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민현아. "
" ...... "
" 너 설마 지금 긴장했냐? "
" ..성우야 쉿. "
" 허. 나 참. "
성우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도 그럴 게 민현의 안색이 답지 않게 긴장이 역력했다. 성우와 각자의 자취방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힐끔거렸다. 보다 못한 성우가 팔꿈치로 민현의 어깨를 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 야 종현이가 아무리 숙맥이고 애 같아도 설마 좋아하는 애한테 자기 할 말 하나 못할까 봐? "
술집을 나오자마자 민현의 등에 업혀있던 여주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저...저기..오..빠들... 여주의 목소리에 세 사람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고 이내 여주가 스르륵 민현의 등에서 내려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아마 종현은 그 모습을 보고 또 여주에게 반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여주와 종현만 남기고 성우와 민현은 어색한 티를 왕창 내며 자리를 내주었다. 성우에게 거의 끌리다시피 자취방 어귀까지 온 민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내내 성우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가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뱉었다.
" 종현이 처음이야, 성우야. "
" ..엉? "
" 여자랑 단둘이 있는 거. 그리고 여자친구 생기는 거. 다 처음이야 종현이는. "
성우는 어버버거리면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민현의 걱정 가득한 얼굴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성우는 멋쩍은 듯 제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아핫하 요상스러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꽤 비장한 얼굴로 민현의 어깨를 턱- 잡았다.
" 야 민현아. 오늘부터 우리 종현이 위해서 기도하자. "
" 성우 너 무교 아니였어? "
" 오늘부터 유교하기로 했다. 나 믿는 신 겁나게 많아졌어. "
능청스레 말을 뱉어내는 성우의 옆얼굴을 보는 민현의 입가에 보스스한 웃음이 지어진다. 저보다 반뼘은 큰 민현의 어깨에 팔을 둘러대면서 성우가 호탕하게 웃었다. 야 모솔도 연애고수일줄 누가 알아. 아니야? 성우가 제법 큰 목소리로 민현에게 물었다. 민현은 물음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노코멘트를 유지하며 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민현이 알고 있는 종현은 연애고수일리가 없다. 태어나서 연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이였다. 다만, 민현의 걱정이 조금은 덜어지는 건 평소에 종현이 로맨스 장르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았다는 것이었다. 성우와 민현이 각자의 방식대로 종현의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성우의 두 눈과 콧구멍이 커지면서 민현을 바라보았다. 흐어억. 괴이한 소리까지 내가며 성우는 입을 달싹였다.
" 왜그래 성우야. "
" 재환이...! "
" ...아. "
그제야 술집에 홀로 두고 온 재환의 생각이 나버린 것이다. 성우는 부랴부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냈고 그건 민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맞물렸다. 각자의 휴대폰 화면에 찍혀있는 부재중 전화 12통은 모두 재환에게서 온 것이었다. 성우가 데이터를 키니 여주 몰래 만든 단체카톡방에 읽지 않은 카톡이 그득했다. 못내 미안한 마음에 성우가 카톡창을 눌렀다. 민현은 성우의 휴대폰 화면을 빤히 보았다.
형들 정말 인류애 상실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군요 오전 12:24
저는 오늘부로 두 명의 형을 잃었습니다 오전 12:24
오전 12:25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 "
" ..... "
술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원에 나란히 앉은 여주와 종현은 서로의 눈치만 보기 바빴다. 크흠, 큼... 여주가 헛기침을 하면 종현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여주가 정면을 꿋꿋이 향한 고개를 틀어 종현에게 두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종현의 모습을 지그시 보다가 결심한 듯 입술을 벌렸다.
" 오빠. "
" ...따핫..! "
마치 여주가 처음 종현에게 '오빠' 라는 말을 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여주는 잠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계속해서 말을 덧붙였다.
" 오빠 저 좋아요? "
" .... "
" 어. 오빠 왜 대답 안 해요? 저 싫어, "
" 안니!! 안니, 안니! "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치는 종현의 얼굴은 새빨간 토마토가 따로 없다. 여주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였다. 여주는 참았던 웃음을 그제야 터뜨렸다. 이미 술은 깬지 오래였고 종현이 귀엽다는 생각은 비단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지도 오래였다. 여주는 고개를 비스듬히 하곤 제 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종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여주의 시선이 느껴진 건지 종현이 살짝 눈을 뜨고 흐익... 놀란 듯 외마디의 작은 소리를 냈다.
