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2
황민현
[ 잘 들어갔어? ]
[ 난 이제 볼 일 다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거든 ㅋㅋ ]
[ 오늘 즐거웠어 ]
[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 오후 9 : 45
옹청이
[ ㅋㅋㅋㅋㅋㅋ 떵우 치킨 목고띠포용 ]
[ 여주누낭~~~ ]
[ 띠킨~~~ ] 오후 9 : 49
[ 아 미안 ]
[ 안읽씹은 안된다 김여주 ]
[ 알지? ] 오후 10 : 02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두 명에게서 온 카톡이 보였다. 오늘 소개팅을 한 황민현과 6년째 친구인 옹성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황민현의 톡을 먼저 눌러 답장을 했다.
나도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나자.
너무 형식적인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옹성우의 톡을 누르자 그냥 웃음이 먼저 나왔다. 옹성우도 참 한결같지.
ㅋㅋㅋㅋ치킨 먹고 싶냐 ㅋㅋㅋㅋㅋㅋ 몹쓸 애교 사절 ㅗ
...음, 카톡에 온도차가 심한 것 같지만 황민현은 알게 된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고, 게다가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다. 반면에 옹성우는 6년이다. 6년이나 알고 지냈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내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 아, 뭐야. 갑자기 웬 전화? "
옹성우에게 중지 손가락을 보내자마자 1이 사라지고 전화가 왔다. 물론 발신자를 보고 난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고. 옹성우는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내가 너한테 애교 부린 이유를 딱 알고 있네! 치킨 먹자, 치킨! 옹성우의 애교 섞인 말투에 난 또 녹아버렸다. 옹성우의 연락을 받기 전에는 그래도, 그나마 황민현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결국에 옹성우는 황민현을 쉽게 밀어내버리고 만다. 내 마음 속에서.
결국에는 옹성우의 부름에 못 이기는 척 치킨을 먹으러 나왔다. 대충 후줄근하게 입은 듯 하지만, 그래도 나름 꾸민다고 꾸며서. 그래봤자 옹성우 눈엔 다 똑같이 보이겠지만. 준비를 하면서 약간의 비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이미 6년간 이렇게 살아온걸. 습관처럼 옹성우를 만나기 전에는 거울을 몇 번이고 확인하는걸. 만나기로 한 장소 앞에 가자 모자를 쓴 옹성우가 나를 한 번에 알아보고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몇 번이고 거울을 확인했음에도 혹시나 화장이 번졌을까, 옷이 별로일까 걱정하고.
" 왜 이렇게 늦었냐? 소개팅 간 고대로 입고 나오지, 쫌. "
" ...너 만나는데 무슨. "
그럴걸 그랬다. 차라리 너한테 소개팅이라는 명분이 있을 때 예쁜 모습이라도 보여줄걸 그랬다. 일부러 더 투덜대며 말했다. 널 만나는데 내가 왜 예쁘게 하고 와야하냐며. 옹성우가 투덜대는 내 모습에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 뭐~ 그러나 저러나 넌 나한테 김여주야~ "
씩 웃는 널 보며 마음에 또 무언가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너에게 김여주는 어떤 존재일까? 사실 답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늘 되물어본다. 혼자 의미를 부여하면서.
" 빨리 들어가자. 나 배고파. "
옹성우가 먼저 치킨집 문을 열고는 내가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었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자기 몸에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는 걸 옹성우는 모른다. 그런 사소한 습관까지, 사소한 매너까지 알고 있는건 역시나 언제나 그 상대를 지켜보고 있는 짝사랑 중인 사람이다. 그래, 그게 너와 나다.
