다.
" 그냥. 아쉬워서 불러봤어. "
" ...... "
" 잘 들어가. 여주야. "
첫 만남은 몹시 다이나믹했지만, 퍽 달달할 것 같은 임영민과의 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 드디어 영민이 글 3편을 가쟈와씀다.... 사연 많은 녕미니였아요... 글 쓰느라 넘 졸립네요 ㅠㅡㅠ 에필로그까지는 피곤함을 못 견딜 거 같아서 요기까지만 쪄왔어요 흑.. 세운이 글은 이번주말에 들구올게요.. 쵸큼.. 중요한 화라..ㅎㅎ 조만간 3차 암호닉 신청도 받도록 할게욥..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굿밤되세영민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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