" 오빠 그럼. 저 안 싫어하면 뭐예요? "
" 좋아..좋아해..마니...지짜, 지짜로 좋아해. "
" 오빠도 나 좋아하고 나도 오빠 좋아하는데 그럼 이제 우리, "
" 응!!!! "
여주의 대답이 채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종현이 냅다 대답을 했다. 여주는 느닷없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져 그만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종현을 바라봤다. 종현은 여주의 표정을 보고는 뒤늦게야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고개를 폭 숙였다. 진정이 된 줄 알았던 종현의 얼굴이 다시금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 아 진짜 오빠. "
" .... "
" 아, 오빠 고개 들어 봐요. 네? "
" ..으응. 여주야아.. 나 지그믄.. 조금 부끄러어서... "
애교가 그득한 목소리 때문에 여주는 입술을 꾹 물고 실실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이제 보니 이 오빠 순 애교덩어리다. 말꼬리를 늘이는 거 하며, 선천적으로 혀가 짧은 건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뭉개지는 발음하며. 솔직히 다른 사람이었으면 여주는 진작에 답답해서 자리를 떴을거다. 꼬물꼬물거리는 몸짓이 점점 들어 올려지더니 마침내 여주의 얼굴을 슬쩍 건너보았다.
" 여주야아. "
" 왜요 오빠. 이제는 안 부끄러워요? "
" 안니..부끄러.. 부끄러운데... 이짜나 여주야. 이짜나.. "
여주는 종현이 이다음에 할 말을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연애를 하자거나, 뭐 그런 뉘앙스의 말들. 여주는 잠자코 종현의 뒷말을 기다렸다. 여전히 종현이 걸쳐 준 외투를 입고 넌지시 종현의 얼굴을 훑었다. 늦은 밤, 새벽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종현의 내음 같은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게 여주의 주위를 감쌌다. 그때였다. 끝내 종현의 작은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주의 얼굴을 마주했다. 이내 종현의 입술이 느지막이 벌어지며 다정한 소리를 냈다.
" 앞으로능 맛있는 것두 많이 먹구...또..! 내가 여주 행복하게 해주구.. 또오.. 또...! 그러니까아...하핫.. "
" .... "
" 나랑 오래, 오래 죠은 추억 만들쟈. "
" 오빠. "
" ...응? 혹시 시러..? "
" 내가 진짜 좋아해요. "
싫을 리가 있겠어요 진짜. 끝내 여주의 얼굴과 종현의 얼굴에 같은 웃음이 띠었다. 종현과 여주는 서로를 마주 보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맘껏 흘렸다. 여주가 나지막이 좋아한다 읊조리면 종현이 수줍게 여주의 말을 따라 했다. 좋아해요. 좋아해. 좋아해요. ...좋아해. 존나 좋아해요. 죠..죤..., 아니 좋아해. 기분 좋은 가을 바람을 타고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45000원 나왔다. "
" 야 내가 언제 돈 안 주고 튄 적 있어? 표정 풀고. 지금 토스로 쏴줄- "
" 종현이 형이랑은 어떻게 되었는가. "
아침 전공 시간이 되어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김재환이 가자미 눈을 하고선 날 노려보았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어젯밤의 상황은 얼추 기억이 났다. 미안한 마음에 45000원의 반을 토스로 보내려 휴대폰을 딱 키는데 순간 김재환의 담담한 목소리가 머리맡으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번뜩 고개를 들어 김재환의 얼굴을 보았다. 의심미 그득한 표정으로 김재환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 일단 너만 알고 있어. "
" 나는 현빈이처럼 입 싸지 않아. "
" 오빠랑 사겨. "
" 그럴 줄 알았다. "
김재환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 휴대폰에 시선을 두고 김재환에게 돈을 송금하려는 순간, 언제 온 건지 강다니엘이 우리 앞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물끄러미 나와 김재환을 번갈아 보았다.
" 둘이 무슨 이야기 해? 맞아, 여주야 나 궁금한 거 있는.. "
" 사귄대 둘이. "
" 와학!! 대박!!! 우어- "
깜짝 놀란 사모예드처럼 멍멍거리는 강다니엘의 입을 단숨에 손으로 막아버렸다. 졸지에 강의실 안에 있던 동기들이 우릴 향해 시선을 쏟아부었다. 아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어설프게 웃으면서 말을 뱉고 여전히 손으로 강다니엘의 입을 막은 채 김재환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권현빈 어쩌고 하더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보다.
" 즉그슾냐? "
" 어차피 니엘이도 나중에 알게 될 텐....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
강다니엘의 입에 두었던 손을 떼고 다시 자리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강다니엘과 김재환이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검지로 날 툭툭 건드렸다. 툭, 툭, 툭. 세 번의 두드림 끝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틀고 히죽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세상이 온통 분홍색 렌즈를 낀 것처럼 분홍빛이 돌았다. 김재환의 얼굴도, 강다니엘의 얼굴도. 이제 막 강의실 안에 들어서는 교수님의 얼굴도. 온통 분홍빛을 띠었다. 내가 웃어 보일줄은 몰랐는지 강다니엘과 김재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았다.