" 치킨이 그렇게 먹고싶디? 너는 동네 친구가 나밖에 없냐? "
" 응. 나는 너밖에 없는데? "
금방 나온 순살치킨을 입에 넣는 옹성우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진짜... 그 장난스럽고도 당연한 말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게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치킨을 집자 옹성우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 그래서 오늘 뭐 먹었는데? "
" 파스타. 민현이가 샀어. "
" 오오, 민현이래. 민현이~ "
" 그럼 민현이 보고 민현이라 하지 성우라 하냐. "
내가 눈을 흘기며 말하자 옹성우가 키득거렸다. 아니, 벌써 말 트고 다 한거야? 뭐야뭐야, 둘이~ 옹성우의 반응에 갑자기 짜증이 확 올랐다. 옹성우는 내 마음도 모르고 저런 말을 하는거겠지. 옹성우는 내가 황민현과 누구보다도 잘 되길 바라고 있을거다. 그 생각에 옆에 놓인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 아휴, 우리 여주를 빨리 보내야 내가 맘편히 여자친구를 만들지. "
" ...누구? 그 후배? "
옹성우는 어쩜 내 속을 긁는 말만 저렇게 잘할까. 다시 맥주를 마시자 옹성우가 치킨을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응. 걔. 엄청 이뻐. 옹성우의 볼이 발그레 해보이는건 내 착각이길 그 순간 간절히 빌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건 꽤나 괴로운 일이다. 사실 내가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지만. 수능이 끝나고 한번, 대학교 들어가서 한번. 그리고 지금. 하지만 그 세번의 순간 모두 나였던 적은 없다. 이런 모습을 처음본다고 해서 괴롭지 않은건 아니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뒷통수를 꼭 누구에게 한대 후려맞은 기분이기 때문에.
" 어차피 내가 황민현이랑 안 사겨도 넌 걔...랑 잘해볼거잖아. "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담담하게 치킨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옹성우가 날 빤히 쳐다보더니 에이, 하고선 두번째 손가락을 휘휘 젓는다. 이번엔 무조건 이 오빠가 너 가는거 보고 갈게! 옹성우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는 또 와르르 무너진다. 짝사랑은 늘 이렇다.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도 짝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에 힘없이 무너지고야 만다. 마치 그냥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 ...내가 황민현이랑 안 사귀면? 너 진짜로 그 후배랑 잘해볼 마음 없는거야? "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물어버렸다. 진심이 묻어나오게. 그러면 안되는데. 내가 다시 담담한 척 하며 맥주를 마셨다. 옹성우를 흘금 보니 옹성우가 흐음, 하며 턱을 매만지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해보였다. 내가 알지. 너는 이 질문마저 장난스레 받아들인다는걸. 그래서 내가 전혀 긴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쯤 난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러면서도 난 긴장한다. 혹시라도 네가 알아차릴까. 사실 알아차렸으면 해서.
" ...그러지 뭐. "
" ... "
" 너 민현이랑 잘 안되면 나도 걔랑 잘 해볼 생각 없어. "
잔인하다. 옹성우. 너는 웃으면서 내게 말한다. 장난조로 말하는 네 목소리에 나는 억장이 무너진다. 너는 내가 황민현이랑 만날거라고 백퍼센트 장담하고 있는거잖아.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괜찮은 표정을 해보였다. 그래. 알았어. 쿨한척. 관심 없는 척.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너의 사랑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 응. 나 그래서 걔랑 사겨. 와 미칠것 같아. "
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해보이는 너를 나는 잊지 못한다. 한번도 나를 그런 표정으로 본 적이 없었는데, 너는 세상을 다 가진 고등학생처럼 나를 보고 신나한다. 마치 구름이라도 탄 듯이.
" 난 걔가 날 좋아할줄 몰랐지. "
" ...잘 됐네. "
" 대박 아니야? 와 진짜... 내가 걔 축제 때 보고 완전... "
" ...알았어. 알았으니까... "
" 야, 여자들은 뭐 좋아하냐? "
" ...내가 여자의 대표냐? 걔한테 가서 직접 물어봐. "
그래서 까칠한게 티가 났나보다. 처음이었으니까. 2년 동안 너를 짝사랑했던 내가 무언가 속에서 무너지는 기분이 처음으로 들었으니까. 아니다, 그냥 내가 바보다. 차라리 너한테 고백이라도 했으면 사겼든 차였든 두 가지 중 하나는 했을텐데. 사실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거다. 내가 너한테 고백하면 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될 거란걸. 짝사랑은 참 비참하지, 성우야. 네가 날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줄 아는데, 나는 그것보다 더 널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의 크기는 같지가 않으니까.
" 에이, 내가 여자친구 사겨서 혼자 솔로라 너 샘나서 그런거지?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라~ 나 이래봬도 첫연애란 말이야. "
행복에 잠긴 네 표정을 볼 때마다 자꾸만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 때 많이 어려서, 네 입장 따위는 헤아릴 경향이 없었다. 그저 너의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할 뿐. 고백을 할 용기가 없었으면서.
" 알아서 해. 솔로 놀리지 말고. "
" 아 우리 여주도 차~암 괜찮은데. "
" ...너한테만 괜찮지. "
너한테만 괜찮으면 되는데. 입에서 웅얼거리다가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용기가 없어서.