" 야. 점심때 시간 비워 놔. 오빠가 같이 밥 먹재. "
" 어..어엉.. 야, 야... 우리가 눈치 없이 껴도 될…알았어. "
" 으헣헣. 알겠어 여주야. 진짜, 진짜 축! "
" 적당히 하고 니엘아. "
어쩐 일로 김재환이 강다니엘을 먼저 제지시켰다. 덕분에 나는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는 동안에도 방긋거리면서 부름에 대한 대답을 했다. 김여주. 네! 누가 보면 세상 행복이 모두 나한테만 있는 줄 알 정도로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 살맛 난다 진짜.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어뜨케 미녀나. "
" 왜 또 종현아. "
" 나 지짜 꿈 꾸는 거 안니야? "
" 딱콩 한 번 더 해줘, 종현아? "
민현의 물음에 종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으니 믿지 못하는 종현의 상황도 이해갔지만 민현은 아침부터 같은 말만 반복하는 종현에게 따끔한 쓴소리를 하려던 참이었다. 딱콩이란 말에 종현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2학년 전용 연습실을 나오면서 잠시 종현이 걸음을 주춤했다. 한창 열띤 강의를 하고 있는 강의실 앞에 우두커니 선 채 민현의 작은 부름에도 마다하지 않고 강의실 안을 열심히 살폈다. 어느새 민현도 종현의 곁에 다가가 강의실 안을 기웃거렸다. 아. 낯익은 옆태가 한눈에 보인다. 민현은 슬며시 웃으며 종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 종현아, 너 지금 여주한테 텔레파시 보내? "
" 미녀나..쉿. "
" ..... "
민현은 생전 처음으로 종현에게 제지를 당했다. 민현의 큰 눈이 점차 느릿하게 끔벅여졌다.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민현은 어젯밤 성우가 한 말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사랑을 알면 사람이 변한대 민현아. 우리 종현이도 설마 그러는 건 아니겠지. 노파심에 한 말이라 단정 지으며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던 말이 어쩌면 사실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민현은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고 벽으로 총총 달라붙는 종현을 그저 마주했다. 여주의 얼굴을 다 보았나 보다. 생글생글 웃음을 띠면서 종현이 민현의 옆에 섰다.
" 미녀나. 여주는 공부하능 것도 예뻐. "
" .... "
" ...미녀나? "
" 어, 어 종현아. "
두어 번의 부름 끝에 민현은 생각을 떨쳐내고 말을 뱉어냈다. 어쩌면 민현은 생각보다 더 많이 종현을 동생처럼 걱정하고 보살핀 게 틀림 없다. 조금 달라진 종현의 행동에 이토록 놀라는 걸 보면 말이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저보다 앞서가는 종현의 조그마한 뒷모습을 보면서 민현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우리 종현이 다 컸구나 정말.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괜히 코 끝이 찡했다. 이런 기분은 나중에 결혼을 했을 때 딸을 낳으면, 딸의 결혼식 때나 들 줄 알았는데….
" 미녀나! 언능 와! "
훠이훠이 손을 휘저으며 종현이 민현을 불렀다. 부르는 얼굴엔 웃음이 송송 돋아났다. 민현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종현에게 가까이 다가갈 뿐이었다.
도짜님들 Q. 새벽에 알림 울리는 이유는?
A. 백수라서 밤낮이 바뀌었숩니다 데둉합니다 흑흑....
이번편에서 주의 깊게 봐야 될 건 아마도 미년이...? 하핫
도짜님들 저 잠이 안와서 바로 다음편 끄적이고 있거둔요
또 빠르면 저녁에 올 수도 이써요...머..그렇다고요..ㅎㅁㅎ
아니 근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난 편에 도짜님들 막
여주 술취해서 기억 못하면 어떠카냐곸ㅋㅋㅋㅋㅋㅋ
아주 귀여운 걱정들을 하셔서 제가 엄청 웃었답니다..^^..귀여우셔라들..
무튼... 오늘 내용 먼가 없어 보이는데 그거슨 착각입니다; 네; 하핫
저는 천천히 스며드는 연애가 좋아요...
도짜님들 뽀뽀 막 그른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아셨져..?
그럼... 다음편은 더 귀여운 종현이로 만나뵙도록 하겠숩니다
죤새벽 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