" 헐. 전화 왔다.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
신나서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으러 가는 너를 보며 난 끝내 좌절하고 만다. 네가 나가고 나서야 일그러진 표정으로 괴로워했다. 너와의 관계를 끝내려는 용기도, 너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려는 용기도 나는 없다. 널 좋아하는 내 자신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는 용기가 없어서. 네 옆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주위를 뱅뱅 도는게,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다보면 언젠가는 네가 알아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아니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걸까. 열아홉, 나는 어렸고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 혼자, 스스로가 만든 희망고문에.
그리고 그 희망고문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 소개팅을 했다고? 니가? "
대학 동기 중 가장 친한 동기를 꼽으라면 손승완을 꼽을 수 있다. 손승완은 심지어 자신이 보지 못한 고등학교 시절의 내 이야기도 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옹성우를 좋아한 김여주의 6년 짝사랑 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는 얘기지.
" 웬일? 옹성우는 어쩌고? "
" ...걘 마음에 드는 사람 있대. "
" ...와우. "
손승완은 옹성우를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내가 최대한 옹성우 편에서 이야기를 했는데도 손승완은 옹성우 얘기를 들을때마다 인상을 찌푸린다. 야, 이건 당연한거야. 난 네 친구지, 걔 친구가 아니니까. 나라도 완벽한 니 편이 돼줘야될거 아니야. 손승완한테 그 때 엄청 치였지.
" 아, 그럼 됐어. 그냥 그 소개팅남이랑 잘해봐. 괜찮다며. 얘기도 잘 통하고. "
" ...그건 그런데... "
" 옹성우 때문에? "
" ...응. "
" 그놈의 옹성우 때문에, 옹성우 때문에. 너 그러다가 연애 못해. 옹성우랑 연애할거 아니면. "
승완이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사실 승완이는 내게 늘 말했다. 옹성우한테 고백을 하든지, 아니면 이렇게 지내든지 하라고. 대신 옹성우 때문에 속만 앓지 말라고. 그런데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 옹성우 걔도 참 둔하다. 그래도 티났을 것 같은데. "
승완이는 어쩌면 옹성우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옹성우가 다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거라고. 만약 그런거라면 먼지나게 때리라면서. 승완이의 말에 깔깔 웃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 아, 잠시만. 승완아. 전화 좀. "
" 응응. "
승완이와 케이크 하나를 시켜두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누구지? 휴대폰을 확인하자 보이는 이름은... 아. 옹성우다. 승완이의 눈치를 보고 화장실로 가 전화를 받았다. 앞에서 받으면 손승완이 인상 팍 쓰고 빨리 끊으라고 할 것 같아서.
" 여보세요? "
[ 전화 엄청 늦게 받네? ]
" 나 지금 밖이라서. 뭐야, 갑자기? "
[ 너 오늘 저녁에 뭐해? ]
" 저녁에...? 아무것도 안하는데 왜? "
[ 그러면... 아아, 잠깐만. 니가 못하겠으면 내가 한다니까 ]
"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건데? "
[ 아니 그게 아니고... ]
뚝.
전화가 끊겼다. 무슨 소리야. 자기 혼자 전화해서 옆에 사람이랑 꿍얼꿍얼거리고. 내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챙기고 화장실을 빠져나오자 거울을 보고 있던 승완이가 활짝 웃어보인다. 빨리 앉아서 케이크랑 커피 마셔. 씁쓸하디 씁쓸한 옹성우 얘기에는 달달한 당이 제격이지.
황민현
[ 혹시 오늘 저녁에 괜찮으면 ]
[ 저번에 약속한 맥주나 마실래? ]
[ 너무 갑작스러우면 미안 ] 오후 1 : 23
" 얘야? "
" 응? 뭐가? "
" 지금 카톡 알림창 뜬 황민현이라는 애. 얘가 소개팅남이냐고. "
" ...카톡 왔어? "
" 응. 맥주 마시자는데, 오늘? "
강의실 안. 승완이가 아까 찍은 셀카를 확인한다고 내 폰을 가져갔는데 그 새 황민현한테서 카톡이 왔나보다. 소개팅이 끝나고 이틀이 지났다. 나의 카톡을 마지막으로 황민현은 답이 없었다. 아, 그냥 맥주 약속도 진짜 아쉬워서 한 얘긴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내가 승완이가 건넨 휴대폰을 받아들고 톡을 확인하자 승완이의 말 그대로 카톡이 와있었다. 승완이가 내 카톡을 쳐다보곤 흐음,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 너한테 관심 있나본데? 애프터잖아. 이거. "
" ...그런가? "
승완이가 내 휴대폰 스크롤을 위로 살짝 올리고 내가 보낸 카톡이 보였다.
" 나도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나자? "
승완이가 내가 보낸 카톡을 그대로 읽고, 내가 왜 그러냐는 듯 승완이를 쳐다보자 승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이렇게 보낸거야? 와, 얘 그래서 그동안 연락 없었나보네. 승완이가 중얼거렸다.
" 진짜 영혼 없다. 얘가 얼마나 실망했을까. "
" 난 나름대로 영혼 담아서 보낸건데? "
" 너 이때 옹성우랑 카톡했지? "
" 어? 아... "
" ...아이구. 그 놈의 옹성우. "
옹성우가 언젠가 니 발목을 제대로 잡을거다. 승완이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내가봐도 너무 형식적이긴 해.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황민현한테.
" 맥주는 마실거지? 너 오늘 저녁에 아무것도 없잖아. "
" ...음...뭐... "
" 고민을 왜 해! 당장 고고! "
승완이의 말에 키패드를 눌렀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이번에는 이모티콘까지 잔뜩 붙여서는. 응. 오늘 괜찮아 ㅋㅋㅋ 몇 시에 어디서 볼까? 라고. 승완이가 그제서야 만족한다는 듯이 웃었다.
" 오늘 짱 예쁘게 하고 나가야 되는거 알지? "
" ...그냥 맥주 한 잔 하는건데... "
" 어허. 내 말대로 해. 야, 그리고 원래 사랑을 잊는데는 또 다른 사랑이 제격인거 몰라? "
승완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는거라고. 나는 성우를 잊을 준비도, 떠나보낼 준비도 하지 않았다.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랑이었으니. 그저 태양을 바라보기만 하는 해바라기처럼 그렇게 조용히 혼자서 하는 사랑이었으니.
" 이제 진짜 옹성우 짝사랑 끝내버려. "
" ...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민현이에게 보낸 카톡에 1이 사라지는 것만 보고 있었다. 옹성우를 밀어낼 때가 온걸까, 정말로. 승완이가 꽤나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끝내라고. 어차피 시작을 하지 못해서 끝내버릴 것도 없는데. 조용히 내 마음만 정리하면 되는 그런, 짝사랑인데.
[ 7시 저번에 만났던 파스타 집 앞 어때? ]
민현이에게서 카톡이 오고, 승완이가 잽싸게 몸을 기울여 휴대폰을 확인했다. 승완이가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얘랑 잘해보는거야. 알겠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옹성우를 밀어낼 수 없다는 걸 제일 잘 알고 있음에도 애써 그래보려 노력하겠다는 듯이.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 안녕. "
황민현은 저번보다 더 멀끔하게 해선 왔다. 아니, 물론 소개팅날도 잘 차려입고 왔는데 오늘은 뭐랄까 더 캐쥬얼하다고 해야하나? 내가 인사를 건네기 전에 황민현이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응, 안녕. 내가 짧게 대답을 하자 황민현이 갈까? 하고 어색하게 물었다.
" 응. 가자. "
나란히 걷는 내내 황민현이 조금은 어색해하는게 느껴졌다. 나는 크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민망할 것 같아 내가 먼저 저기, 있잖아. 하고 말을 꺼냈다.
" 응, 왜? "
" ...저기 내가 저번에 카톡 답 한 거 있잖아. "
사실 승완이의 말에 하루종일 마음에 걸렸었다. 내가 너무 딱딱하고 형식적으로 답을 보낸게 아닌가 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얘기를 꺼내버렸다. 황민현이 날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 영혼 없었다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미리 말할게. "
" ...아. 그 엄청 무뚝뚝한 카톡? "
" ...응. "
무뚝뚝하게 느껴졌나보구나. 내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황민현이 사막여우같은 웃음을 지었다. 아냐아냐, 농담이야. 그러곤 말을 덧붙였다.
" 사실 나는 그 날 네가 그 카톡 보냈을 때 다음에 보자는 것도 보기 싫은데 내가 억지로 약속 잡자고 한 것 같아서... 그래서 좀 망설였거든. 너한테 다시 연락하기. "
" ...아. "
담담하게 말하는 황민현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진짜 그렇게 느꼈나보네, 난 아닌데. 나도 사실 소개팅날 헤어지면서 엄청 신경썼었는데. 내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내젔자 황민현이 다 안다는 표정을 해보였다.
" 그래서 아까 점심 때 "
" 응 "
" 성우가 전화한게 그거때문이야. 나 대신 약속 잡아준다고. "
" ...아. "
아까 승완이랑 카페에 있을 때. 그럼 옹성우가 얘기하던 사람이... 황민현이구나. 내가 아. 하고 짧게 말하자 황민현이 날 흘끔 보고는 머쓱한듯 말했다.
" 용기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면 좀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만든거니까. "
" ...미안. "
" 농담이야. "
" 농담 아닌 것 같은데? "
" 쪼~끔 섭섭했어. "
" 거봐. 내가 잘못한거 맞네, 그럼. "
" 그래도 오늘 이렇게 나왔잖아. 그럼 됐어, 나는. "
황민현이 그렇게 말하며 치킨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후련해보이는 황민현의 표정에 왠지 나까지 안도감이 들었다. 좀전까지 날 불편하게 하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역시 말하길 잘했다.
" 들어가자. 나 엄청 배고파. "
" 그래. "
황민현이 장난스레 말하며 문을 잡아주었다. 그 모습에서 얼마전의 옹성우가 잠깐 보였던 게 다시 조금 미안해졌지만.
" 민현아 근데 있잖아. "
" 응? "
맥주를 마시고 있던 민현이를 불렀다. 그냥 문득 궁금해졌다. 너는 왜 소개팅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져서.
" 솔직히 너 되게 잘생기고, 매너좋고, 성격도 좋은데 여자친구 없는게 이상해서. "
" 나 전역한지 얼마 안 돼서. "
" 아. "
민현이의 말에 아... 하고 금방 수긍하자 민현이가 농담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거.
" 너는 소개팅 홧김에 했다고 그랬지? "
민현이가 맥주잔을 놔두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 내가 그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인정하자 민현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 난 그 홧김을 계속 노렸거든. "
" ...무슨 말이야? "
무슨 소리지? 내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민현이를 쳐다보자 민현이가 그런게 있어. 하며 맥주를 마셨다. 아니... 뭐야, 왜 신비주의 전략 써?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민현이가 푸하하 하고 웃었다.
" 내가? 신비주의라고? "
" 지금 이해가 안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
" 진짜 말 그대론데? 나는 홧김을 계속 노렸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
" ... "
"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말해줄게. "
난 지금도 우리 친하다고 생각하거든? 이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하긴 옹성우한테 카톡할 때랑 민현이한테 카톡할 때랑 온도차가 심하긴 해... 그렇다고 옹성우 급으로 친해지는건... 내가 눈을 깜빡거리다 입에 치킨을 넣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이렇게 그냥 친구가 되는건가? 그런 생각에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본인 입으로도 좀 더 친해지면 말해준다고 하고. 근데 나는 민현이한테 애프터 신청을 받아서 온거고. 내가 치킨을 오랫동안 천천히 씹고 있으니 민현이가 그런 나를 쳐다보고 물었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 응? 아... 아니. 그냥. 치킨 맛있네. "
" 맛있어하는 표정이 아닌데? "
" 맛있는데? "
무슨 초딩도 아니고. 내가 말하고서는 웃겨서 웃으니 민현이도 따라 웃었다. 오늘의 만남으로 또 다시 두가지 확실해진게 있다.
나는 황민현과 비교적 빨리 친해졌고, 황민현에게 빨리 마음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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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연재텀 길거라면서 금방 돌아온 것 같은... ㅎㅎㅎㅎㅎㅎ
아마도 초반부 외에는 조금... 쪼오금 연재텀이 길어질 수도 있어요..ㅎㅎㅎㅎ
그래도... 그래도 빨리 올 수 있는 한 빨리 오도록 노력할게요~~~~~
암호닉은 다음편쯤에 공지 띄우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생각보다 다들 재밌어해주셔서 감사해용
그리고 질문이 하나 있어요..!!
브금을 앞으로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브금을 넣어주세요 vs 싫어요 넣지마세요
전 과반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투표까진 안 하고 댓글 남겨주세용~ 상관없으신 분들은 말 안 해주셔도 됩니다 ㅎㅎㅎㅎ)
신알신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사랑합니다!
이번편부터는 10p 이지만,,,,, 마...니..사랑..해주세요...ㅎ